"함께 살자", 돌멩이들의 외침
By 나난
    2010년 03월 30일 03:39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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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나 평범한 일상들이 지나가고 있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분수대에서 사진을 찍고, 아이와 공원을 가고, 분주히 출근을 하거나 아니면 집으로 돌아가는 사람들. 그 안에 어쩌면 내가 있고, 이 글을 읽는 당신이 있겠지.

   
  ▲ 쌍용차 다큐멘터리 <당신과 나의 전쟁> 포스터

회사가 살아야 노동자가 살 수 있다는 말이 당연하다고 세뇌되어진 이 시기에 자신의 생존을 위해 머리띠를 두르고 파이프를 든 사람은 사회적 죄인이었다. 큰 것을 위해 숨을 죽이고 서서히 죽어가야만 작은 동정이라도 받을 수 있는 지금의 사회 안에서는 말이다.

쌍용자동차에서 일하던 노동자 중 30%를 정리해고 한다고 했다. 노동자들만이 함께 살기를 원했고 정부와 언론, 사측은 구조조정만이 모두가 살 길이라고 이야기했다. 노조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노동자의 권익을 위해 만들어진 노조로서는…

싸우는 수밖에 없었다

노동자를 사지로 쫒아내는데 어쩌겠는가. 싸우는 방법밖에 아무 것도 생각할 수 없었다. 세상은 이것과 저것 중에 하나를 택하라고 하지만 언제나 마지막 선택은 자본의 몫이었다. 그리고 그 선택이라는 것은 정리해고였다.

노동자들은 즉각 대응에 나섰다. 하지만 노동자의 최후의 무기 총파업조차 산 자와 죽은 자로 갈라진 그 안에서는 모두의 무기가 되질 못했다. 높은 연봉에 안정된 일터, 세상은 귀족 노동자라 매도하며, ‘적당히 벌었으면 나머지를 위해 죽어주기’를 강요했다.

그저 일을 했을 뿐이다. 당신처럼, 나처럼. 일을 하고 꿈을 키우고 그런데 이제 꿈을 접으라고 한다.

<당신과 나의 전쟁>은 2009년 쌍용차노동자의 투쟁 이야기이다. 경찰은 한 해 쓰는 최루액의 95%를 쏟아 붇고, 전체 쌍용차 노동자의 한 달 체불 임금이 넘는 돈을 용역에게 써가면서 용산철거민 참사 때처럼 컨테이너를 이용해 노동자들을 향해 공격을 했다.

이처럼 ‘당신과 나의 전쟁’은 전기도 끊고 식수도 끊어버린 메마르고 삭막한 지옥 같은 곳에서 77일간의 싸움을 벌인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하지만 그것은 77일만의 싸움은 아니었다.

상하이차로의 매각을 반대하던 2006년의 봄을 나는 아직 기억한다. 많은 쌍용차의 노동자들은 매각이 될 경우 발생할 수 있는 문제점들을 정확히 알고 있었고, 매각반대투쟁에 들어갔다. 하지만 당시 언론에서는 연일 쌍용자동차가 상하이자본에 매각되면 광활한 중국 땅이 마치 우리의 시장이 될 것처럼, 이 경제가 살아날 것처럼 떠들어댔다.

2006년 봄 당신들이 떠들어댄 이야기를 기억한다

그때 노동자들의 예언은 슬프게도 2009년 정확히 맞아떨어졌고, 장밋빛 미래를 얘기하던 자본은 노동자의 꿈을 짓밟았다. 하루하루가 지날수록 사람들은 황폐해져갔다. 이들을 이렇게 만든 건 공권력과 세상의 무관심이었다. 자본에 의해 조합원의 이름들은 산 자와 정리해고를 당한 죽은 자로 나누어졌다.

그렇게 선을 긋는다고 하루아침에 달라질 건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몇 십 년을 한 라인에서 일하고 월급날 삼겹살에 소주 한 잔 마시며 “형님”, “동생” 하던 노동자가 서로에게 돌멩이를 던지게 만드는 그 순간, 자본은 가장 궁극적이고 기본적인 ‘사람답게 산다’라는 기본 명제조차 밟아서 쓰레기통에 처박아 버렸다.

산 자와 죽은 자가 그 싸움의 상징은 아니다. 산 자도 죽은 자도 자본에겐 언제나 죽은 자인 것이다. 그 안에 산 자는 어디 있고, 죽은 자는 어디에 있나. 그 속에 인권은 없다. 살기 위해 집어든 돌멩이가 진짜로 살아갈 수 있는 무기가 되려면 그 모든 돌멩이들은 한곳으로 던져져야했다. 산 자와 죽은 자가 함께 말이다.

슬픔과 분노의 감정에 당시의 상황까지 떠올라 더 많은 감정의 골이 깊어질 때 쯤 불편해졌다. 열심히 일한 죄밖에 없는 우리를 왜 해고하느냐고 울부짖는 그 순간.

그래… ‘왜 열심히 일만 한 거냐’고 묻고 싶었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바로 옆 공장 비정규노동자들이 몇 년을 싸우고 있는지도 모르고, 같은 노동자임에도 임금의 반도 못 받는 것이 이상하지 않았나!

정치인들의 말도 안 되는 거짓말을 믿고 또 다시 속고를 반복하면서… 언제나 우리는 내가 직접 겪은 후에야 후회를 한다. 그러니 열심히 땅만 보고 일하지 말았어야 했다. 옆도 보고 뒤도 보고 다른 나라도 건너다 보고 그렇게 살자는 거다.

살기위해 싸운다! 생존권을 지키자!

예전 압구정동에서 의류노동자의 해고투쟁을 하기 위해 집회를 한 적이 있다. 참가자 열댓 명은 자리 확보도 못한 채 자동차가 지나가는 골목을 사이에 두고 구호를 외쳤다. 그때 큰 레스토랑의 사장이 나와 소리를 질렀다.

“우리도 좀 먹고 살자! 당신들만 생존권 있는 거 아니다! 장사 안 돼 죽겠는데 왜 이러냐!”

각자의 ‘생존권’… 모두의 생존

생존권이라는 건 누구에게나 소중한 것! 포기할 수 없는 것! 그래서 30년을 함께 일하고도 쫓겨난 동료에게 등을 돌리며 돌멩이를 들 수도 있는 것이라면 그 생존권을 지키기 위해 어떠한 전쟁도 더 치룰 수 있다는 것 아닌가. 아직도 곳곳에서 일어나는 그 전쟁들 속에서 쌍용차 노동자들이 외쳤던 ‘함께 살자’ 라는 말이 너무나 공허하게 들려온다.

자연의 섭리대로 추운 겨울이 끝나면 봄은 온다. 하지만 이 싸움이 끝나면 산 자와 죽은 자 누구에게도 행복이 오고 안정이 오는 것은 아니다. 그저 다가오는 건 아무 것도 없다. 움직이지 않는데 저절로 얻어지는 건 모두 거짓이다.

어렵게 얻은 새 직장에서도 아이를 학교에 보내는 평범한 아빠의 모습에서도 2009년의 여름은 계속 묻어있었다. 혹자는 ‘그렇게까지 싸웠는데 지지 않았냐’며 포기하기도 하지만 세상 속에 아무렇지 않게 평범한 삶을 살아갔던 노동자들이 겪었을 그 무엇은 앞으로 살아갈 많은 날들에 튼튼한 비료를 만들어 주었으리라. 77일간의 싸움은 여전히 유효한 것이다.

영화의 후반부에는 2006년의 어느 날 – 4년 후 77일간의 투쟁 중에 서로에게 돌멩이를 던졌을 수도 있는 – 쌍용차의 노동자들이 함께 족구를 하는 모습이 나왔다. 그들은 즐거워 보였다. 앞으로 산 자가 될 수도 죽은 자가 될 수도 있지만 마치 2010년을 아무렇지도 않게 살아가는 당신과 나처럼 말이다.

‘당신과 나의 전쟁’ 여기서 누가 당신이고 나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당신과 나’가 되길 거부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영화 속의 이야기는 그 대다수가 ‘당신과 나’임을 너무나 덤덤히 나타내고 있다.

그들이 77일 동안 나와 내 동료를 지키려했던 삶을 또다시 살아갈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하지만 어떤 전쟁 속에 들어가더라도 지금까지 땅만 보고 살던 자신이 아니라 조금 더 달라진 시선을 가지고 살아갈 거라는 확신은 하고 싶다. 누구나 겪고 싶지 않지만 누구나 겪어야 할 전쟁은 앞으로도 계속되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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