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전시태세 부추기나
    2010년 03월 30일 09:34 오전

Print Friendly

천안함 침몰 닷새째다. 합동참모본부는 해난구조대(SSU) 잠수사들이 29일 오후 10차례에 걸쳐 백령도 인근 해역에 침몰해 있는 천안함 함미 부위를 망치로 두드렸으나 반응이 없었다고 밝혔다. 함수 부분도 오전 8시13분쯤 망치로 두드렸으나 반응이 없었다. 함미는 28일 밤 민간 어선의 어군탐지기에 의해 폭발 현장에서 불과 180m 떨어진 곳에서 발견됐다.

합참은 SSU 요원들이 29일 오후 8시14분부터 13분 동안 천안함 함미의 굴뚝이 깨진 부분으로 산소통 한 개 분량의 산소를 공급하는데 성공했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생존가능 시한(69시간·이날 오후 6시30분)을 넘긴 뒤까지 군은 단 한 명의 생존자나 시신도 찾지 못했다.

김태영 국방부 장관은 이날 국회 국방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천안함 폭발 원인에 대해 “한국군 기뢰는 서해안에 설치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로 인한 폭발 가능성은 낮다”며 “6·25전쟁 직후 북한이 운영했던 바다 기뢰는 그동안 많이 제거했지만 완벽한 철거가 안 됐기 때문에 가능성이 있고. 북한이 부유기뢰를 외곽에서 흘렸을 수 있다”고 말했다.

30일자 아침신문들은 실종자 구출에 대한 기대와 함께 침몰 원인과 구조 과정의 의문점에 집중했다. 다음은 30일자 전국단위 종합일간지 1면 머리기사 제목이다.

경향신문 <“아니야, 아니야, 살아 있을 거야”>
국민일보 <함미 두드렸지만…반응 없었다>
동아일보 <“함미 두드리고 두드렸지만…”>
서울신문 <“함미 두들겼으나 반응 없었다”>
세계일보 <“함미 두드렸지만 반응 없었다”>
조선일보 <함미 깨진 틈으로 산소 주입>
중앙일보 <천안함은 대답이 없었다>
한겨레 <“함미 두드려도 반응 없었다”>
한국일보 <“……” 아무리 불러도 대답 없었다>

김태영 국방장관은 29일 천안함 침몰 사고와 관련, "정부나 국방부는 북한의 개입 가능성이 없다고 한 적은 없다. 모든 가능성을 다 검토하고 결론을 내야 한다"고 말했다. 조선일보는 1면 기사 <“북한 개입 가능성 없다고 한 적 없다”>에서 김 국방장관의 말을 전했다.

조선일보 보도에 따르면, 김 장관은 이날 국회 국방위 전체회의에서 한나라당 유승민 의원이 "군 당국이 북한 도발이 아니라고 강조하는 이유가 뭐냐"란 질문에 "그렇지 않다"며 이같이 답했다. 그는 사고 원인에 대해선 "부상자 상태 등을 봤을 때 외부에서의 충격이 아닌가 추정한다"고 밝혀 내부 폭발보다는 외부 충격 가능성에 무게를 뒀다.

   
  ▲ 조선일보 3월30일자 1면.  
 

한편 김 장관은 기뢰가 사고 원인일 가능성에 대해선 "북한은 6·25 전쟁 당시 4000여기의 기뢰를 구(舊)소련으로부터 수입해 3000여기를 동해와 서해에 설치했다. 1959년과 1984년에 발견돼 제거했었지만 100% 수거되지 않았을 수 있다"고 했다. 또 그는 "외부 테러, 기뢰를 이용한 가능성도 열어놓고 점검하고 있다"면서 "다른 어떤 방법에 의해 기뢰가 설치되는 것은 막을 수 없겠지만…"이라고 덧붙였다. 조선일보는 “북에서 떠내려온 기뢰보단 의도적으로 설치된 기뢰 쪽에 무게를 두는 듯한 발언이었다”고 분석했다.

반면 김 장관은 "서해안에 한국군 기뢰는 없다. 우리 군이 과거 폭뢰를 개조해 설치해 놓은 게 있었는데 2008년에 모두 회수했다"고 했다. 이와 관련해 국민일보 최현수 군사전문기자는 6면 기사 <강력 제기되는 기뢰폭발說이 맞다면… 北서 유입? 6·25때 설치?>에서 “기뢰 폭발설은 두 갈래로 나뉜다”며 다음과 같이 보도했다.

“우선 우리 군이 오래 전에 심어놓았던 기뢰가 천안함이 사고해역을 지날 때 부상해 충돌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설이다. 그러나 백령도 인근은 한미연합훈련 시 실시하는 기뢰부설연습지역이 아니어서 최근 기뢰가 부설되지는 않았다. 6·25전쟁 시 부설된 기뢰가 뒤늦게 폭발했다는 설도 있지만 군 전문가들은 당시 서해안은 연합군이 제해권을 장악하고 있어 굳이 이 지역에 기뢰를 많이 부설할 이유가 없었다고 설명했다. 게다가 당시 기뢰는 케이블로 폭발시키는 형식으로 설사 심해에 묻혀 있다가 부상해 천안함과 충돌했다 하더라도 선체가 반파될 정도의 폭발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또 다른 가설은 북한이 기뢰를 흘려보냈을 가능성이다. 김학송 국회 국방위원장은 28일 평택 2함대를 방문한 뒤 ‘북측에서 뿌려놓은 기뢰가 사고해역에 흘러왔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군사전문기관 제인스 디펜스는 북한이 조류를 활용해 부유기뢰를 흘려보낼 수 있으며 하루 22∼38㎞정도 남쪽으로 이동할 수 있을 것으로 추정했다. 제인스 디펜스는 북한이 소련이 초기에 개발한 ALCM-82, KMD-I/II, M-08, M-26 등 2000여발 이상을 보유하고 있으며 1995년부터는 동구와 중국, 러시아로부터 신형 기뢰를 구입했으며 기뢰성능개량을 해온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그러나 부유기뢰는 육안식별이 가능하고 군함이 아닌 민간선박에 피해를 입힐 수 있어 위험부담이 크다. 이 때문에 북한이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는 음향감응식기뢰 설치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이 기뢰는 특정군함의 엔진소리와 스크류 소리를 탐지하면 폭발한다. 하지만 북한이 우리 군이 눈치 채지 못하게 기뢰를 부설해놓고 북쪽으로 올라갈 수 있었을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남는다. 게다가 기뢰는 일단 파괴된 뒤에는 잔존물을 찾기 힘들어 북한이 부설한 기뢰라는 점을 입증하기는 힘들다. 이 때문에 침몰 원인이 기뢰폭발로 결론지어진다고 하더라도 책임소재를 밝히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 조선일보 3월30일자 사설.  
 

그러나 조선일보는 북의 개입을 공공연히 가정하며 ‘∼라면 사설’을 내놨다. 조선일보는 사설 <국가적 위기에 대한민국 저력 보여주자>에서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천안함을 어뢰로 공격했다면 명백한 무력 도발이고 국제법상 전쟁 행위에 해당된다. 공격용 기뢰를 사용한 것도 마찬가지로 국제법상 무력행사로 간주된다. 천안함 침몰 원인이 어뢰나 기뢰를 이용한 의도적 공격으로 드러날 경우 맨 먼저 떠오르는 것은 그간 서해 북방한계선(NLL)을 인정할 수 없다며 무력 도발을 공공연히 외쳐왔고, 과거부터 경비정과 반(半)잠수정 등을 동원한 파괴 활동을 계속해온 북한이다.

…천안함이 북한의 기뢰 또는 어뢰 공격을 받고 침몰한 것이 사실로 입증되는 순간 대한민국은 국가적 차원의 대응을 결정해야 할 고비를 맞게 된다. 상황에 따라서는 전시(戰時)에 준하는 국가적 위기도 각오해야 한다. 이 결정적 국면을 맞아 정부와 군, 정치·경제·사회 각계를 비롯해 국민 모두가 마음가짐을 새롭게 다질 필요가 있다.…”

이와 관련해 국민일보는 사설 <천안함 침몰 원인규명에 합심할 때다>에서 “북한이 개입했을 가능성이 있다면서 벌써부터 북한에 대한 강력한 응징을 촉구하는 목소리도 나온다”며 “(정부의 위기관리 능력에 허점이 있다는 등) 이런 발언들은 사회불안을 조장하는 데 일조할 뿐 사태 해결엔 결코 도움이 안 된다”고 못박았다.

이런 가운데 우리 군의 초동 대처와 구조 과정, 그리고 이와 관련한 공식 발표에 대한 의문도 잇달아 제기되고 있다. 한겨레는 1면 기사 <‘의문의 14분’>에서 국방부가 밝힌 천안함 침몰 시각에 대해 의혹을 제기했다. 한겨레는 “천안함 침몰 사고 직전, 실종자 가운데 1명이 여자친구와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를 주고 받다가 사고 14분 전 갑자기 연락이 두절된 사실이 29일 새로이 드러났다”며 “이는 국방부가 공식 발표한 사고 시각인 26일 밤 9시30분보다 이른 시각에 사고가 일어났을 수도 있음을 보여주는 정황 증거”라고 보도했다.

한겨레 보도에 따르면, 실종자인 차균석(21) 하사의 여자 친구 김아무개(23)씨는 차 하사와 사고가 난 26일 밤 9시께 문자를 주고 받았다. 사고 46분 전인 저녁 8시44분께 문자를 시작했고, 3-4분 간격으로 32분동안 21통의 문자를 주고받았다. 그런데 공식 발표된 사고 시각 14분 전인 밤 9시16분께 차 하사의 문자가 도착한 뒤 갑자기 연락이 끊겼다. 김씨가 9시30분 전에 다시 문자를 보냈지만, 그때부터는 전혀 연락이 닿지 않았다.

이에 대해 해군 관계자는 “해군에게는 항상 임무가 있다. 오후 9시16분 문자메시지가 끊겼다고 해서 그게 사고 시각이라고 단정할 근거가 되는 것은 아니다”라고 한겨레 쪽에 해명했다. 그러나 한겨레는 3면 관련기사에서도 ‘사라진 14분’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다.

한겨레 보도에 따르면, 차 하사는 ‘밤 12시-새벽 4시 근무, 취침 및 휴식, 낮12시-오후4시 근무, 취침 및 휴식’ 일정에 따라 근무했으므로 당시는 휴식시간이었다. 따라서 밤 9시30분에 사고가 터졌다면 밤 9시16분에서 9시30분 사이에 김씨에게 답장을 하지 않을 이유가 별로 없다는 것이다.

   
  ▲ 한겨레 3월30일자 3면.  
 

이날 문자를 주고받으면서도 문자 답장을 빨리 하지 않는다고 두 차례나 화를 낸 사람은 차 하사였다. 한겨레는 “국방부는 사고 시각을 애초 26일 밤 9시45분이라고 밝혔다가 밤 9시30분으로 바꾼 데 이어 29일엔 김 국방장관이 다시 밤 9시25분으로 고쳐 말하는 등 혼란을 부추기고 있다”며 “사고 전 천안함에서 다른 긴급 상황이 발생했을 가능성이 있는 것”이라고 보도했다.

한겨레는 1면 기사 <군, 천안함 폭발 당시 사진 확보>에서 “(사고 당시) 천안함을 관측TOD(열상감지장비)로 촬영한 것을 확보했다. 이 사진은 사고 원인을 밝히는 중요한 자료가 될 것”이라는 군 고위 관계자의 말을 전하기도 했다. 한겨레는 “그는 사진을 찍은 주체를 밝히지 않았지만, 서해 백령도 해안 경비를 서는 해병대 부대에서 찍은 것으로 판단된다”며, “사진을 직접 보진 못했지만, (천안함이) 물 위로 떠오른 모습이라는 보고를 받았다”는 앞서의 관계자의 말을 전했다.

서울신문은 5면 기사 <생존자 다수 수도통합병원 집단이송 왜?>에서 “해군2함대사령부가 천안함 생존자들을 잇달아 경기 성남시의 국군수도통합병원으로 옮기면서 의혹이 증폭되고 있다”며 “대다수 장병이 가벼운 부상을 입은 것으로 확인되면서 실종자 가족들 사이에서는 정보유출을 차단하기 위한 조치가 아니냐는 의혹까지 제기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생존자 58명 가운데 44명이 통합병원에 모인 데 대해 원태재 국방부 대변인은 “부상 정도는 경미하지만 추가 검진과 정신적 휴식, 심리치료상담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고 해명했지만, 서울신문은 “군 설명과 달리 상당수가 심리치료를 제대로 받지 않은 것으로 밝혀졌다”고 보도했다.

처음부터 문제였다는 지적도 나왔다. 세계일보는 4면 기사 <부상자, 인천 놔두고 먼 군병원 후송>에서 “해군이 초계함 침몰로 발생한 부상자들의 치료를 위해 당초 인천 인하대병원에 치료준비를 요청했다가 국군수도병원으로 바꾼 것으로 확인돼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고 단독 보도했다.

세계일보 보도에 따르면, 해군 관계자로 추정되는 사람이 사고 당일인 지난 26일 오후 11시쯤 인하대병원 응급의료센터에 “배가 가라앉아 인하대병원 쪽으로 8명이 후송될 것”이라는 전화연락을 해왔다. 인하대병원은 2004년 국군수도병원과 진료협약을 맺어 군 치료가 가능하고 헬기장 등 시설도 갖추고 있어 부상자의 응급치료가 가능해 그동안 줄곧 부상병들을 치료해 왔다.

   
  ▲ 세계일보 3월30일자 4면.  
 

이에 따라 병원 측은 외과계 의료진 등을 비상대기시키는 등 혹시 모를 긴급 상황에 만반의 준비를 갖췄다. 헬기장에서 응급실까지 구급차가 바로 올 수 있도록 준비하고 의료진도 대기시켰다. 하지만 군 관계자는 20여분쯤 뒤 다시 전화를 걸어 “우선은 국군수도병원으로 가게 됐고, 추후 변경이 될 수 있다”며 “또 연락하겠다”고 말한 뒤 전화를 끊었다.

세계일보는 “실제 부상병들을 싣고 인천으로 온다던 헬기는 인천에서 50여㎞ 떨어진 성남 국군수도병원에 후송된 것으로 확인됐다”고 보도했다. 병원의 한 관계자는 “당시 해군 관계자에게 ‘환자 상태가 안 좋으냐’고 물었더니 ‘다양하다’고만 한 뒤 변경 이유에 대해선 ‘알지 못한다’고 말했다”면서 “군부대에서 치료준비 요청 후 환자들을 다른 곳으로 보내는 경우는 매우 이례적이다”고 말했다.

30일자 모든 아침신문은 천안함 침몰 이후 우리 군이 보여준 대응조치에 대해 성토했다. 한국일보는 2면 기사 <생존자 구조는 해경이…함미 발견은 어선이…>와 5면 기사 <해군 검정 천막 설치하자…“벌써 빈소 차리나” 강력 반발>에서 관련 내용을 보도했다. 특히 실종자 가족들이 애타게 구조를 기다리는 상황에서 장례 준비를 운운하고 검은 천막을 치는 등 실종자 가족뿐만 아니라 지켜보는 국민까지 분통을 터뜨리게 했다는 것이다.

   
  ▲ 한국일보 3월30일자 4면.  
 

해군 제2함대가 29일 부대 내 체육관 앞 연병장에 친 검정색 군용 천막과 관련해 해군 쪽은 “이 천막은 실종자들이 살아왔을 경우 외부인들을 차단한 상태에서 가족들과 만남의 장소를 마련하려 했던 것”이라고 해명했다가, “이번 사태를 지원하기 위해 지원병이 많이 사령부에 파견 나와 이들을 위한 숙소로 사용하려 했던 것”이라고 말을 바꾸기도 했다.

한편 이명박 대통령과 관련해 한겨레가 6면에 <초기대응 칭찬한 이 대통령, 군 보고만 믿었나>를 실은 반면, 중앙일보는 11면에 <“내가 밤새도록 생각해 봤는데…” 천안함 사태 잠 못 이루는 MB 네 차례 안보회의서 속사포 질문>을 실어 대조적이었다.

필자소개
레디앙
레디앙 편집국입니다. 기사제보 및 문의사항은 webmaster@redian.org 로 보내주십시오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