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창동 감독에게 '빵점' 주는 정권"
        2010년 03월 30일 09:05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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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 정권 들어 문화와 예술, 언론에 대한 제재와 억압이 끊이지 않는다. 모든 것이 편안하고 제대로 돌아가는 듯이 보이는 상황에서도 문화, 예술, 언론은 편안함 뒤에서 일렁이는 불안한 징후들을 미리 짚어내어 펼쳐 보이는 시선과 목소리를 지녀야 마땅하다.

    최대 영화인이 동참한 까닭

    그런데 이 정권은 모든 것을 억지로 들쑤시고 갈아엎겠다며 ‘잃어버린 10년’ 어쩌고 하면서 시대의 흐름을 거스르고, 강물의 자연스런 흐름도 바꾸려한다. 그래서 작가들은 ‘저항의 글쓰기’로 문제를 지적하고, 영화인들은 ‘영화진흥위원회(영진위) 정상화를 촉구하는 영화인 1000인 선언’으로 비정상적인 현 정권의 영화정책이 바로잡혀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말이 1000인 선언이지 지난 3월 16일에 치러진 선언에 참여한 영화인만 해도 1,692명이나 된다. 한국영화제작가협회 차승재 대표, <괴물>, <마더>의 봉준호 감독,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의 임순례 감독, <호우시절>의 허진호 감독, <말아톤>의 정윤철 감독, <전우치>의 최동훈 감독 등 상업 영화 제작자와 감독을 비롯해 <워낭소리>를 제작한 고영재 프로듀서, <낮은 목소리> 시리즈를 만든 변영주 감독, 그리고 한국 다큐멘터리의 고전 <상계동 올림픽>과 <송환>의 김동원 감독 등 극영화에서 다큐멘터리까지 여러 분야의 영화인들이 한꺼번에 뜻을 모으는 일은 드문 일이다.

    이름이 알려진 감독이나 제작자 말고도, 독립영화인과 영화학도들까지 이름을 올렸다. 영화라는 분야가 워낙 일사분란하게 조직화된 곳이 아니라 작품별, 프로젝트별로 제각기 활동하는 작가와 스태프들이 많다보니 뜻은 있어도 선언에 미처 함께 하지 못한 사람까지 고려하면 거의 모든 영화인들이 지금 돌아가는 영화 정책을 위기로 여기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많은 영화인들은 왜 선언에 참여했을까. 지난 3월 23일 <상계동 올림픽>과 <송환>의 김동원 감독을 만나 얘기를 들어봤다. 김동원 감독은 한국영화아카데미 원장 문제부터 이야기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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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혹투성이에, 엉터리에"

    – 선언에 이토록 많은 사람이 참여하게 된 배경은 무엇이라고 보는가?

    = 한국영화아카데미는 지난 20여 년간 수많은 영화인들을 배출한 대표적인 영화인 양성 기관이다. 한국영화아카데미 출신 영화인들은 여러 영화교육기관에서 후학을 가르치거나 각종 영화제에 작품이 초청되는 등 국내외적으로 그 성과를 인정받는 공공교육기관으로서 많은 성과를 이뤄냈다.

       
      ▲ 김동원 감독 (사진=이안)

    그런데 영진위는 학교운영을 총체적으로 이끌어갈 원장을 지난 3개월간 공석으로 비워뒀으며, 이미 지난해 10월 영화진흥위원회 직제개편을 통해 영화아카데미 원장의 지위를 부장급으로 격하시켰다. 뿐만 아니라 책임교수의 계약기간을 기존 2년에서 1년 이내로 단축하고, 초빙교수의 임용을 중단했다.

    이렇게 된 배경에는 지난해 9월 영화아카데미가 "너무 엘리트화 됐다. 영화인 재교육 중심으로 개편해야 한다"는 조희문 영진위 위원장의 한국영화아카데미를 뿌리째 흔드는 발언이 깔려있다.

    그래서 영화계에서는 영화아카데미 문제가 독립영화 전용관과 미디액트에 대한 의혹투성이의 공모사업에 이어 또 하나의 엉터리 공모가 될 것이라는 위기감과 우려에서 ‘1000인 선언’이라는 방식으로 뜻을 모으는데 많은 영화인이 참여하게 된 것이다.

    멀티플렉스 극장 시스템에서 자본의 집중적인 지원을 받으며 상영되는 상업영화와 달리 스크린 하나가 아쉬운 독립영화인들이 오죽하면 <워낭소리>의 이충렬 감독 <똥파리>의 양익준 감독 등 독립영화 감독들이 자신들의 공간인 인디스페이스가 아닌 불공정한 공모로 선정된 시네마루에서는 영화를 상영하지 않겠다고 선언했겠는가?

    이창동 감독 ‘빵점’

    그런데 독립영화 감독들의 분명한 상영 거부 선언에도 불구하고 시네마루가 상영을 강행하자 독립영화 감독들은 자신의 영화가 상영되는 동안 1인 시위를 벌이기까지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영진위의 횡포는 독립영화계에만 향해 있는 것이 아니다. 가령 편당 5억 상당의 현금 및 현물 지원을 하는 마스터 영화제작 지원사업 공모에서 <박하사탕>과 <밀양>의 이창동 감독을 ‘빵점’으로 탈락시키고, 대표적인 우파 영화단체인 한국영화감독협회 상임고문인 김호선 감독을 선정했다.

    원래 마스터 영화제작은 각각 두 편까지 지원할 수 있도록 되어있는데 굳이 이창동 감독의 <시>를 탈락시키고, 김호선 감독만 단독 선정한 것 자체가 어이없는 것이다.

    물론 영진위는 공모에서 탈락시킨 독립영화협회(독협)이나 미디액트, 이창동 감독 등에 대해서 ‘워낙 잘해왔고, 앞으로도 잘할 사람들이니 더 이상 지원이 없더라도 나가서 잘하라’고 한다. 그러나 이건 겉으로 하는 말이고, 실제로는 영화계 ‘좌파척결’이라는 색깔론에서 비롯된 결과라는 게 너무 뻔히 보인다.

    안타까운 것은 전혀 그런 색깔론에 함께 하리라고 생각하지 못했던 사람들이 영진위의 입장을 뒷받침하는 쪽에 서있는 걸 보는 것이다.

    스크린 확보가 관건

    – 선언 이후로 지속적으로 해나갈 일은? 

    = 앞으로 새로운 독립영화전용관과 미디액트가 지금까지 해왔던 퍼블릭 억세스 사업을 지속할 공간을 마련하는 것이 먼저 추진해야 할 일이다. 지금까지 정부지원 의존도가 높았던 것도 정책 변화에 따라 사업 추진을 어렵게 만드는 원인인 만큼, 민간차원의 활동으로 가능한 부분에서는 지원금 의존도를 줄여나가야 한다.

    그 지원금이라는 게 사실 임대료 빼고 나면 순수한 사업비는 1억 원 정도니, 상근자들 최저임금도 보장되지 못하는 금액이긴 하지만.

    여기서 관건은 스크린을 확보하는 것이다. 영화는 어쨌든 관객과 함께 하기 위해 스크린이 있어야 하니까. 그러면서 민간차원에서 진행되는 여러 활동에 정부가 프로젝트 단위로라도 지원을 계속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영진위가 지원하는 것이 상업영화에 대한 직접 지원이 되어서는 안된다. 공공성과 예술성에 주목해서 문화의 다양성과 가능성을 키우고, 미디액트가 해왔듯이 사회적인 미디어 교육에 모범을 보이는 사업에 간접지원을 꾸준히 하는 것이 필요하다. 

    – 그렇게 해서 가령 다큐멘터리의 경우 지속적인 작업이 가능한가? 

    = 많은 자본으로 다큐멘터리를 만들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런 여건이 아니었던 탓도 있고. 가령 <상계동 올림픽>의 경우, 상계동 주민들과 같이 먹고 자고 했으니 필름만 있으면 별도의 제작비가 필요하지 않았다. 먹여주고 재워주는 건 그쪽 신부님이 제공해 주셨고……

    <송환>도 굳이 제작비를 정산해보지는 않았지만 1천만 원 정도 들었다. 가장 많은 제작비가 들어간 작품은 종군위안부 문제를 다룬 <끝나지 않은 전쟁>이다. 한국, 중국, 필리핀, 네덜란드 등 세계 각지에 생존해 있는 위안부 할머니들을 직접 찾아가야 했기 때문에 1억 5천 정도 들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다큐멘터리는 아마존까지 갈 정도로 대단한 기획이 아니라면 5천만 원 정도의 예산으로도 만들 수 있기 때문에 영진위의 지원이나 각종 영화제의 기금을 잘 활용해서 작업하려는 작가들이 많다. 그러므로 문제는 역시 스크린을 확보하고, 만들어진 작품을 배급하는 것이다. 

    <상계동 올림픽, 그 후>는 진행 중

    –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하는 <상계동 올림픽, 그 후>는 현재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 그거 물어보는 사람이 제일 야속하다. 두 달 전에도 가서 촬영을 일부 하고 오기는 했지만…… 정책과 상황도 자꾸 바뀌고, 세월이 흐르면서 사람들도 많이 바뀔 수밖에 없기 때문에 지금은 기획부터 새로 짚어봐야 할 것 같다. 하긴 해야 하는데 단정지어 어떻게 되어가고 있고, 언제까지 할 거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재개발 재건축이 이렇게 지속되는 상황이니까. 

    – 다큐멘터리를 하면서 아쉬운 점은?

    = 다큐멘터리는 자본이 관건이 되는 것이 아니라, 시간이 관건이 되는 작업이라는 것. ‘그때, 그곳’을 놓치고 나면 돌이킬 수가 없어서 늘 아쉬움이 남는다. 그래서 여건이 된다면 극영화로 영역을 넓혀 보고 싶기도 하다.

    다큐멘터리를 하는 이유는 자본으로부터 자유롭기 때문인데, 극영화는 시간의 제약에서 더 많은 자유와 표현이 가능하기 때문에 기회가 있다면 해 볼 생각이다. 그런데 지금 영진위의 정책방향으로는 다큐멘터리뿐 아니라 극영화나 수많은 영화제마저도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보수적인 단체와 인사 위주로 지원하고 나머지는 모조리 배제하고 있으니. 그러므로 지금 ‘1000인 선언’에 정치적 견해, 상업 영화, 독립 영화를 초월해서 수많은 사람들이 참여한 것이다. 이 선언이 급히 진행되어 아직 구체적인 모양새는 없지만 앞으로 더 많은 사람들이 동참할 것이고, 좋은 결과를 만들어 내리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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