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자유방임의 천국?
    2010년 03월 29일 09:55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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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에, 러시아 쪽 인터넷 사이트를 검색했다가 좀 의아하다 싶은 이야기를 본 일이 있었어요. 핀란드에 시집 가서 가정을 이룬 한 러시아 여성의 아들 (7세)이 학교에서 "엄마가 나를 러시아로 데려갈지도 모른다"는 발언을 친구에게 했다가 이 이야기가 아동보호기구에 알려져 아이는 강제로 가정으로부터 ‘분리’돼 아동보호원에 맡겨졌다는 이야기이었습니다 (링크 참조).

핀란드의 인권단체에서 인권침해라고 반대를 하고 법정대응을 했지만, 아동보호기관의 논리는 아주 단순하고도 명쾌했습니다. 이 아동은 비록 이중국적자지만 지금 핀란드에서 영주중이니 보호대상이다, 러시아와 같은 위험지역에 가게 될 경우에는 보호는 불가능하고 위험에 노출된다, 이와 같은 모험을 계획하는 부모는 친권을 계속 향유할 근거가 없으니 이제 그들로부터 아동을 보호해야 한다. 이러한 논리였습니다.

이 경우에는 상당한 ‘오버’라고 보여지지만, 사실 이와 같은 아동보호기구의 ‘적극적 개입의 자세’는 스칸디나비아 국가의 공통점입니다. 예컨대 노르웨이에서는 비서구 계통의 이민자들이 저지를 수 있는 최악의 실수란, 노르웨이 사람 앞에서 자신의 아이를 약간이라도 체벌하는 것입니다 (‘토박이’ 노르웨이 가정에서는 체벌은 거의 없다고 봐야 합니다).

곧 아동보호기관에 신고가 들어가 두세 번 정도 걸리면 일단 아이와 작별해야 할 것입니다. 이쪽에서는 아동에 대한 일차적 책임을 부모라기보다는 사회 전체가 진다는 관념이 아주 강하기에 이쪽 사람들 보기에는 별로 놀라운 일도 아닙니다. 뭐, 옛 소련만 해도 부모들이 남들 앞에서 아이 학대했다가 친권 박탈 당하는 건 꽤나 자주 있는 일이었기에, 저로서는 별로 새롭진 않습니다.

북구에서 이 체벌 걸리면 친권 박탈

아동 교육도 그렇지만, 사실 여기에서는 사회의 대변자로서의 국가가 책임져야 한다는 일은 이외에도 한 두 가지는 아닙니다. 일단 문제가 생기면 진보언론이든 보수언론이든 그 해결을 – 너무나 당연하게도 – 국가에 촉구하죠. 예컨대 며칠전에 몇 명의 유대계 아동에 대해서 학교에서 이슬람계 아동들이 인종적 모욕을 가하고 때리는 등 반유대주의적 태도를 몇 번 보였다는 사실이 적발돼 아예 전국적 난리가 났습니다 (링크 참조).

교육부 장관이 유대인 공동체 대변자와의 긴급 회동을 가져 그 대응책을 논하고, 홀로코스트 육 강화방침에 대한 논의가 본격화되고, 며칠간 신문에서 거의 이 일에 대한 기사들이 줄줄 나갔습니다. 교육이야 그렇다 치고, 오슬로에서 최근 몇년 간 자가용 대수가 늘어났다는 통계가 발표되자 국가의 종합적 대중교통 대책이 미흡하다고 커다란 정치적 문제로 점화된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몇 년 전에 이민자 계통의 가정 중에서는 약 20%의 가정에서 아동들이 상대적 가난에 시달린다 (‘토박이’ 노르웨이인 가정 중의 빈민은 5%도 안되는데…)는 보고서가 발표되자 역시 정치적 폭풍이 일어났습니다. 이민자들의 빈곤율이 이리 높고 아이들까지 빈곤한 환경에서 자라 결국 빈곤을 ‘대물림’ 받을 확률이 높은데, ‘좌파 정부’라는 사람들이 뭘 하면서 사냐는 아우성이었습니다.

이와 같은 사회/국가의 전반적 개입의 자세를 일부 극우들이 ‘formynderstat’ (‘훈육자로서의 국가’)이라고 비웃지만, 대다수 노르웨이인들에게 "사회적 성격의 문제라면 공론화해 지자체 내지 국가의 개입을 통해 해결해야 한다, 아주 작은 문제라 해도 국가는 책임져야 한다"는 건 거의 ‘상식’에 가깝습니다. 소련은 노르웨이보다 훨씬 덜 민주적이고 덜 부유한 사회이었지만, 이와 같은 인식을 갖고 살았던 것까지는 큰 차이는 없었어요.

북구에서는 국가의 개입이 ‘상식’… 한국은?

살다가 대한민국을 생각해보면, 정말 다른 세상 같지요. 물론 ‘감히’ 대드는 서민이나 노동자들을 때려주고 잡아주어야 할 때에는, 국가 대표자들이 무기를 들고 몇 만에 그 현장에 나타나지만, 이러한 ‘부자들의 해결사’ 역할이나 각종 ‘좌파 때려잡기’ (최근 명진스님의 건을 보면 그 대표적 사례가 될 것입니다) 이외에는 국가가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것은 안보/북한과 건설경기 부양, 재벌들의 감세와 해외판촉, 그리고 국제자본과의 각종 ‘소통’ 정도일 것입니다.

이외에는 물론 아주 기본적인 민심 수습 정도 해주지요. 뭐, 등록금 인하 요구를 죽여주기 위해 등록금 후불제를 도입해 대학기업들의 장사를 돕는 정도라든가요. 물론 최근 20년간 생활보호대상자에게의 약간의 생활보조금 지급, 아주 기초적 의료보험 등 일부 ‘대민 서비스’를 시작했지만, 그것만 믿고 인생을 사는 사람은 대한민국에는 없을 것입니다.

국가의 복지서비스만 믿게 된다면 대한민국의 기준으로는 ‘실패한 인생’이 될 것입니다. 파키스탄 이민자의 자녀가 학교에서 인종적 모욕을 당하고 맞았다고 해서 우리 교육부 장관이 대책회의를 열았다는 걸 상상해보면, 아무래도 SF 소설로만 느껴지지요.

그리고 차 대수가 늘어났다는 건, 재벌언론도 재벌 정부도 꼭 ‘환경 문제’라기보다는 ‘현대자동차의 판매 실적’ 차원에서 볼 확률이 큽니다. 우리 국가란, 우리의 상전네와 그 장사를 보호해주고, 우리에게야 아주 완벽한 자유를 부여합니다. 맞고 살 자유부터 백수가 돼 세상에 대한 원망으로 남대문에 불이나 지필 자유까지입니다. 자유주의의 천국인 셈이지요?

지금 우리 좌파, 사회주의자 앞에서는 엄청난 과제가 놓여져 있지요. 약탈자와 착취자를 보호해온 국가를 ‘길들여’ 복지사무소 역할이나 좀 제대로 할 ‘인간의 얼굴을 가진 국가’로 거듭나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형식적 민주화보다 몇 배 어려운 과제지요.

그런데 지금의 재벌 국가가 몇년 사이에 불가피한 경제적 파국에 이르게 되면 바로 이와 같은 거시적 비전으로 좌파가 정치무대에서 일종의 ‘주류화’에 성공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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