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내하청 폐업, 원청 부당노동행위
    By 나난
        2010년 03월 28일 09:37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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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청업체가 하청업체의 근로조건 등에 실질적인 영향력과 지배력을 가지고 있을 경우 부당노동행위에 대해서도 책임을 져야 한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이는 원청업체의 노조법상 사용자성을 인정한 첫 판결로, 향후 하청업체 노조가 원청을 상대로 단체교섭을 요구하거나 부당노동행위가 발생했을 경우 직접 책임을 물을 수 있는 길이 열려, 하청 비정규직 처우 개선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하청업체 폐업 부당노동행위

    대법원 2부(주심 전수안 대법관)는 지난 25일 “현대중공업 사내하청 노동조합 설립 이후 하청업체의 폐업이란 방식으로 사업장에서 배제(해고)한 것은 정당한 노조활동에 대한 지배개입 행위로서 부당노동행위”라며 현대중공업이 중앙노동위원장을 상대로 낸 부당노동행위 구제 재심판정 취소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현대중공업은 지난 2003년, 사내하청 노동자 조 아무개 씨 등이 노조를 설립하자 “하청업체가 자진 폐업했다”며 이들을 몰아냈다. 그러나 현대중공업 사내하청지회와 소속 조합원들은 “현대중공업이 개입해 하청을 폐업시켰다”며, 이를 강제해고로 규정하고 부당노동행위 구제신청을 했고, 중앙노동위원회가 이를 받아들이자 현대중공업이 취하소송을 낸 것이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사내하청 노조 간부들이 소속된 하청업체들은 경영상 폐업할 별다른 사정이 없었음에도 조합 설립 뒤 즉시 폐업이 결정된 것을 볼 때, 노조 설립 이외에 다른 폐업 이유는 없는 것으로 보인다”며 “현대중공업이 노조활동을 한 협력업체들의 폐업을 유도함으로써 협력업체 노조의 활동을 위축시키거나 침해하는 등 부당노동행위를 했다고 인정한 원심 판결은 정당하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이어 “사용자의 지배ㆍ개입이 사실 행위로 이뤄져 원상회복은 곤란하지만 같은 행위가 장래 계속 반복될 가능성이 커 (중앙노동위원회가) 이를 금지하는 ‘부작위명령’을 내린 것은 적절한 구제방법”이라고 설명했다.

    이는 원청회사가 하청업체를 폐업시키는 방법으로 하청 노조의 활동을 위축시키는 것을 ‘부당노동행위’로 적시하고, 하청 노동자들의 근로조건 등에 실질적 영향력을 미치는 원청인 현대중공업이 ‘노조법상 사용자’로서 구제명령을 이행해야 한다는 의미다. 

    사내하청 노조 활동 상대적으로 자유로워질 듯

    그 동간 근로계약 관계가 있는지 여부를 중심으로 사용자의 지위를 파악한 대법원 판례는 몇 차례에 있었으나, 원청회사가 사내하청 등 간접고용 노동자들에 대한 부당노동행위 주체로서 책임져야 한다는 것을 명확히 한 판결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 동안 원청은 “노조법상 사용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하청 노동조합의 단체협약을 거부해 왔고, 테이블에 마주 앉더라도 “교섭이 아닌 면담” 또는 “대화”임을 강조해왔다. 노동부도 그동안 “근로계약 상 관계가 없다”는 이유로 원청업체에 대해 부당노동행위는 성립하지 않는다고 판단해 왔다.

    그러나 이번 판결이 원청을 사실상 ‘노조법상 사용자’로 간주함에 따라 원청과 하청업체 노조와의 단체협약 체결 가능성을 열었다. 노조법상의 사용자는 단체교섭에 임해야 하며, 이를 거부할 경우 부당노동행위에 해당한다. 따라서 사내하청 노조의 단체협약 체결을 통한 정당한 노조활동 확대는 물론 동희오토 등 하청업체들이 다수를 이루는 장기투쟁사업장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이번 판결을 통해 원청 사업장 내에서 하청업체 노조의 활동이 보다 자유로워질 것으로 기대된다. 그 동안 원청은 하청업체 노조의 사업장 내 유인물 배포나 농성장 설치 등에 대해서도 근기법상 사용자가 아니라는 이유를 들어 제약해 왔다.

    권두섭 민주노총 법률원 변호사는 “이번 판례는 원청이, 하청의 근로조건이나 노조활동에 영향을 미친다면 사용자로서 역할을 해야 한다는 원칙을 확인한 것”이라며 “근로기준법 상 사용자 관계가 아니더라도 실질적인 사용자의 지위에 있다면 노조법상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을 처음 확인했다는 데에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노조활동 개입에 대해 부당노동행위에 대해 책임 청구를 할 수 있는 법적인 실마리를 만들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며 “이번 판결을 근거로 하청업체 노조는 원청에 교섭을 요구하는 한편 정당한 노조 활동을 확대해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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