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랑스 지방선거, 좌파의 승리인가?
        2010년 03월 24일 04:28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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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월 14일의 첫 투표에 이어 21일에 프랑스 광역자치단체선거 결선투표가 있었다. 국내 언론에도 보도된 대로, 결선 투표에서 사회당-생태유럽-좌파전선의 좌파 연대가 압승을 거두었다. 알자스를 제외한 프랑스 본토의 모든 광역자치단체에서 좌파가 집권했다. 니콜라스 사르코지 대통령에게는 참담한 패배가 아닐 수 없다.

       
      ▲마르틴 오브리 사회당 대표

    이번 선거 과정에 대해 제대로 살펴보려면, 프랑스의 지방선거 제도를 먼저 이해해야 한다. 2004년부터 프랑스는 광역자치단체선거에서 좀 복잡한 선출 방식을 취하고 있다. 프랑스의 전통적인 결선투표제와 정당명부비례대표제를 결합한 독특한 제도다.

    이 제도에 따르면, 광역의회 의석 중 3/4은 순수한 정당명부비례대표제로 선출한다. 따라서 이 75%의 의석은 1차 투표에서 결정된다.

    하지만 나머지 1/4의 의석은 과반수 득표 정당의 후보 명부로 채워진다. 그래서 1차 투표에서 과반수 득표 정당이 없으면 결선 투표를 다시 하게 되는 것이다.

    1차 투표에서는 거의 모든 정당이 다 독자 후보 명부를 제출하여 서로 경쟁한다. 하지만 결선 투표에 들어가면, 1차 투표에서 10% 이상 득표한 정당만 후보 명부를 제출하여 경합할 수 있다.

    10% 이상 득표를 하지 못한 정당들은 상대적으로 이념 성향이 비슷한 결선 투표 진출 정당과 선거 연합을 구성한다. 결선 투표 진출 정당(가령 사회당)은 선거 연합을 구성한 다른 당 후보(가령 좌파전선)를 결선 투표 후보 명부에 포함시키곤 한다.

    이것은 기본적으로 정당명부비례대표제에 바탕을 두면서도 여당에게 안정적인 집권 기반을 마련해주는 절충적인 선거 제도라 할 수 있다. 프랑스의 광역자치단체는 의원 내각제를 취하고 있기 때문에 광역의회 내 다수당의 대표가 곧 광역자치단체장이 된다. 이번 선거 결과로 대다수 프랑스 광역자치단체는 사회당 소속 단체장 아래 있게 되었다.

    선거 연합을 둘러싼 좌파 내의 전략적 고민들

    결과적으로 보면 좌파의 승리이지만, 선거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여러 좌파 정당들 안에서는 뜨거운 논쟁이 벌어졌다. 선거 연합 전술 때문이었다.

    사회당만 해도 그랬다. 사회당은 다른 좌파 정당들과 명시적인 선거 연합을 결성하려 했지만, 결국 1차 투표 전에는 어느 정당과도 전국적 수준에서 제휴하지 못했다. 마르틴 오브리 대표와 사사건건 대립하며 사회당이 중도우파인 민주운동(MoDem)과 연대해야 한다고 주장해온 전 대통령 후보 세골렌 르와얄은 자신이 출마한 프와투-샤랑테에서 사회당 후보 명부 안에 민주운동 후보들을 포함시켰다. 중앙당 방침과 따로 움직인 것이다.

       
      ▲광역자치단체선거 결과에 환호하는 생태유럽 당원들

    생태유럽은 비교적 쉽게 입장을 정했다. 이들은 1차 투표에서는 사회당과 치열하게 경쟁하되 2차 선거에서는 좌파 연대를 구성하기로 했다. 반면 공산당, 좌파당(사회당 탈당파), 반자본주의신당의 내부 사정은 복잡했다.

    일단 공산당은 기본적으로 좌파당과 ‘좌파전선’을 구축하는 방침을 세웠다. 공산당과 좌파당은 2009년 유럽의회 선거에서도 선거 연합을 결성한 바 있었다. 좌파전선의 공식 입장은, 생태유럽처럼, 1차 투표에서는 사회당과 경쟁하되 결선 투표에서는 좌파 연대에 참여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공산당은 최종 결정권을 지역조직에게 일임했다. 그래서 지역마다 서로 다른 양상이 나타났다. 22개 광역 중 17개 지역에서는 공산당 지역조직들이 중앙당 방침에 따라 움직였지만, 부르고뉴 등 5개 광역에서는 1차 투표에서부터 사회당과 연대해 단일 명부를 구성했다. 이들 5개 지역에서 지역 당조직 방침에 반발한 공산당원들은 좌파당이나 반자본주의신당 선거운동에 결합하기도 했다.

    반자본주의신당 상황도 복잡했다. 반자본주의신당은 작년 12월에 지방선거 전술에 대해 당원 총투표를 실시했다. 이 투표에서 당원 중 31.5%는 공산당, 좌파당과 선거연합을 결성해야 한다는 입장이었고, 28.5%는 어떠한 선거 연합도 결성하지 말고 독자 대응할 것을 요구했다. 가장 많은 지지(36.3%)를 받은 것은 이 두 입장의 중간에 해당하는 방침이었다. 즉, 반자본주의신당의 독자 노선을 중심으로 하되 지역에 따라 공산당, 좌파당과 연대할 수는 있다는 것이었다.

    이에 따라 반자본주의신당은 11개 광역에서 사회당 왼쪽의 유권자들을 놓고 좌파전선과 경쟁했다. 하지만 랑그독-루씨용 등 3개 광역에서는 반자본주의신당 지역조직들이 1차 투표에서 좌파전선에 참여했다. 또한 공산당 지역조직들이 1차 투표에서부터 사회당과 연대한 위의 부르고뉴 등 5개 지역 중 세 곳에서는 반자본주의신당과 좌파당이 선거 연합을 결성해서 사회당-공산당 연합과 경쟁했다.

    선거 결과만 놓고 보면, 반자본주의신당의 성적은 좀 실망스럽다. 1차 투표에서 2.41% 득표에 그쳤다. 전국적인 방침 없이 지역적으로 분산된 대응을 한 결과였다. 또한 좌파전선에 대한 모호한 입장이 빚은 결과이기도 했다.

    물론 반자본주의신당에게는 나름대로 진지한 고민이 있다. 반자본주의신당의 기본 입장은 공산당, 좌파당과 연대할 수는 있어도 중도우파화한 사회당과는 연대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공산당이 끊임없이 사회당과의 연대를 추구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반자본주의신당은 사회당뿐만 아니라 좌파전선과의 연대에도 소극적인 모습을 보이곤 한다. 프랑스에서는 이것이 사회당 왼쪽에 대중적인 좌파 정치 세력을 형성하는 데 최대 걸림돌이 되고 있다.

       
      ▲좌파전선에 참여한 좌파당 장-뤽 멜랑송 대표

    좌파전선은 5.84%를 득표해서 평균 성적 정도를 거뒀다. 반면 최대 승자는 생태유럽이었다. 생태유럽은 프랑스 녹색당이 코르시카, 옥시탕(남부 프랑스) 등의 지역분리주의 세력을 규합해서 만든 정치연합이다. 주제 보베 등 사회운동 명망가들이 생태유럽을 지지했다. 2009년 유럽의회 선거에서 녹색당이 일으킨 돌풍(16.28% 득표)에 이어 생태유럽은 1차 투표에서 12.19%를 득표하는 기염을 토했다.

    하지만 좌파의 승리인가

    어쨌든 사회당을 중심으로 한 좌파 진영이 결과적인 승리자가 되었다. 하지만 이것이 과연 우파 대통령 당선을 낳은 지난 2007년의 대선 결과를 다음 대선에서 뒤집을 수 있다는 신호인지는 불분명하다.

    우선 지방선거 투표율이 극히 낮았다. 2004년 투표율은 66%였던 데 반해 이번 투표율은 1차 투표에서 47%, 결선 투표에서 51%에 불과했다. 좌파가 압도적인 지지를 받은 결과라기보다는 사르코지 정부에 실망한 우파 유권자들이 대거 기권한 결과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좌파는 이미 2004년 지방선거에서도 압도적인 승리를 거둔 바 있었다. 그때에도 단 두 곳을 제외한 모든 광역단체에서 좌파가 여당이 됐었다. 그런데도 3년 뒤의 대선에서는 사르코지가 당선됐다. 한국과 비슷하게 프랑스에서도 지방선거가 여당에 대한 심판 선거 성격을 지니기 때문에 좌파 야당이 매번 승리하는 것이지 좌파의 약진이라고까지 볼 수는 없다는 이야기다.

    게다가 이번 선거의 표심을 결정한 것은 좌파 지도자들이나 선거 공약의 부각이라기보다는 사르코지 정부의 실정이었다. 경제 위기에는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면서 염문이나 뿌리고 다니는 대통령에 대해 우파 유권자들조차 환멸을 느끼고 있다. 더구나 사르코지 정부가 르팽의 국민전선을 지지하는 극우 성향 유권자들의 표를 얻어 보고자 이슬람 혐오증을 조장한 게 오히려 역풍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즉, 현재의 프랑스 우파 정부가 경제 위기 상황에서 실패의 길을 밟고 있는 것은 틀림없다. 민심은 이번 선거 결과를 통해 현 정권에 대하여 단호한 평가를 내렸다. 하지만 이것이 곧바로 좌파의 부활을 뜻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이번 선거 결과는 좌파가 여전히 재구성의 혼란 속에 있음을 보여주었다.

    사회당은 여전히 고만고만한 정치인들의 집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미테랑 정부 시절의 인물인 도미니크 스트로스-칸이나 프랑스식 ‘제3의 길’을 주창하는 세골렌 르와얄이 현재 사회당이 제시할 수 있는 최선의 카드다. 또한 오브리 당 대표와 르와얄 전 대통령 후보 사이의 이전투구로 시끄럽기만 하다.

    반면 이런 유약한 대안에 도전장을 낸 좌파 내의 신진 세력들은 더욱더 거세게 사회당의 지위를 위협하고 있다. 공산당은 이번에도 사회당의 위성 세력임을 자인하고 말았지만, 녹색당의 도전은 참으로 인상적이었다. 또한 반자본주의신당도, 비록 이번 선거 결과는 실망스러운 것이었지만, 올리비에 브장스노의 지속적인 인기에 힘입어 대중의 관심에서 밀려나지 않고 있다.

    이번 선거가 좌파에게나 우파에게나 최종 성적표와는 여전히 거리가 먼 중간 점검의 성격을 지니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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