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암울한 단조' 시대, 울부짖음 같은 노래들
    By 나난
        2010년 03월 19일 10:35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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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에 소개할 노래는 80년대 초중반 서정가요들 중 하나인 <청산이 소리쳐 부르거든>입니다. 일명 청․소․부로 축약돼 불린, 어느 정도는 가창력이 뒷받침돼야 제대로 부를 수 있는 노래입니다.

    가슴으로 불러야 됐던 노래들

    하지만 또 부르다 보면 울부짖음이 되고, 그 당시 선배들의 ‘민중가요는 가슴으로 부르는 것’이라던 말이 절실하게 다가오던 노래들 중 하나입니다. 90년대 초 [노래를 찾는 사람들 3집] 음반에 수록되었기에 많은 이들에게 보급도 되고, 기억되어지고 있는 곡입니다.

    여러 번 이야기한 것처럼 80년대 초반의 상황은 매우 엄혹했습니다. 하지만 학생운동 세력들은 80년 광주항쟁에 대해 알게 되면서 분노를 느꼈고, 광주를 비롯한 정권의 비민주적이고, 폭력적인 실체를 대중들에게 알려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 80년 광주를 그린 영화 <화려한 휴가>의 한 장면

    80년 광주는 그 시대를 살던 지식인과 학생집단에게는 매우 커다란 충격이면서 아주 쓰라린 패배감을 갖게 했습니다. 제가 대학을 다니던 때에도 광주항쟁과 전태일 열사에 대해 알게 되면서 지식인으로서의 책임감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며 자신의 기득권에 대해 괴로워하던 친구들이 아주 많았습니다.

    술자리에서 괴로워하며 울분을 토했고, 서로 부둥켜안고 뜨거운 눈물을 흘리기도 했습니다. 그 때까지 대학의 집행부는 지금처럼 총학생회가 아니라 군사조직인 학도호국단 체계였고, 84년 말부터 각 대학별로 학원자율화추진위원회(학자추)나 학원민주화추진위원회(학민추)등이 결성되어 총학생회를 부활시킨 것이지요.  

     

    학도호국단을 아시나요

    또 대학의 민중가요 서클도 서울대 메아리와 이대 한소리, 고대 석화(지금의 노래얼) 밖에 없었습니다. 더구나 이들은 통기타를 치면서 팝송이나 포크송을 화음을 넣어 아름답게 부르는 동호회였답니다. 그러다 80년 전후 현실을 자각하고 좀 더 목적의식적인 활동과 민중가요 창작을 하게 됩니다. 대학마다 민중가요 서클이 생겨난 것도 이 때부터입니다.

    <청산이 소리쳐 부르거든>은 이렇게 민중가요가 목적의식적으로 창작되고, 불린 시기에 탄생합니다. 하지만 다른 많은 민중가요가 그렇듯 작곡자가 알려져 있지 않고, 악보도 제대로 없이 입에서 입으로 전달됐기 때문에 각 학교마다 조금씩 다르게 부르기도 했습니다. 왜 이런 분위기의 노래가 많이 나오게 되었는지 그 당시 상황을 한 번 구체적으로 상상해 볼까요?

    집회(데모)를 할 경우 몇몇 사람이 치밀하게 작전을 짜고는 비밀리에 작전(?)을 전달합니다. 그런 후 데모를 주도하는 집단은 도서관에 미리 들어가 여기저기 앉아 공부하는 척을 하다 기관원들이 들어오지 못하게 바리게이트를 치고는 도서관 창문을 깨고 밧줄에 매달려 이미 준비한 전단지를 뿌리는 것이지요. 군사독재정권의 실체를 알리는 구호로 학생들을 선동합니다.

    “학우여러분, 현 군사독재 정권은 광주에서 수천 명을 학살하고 국민을 기만하며…”

    이렇게 데모를 주도하고 선동하는 것을 "동 뜬다"고 표현했다고 하지요. 아마 주동을 한다는 의미였던 것 같습니다. 주동자들은 오래 전부터 마음의 준비를 하고, 주변을 정리한 후 아주 비밀스럽게 진행을 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준비한 내용을 다 알리기 전에 대부분은 도서관에서 상주하던 기관원들이나 밖에서 문을 부수고 들어온 전경들에 의해 무차별 구타를 당하면서 끌려갔다고 합니다.

    어떤 때는 바로 옆에 기관원이 있는 줄 모르고 동을 뜨다가 주동자가 “학우여” 하고 외치기도 전에 우르르 덮치는 바람에 “학!” 소리 밖에 내지 못하고 말았다는 이른바 ‘학사건’이나, 밧줄에 매달렸는데, 바람이 많이 불어 뱅글뱅글 돌다보니 이야기가 뜨문뜨문 전달되었다는 이야기는 제가 대학 1학년 때 들은 우스꽝스런 에피소드였지만 너무나 어처구니없는 일이었습니다.

    암울한 단조의 시대

    그렇게 끌려간 친구들은 군대로 징집되는 가하면 구속돼 감옥에 갇히거나, 혹은 의문의 죽음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이인휘 소설『내 생의 적들』에 보면 적나라하게 묘사되어 있답니다. 물론 그 소설을 비현실적이라고 보는 분들이 계신 것처럼 좀처럼 믿어지지도 이해되지 않는 분들도 계실 겁니다.

    아무튼 시절이 그러하다보니 자연스럽게 그 당시 창작되고 불린 노래들은 아주 암울한 단조들이 많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꼭 행진곡 풍만 단조로 변화한 것이 아니라 느리고 유장한 서정가요도 단조가 주를 이루었습니다.

    <청산이 소리쳐 부르거든>외에 <친구 2>, <타는 목마름으로>, <민중의 아버지>, <노래 2>, <사월 그 가슴으로>, <부활하는 산하>, <의연한 산하> 등이 모두 그러한 노래들입니다.

    가사만 봐도 ‘낮은 어둡고 밤은 길어’, ‘어두운 그림자 하늘 가려’, ‘억압의 발길에 짓밟혀도’, ‘어두운 죽음의 시대’, ‘밤’, ‘하나님의 혀가 잘린 세계’, ‘사슬의 묶임’ 등 비유적 표현이긴 했지만, ‘죽음’과 ‘희생’의 이미지가 뚜렷하게 드러나는 비장한 가사들이 많습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음악 형식면에서 단조 스탠더드와 가곡의 영향을 받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70년대 포크에 비해 넓은 계층과 연령층에 호소력을 갖을 수 있게 되었던 것입니다.

    80년대 초, 중반을 소설의 시대라고도 하고, 또 민중가요의 전성기라고도 했는데, 바로 그런 표현을 만들어 냈던 노래들로 수많은 이들에게 애창되던 노래입니다. 가사를 음미하면서, 그리고 아주 처절하게 울부짖었을 그 누군가를 생각하면서 나지막히 따라 불러도 좋을 것 같습니다.

     
    (음원 : 인천문화운동연합 노래패 산하 1집 [너를 부르마] 중에서)

    <청산이 소리쳐 부르거든>
    양성우 작시

    1. 청산이 소리쳐 부르거든 나 이미 떠났다고
    기나긴 죽음의 시절 꿈도 없이 누웠다가
    나 이미 큰 강 건너 떠났다고 대답하라
    저 깊은 곳에 영혼의 외침, 저 험한 곳에 민중의 뼈아픈 고통
    내 작은 이 한 몸 역사에 바쳐 싸우리라 사랑하리

    2. 청산이 소리쳐 부르거든 나 이미 떠났다고
    흙먼지 재를 쓰고 머리 풀고 땅을 치며
    신 새벽 안개 속에 떠났다고 대답하라
    저 깊은 곳에 영혼의 외침, 저 험한 곳에 민중의 뼈아픈 고통
    내 작은 이 한 몸 역사에 바쳐 싸우리라 사랑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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