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연대 이전, 계급내부 연대부터
    2010년 03월 19일 09:50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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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한국노동운동연구소가 펴낸 <노동의 지평> 최근호에 실린 것으로, 필자는 노동운동의 현재 상황이 과거와 달리 국면적 위기가 아니라 구조적 위기이며, 외생적 위기가 아나리 주체의 위기라고 강조한다. 필자는 이 같은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 ‘발본적’ 변화의 필요성을 이야기 하고 있다.

민주노총 위상의 재정립, 민주노조의 조직과 정치 노선 그리고 사회연대 노선에 대한 전면적 재검토와 재설계 그리고 사회연대노선과 정파문제에 대한 비판적 검토 등 노동운동 전반에 대한 성찰과 대안적 의견을 제시하고 있다. <레디앙>은 저저의 동의를 얻어 전문을 몇 차례 나눠어 싣는다. <편집자 주>

4. 사회(연대) 노선의 문제

관례화된 임단투 중심의 노동운동으로 노동문제를 해결할 수 없고, 폭넓은 정치사회적 의제를 중심으로 노동운동이 중심이 되어 광범위한 사회적, 정치적 연대를 형성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은 오래 전부터 있었다. 그리고 상당한 정도의 노력도 있었다고 생각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동운동은 심지어 이기주의적 경제투쟁 집단으로 매도되고 사회적 고립 현상은 극복되기는커녕 오히려 심화되어 왔다. 노동조합으로서는 감당하기 힘든 사회, 경제, 정치, 문화적 변화가 진행되고 있었고, 신자유주의, 시장주의의 흐름이 빠르게 사회 모든 분야에 확산되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사회연대 또는 계급동맹

사회연대 노선을 계급운동의 용어로 다시 풀어 표현하면 계급동맹(class alliance) 노선이 될 것이다. 노동자계급이 지배계급과의 관계에서 적대 혹은 중립의 위치에 있는 다른 계급과 계층의 대중(조직)들과 연대하여 “적대 세력을 고립시키고 동맹 세력을 지도한다”는 그람시의 헤게모니 전략, 혹은 1930년대 반파시즘 인민전선 노선 등에서 나타난 전통적인 변혁 노선, 변혁 전략이다.

   
  ▲ 민주노총 김영훈 위원장과 민주노동당 강기갑 대표, 민주당 정세균 대표, 창조한국당 송영오 대표, 진보신당 노회찬 대표 등이 20일 열린 집회에서 어깨동무를 하고 이명박 정권의 탄압을 함께 이겨나가자는 상징의식을 하고 있다. (사진=이명익기자)

스웨덴 사민당이 농민층과의 연대가 필요한 상황에서는 사민당-농민당 연정을 추진했었고, 중간계급과의 연대가 필요한 경우 사민당-자유당 연정을 추진한 것도 같은 맥락이었다.

민주노총이 표방했던 사회개혁투쟁이나 최근의 사회연대노조주의가 이런 정도의 고민 속에서 나온 전략적 방침이었다고는 물론 생각되지 않는다. 그보다는 사회적 분배제도 개선이나 복지정책의 확대 없이 노자간의 직접 교섭을 통해 노동자의 생활상의 요구를 해결하기가 힘들다는 인식에서, 혹은 조직노동자와 민주노총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 확산에 대응하는 차원에서 구상된 전술적인 대응이었다고 생각된다.

어떤 경우이든, 계급의 경계를 넘어 다른 계급 계층과의 연대를 확대 강화하려는 노력은 소중한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선결적 전제가 있다. 계급 내의 연대와 통일의 문제를 방치하는 한, 그것은 사상누각에 불과한 것이다.

누구에게도 그 진정성을 인정받을 수 없고, 무엇보다도 내부에서부터 그러하다. 미조직/비정규직 문제는 물론이거니와, 조직부문 내에서조차 지금과 같은 정도로 확산된 임금, 고용, 노동조건의 현격한 내부 격차를 용인하고서는 이 문제에 접근조차 할 수 없다.

사회연대는 계급 내 연대부터

계급동맹의 노동정치는 노동계급 내부에서부터 출발한다. 사회연대는 계급 내 연대에서부터 출발한다. 조직/비조직 부문의 연대 역시 마찬가지이다. 그 출발점은 조직부문 내부의 연대이다. 조직부문 내에서조차 ‘동일노동 동일임금’을 추진할 엄두를 못 낼 정도로 격차가 확대되어 있는 것이 한국의 현실이다.

일본의 노동조합운동사에서 가장 큰 이론적, 실천적 내부 논쟁이 왜 임금체계 논쟁, 임금강령을 둘러싼 논쟁이었는지 상기할 필요가 있다

현재의 구조와 체계가 이런 문제의 제기조차 힘들게 하는 상황이라면, 이를 뜯어 고치는 작업에 나서는 것이 우선이다. 앞서 고백하였듯이 산별노조 건설운동이 이에 가름하는 일이라는 생각이었으나, 필자 스스로 단계론적 사고를 거의 벗어나지 못했었다.

그나마 그 단계라는 것이 지나치게 천연되고 그 내용마저 매우 부실한 위기 상황임을 인정하지 않을 도리가 없게 되었다. 그동안 온갖 어려움 속에서도 긍정적인 실천들이 일부 활동가들과 활동가 조직들, 그리고 노조들에 의해서 산발적으로 진행되고 있었고 지금도 그러하다는 사실에 큰 위안과 격려를 받는다.

1사 1조직의 지침을 힘들여 실천하고 있는 일부 금속 조직들, ‘산 자와 죽은 자의 문제’를 협동체적 방식으로 극복해온 포항의 어떤 노조, 연합노조 형태로 지역 단일노조를 추진한 제주지역의 사례, 기업지부를 지역지부로, 다시 지역 연합 노조로 밀고 가보려는 공공서비스 노조 산하의 일부 조직들, 노학연대의 틀 속에서 학교비정규직을 조직해내고 있는 사례들, 건설노조와 운수노조의 실천들, 지역일반노조의 실천 경험, 여성노조, 청년유니온 등 초보적인 단계의 사회노조 건설 시도 등등이 그것이다. 지난 10년의 투쟁을 사실상 대표해온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비정규 운동 단위들의 고군분투야 더 말할 나위가 없다.

5. 정파 문제에 관한 몇 가지 단상들, 그리고 마무리

노동운동에서 사상과 이념, 노선, 전략과 전술을 둘러싸고 서로 다른 의견그룹, 혹은 정치조직들이 형성되고 이들이 노동운동의 주도권을 놓고 서로 경쟁하는 관계에 선다고 하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며 노동운동은 실제로 이런 정파들의 경함 속에서 발전해왔다.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의 노동운동이 다 그러했고 지금도 그러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동운동 내외에서 지금 정파 문제에 대해 매우 부정적인 시각이 만연해있는 것은 크게 두 가지 이유 때문일 것이다.

첫째, 정파들 간의 대립과 갈등이 노동조합의 공식적 조직체계와 의사결정구조의 정상적인 작동을 어렵게 할 정도로 큰 역기능을 낳고 있다는 점, 둘째, 이들의 대립과 갈등이 노동운동의 이념과 가치, 전략과 전술을 둘러싸고 전개되기보다는 노조의 권력과 자원을 장악하기 위한 이전투구로 비춰지고 있다는 점이 그것이다.

정파를 보는 두 개의 외부 시선

정파적 대립과 갈등이 극에 달하여 한 나라의 노동운동 전체를 송두리째 망가지게 하였다는 비판을 받고 있는 대표적인 나라가 일본이다. 전전과 전후의 일본 노동운동도 그러한 모습을 보였지만, 특히 60년대 이후 안보투쟁의 여파 속에서 진행된 극심한 정파투쟁은 노동자 대중들은 물론이고 일반 국민들 사이에서도 극단적인 혐오증을 불러일으킨 채 조락했다. 1980년대에 진행된 일본 노동운동의 총괄적인 보수적 재편이 그 여파에 의한 것이었다는 평가도 그리 무리한 것은 아니다.

일본의 노 활동가들과 연구자들은 자신들의 역사적 경험(상처)으로 인해서이겠지만 한국의 경우에도 유사한 상황이 재연될 수 있음을 크게 우려한다. 그러나 필자가 만난 캐나다의 한 노 활동가는 오히려 노동조합 내외에 걸쳐 조직적 연계를 가지고 활동하는 좌파 활동가 그룹의 형성과 발전이 캐나다에서는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는 캐나다 노동조합의 틀, 그리고 사민주의 정치의 틀 속에 오래 갇혀 있는 가운데 노동운동의 정치적 상상력과 활동력이 크게 위축되었다고 지적하면서 한국의 정파 조직의 존재를 부러워(?)하기도 했다.

다행이라 해야 할지 어떨지 모르겠으나, 한국의 정파운동이 일본과 같은 전철을 밟고 있다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정파 문제를 주제로 한 최근의 연구소 내부 토론 결과는 대체로 이러했다.

첫째, 기준을 엄격히 해서 보면 노동운동 내에 아직 정파의 이름에 값할 정도의 조직은 아직 없다. 둘째, 정파적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의 조직적 활동을 하고 있는 단위는 자민통 계열의 조직 하나 정도이고, 나머지는 대체로 정파 형성을 위해 노력하는 초기 단계에 있거나 분화, 퇴행하고 있다. 셋째, 그러나 대중조직과 노동정치 양면 모두에서 정파 조직들은 가장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고 앞으로도 상당 기간 그럴 것이다.

공조직 정상화, 정파조직 형성 발전 중요

정밀한 연구가 뒷받침되지 않은 상태에서의 토론이긴 했으나 실제 상황이 이러하다면 정파 문제와 관련하여 우리 운동의 과제는 크게 두 가지가 될 수 있다고 본다. 첫째, 강신준 교수 등이 강조하고 있는 바와 같이, 노동운동 내에 제대로 된 정파 조직이 형성되고 발전될 수 있도록 하는 일이 중요하다. 둘째, 공조직의 의사결정과 일상 기능이 정파적 대립구도에서 벗어나 정상적으로 작동되도록 할 필요가 있다.

말로는 간단하지만 실제로는 매우 어려운 일임을 모두가 느낄 것이다. 지금의 상황을 그대로 놓고 말하면, 이 두 가지 과제 모두 온전히 정파들의 몫이다. 그들 스스로가 내부 혁신을 위해 노력하고 나아가 공조직의 권위를 회복하기 위해 함께 공조해야 한다. 현재 우리 노동운동 내부에서는 실리주의, 노사협조주의의 흐름을 제외하고는 정파의 통로를 벗어나 집단화된 제3의 목소리가 조직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위의 두 과제 중 전자는 그렇다 치고, 후자의 과제를 전자와 분리하여 우선적으로 해결할 방안을 모색해볼 수는 있지 않은가 생각해보고 있다. 앞의 조직노선 부분에서도 다소 언급했던 바 있지만, 정파 중립적인 관점에서 노동운동의 조직과 운영을 최적의 시스템으로 재정비하는 작업이 그것이다.

이미 늦은 감이 있지만, 복수노조, 전임자 임금지급 금지 문제가 실상황으로 다가와 있는 지금이 그 시기일 수 있다는 생각도 든다. 외부의 전문가 집단에게 정밀한 조직진단을 의뢰하는 것이 그 출발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시도가 아주 없었던 것은 아니고, 지금도 일부 그런 작업이 진행되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이제는 체계적인 직무 분석까지를 포함한 보다 정밀한, 그리고 큰 규모의 전문적 조직진단이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이런 생각을 하는 이유는 현재 우리 노조의 조직구조와 운영체계가 한편으로는 한정된 조직자원을 매우 비생산적으로 배분하게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현장 활동가들의 자발적 참여의 공간을 매우 좁혀 놓고 있는 비효율성을 보이고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정파 활동가들 공조직 내부로 흡수돼야

이 때문에 공조직의 여러 부분에서 심각할 정도의 조직 피로도를 보이는 모습이 나타나는가 하면, 다른 한편으로는 노조의 제한된 직책과 권한을 향한 경쟁이 필요 이상으로 과잉되는 현상이 공존하는, 일종의 조직적 미스매치(mismatch)가 나타나고 있다는 느낌이다.

노조 조직과 운영이 재정비될 수 있다면, 정파에 배속된 활동가들의 에너지의 상당 부분이 공조직 내부로 흡수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정파는 정파의 일에, 공조직은 공조직의 일에 매진하도록 하기 위해서라도.

노동운동의 이념과 노선문제를 주제로 한 연구소(한국노동운동연구소-편집자)의 기획 토론이 다음 과제로 미루어졌다. 시기적으로 지금 노동현장의 상황이 이런 토론을 제대로 조직하기 불가능할 정도로 어렵고 어수선하다고 판단되었기 때문이다.

그 대신 연구소에서 간단하게 발제를 준비해서 작은 규모의 토론회를 배치하기로 하였다. 그에 따라 아직 충분히 검토되고 정돈되지 못한 발제문을 제출하게 되었다. 많은 비판과 문제제기가 있다면 다음 기회에 풍성한 내용의 토론회를 조직하여 다중지성(多衆知性)의 좋은 결과를 얻는 밑거름이 될 것이라 믿는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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