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권력 쟁취서 사회권력 구축으로
    2010년 03월 18일 09:39 오전

Print Friendly
이 글은 한국노동운동연구소가 펴낸 <노동의 지평> 최근호에 실린 것으로, 필자는 노동운동의 현재 상황이 과거와 달리 국면적 위기가 아니라 구조적 위기이며, 외생적 위기가 아나리 주체의 위기라고 강조한다. 필자는 이 같은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 ‘발본적’ 변화의 필요성을 이야기 하고 있다.

민주노총 위상의 재정립, 민주노조의 조직과 정치 노선 그리고 사회연대 노선에 대한 전면적 재검토와 재설계 그리고 사회연대노선과 정파문제에 대한 비판적 검토 등 노동운동 전반에 대한 성찰과 대안적 의견을 제시하고 있다. <레디앙>은 저저의 동의를 얻어 전문을 몇 차례 나눠어 싣는다. <편집자 주>

3. 정치노선 혹은 노동정치의 방향 모색

노동정치 운동은 시련기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정도와 시간상의 차이는 있으나 서구 나라들의 경우에도 상황은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 사민주의당/노동조합과의 전통적 결합이 약화되거나 파열되면서 노동자 대중의 탈정치화가 진행되고, 급진적 좌파 정치운동은 전통적 노동계급 정당정치, 노동정치와는 다른 방식의 정치운동을 모색하고 있다.

최근 반세계화운동의 진전에 따라 이를 반자본주의와 접합한 새로운 사회운동적 좌파정치운동을 진전시키고 있는 사례들이 주목을 끌고 있다. 그 외에도 베네수엘라, 브라질 등의 사례가 주는 시사점들에 적극적으로 주목하는 경향이 있으나, 아직은 모색단계를 크게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

사회운동적 좌파정치운동 주목 

한국에서 1980년대 이래의 변혁적 좌파 정치운동 노선은 청년학생운동, 대중적 노동운동, 민중운동 등에서 그 대중적 기반을 상실하고 서클적, 정파적 운동의 모습으로 후퇴해있다. 노동운동의 대중적 성장을 기반으로 합법적 대중정당운동으로 방향을 잡은 노동정치는 민주노동당의 급성장을 추동해내기에 이르렀으나 내부의 정파적 갈등의 증폭과 분당으로 위기에 처해 있다.

반신자유주의, 반세계화 운동의 확산에 힘입어 좌파 정치운동의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는 노력들이 있으나 역시 아직은 모색 단계에 있다. 80년대 이후 폭넓게 형성된 통일운동, 반미자주화 운동 세력이 정당정치 및 정치운동, 노동운동과 민중운동, 시민운동, 주민생활운동의 여러 영역에 걸쳐 아직도 강한 영향력을 확보하고 있다.

하나의 운동이 한 세대(cohort)의 지배적 운동문화를 형성하기에 이르렀던 유일한 경우이고, 따라서 한반도 냉전구도의 틀이 크게 바뀌지 않는 한 이 흐름은 지속될 것이다.

민주노동당의 분당 이후 당과 대중조직과의 관계에 대한 논의가 진전되기를 기대했으나 상황은 그렇지 못하다. 전체적으로 양자 사이의 간극이 더 벌어지고, 많은 활동가들과 노조 간부들이 분당의 상황 자체가 주는 현장에서의 부담으로 노동정치의 이념 혹은 노선상의 분화를 수용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 민주노동당 창당 10주년 기념식과 진보신당 창당 2주년 기념식 (사진=정상근 기자)

진보정당 통합의 요구와 주장들이 있으나, 현실적으로 그 가능성은 매우 낮다. 앞으로 진보정당 운동은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그리고 아직 진로를 모색 중에 있는 좌파 정치세력들로 나뉜 구도를 크게 벗어나기 힘들 것이다.

진보정당 통합 가능성 낮아

이 구도 속에 각각이 어떤 변화를 보일 것인가가 문제인데, 노동정치와 관련해서 민주노동당은 지금까지의 기조를 계속 유지하려 할 것이고, 진보신당은 진보적 생활정치를 중심에 둔 신좌파 정치노선을 모색해갈 가능성이 커 보인다. 계급주의적 좌파 정치세력들은 고군분투의 상황을 벗어나기 힘들 것이다.

반세계화+반자본주의의 급진적 사회운동의 확장이 요구되지만, FTA 반대운동이나 촛불시위의 사례 등에서 보았듯이 조직화된 대중운동과의 체계적 결합이 결여된 상태에서는 일회적 시위운동의 부침을 반복하면서 진행되는 캠페인 이상의 것이 되기 힘들다.

그동안 우리 사회의 변혁적 정치운동의 이념과 노선 문제와 관련하여, 필자는 민족주의와 계급주의, 혹은 NL과 PD로 통칭되는 양대 흐름의 자체 개혁=현대화의 과제가 가장 시급하다는 지적을 누차 했었다.

전자와 관련해서는 크게 두 가지가 지적될 수 있다. 북한과 관련해서 북한의 정권(체제)과 민중을 구분하여 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 그 하나이고, 국제화(세계화가 아닌)의 틀 속에서 한국의 민족주의가 현대적 국제주의와 정합적으로 결합할 수 있게 해야 한다는 것이 다른 하나이다.

후자와 관련해도 역시 두 가지가 지적될 수 있다. 사회주의를 국가(권력) 중심으로 이해하는 사고에서 벗어나 사회 중심적 시각에서 재인식해야 한다는 것(state socialism → social socialism)이 그 하나이고, 환원론적인 계급중심주의에서 벗어나 노동자계급을 계급 형성(class formation)의 관점에서 다차원적으로 이해하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것이 다른 하나이다.

NL-PD, 현실 변화 따라잡기 힘들 것

사회적 실천의 문제를 귀납적으로 접근하지 않고 연역적으로 접근하는 것은 두 흐름 모두의 공통적인 경향이 되겠다. 결코 쉬운 일은 아니지만, 그렇지 않고서는 두 흐름 모두 현실의 변화를 따라잡기 힘들 것이며 세대를 격하여 진행될 수밖에 없는 운동 속에서 자기 재생산에도 성공하지 못할 것이다.

   
  

위에 간단한 도표를 작성해보았다. 한국은 (1)에서 (2)로 나아갔으며, 서구 사민주의 나라들은 (3)에서 (2)로의 후퇴 압박 속에 있다. 러시아를 위시한 동구 나라들은 (4)에서 (2)로(부분적으로는 (1)로) 퇴행했으며, 중국은 (4)에서 (5)로, 혹은 (5)를 거쳐 다시 (2)로까지 움직이고 있다.

베네주엘라는 (1)에서 (6)으로의 강행 이행을 시도 중에 있고, 쿠바는 (4)에서 (5)와 (6) 사이의 갈림길에 서 있다. 브라질은 (1)에서 (2)로, 다시 (3)으로의 이행을 모색하고 있다. 큰 틀에서 그렇다는 이야기다.

   
  ▲ E .O. Wright

최근에는 기본소득제(basic income) 운동에 공감하여 적극 참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미국의 라이트(E .O. Wright)는 수년 전의 한 글에서 계급운동, 사회운동의 최종 도달지를 (6)으로 상정하면서 중요한 것은 그곳으로 가기 위해서는 이행운동의 중심을 사회중심주의적으로 사고할 필요성이 있음을 강조했다(사회의 강화, social empowerment).

동시에 그는 좌파 운동가들이 (6)으로 나아가는 경로의 다양성, 방법의 다양성을 인정하고 구체적인 실천 속에서 서로 경쟁하고 협조하는 연대의 중요성을 깨달을 필요가 있음도 강조했다. 그의 말을 한번 들어보자(필자가 간추림).

"좌파들의 경쟁, 협조, 연대 중요"

활동가들은 다양한 방식 중 어느 것을 절대화하고 그것에 올인하는 경향을 보인다. 따라서 자신의 전략과 다른 것들을 기각하는 일에 더 많은 노력과 에너지를 투입한다. 장기적으로 볼 때, 성공의 가능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전략의 배합을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21세기 글로벌 자본주의 속에서 사회주의 혹은 사회권력 강화에 대한 전망은 비관주의를 벗어나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여전히 다양한 노력과 실험들이 계속되고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그런 노력들이 어떻게, 어느 정도 성공적인 효과들을 만들고 있는가에 따라 그 나라가 사회적 혁신, 사회권력의 강화, 사회주의로의 이행에 있어 어느 정도의 위치에 있는지를 가늠할 수 있는 것이다.

새로운 형태의 실험들이 계속되고 있으나, 아직 자본주의 내에서 어디까지 그런 노력들이 경주되어야 할지 모르는 상황이다. 이런 노력들이 결국 자본주의 사회의 주변적 영역에 국한되고 말 가능성도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우리가 아직 한계지점까지 실천을 밀고 나간 적이 없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이다.

자본주의가 지속되는 한 이런 노력도 지속될 것인 바, 해방적 대안에 대해 체계적으로 고민하고 상상력을 발휘하는 것이 현재의 상황을 변화시키는 출발점이다. 지금은 가능성으로만 존재하는 것이 실천의 축적을 통해 현실적인 정치적 프로젝트가 될 수 있다. 자본주의 내에서 사회권력의 강화를 위한 지속적인 모색과 노력이 계속될 때, 자본주의를 넘어서는 길을 찾아내고 실현할 수 있을 것이다.

다양한 반자본주의 운동 축적 필요

요컨대, 노동정치에 있어서도 어떤 정형화된 이념과 노선으로 현실의 운동을, 대중을, 견인해 나간다고 하는 방식은 현재로서는 가능하지도, 바람직하지도 않다고 본다. 다양한 내용과 방식의 반(비/탈)자본주의 운동을 사회 내에 실제로 축적시켜 나가는 일이 중요하다.

노동, 환경, 여성, 교육, 인권, 주민자치, 협동조합, 공동체운동 등등. 이들을 촉진하고 이끌며 어떤 흐름으로 엮는 작업이 곧 사회운동이고 나아가 정치일 것이며, 그것에 적합할 수 있는 형식과 내용으로 기존의 운동을 변화시켜 나가기 위한 노력이 기울여져야 할 것이다.

   
  ▲ 지난 2월 열린 이명박 정권 규탄 집회 (사진=노동과세계 / 이명익 기자)

당과 노조와의 관계에 관한 비판적 평가들이 많았고, 지금도 그러하다. 양자가 유기적 관계로 정립되지 못하여 당이 노동조합을 “선거 때 돈 대주고 몸 대주는 대상”으로 여기게 되었다거나, 노조 내의 직책이 다음 시기에 당의 후보가 되기 위한 관료적, 명망가적 구조가 되었다거나, 기성 정당과 다름없이 선거 정치에 매몰되어 당내외적으로 권력 경쟁이나 선거공학만이 난무하게 되었다거나 등등의 비판들이다.

정당한 비판이긴 하나, 많은 부분에서 과도하거나 조급한 것이라 생각된다. 2000년 창당 무렵에 노동운동 진영이 합의한 것이 합법적 의회주의 선거정당이었고, 그렇다면 그러한 문제점들은 이미 예견된 것이었기 때문이다. 치러야 할 기회비용이었고, 극복해 나가야 할 문제점들이었다는 뜻이다.

아마도 이런 문제를 풀어나가기 위해서는 정당보다 더 정치화된 노조, 정당보다도 더 진보적인 정치강령을 가진 노조의 존재가 요구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의회주의 정당이 그나마 제대로 작동하게 하기 위해서는 그 정당보다 더 급진적인 이념과 노선으로 실천하고 투쟁하는 사회운동, 노동운동이 존재해야 할 것이다.

사민주의 정당과의 수십년에 걸친 정치연대를 단절하고 지난 2006년 스스로 사회주의를 표방하는 독자적 정치노선을 채택한 CAW(캐나다자동차노조)의 고민도 여기에 있었다. 실리조합주의(business unionism) 노선과 단절하고 사회노조주의(social unionism) 노선으로 선회한 후(1985년) 이를 구현하기 위한 내부 혁신 작업에 매진한지 20년 만의 일이었다.

필자소개
레디앙
레디앙 편집국입니다. 기사제보 및 문의사항은 webmaster@redian.org 로 보내주십시오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