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금은 후퇴하지 않는다
        2010년 03월 18일 09:34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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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련이 붕괴한 이후 자본주의의 경쟁자는 없어 보였다. 그로부터 20년이 지난 후 금융위기가 발발하여 자본주의 체제 자체의 근본적인 결함이 다시금 노출되었지만 1990년대 초반의 분위기는 그야말로 자본주의가 역사의 최종 종착역처럼 보였다. 게다가 1970년대부터 시작된 자본 이동의 자유화는 국가의 과세권을 위협하기 충분하였다. A 국가가 세금이 높으면 자본을 B 국가로 이동시키면 그만이었고, 그 이동은 몇 분이면 충분히 가능하였기 때문이다.

    높은 소득세율은 환영받지 못했고, 1970년대 후반부터 대처를 필두로 대중적 지지를 받는 신자유주의 정치인들이 권력을 잡기 시작했다. 한국 또한 IMF 구제금융을 받고나서 우울한 전망이 우세하였다. 경제적 호황기에 노자간의 타협을 전제로 한 사회민주주의는 끝났으며, 일국적인 정치행동으로써는 아무 것도 이룰 수 없다는 시각이 팽배하였다.

    전세계의 많은 활동가들이 신자유주의의 핵심기구들을 그 현장에서 직접 공격하는 전술을 취하였으며 1999년 시에틀의 WTO 각료회의의 무산은 이 전술이 일정하게 유효함을 입증하였다.

    한국에서도 론스타라는 투기자본이 들어와 고수익을 올리고서도 세금을 한 푼도 내지 않을 수 있다는 전망이 있었다. 실제로 론스타는 한국에서 과세가 되지 않을 것을 확신하고 미국 내에서 투자자를 모집하였다. 여기에 대해서 공분이 집중되었고, 론스타 사건에서 보여지듯이 일국의 과세권은 매우 허망한 것으로 보여졌다. 과세권이 허망하면 세금을 통한 복지도 무의미한 것이다.

    조세는 후퇴하지 않았다

    그러나, 결코 조세는 후퇴하지 않았다. 신자유주의가 결코 헛된 위협이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그 효과는 지나치게 과장되어 있었던 것이다. 조세부담률이 급격하게 낮아진 나라는 세계적으로 거의 찾아보기 힘들기 때문이다. 실제로 신자유주의가 미친 영향은 상당하기는 하지만 최소한 조세에서는 기존 시스템을 무너뜨릴 정도는 아니었던 것이다.

    신자유주의가 조세에 미친 가장 큰 영향은 세율인하이다. 자본이동이 자유롭다보니 세율이 낮아지게 되었다. 한때 최고소득세율이 98%에 달했던 영국이나 미국 같은 나라도 대부분 30~40%대로 세율을 인하하였다.

    소득 중 일정 금액을 넘는 것은 노동이나 사업을 해서 올리기는 어렵고 대부분 자본이익에 해당하는 것이었다. 타국으로의 자본유출을 막기 위해 많은 국가들이 누진세최고세율을 인하하거나 아니면 자본이익에 대해서는 분리과세 혹은 비과세로 방향을 전환하였다.

    누진세 최고세율이 인하되기는 했지만 이로 인한 결손이 큰 것은 아니었다. 가장 큰 이유는 고율의 누진세율로 인한 세수가 전체 세수에 비하면 그렇게 크지 않았다는 데에 있다. 예를 들어 98%의 세율을 적용받는 사람은 극히 일부에 불과했기 때문에 이들의 세율을 40%로 낮춘다고 하더라도 그 감소폭이 그렇게 크지 않았던 것이다.

    일부 국가에서는 자본이익만 저율과세하는 방식으로 법을 개정하였다. 근로소득이나 사업소득에 대해서는 누진세율로 과세하면서 자본이익에 대해서만 예컨대 20%의 단일세율로 부과하는 것에 대해서 비판도 있었지만 네덜란드의 경우에는 자본이익만 단일세율로 과세하는 대신에 새롭게 1.5%의 부유세를 다시 도입하여 불공평한 세제라는 비판을 완화하기도 하였다.

    이처럼 각국은 신자유주의 상황 속에서 세율인하를 대부분 받아들였지만 그 세율인하가 복지제도를 흔들거나 조세의 공평성을 심각하게 훼손할 정도는 아니었다.

    특히 좌파정당은 사회주의 몰락 이후 침체를 겪었으나 대부분 재집권에 성공하였다. 세계화의 결과 외부경제충격에 일국의 경제가 더 영향을 많이 받게 되었고, 전통적 좌파정당의 지지층이 아닌 미조직 자영업자나 서비스 분야 노동자들이 그래도 복지의 확대유지를 원하는 좌파정당에 표를 던졌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유력하다.

    즉, 세계화와 신자유주의는 오히려 복지수요를 확대시켰고, 경제에서 수출 비중이 클수록 조세와 복지는 오히려 늘어나거나 유지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독일 우익의 실패

    소득세제의 운명을 보여주는 가장 드라마틱한 예는 독일이었다. 2005년 독일기민당/기사련의 수상 후보인 메르켈은 전 헌법재판관인 파울 키르히호프를 재무부장관 후보로 지명하였다. 키르히호프는 최소 40%의 독일의 누진소득세를 25%의 단일세율로 대체한다는 파격적 제안을 발표하였다.

    이로 인하여 생기는 재정적자는 418가지에 달하는 소득세법 상의 조세혜택을 삭제하여 해결한다는 것이다. 당시 이코노미스트지 등 우파들은 주요 국가에서 최초로 단일소득세제가 도입될 것이라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그러나, 결과는 예상과 차이가 있었다. 2005년 총선은 독일사민당의 패배가 예견되는 선거였으나, 예상과 달리 패배의 정도는 심하지 않았다. 기민-기사련은 35.2%로 225석을, 사민당은 막판에 선전하여 34.3%로 222석을 얻었다. 기민당이 예상과 달리 선거에서 결과가 좋지 않은 이유에 대해서는 키르히호프의 단일소득세 주장이 큰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 당시 대세였으며 독일사민당 또한 단일소득세제를 집중 공격하였다. 독일언론에서는 키르히호프가 기민-기사련 지도부와의 합의없이 단일소득세제를 발표하였다고 보도하기도 하였다.

    물론 메르켈은 독일의 수상이 되었지만 단일소득세제라는 공약은 대중적으로 인기가 없다는 것이 판명되었고, 주요국가의 어느 우파 정당도 이를 진지한 공약으로 채택하고 있지 않다. 즉, 세계화와 신자유주의에도 불구하고 소득세제 자체의 누진성을 근본적으로 부정하는 단일소득세제와 같은 공약은 정상적인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도입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신자유주의는 맹위를 떨치고 있지만 이제는 인간의 상식이 되어버린 조세의 공평성은 그렇게 쉽게 후퇴시킬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 좋은 예이다.

    연재를 마치며

    조세의 역사는 소득세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소득세의 의미는 매우 크다. 소득세는 그 원리상 마르크스가 이야기한 공산주의적 원칙이 그대로 구현되어 있다. 보통은 온건한 용어로 공평성이라고 표현되지만 이 공평성이 공산주의와 다르지 않다.

    실제로 능력에 따라 일하고 필요에 따라 분배한다는 이상이 완전히 실현되지는 못했지만 그 원칙은 시대가 변하였지만 아직도 유지되고 있다. 그것은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만개한 상황 속에서도 근본적으로 훼손되지 않았고, 아직도 전세계적으로 많은 인민들의 지지를 바탕으로 유지되고 있다. 자본주의 시스템 자체가 중대한 결함에 처해 있는 지금 세금제도 또한 재검토에 들어가야 하는지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지금까지처럼 공평성을 약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더욱 강화시키는 방향으로 재조정되어야 할 것이다. 조세를 통한 복지국가가 인류의 종착점은 아니겠지만 최소한 조세를 통한 복지보다 좋지 않은 제도를 목표로 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중요한 것은 현재 우리가 겪고 있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현실적인 방책에 있을 것이다. 마르크스가 공산주의에 도달하기 위한 방책 10가지 중 두 번째에 누진소득세를 열거한 것처럼 조세는 항상 방책의 우선순위에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연재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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