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의 국가채무는 실제 얼마일까?
        2010년 03월 18일 09:30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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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부가 IMF 2001년 지침을 적용하면 국가채무 수치가 명확하게 산출될 수 있을까? 그렇지는 않을 것 같다. 각국마다 공공기관의 위상이나 성격이 달라 2001년 지침을 적용하더라도 어느 기관까지 국가채무 대상으로 삼을지를 두고 여전히 논란이 생길 것이기 때문이다.

    최근 우리나라 논의를 보면, 정부는 가능한 국가채무 대상을 작게 설정하고, 일부 정치권은 가능한 규모를 크게 잡으려 한다. 국가채무를 둘러싼 정치가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현재 국가채무 산정방식 개편에서 주로 제기되는 쟁점들을 살펴보자.

    국가채무가 편법 이전된 공기업 부채

    첫째, 공기업 채무를 국가채무에 포함할 것인가 여부이다. IMF 2001년 지침은 공기업을 국가채무 대상에서 제외하고 있다. 하지만 일부에선 공기업 채무 역시 정부가 긍극적으로 책임져야 할 몫이므로 국가채무에 포함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혹은 시장형 공기업(자체수입이 85% 이상)은 제외하더라도 준시장형 공기업(자체수입 50~85%)은 국가채무에 포함되어야 한다는 제안도 있다.(시민경제사회연구소 홍헌호 연구위원)

    특히 이러한 주장들은 이명박 정부가 노골적으로 국가채무를 공기업에게 전가하는 것을 근거로 한 것이어서 상당한 설득력을 지니고 있다.

    수자원공사가 4대강사업 재정 8조원을 부담하듯이, 철도공사의 인천공항철도 인수, 한국토지주택공사의 보금자리주택사업 확대 등 사실상 정부의 재정사업이 공기업 사업으로 전환되고 있다. 2008년말 기준 공기업 채무가 약 177조원에 달하는데, 이 중에 정부 몫이 존재하고, 앞으로도 늘어갈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공기업 채무를 국가채무로 포함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우선 공기업 채무에서 순수 공기업 몫과 정부 몫을 구분하기가 쉬운 일은 아니다. 게다가 국제기준도 공기업 채무를 국가채무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이에 필자는 향후 국제기준에 따른 국가채무 산정과 별도로 공기업을 포함하는 공공부문 채무를 계산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판단한다.

    국가채무를 추계하는 목적이 앞으로 어떻게 채무를 관리할 것인가에 있다면, 무리하게 하나의 틀에 모든 채무를 집어넣기보다는 기관의 특성을 반영해 관리하는 것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는 근래 국제기구가 각국에 요청하는 사안이기도 하다.

    한국은행의 통화안정증권, 국가채무에 포함시켜야 하나?

    둘째, 한국은행의 통화안정증권을 국가채무로 볼 것인가의 문제이다. 통화안정증권은 국내 통화의 과잉유동성을 흡수하기 위해 한국은행이 발행하는 채권으로 2007년 말 기준 150조원에 달한다. 이것은, 형식적으로는 정부 밖의 독립기관인 한국은행이 진 채무이지만, 사실상 국가가 최종 책임자인 채무이다.

    또한 선진국에선 정부 자신이 직접 국채를 통해 공개시장조작(통화안정조치)을 하는 것과 달리 우리나라에선 정부 대신 중앙은행이 이를 수행하기 때문에, 통화안정증권은 정부가 중앙은행에 떠넘긴 채무라고 볼수도 있다.

    하지만 여전히 한국은행이 정부 독립기관이라는 점, 통화안정증권이 현금 흡수를 위해 발행된다는 점, 한국은행이 손익 추세가 그리 나쁘지 않다는 점 등에서 국가채무에 포함하는 것이 적절치 않다는 반론도 있다.

    필자는 통화안정증권 금액 모두를 국가채무로 합산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생각한다. 앞의 반론에서 나왔듯이, 통화안정증권은 정부가 명시적으로 직접 책임지는 채무들과는 성격이 다르기 때문이다. 이에 통화안정증권 채무도 공기업 채무와 유사하게 공식 국가채무와 별도로 공공부문 채무로 계산해 관리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미래 세대를 압박하는 공적연금 잠재부채

    셋째, 미래 연금부채를 국가채무에 포함할 것인가의 여부이다. 현재 공무원연금은 이미 기금이 소진돼 정부 일반회계로부터 재정 지원을 받고 있고, 앞으로 사학연금, 국민연금도 불가피하게 비슷한 길을 밟을 것으로 보인다.

    현재 가입자를 기준으로 추계해 보면, 장래 급여 지출에 부족한 공적연금의 미적립금액은 약 600조원에 달한다. 그래서 가입자들이 보험료를 더 내지 않는 한 국가가 이 금액을 책임져야 한다는 점에서 연금부채는 국가채무에 속할 수 있다.

    하지만 공적연금은 제도 변화에 따라 미적립액 규모가 변화하는 정책적 채무이다. 또한 세대간 연대라는 가치에 따라 설계된 미래 재정 책임을 채무라는 개념으로 접근하는 것이 접합한 지에 대해서도 의문이다.

    특히 연금 역사가 짧아 연금 불신이 큰 우리나라에서 미래 연금에 요구되는 필요재정을 채무로 평가하는 것은 지혜로운 접근이 아니다. 이에 연금채무 역시 국가채무와 별도의 범주인 공공부문 채무로 설정해 관리하는 게 적합할 것이다.

    옥동석교수, 우리나라의 국가채무는 688조원, GDP 76%

    그러면 IMF 2001년 기준을 적용할 때 우리나라 국가채무 규모는 실제 얼마일까? 우리나라에서 정부의 국가채무 수치를 가장 체계적으로 비판하면서 대안추계를 제시한 학자는 옥동석교수이다.

    옥교수는 한국재정학회를 대표해 2008년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의 연구용역 의뢰로 작성한 보고서에서, 2007년 기준 한국의 국가채무를 688조원, GDP 76.3%라고 추정했다. 정부가 발표하는 공식 국가채무 GDP 33.2%보다 두 배나 되는 규모이다.

       
      

    <표 1>에서 보듯이, 옥교수는 정부 발표 국가채무에 포함되지 않는 기업특별회계(우체국예금특별회계, 책임운영기관 특별회계 등), 공공기관이 관리하는 기금, 공기업을 제외한 준정부기관, 민간투자사업이 안고 있는 채무 등을 모두 합해 우선 약 540조원의 국가채무를 산출했다.

    여기에 다시 통화안정증권 채무와 주택공사, 도로공사 등 법률에 의해 정부가 보증하는 공기업들의 채무를 포함하되, 그 특수성을 감안하여 채무 총액의 절반씩을 국가채무에 합산했다. 그 결과 옥교수가 산출한 최종 국가채무 규모는 688조원, GDP 76%이다.

    국가채무, 정부부채, 공공부채로 구분해 관리해야

    필자는 각 공공기관이 지니는 채무의 성격이 다소 다르기 때문에 이들을 하나의 틀로 계산하는 것은 무리가 따른다고 판단한다. 이에 국제비교를 위해 IMF 2001년 기준에 따른 채무를 우선 산정하고, 이어 국제기준에는 포함되지 않지만 정부가 최종 책임자로서 관리해야하는 채무들을 따로 모아 계산할 필요가 있다.

    이 때 용어도 구분해 사용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2012년부터 우리나라에서도 국가채무 계산에 발생주의가 적용된다. 그렇다면 용어도 ‘채무(Debt)’보다는 ‘부채(Liability)’가 적절하다. 채무가 현금주의 입장에서 현재의 확정 빚을 가리킨다면, 부채는 실제 정부가 책임져야할 미래 몫 모두를 지칭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제 지금까지 논의한 여러 채무들은 다음의 세가지 범주로 분류해 보자. 첫째, 정부가 현금주의 방식으로 계산한 기존 공식 채무인 국가채무. 둘째, 국제기준에 따라 비영리 공공기관을 포함하고 추계 방식도 발생주의를 적용한 정부부채. 셋째, 공기업 부채, 통화안정증권, 연금부채 등 잠재적 정부 책임 몫까지 모두 포괄한 ‘공공 부채’.

    한국 정부 부채, 2007년 GDP 60%로 G20 평균 수준과 동일

    그러면 각각의 규모를 추정해 보자. 앞에서 보았듯이, 우리나라 정부 발표 국가채무는 2007년 기준 299조(GDP 33.2%)이고, 작년엔 365조원(GDP 35.3%)이다. 이것들은 정부가 1986년 IMF 지침에 따라 작성한 수치이다. 이에 따를 경우 2013년에도 국가채무는 GDP 30% 중반 수준으로 유지될 것이라는 게 정부의 이야기다.

    다음으로 2001년 국제기준에 따른 정부부채를 살펴 보자. 필자는 국제기준을 보수적으로 적용해 정부부채를 약 540조원으로 추정한다(약 GDP 60%). 이것은 옥교수가 추계과정에서 포함한 모든 특별회계, 기금, 비영리 공공기관 채무를 인정하되, 통화안정증권과 공기업 부채는 성격의 차이를 감안해 제외한 금액이다(우편예금특별회계, 금융성기금 등에 대해선 추가 논의가 필요하나 일단 포함했음).

    마지막으로 공공부채는 2007년 기준으로 통화안정증권 150조원, 공기업 부채 146조원, 연금부채 약 600조원 등 약 1,400조원(약 GDP 150%)으로 추정된다. 결국 우리나라 정부가 책임져야할 부채는 정부 발표 금액 299조원보다 많은 500~1400조원으로 정리된다.

       
      

    결국 우리나라 정부부채는 IMF 국제기준에 따라 구성할 경우 약 GDP 60%로 2007년 IMF가 발표한 G20 국가 평균인 62%와 동일한 수준이다. 결코 외국에 비해 낮은 수준이 아니다. 금융위기를 겪은 후인 2009년 G20 국가 평균이 75.1%로 올라갔지만, 우리나라 역시 상당히 상승했을 것으로 예상된다. 다른 나라들이 겪고 있는 정부부채 문제가 남의 일이 아닌 것이다. 부자감세를 강행하고 4대강사업에 재정을 쏟을 한가한 때가 아니다.

    우리나라에서 국가채무가 수치보다 더욱 심각한 이유

    한편 여기서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동일한 국가채무 수치라도 선진국에 비해 우리나라에서 가지는 의미가 훨씬 심각하다는 점이다. 이는 우리나라 경제가 안고 있는 특수성을 감안해 정부부채 수치를 해석해야한다는 경고이다. 우리나라 국가채무가 수치보다 더욱 심각한 이유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우리나라는 선진국에 비해 국가신인도가 낮고 무역에 과도하게 의존하는 경제구조를 가지고 있다. 그만큼 외풍에 취약한 경제이고, 국가채무 비교에서도 선진국보다는 신흥국을 대상으로 삼을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가 G20체제에선 비록 선진국으로 분류되지만 무역의존도가 90%대로 다른 선진국의 30~40%에 비해 매우 높아 경제구조의 안정성 면에서 신흥국의 특성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작년 G20 국가의 국가채무 평균 비중은 GDP 75.1%이지만 선진국 집단(미국, 영국, 일본, 프랑스, 독일 등)과 신흥국(브라질, 중국, 인도, 러시아 등) 집단간 국가채무 수준에서 확연한 차이가 존재한다. 선진국 평균 국가채무 규모는 GDP 98.9%로 높지만, 신흥국 평균은 38.9%로 선진국에 비해 상당히 낮은 수준이다.

    최근 자본시장연구원이 흥미로운 보고서를 발간했다. 연구원은 국가집단별 적정 국가채무 비중을 추정했는데, 한국과 같은 소규모 개방경제의 경우 적정채무비율이 35.2%, 그리고 미국, 캐나다 등 비교적 내수가 탄탄한 선진국가의 적정채무비율은 이보다 21% 포인트 높은 56.2%라고 제안했다. 우리나라 국가채무 국제비교에서 비교대상을 선정하는 데 주의가 요한다는 이야기다.

    둘째, 국가채무의 성격이 악화되고 있다. 국가채무는 성질별로 적자성 채무와 금융성 채무로 구분된다. 적자성 채무는 향후 국민들이 세금으로 상환해야할 빚이고, 금융성 채무는 외환, 융자금 등 정부가 자체상환재원을 보유한 채무이다. 시장 상황에 따라 금융성 채무의 건전성도 악화될 수는 있지만, 국가채무에서 결정적으로 중요한 대상은 순부채인 적자성 채무이다.

    1997년 우리나라 국가채무 중 적자성 채무의 비중은 20.1%에 불과했다. 그런데 2003년 이 비중이 36.2%로 늘어났고, 올해는 48.6%로 거의 절반을 차지하며, 2013년에는 52.1%로 더 커질 예정이다. 이는 주로 일반회계 적자를 보전하기 위한 국채 발행이 꾸준히 늘어났기 때문에 발생한 일이다. 작년 우리나라에서 재정적자 보전을 위해 순증된 규채가 35.5조원이었고, 올해 다시 29.3조원이 늘어날 예정이다.

    셋째, 이명박정부 들어서 국가채무를 공기업으로 떠넘기는 그림자 채무 문제가 확대되고 있다. 앞에서 보았듯이, 수자원공사는 4대강사업 비용 8조원, 한국철도공사는 부실 인천공항철도 인수에 1.2조원을 들였다. 사실상 정부가 책임져야할 일을 공사가 떠안은 것이다. 비록 공기업 채무가 국제기준 국가채무에는 속하지 않지만, 우리나라는 이를 특별하게 주목해야 하는 상황에 놓여 있다.

    넷째, 국가채무 증가속도가 가파르다. 2000년 전후 10%대에 머물던 국가채무 비중이 2000년 전반에 20%대로 진입했으며, 후반부에 30% 중반에 이르렀다. 우리나라는 GDP 대비 국가채무 비중은 2000∼2009년 기간에 17.2%포인트 상승한 것이다. 이러한 증가 속도는 OECD 국가 중 여섯 번째로 높은 수준이다.

    다섯째, 국가채무를 감당해야 하는 우리나라 정부의 재정규모가 다른 나라에 비해 작다. 작년 국가재정 규모를 보면 OECD 국가 평균은 GDP 45%, 유로국가 평균은 51%이지만 한국은 35%로 작다. 국가재정 규모가 작은 만큼 국가채무가 정부에 주는 압박은 더 크기 마련이다.

    여섯째, 무분별한 공기업 민영화가 추진될 예정이다. 정부는 다음 대선해인 2012년까지 국가재정수지를 개선하기 위하여 수입을 늘리고 지출은 통제하는 재정전략을 마련해 놓았다. 이 때 수입 증가는 세수 확대가 아니라 공기업 매각을 통해 추진될 예정이다. 작년 국정감사에서 총 18조원의 공기업을 매각하는 계획이 공개되기도 했다. 국민의 공공자산을 팔아 국가채무를 관리하는 것이 재정건전성을 강화하는 일은 결코 아니다.

    국가채무 의제, 계급정치 장 안에 들어오다

    국가채무 논란에서도 확인되듯이, 이제 우리나라도 재정위기에서 자유롭지 않다. 이러한 상황에서 진보운동은 무엇을 할 것인가?

    첫째, 정부의 방만한 재정지출을 문제시해야 한다. 현재 이명박정부도 재정건전성 문제를 계기로 ‘지출 통제’ 프레임을 작동시키고 있다.

    예를 들어, 정부는 앞으로 5년간 복지재정 지출 증가율을 평균 4.8%로 정했다(추경예산 기준).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복지지출은 물가상승률 2.6%, 자연증가율 약 4%를 합해 6.6% 이상 증가하지 않으면 많은 복지사업들이 축소되는 처지로 몰리게 된다. 앞으로도 작년처럼 예산 심의 때마다 복지지출이 정체하거나 삭감되는 일이 발생할 것이다.

    이에 진보운동은 4대강사업, 국방예산 등 반사회적 예산 문제를 적극적으로 공론화해야 한다. 4대강사업이 환경을 파괴하는 사업이기도 하지만 우리나라 재정위기를 악화시키는 일이라는 점도 강조되어야 한다.

    둘째, 진보운동은 정부의 지출통제 프레임에 맞서 세입확대 프레임을 만들어가야 한다. 국가채무 문제에 대응하는 근본적 해법은 국가재정을 키우는 일이다.

    우리나라 국가재정 규모는 OECD국가 평균 수준에 비해 매년 GDP 11%, 110조원이 부족하다. 이에 당장 매년 24조원씩 세입 결손을 야기하는 부자감세를 철회시켜야 하고, 나아가 사회복지세 신설 등을 통해 공공재정을 확충하자고 주장해야 한다. 최근 우리나라에 불고 있는 복지국가 운동과 결합해 ‘복지 체험과 직접세 증세’를 한 묶움으로 제기한다면 의미있는 성과를 거둘 수도 있을 것이다.

    다소 긴 분량으로 우리나라 국가채무 문제를 살펴보았다. 이 의제가 특정 세력에게 정치적 자산이 될지 혹은 걸림돌이 될지는 미리 정해져 있지 않다. 이명박정부와 보수세력이 국가채무 의제를 복지지출을 죄고 공공자산을 매각하는 근거로 악용할 수도 있고, 진보운동이 콘크리이트 및 전쟁 지출을 줄이고 직접세 세입 확대를 공론화하는 계기로 삼을 수도 있다. 이렇게 우리나라에서도 국가채무 의제가 이제 계급정치의 장에 들어와 있다.      [다음 글에서 “한국의 조세체계와 두 가지 통념”이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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