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회찬은 큰 물로 가야 된다고?
        2010년 03월 17일 10:16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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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회찬이 처한 현실에 대한 김종배의 진단(「노회찬은 ‘양념 정치인’이다」, <프레시안>, 3. 17)에 대체로 동감한다. 지금의 노회찬이 ‘삼겹살이 아닌 기름장’이라거나 ‘감독이 아닌 해설자’라는 지적에는 노회찬 본인도 별로 반발하지 않을 것 같다.

    그런데, “그가 ‘급’을 올리려면 ‘큰 물’로 갔어야 한다”는 김종배의 제안에는 동의하기 어렵다. 김종배가 칼럼에서 이야기하는 ‘큰 물’은 직접적으로는 야5당 연대이지만, 글 전반에서는 일회적 선거연합에의 참여 여부를 넘는 나름의 정치철학을 드러낸다. 김종배는 ‘깨끗한 이미지’와 ‘미발육’의 노회찬더러 ‘잡티가 묻고 한 자리 차지한’ 손학규와 정동영을 따르라고 비유적으로 조언한다.

       
      ▲ 사진=노회찬의 공감로그

    첫째, “그의 지지율은 납작 엎드려 있다. … 조사에 명함조차 내밀지 못하고 있고 … 크게 밀리고 있다”는 전제는 지나친 과장이다. 2002년 대선을 몇 달 남겨두고 이회창과 정몽준, 민주당의 여러 주자들에게 크게 뒤지던 노무현도 이런 비관적 지지율을 보였고, 한나라당 안에서는 사고무친, 고립무원이었던 이명박도 마찬가지였다. 지지율 선두의 고건과 박찬종은 지금 어디서 무얼 하고 있는가?

    물론, 노무현이나 이명박은 큰 당에 속해 있었으니 천신만고로 예선을 통과한 후에 양자구도를 형성할 수 있었지만, 노회찬에게는 그럴 가능성이 매우 적다. 그럼에도 현실의 낮은 지지율을 들어 정치인을 타박하는 것은 노무현에게든 이명박에게든 노회찬에게든 그다지 설득력이 없다. 거의 매년 있는 선거를 준거 시점 잡아 지지율이 낮느니 높느니 설왕설래해봤자, 단견의 호들갑으로 보일 뿐이다.

    언제부터 노회찬을 정동영 급으로 대우했었나?

    둘째, 손학규 정동영은 잘 나가는데, 노회찬은 왜 이 모양이냐는 질문이 잘못됐다. 손학규와 정동영은 아직은 완전히 잊혀지지 않은 준퇴물 정치 거물이고, 노회찬은 아직도 신진 정치인이다. 손학규와 정동영은 따뜻한 곳에서 따뜻한 곳으로 옮겨 다니는 남방계 철새이지만, 노회찬은 민주노동당에서마저 ‘얼어 죽을 각오로’ 뛰쳐나온 독립군이다.

    노회찬더러 잘못하고 있다고 비판하려면 손학규나 정동영 같은 큰 당의 정치인이 아니라, 작은 당으로부터 큰 당으로의 전향자인 이창복이나 이인영과 비교해야 한다. 이창복이나 이인영이 건재하다는 이야기는 들어보지 못했다.

    셋째, 김종배의 논지는, 노회찬이 ‘깨끗한 이미지’를 포기하고 ‘잡티’를 감수하고라도 ‘큰 물’로 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노회찬이 ‘인기’와 ‘힘’의 부조화를 극복할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저질이라 손가락질 받는 한국 정치에서도 김대중, 노무현처럼 그나마 지조를 지킨 정치인들이 작은 결실을 거두었다. 이인제 같이 ‘큰 물’을 찾아다닌 이들은 흔적도 없이 도태돼 버리기도 했다. 예외처럼 보이는 김영삼도 있지만, 실상 3당 합당이란 김영삼에게는 변신이랄 것도 없는 순리였을 뿐이다.

    김대중은 30년, 노회찬은 몇 년?

    더 큰 문제는 ‘큰 물’로 뛰어든 노회찬이 과연 ‘힘’을 얻게 될 것인가 하는 점이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노회찬의 ‘인기’란 현실의 ‘힘’으로부터 멀리 있는 데서 비롯되고, 그렇다면 노회찬의 변신은 ‘힘’의 보장 없이 ‘인기’만 잃는 것이기 십상이다. 설사 ‘힘’을 얻게 될지라도 그런 노회찬은 우리에게 필요없다. 

    김종배는 ‘이미지’보다는 ‘힘’을 택하라고 주문한다. 개인의 실력보다는 정당 구조를 강조한다는 점에서는 발전이지만, ‘이미지’든 ‘힘’이든 대중화된 3류 정치공학의 설명 방식일 뿐이다. 여기에는 정치의 내용과 세력과 그 성장 동학이 빠져 있다.

    정치인은 종교인이 아니므로 먼지를 털어내며 독야청청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더럽고 천박하기 이를 데 없는 한국 정치에서 노회찬쯤 되는 정치인이 몇 년은 더 버텨줘야 숨통이 좀 트이지 않겠나? 보수 정치인 김대중도 30년 가까이 야인으로 버텼다.

    노회찬 같은 인물을 거름 삼아 진보정당이 클 수 있다면 더 바랄 나위 없겠다. 정약용이 이르길, “정(政)은 정(正)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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