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채무, 정권 재창출 좌우한다
    2010년 03월 17일 07:48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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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살펴볼 주제는 국가채무이다. 이는 작년부터 끊임없이 제기되는 문제이며, 이명박 정부 임기 내내 논란을 빚을 주제이다. 2012년 대선에서 국가재정 관리 성적표를 제출해야할 정부로선 정권 재창출까지 걸린 문제일 수 있다. 그래서 다소 복잡하지만 피해갈 수도 없는 주제이다. 두 차례로 나누어 국가채무를 살펴 보겠다.

그리스 노동자와 일본 젋은 세대

지난 11일 그리스 노동자들이 총파업을 벌였다. 2월에 이어 다시 전국의 관공서, 기업, 병원, 교통이 하루 동안 거의 마비되었다. 그리스의 작년 재정적자 규모(GDP 12.7%)는 OECD 회원국 중 국가부도 직전까지 갔던 아이슬란드의 15.7% 다음으로 큰 규모였다.

이에 그리스 정부는 올해 재정적자 폭을 GDP 4% 수준으로 줄이기 위해 공무원 보너스 삭감, 연금 동결 등의 초긴축 방안을 내놓았고, 노동자들이 이에 항의에 나선 것이다.

지난 1월 일본 자산운용회사 피델리티신탁이 벌인 대학생 여론조사에 따르면, 다수 학생들이 “일본의 앞날에 꿈이나 희망을 가질 수 없다”고 대답했다. 그 이유를 복수응답하게 한 결과 “국가의 재정적자가 심각해서 젋은 세대에게 과도한 부담이 돌아간다”와 “고용 불안이 계속된다”는 대답이 각각 70%에 이르렀다.(한겨레신문 ‘무기력한 일본’ 2010. 3. 13)

일본도 작년 GDP 7.4%의 재정적자를 낳았으며 국가채무는 GDP 189.3%로 세계 최고 수준을 기록하고 있다. 이에 일본의 젊은 세대들마저 국가재정 위기를 체감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금융위기 대응과정에서 불거진 재정위기

재정적자와 국가채무는 비단 두 나라만의 문제가 아니다. 2008년 세계적 금융위기를 맞아 각 나라들이 이전보다 치밀한 국제 공조로 위기를 관리해 나갔지만, 막대한 재정적자와 국가채무라는 대가를 안아야 했다.

작년 OECD 국가들의 평균 재정적자 폭은 GDP 8.2%에 달한다. OECD 자료에 의하면, 올해도 재정적자 규모는 8.3%, 2011년에는 7.6%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그 결과 각국이 안고 있는 국가채무 부담이 만만치 않다.

아래 <표 1>에서 보듯이, OECD 국가 평균 국가채무 비율은 1990년대 후반 GDP 70%, 2000년 중반 75% 수준을 보였으나, 2008년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90%로 치솟았고, 내년부터 100% 대에 진입할 것으로 예상된다. 세계 각국이 금융위기 장벽을 넘다가 재정위기라는 새로운 난관에 직면해 있고, 이것의 피해가 고스란히 일반 서민, 연금 수령 노인, 일자리를 찾는 젊은 세대들에게 떨어지고 있는 것이다.

   
  

한국, 재정위기의 안전지대?

다른 나라에 비하면 우리나라의 공식 재정 현황은 양호하다. 작년 우리나라의 재정적자는 51조원으로 GDP 5%이다. 이는 IMF 금융위기 때를 제외하곤 거의 균형재정을 이루어 왔던 우리나라의 재정관리 역사에서 보면 큰 폭의 적자이지만 외국과 비교하면 그리 나쁜 성적은 아니다.

우리나라의 국가채무도 그리 많지는 않다. 현재 국가채무를 작성하는 국제기준은 OECD 방식과 IMF 방식 두 가지가 있다. <표 1>에서 보았듯이, OECD 기준으로 작년 우리나라 국가채무 규모는 GDP 33.2%로 OECD 평균 90%의 1/3 수준이다.

현재 우리나라 정부가 국내에서 발표하는 공식 통계는 IMF 기준에 따른다. IMF 기준으로 작년 우리나라 국가채무는 365.1원으로 GDP 35.3%이다. 이는 IMF가 발표한 G20 국가 평균 GDP 75.1%의 절반에 불과한 규모이다.

정부 발표에 따르면, 국가채무는 앞으로도 큰 문제가 없을 듯하다. 이명박 정부는 점차 재정적자를 줄여가 2013년에 사실상 균형재정을 달성하고, 국가채무도 GDP 30% 중반 수준으로 관리하겠다는 청사진을 제출했다. 정부 이야기만 들으면 한국은 세계적 ‘재정 위기’ 폭풍에서 벗어난 안전지대로 여겨진다.

국가채무 계산, 국제기준을 따르고 있다고?

그런데도 작년부터 우리나라에서 국가채무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끊이지 않고 있다. 우리나라 국가채무 규모가 실제보다 과소추계되어 있고, 재정적자도 여러 편법으로 은폐되고 있다는 비판이다.

많은 재정학자들이 우리나라 국가채무가 정부 발표 규모보다 더 많다고 평가하고, 정치권은 국가채무가 1,400조원을 넘는다고 주장한다. 왜 국가채무를 둘러싸고 이견이 발생하고 있는가? 도대체 국가채무를 둘러싼 진실은 무엇일까?

현재 우리나라 국가재정법은 국가채무를 ‘정부가 직접적인 상환의무를 부담하는 확정채무’라고 정의한다. 즉, 일반회계 적자를 보전하거나 환율관리를 위해 발행하는 여러 국채, 국가가 국방시설사업, 선박 건조사업 등에서 예산 확보 없이 미리 부담한 채무를 가리키는 국고채무부담행위, 그리고 국내외에서 빌린 차입금 등이 국가채무를 구성한다.

문제는 이것들이 과연 국가채무의 전부인가라는 점이다. 즉 국가채무 대상 범위를 어디까지 설정할 것인가가 논란의 핵심이다.

정부는 IMF가 작성한 재정통계지침을 따르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렇게 틀린 말은 아니다. 이 때 정부가 말하는 지침은 IMF가 1986년에 발표한 지침(Government Finance Statistics Manual 1986)이다.

그런데 IMF는 2001년 변화된 재정 상황을 반영해 새로운 재정통계지침인 ‘GFSM 2001’을 발표하고 각국에 이를 전달했다. 하지만 아직까지 한국 정부는 새 지침을 적용하고 있지 않다. 결국 약 25년전에 만들어진 과거 지침을 사용하면서 국제기준을 준수하고 있다고 운운하고 있는 것이다.

양 지침의 내용은 어디에서 차이를 지니는가? 이 차이는 1986년 지침이 ‘국가채무(Debt)’를 다룬다면 2001년 지침은 ‘일반정부 부채(Liability)’를 다룬다는 것으로 요약된다. 그러면 두 가지 면에서 양 지침의 차이를 자세히 살펴보자.

차이 1: 채무 주체가 국가에서 일반정부로 확장

우선 채무의 주체가 ‘국가(정부부처)’에서 ‘일반정부(정부부처 + 공공기관)’로 확장되었다. 현재 우리나라 국가채무의 주체는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이다. 즉 채무 여부를 파악할 때 채무의 성격보다는 관리주체가 기준이 된다.

예를 들어, 대학생들의 학자금 대출을 보증해주는 학자금대출신용보증기금이 가진 채무는 관리주체가 교육과학기술부여서 국가채무로 계산된다.

하지만 서민들의 전세자금 대출을 보증해주는 주택금융신용보증기금이 진 채무는 관리주체가 한국주택금융공사, 즉 정부가 아닌 공공기관이라는 이유에서 국가채무 계산에서 제외된다. 양 기금은 제도의 목적이 유사하고 채무 최종책임자가 국가라는 점에서나 사실상 같은 집단에 속하는 재정인데도 말이다.

IMF는 2001년 지침을 통해 국가채무 주체를 OECD가 정한 일반정부(General government)로 통일시켰다. OECD 정의에 따르면, 일반정부는 ‘정부 스스로 공급하지 않으면 편리하게, 그리고 경제적으로 생산될 수 없는 공공서비스 영역’, 즉, 비시장적 서비스를 제공하는 공공 주체를 의미한다.

여기에는 중앙정부, 지방정부, 산하기관(비영리공공기관)이 포괄적으로 해당된다. 이는 정부 부처뿐만 아니라 비영리 서비스를 제공하는 공공기관도 일반정부에 포함되고, 따라서 이러한 공공기관이 진 채무도 국가채무에 포함되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2001년 지침에 따라 채무 주체를 국가에서 일반정부로 확장할 경우, 우리나라 국가채무 구성도 다음과 같이 달라져야 한다.

첫째, 모든 기금이 원칙적으로 국가채무 대상이 되어야 한다. 현재 정부는 63개 기금 중 중앙관서의 장이 직접 책임지는 38개 기금만을 국가채무 대상에 포함한다. 따라서 공공기관이 관리하는 나머지 25개 기금이 국가채무 계산에서 제외되고 있다.

여기에 해당하는 기들들을 일부 소개하면, 앞에서 살펴보았던 주택금융신용보증기금, 문화예술위원회의 문화예술진흥기금, 예금보험공사의 예급보험기금채권상환기금채권, 근로복지공단의 근로복지진흥기금, 중소기업진흥공단의 중소기업진흥및산업기반기금 등이 있다. 이 기금들은 기금운용주체가 중앙부처가 아닐 뿐 국회 심의를 받고 정부가 책임져야 하는 국가재정임에 틀림이 없다.

둘째, 비영리 공공기관들이 가진 채무들도 모두 국가채무에 포함되어야 한다. 현재 공공기관운영법에 따르면 자체수입 50% 이상이면 공기업, 50% 미만이면 준정부기관, 기타 공공기관 등으로 정의한다.

유럽연합 기준에 따라 시장적 활동 기준을 자체수입 50%로 잡으면, 현행 286개 공공기관 중 공기업 22개를 제외한 모든 준정부기관, 기타공공기관들의 채무는 국가채무로 계산되어야 할 것이다. 더불어 지방공사, 지방공단 등 등 지방정부 준정부기관들도 당연히 국가채무 계산의 대상이다.

차이 2: 채무 계산방식이 현금주의에서 발생주의로 개편

한편 IMF 2001년 지침에 따라 달라지는 또 하나는 국가회계 방식이 ‘현금주의’에서 ‘발생주의’로 전환된다는 점이다. 현금주의는 현금이 직접 오간 시점을 기준으로 채무를 계산한다.

만약 정부가 20년간 민간사업자에게 매년 1천억원씩 임대료를 지불하는 민간투자사업을 벌였다면, 현금주의에선 매년 지출되는 1천억원만이 국가 채무로 잡힌다. 하지만 발생주의는 경제적 행위 시점 이후 발생하는 모든 채무를 산정한다. 정부가 20년간 매년 1천억워씩 지출해야하므로 현재 정부가 진 국가채무는 2조원으로 계산될 것이다.

이에 발생주의 방식으로 우리나라 국가채무를 산정하면 현행보다 더 늘어날 것은 분명하다. 대표적으로 다음 두가지 영역에서 채무 증가가 예상된다.

첫째, 민간투자사업에 지출되는 미래 지출비용이 모두 국가채무로 잡혀야 한다. 작년 말까지 체결된 민간투자사업은 총 407건, 금액으로 약 70조원에 해당한다.

이 중 정부가 최소운영수입을 보장해주는 인천공항철도, 인천공항고속도로 등 수익형(BTO) 민간투자사업의 보조금, 그리고 정부가 매년 시설사용료를 지불하는 임대형(BTL) 민간투자사업의 임대료 총액은 모두 국가채무로 계산되는 게 옳다. 그런데 돌아가는 정황을 보면, 정부는 임대형 민간투자사업 임대료만 국가채무에 추가할 것으로 보인다.

둘째, 정부가 공무원, 군인 등에게 지급할 퇴직급여 역시 국가채무에 속하게 된다. 이는 민간부문에서 퇴직금을 적립해 놓아야 하듯이, 언젠가 퇴직 공무원에게 지급해야할 국가의 책임부채이다.

사실 2007년 국가회계법이 제정되면서 우리나라에서도 작년부터 국가회계방식이 발생주의로 전환되었다. 그래서 요즘 공무원들마다 발생주의 회계법을 배우느라 부산한 모양이다. 정부는 국가채무에 대해선 2012년부터 발생주의를 적용할 예정이다.

하지만 이 때 IMF 2001년 지침을 얼마나 엄격히 적용할지는 미지수다. 민간투자사업의 예에서 보듯이 정부는 가능한 국가채무 규모를 줄이는 방향으로 새로운 지침을 해석할 것으로 보인다. 이미 윤증현 기획재정부장관은 발생주의로 재산정하더라도 국가채무가 GDP 대비 약 5% 정도만 증가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국가채무 산정방식 개편을 가장 최소한으로 진행하겠다는 예고이다.

어찌되었든 2012년부터 우리나라 국가채무 규모가 새로운 국제기준에 따라 재산정될 것이다. 그 때에도 여전히 규모 논란은 사라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그만큼 국가채무 규모를 둘러싼 정치가 행해지는 것이다.(다음 글에 “한국의 국가채무 규모 추정”이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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