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앙대, 대학인가? 두산 계열사인가?
        2010년 03월 17일 07:34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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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해 12월 중앙대학교는 18개 단과대를 10개로, 77개학과를 40개 학과·학부로 통폐합하는 대규모 구조조정안을 발표했다. 외국어 계열의 학과는 유럽문화학부와 아시아문화학부로 통폐합되고, 민속학과는 역사학과로 흡수되며, 물리학과·화학과·수학과는 기초과학부로 통합된다.

    이에 비해 경영대는 정원을 1,000명 이상으로 확대하고 금융공학·국제물류학 전공이 신설된다. 공대에는 인공지능·로봇공학·의료공학 등이 전공으로 새롭게 도입된다. 이번 구조조정안은 ‘기초학문의 축소와 실용학문의 강화’로 요약할 수 있다.

       
      ▲중앙대 서울캠퍼스 정문(사진=중앙대 홈페이지) 

    "대학은 직업교육소"

    취임 초기부터 "이제 대학은 직업교육소"이며 "교양은 스스로 쌓아야지 대학에서 왜 해주냐"며 "자본의 논리가 통하지 않는 곳이 없다"는 박용성 이사장의 교육철학은 이제 현실이 되고 있다. 아니 이미 현실이 되었다. 단지 이번 구조조정을 통해 그 현실을 새삼스레 확인하고 있을 뿐이다.

    두산이 중앙대를 인수한 지난 2년 동안 많은 변화가 있었다. 교수는 직원이라는 신분에 걸맞게 연봉제가 도입되었고, 공통교양으로 ‘회계와 사회’가 채택되어 "숫자 좀 아는 중앙대 애들"은 신입사원으로서 면모를 갖춰가고 있으며, <중앙문화>를 비롯한 학내 비판적 여론 길들이기와 구조조정에서 ‘톱-다운’방식의 의사결정, 총장임명제 등은 재벌총수의 제왕적 권력을 닮아가고 있다.

    이제 중앙대가 두산의 계열사인지 대학인지 구분하기 힘들다. "기업의 논리로 대학을 운영하겠다"는 이사장의 엄포는 점차 제2의 건학이념이 되고 있다.

    대학당국은 이와 같은 혁명적(?) 조치를 통해 2018년까지 중앙대를 ‘국내 5대 대학’, ‘세계 100대 명문사학’으로 만들겠다고 공언했다. 꼭 저런 식으로 순위에 들어가야만 좋은 대학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으나, 지금보다는 좋은(?) 대학을 만들겠다는 학교 측의 각오 정도로 생각할 수 있겠다.

    그러나 문제는 ‘좋은’이 지시하는 의미이다. 이사장과 총장을 비롯한 대학당국에게 ‘좋은’은 ‘좋은 직업교육소’를 의미할 뿐이다. 이는 다름 아닌 대학으로서 존재의 의미를 포기하자는 것이다. 실제로 국내 최고 수준의 연구 성과를 내고 있는 독문과는 이번에 통폐합 대상이 되었다. 연구실적이 있건 없건 기초학문은 일단 축소하고 보자는 식이다. 돈이 안되니까.

    "꿈과 잠꼬대는 다르다"

    기초학문의 포기만큼 우려스러운 일은 학내 민주주의의 후퇴이다. 중대생의 게시판 격인 ‘중앙人’에서 학교에 비판적인 글들이 삭제당하고 해당ID가 접속차단 당하는 일까지 일어나고 있다. 지난해 11월 학교의 기업화를 걱정하는 글이 실린 중앙대학교 교지 <중앙문화>가 회수되는 사건도 있었다.

    이에 항의하는 학생들에 대해 박범훈 총장은 "중앙대가 언제부터 이렇게 촌스러웠냐, 왜 이리 변화에 세련되지 못하냐"며 일갈했다. 묻는다. 도대체 누가 촌스러운 복고풍인가? 학교를 비판하는 학생인가, 이를 검열하는 대학당국인가?

    지금이 3공인가, 5공인가? 자기 학교도 제대로 비판하지 못하는 캠퍼스에 무슨 비판적 사고가 길러지며, 이런 분위기에서 어떻게 학문이 발전할 수 있겠는가? 그러면서도 대학발전을 꿈꾸는가? 꿈과 잠꼬대는 다른 것이다.

    지금 중앙대는 취업에 도움되고 돈 잘 버는 실용학문 강화가 대학발전의 전제인 양 오해하고 있다. 그런 입장에서 보면 기초학문은 ‘루저’다. 그러니 기초학문을 일단 통폐합하고 보자는 식의 구조조정을 질러보는 것이다. 원래 기초학문은 시세(時勢)에 편승하기 힘든 학문이다. 오랜 시간 천착되어야 성과가 나타나기 때문이다. 그런 학문에게 앞뒤 다 자르고 이윤의 논리를 들이미는 것은 대단한 무례이다.

    구조조정에 앞장서고 있는 박범훈 총장께 묻는다. 국악을 전공한 총장에게 ‘뭐하러 돈 안되는 국악을 하냐’며, ‘인기 좋고 바로 입금되는 트롯이나 부르라’면 참을 수 있겠는가? 나와 총장님의 학교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 딱 그 모양이다.

    침묵하거나 호응하는 학생 탓도 커

    박용성 이사장은 "대학에서 인성과 교양을 쌓는다는 것은 옛날이야기"라고 했다. 그래, 인성과 교양을 방기하고 회계와 영어만 잘하는 학생을 배출하는 곳이 대학이란 말인가? 그곳에서 만들어지는 것은 기능인이지 대학생이 아니다. 어떤 교수가 그런 학생들을 가르치고 싶겠는가. 자괴감을 느끼지 않겠는가. 그러면서도 연구실적을 높이라는 것은 이율배반이다.

    중앙대학교에 ‘대학(大學)’은 사라지고 있다. 이 지경까지 온 것은 학교를 기업화하려는 대학당국의 책임도 크지만, 이에 저항하기보다 침묵하고 심지어 호응하는 학생들의 탓도 크다. 재단이 바뀔 때 콩고물 좀 주워 먹겠다는 심정으로 많은 학생들이 두산을 환영했다.

    그래도 ‘천원짜리 재단’보다는 대기업이 낫지 않겠냐는 막연한 기대감 같은 것이었다. 도서관이 리모델링되고 기숙사가 신축되고 햄버거 값 좀 내려갔다며 좋아하는 사이에 구조조정이 도둑처럼 다가왔다. 이제 수많은 학우들은 찍소리 한번 못하고 자기의 소속을 잃게 생겼다. 결국 우리는 팥죽 한 그릇에 장자권을 팔아넘기고 만 것이다.

    일부 학생들(제발 일부라고 믿고 싶다)은 구조조정을 통해 학교가 ‘발전’할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 심지어 구조조정에 반대하는 학교 구성원들에게 ‘좌빨학생’이니 ‘운동권교수’니 ‘학과이기주의’니 하며 낙인을 찍어대고 있다.

    학교를 비판하면 죄다 ‘좌빨’이고 ‘운동권’이며 ‘이기주의’인가?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이따위 몰상식을 캠퍼스에서 목도할 줄은 몰랐다. 누구 말대로 언제부터 이렇게 촌스러웠나? 인성과 교양을 포기한 무지한 대학생이라는 자기고백을 저렇게 촌티나게 해야겠는가?

    학교가 발전한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나도 발전을 원한다. 그러나 일부 학생들이 바라는 것처럼 ‘서연고서성한중경외시’ 따위의 사이비 주문(呪文)에서 ‘중’자가 좀 더 앞에 등장하는, 수능점수로 줄 세우자는 그런 발전이 아니다.

    오늘은 중앙대, 내일은 어디?

    ‘발전’이라는 미명 하에 학내 의견을 묵살하고 지금처럼 밀어붙이는 이런 식의 발전은 더더욱 아니다. 자본주의사회의 약자인 기초학문을 배려하면서, 학생들의 의견을 물어가면서 시작하는 그런 발전을 원한다. 그것이 대학다운 대학의 발전이다.

    지금 학교본관 앞에서 구조조정에 맞선 학생들의 외로운 투쟁이 일어나고 있다. "기초학문이 왜 필요하냐"는 무지 앞에, 점수 낮은 ‘패배자 학과’라는 조롱 앞에, "도서관 앞에서는 조용하라"는 무관심 속에서 그들은 더욱 외롭다. 그들에게 관심과 지지를 부탁한다.

    우리 사회에서 많은 대학에 기업의 논리가 엄습하고 있다. 그리고 많은 학생들이 ‘발전’이란 허상에 취해 이를 정당화하고 있다. 단지 중앙대는 그것의 첨단을 보여주고 있을 뿐이다. 오늘은 중앙대지만 내일은 어디가 될지 모른다.

    지금 보수언론들은 중앙대구조조정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아니, 기대하고 환영하고 있다. 자본의 힘이 무소부재(無所不在)함을 드디어 캠퍼스에서까지 보여줄 수 있기 때문이다. 대학마저 자본의 논리에 종속될 때 우리는 다른 눈으로 세상을 바라볼 소중한 계기를 상실하게 될 것이다.

    바야흐로 비극의 탄생이 눈앞에 있다. 그리고 이것은 나만의 비극은 아닐 것이다. 우리가 중앙대 문제에 관심을 가져야할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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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디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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