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얼짱 거지와 체 게바라
    2010년 03월 16일 09:50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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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을 통한 이미지의 소비 양상은 어느 나라나 비슷한 것 같다. 일단 화제 거리가 된 이미지는 주로 젊은 세대에 의해서 순식간에 퍼져나가면서 소비된다. 최근 중국의 ‘얼짱 거지’ 소동이 대표적이다.

이 얼짱 거지는 중국에서 ‘시리거(犀利哥)’란 애칭으로 불리었는데 시리거란 말은 직역하면 ‘날카로운 형님’이 된다. 눈매가 샤프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어느 아마추어 사진 동호인이 찍은 시리거의 사진은 2월 하순경 중국의 인터넷 게시판에 올라오자마자 급속도로 확산되었다.

시리거가 인터넷에서 큰 관심과 인기를 모으게 된 것은 그의 외모와 패션 때문이었다. 시리거는 외모도 그럴듯하거니와 그의 ‘믹스 앤 매치’ 스타일의 패션 감각이 중국의 젊은 네티즌들을 사로잡았다. "유명 영화배우 뺨칠 만큼 멋있다" "거지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뜨렸다" "모델을 해도 될 만큼 잘 생겼다"는 말이 그를 따라다녔다.

   
  ▲ 처음 유포된 담배 피우는 시리거(왼쪽), 잡지 표지에 실린 시리거

   
  ▲ ‘믹스 앤 매치’ 패션 스타일 얼짱 거지로 소개된 시리거

소문이 퍼지면서 시리거는 인터넷은 물론이고 신문과 잡지의 모델 및 기사거리로 등장하면서 중국 전역에서 화제 인물이 된다. 이어서 시리거의 이미지와 이에 덧붙여진 내러티브는 대만, 싱가포르, 일본, 한국 등에서도 확산, 소비되고 급기야는 3월 초에 영국 신문 <인디펜던트>에까지 등장했다.

   
  ▲ 영국 <인디펜던트>지 기사에 실린 시리거

시리거는 동아시아의 국제적인 배우 금성무와 닮았다고 말해지기도 했고, 특히 일본에서는 미남 배우 미즈시마 히로(水嶋ヒロ)와 비교되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담배 피우는 모습의 시리거 이미지는 포토샵에 의해서 패션 모델 등으로 합성되거나 패러디되어 다양하게 소비되었다.

   
  ▲ 시리거와 닮은 인물 – 금성무(왼편)

   
  ▲ 시리거 패션 모델 패러디 사진(왼쪽), 시리거와 닮은 인물 – 마즈시마 히로

그러는 동안에 중국 인터넷에서는 시리거에 대한 ‘인육수색(人肉搜索)’이 진행되었다. 인육수색이라는 중국의 신조 유행어는 특정인과 관련된 사진 이미지나 동영상, 각종 신상 명세에 관한 정보 등이 인터넷에서 무차별적으로 검색되고 공개되는 것을 말한다. 다른 나라에서도 그러하듯이, 인육수색은 사이버 폭력이나 사생활 침해를 동반하는 경우가 많다.

   
  ▲ 11년 전의 시리거

시리거의 본명, 생년월일, 고향, 가족관계 등이 낱낱이 밝혀진 것은 물론이고, 1997년에 입대한 그가 1998년의 중국 대홍수 때에 재난 구호에 파견되었으며 그의 부대가 표창을 받은 바가 있다는 사실도 알려지게 되었다.

   
  ▲ 재난 구호 부대 시절 시리거

결국 시리거는 3월 초 중국 절강성 영파시의 구호단체에 의해서 정신병원에서 치료를 받게 되었고 마침내 가족과 재회했다. 10년 전에 고향 집을 나갈 때 시리거는 이미 두 아이를 둔 아버지였으며, 그의 아내는 불행하게도 교통사고로 죽어서 아이들은 할머니와 삼촌이 키우고 있었다는 것이다. 시리거는 가출 당시에 이미 정신병을 약하게 앓고 있었지만 집안 형편 때문에 돈 벌러 나간 뒤에 연락이 끊기게 되었다고 한다.

   
  ▲ 어머니와 함께 있는 시리거

시리거가 정신병원에서 가족과 상봉하는 장면의 사진 이미지와 동영상도 인터넷을 통해 유포되었다. 이 과정에서 많은 중국의 네티즌은 실망과 환멸에 빠지게 되었다. 병원에 입원한 시리거의 쌩얼 이미지는 최초의 얼짱 이미지와는 너무 거리가 먼 것이었기 때문이다.

   
  ▲ 시리거 ‘쌩얼’

‘인육수색’ 도중 시리거는 상당한 정신적 고통을 입었다. 카메라를 들고 그를 찾아서 쫓아다니는 많은 사람들 때문에 대인기피증을 앓게 된 것이다. 또한 이 과정에서, 바지 위에 여성 드레스를 겹쳐 입은 그의 다른 사진 이미지도 공개되었는데, 이 이미지는 그의 성 정체성을 둘러싼 근거 없는 이야기들을 인터넷상에서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 ‘인육수색’에 시달리던 시리거(왼쪽), 여성복 차림의 시리거

중국 얼짱 거지 소동의 마지막 에피소드는 중국의 어떤 사업가가 시리거를 캐릭터 상품으로 만들기 위해서 상표 등록을 중국 정부에 청원했다는 것이다. 이 상표 등록에 사용될 이미지는 담배 피우는 시리거의 이미지를 흑백 톤으로 거칠게 처리해놓은 것이다. 이 이미지를 본 중국의 네티즌들은 시리거가 체 게바라를 닮았다고 논평했다.

   
  ▲ 상표 등록된 시리거

오늘날 한국의 젊은 네티즌들이 종종 ‘훈남’이라고 표현하는 체 게바라는 1967년 10월 7일에 체포되어 10월 9일에 처형되었다. 게바라의 체포 과정에는 미국 CIA 요원이 배후에서 자문을 맡았고 도살자라는 별명을 가진 나치 출신의 전쟁 범죄자도 참여했다고 한다.

   
  ▲ 처형된 체 게바라의 시신

CIA가 게바라의 시신 사진을 처형된 다음날 공개한 것은 남미에서의 혁명 열기를 잠재우기 위한 것이라고 오늘날 해석되고 있다. 이미지의 역사라는 점에서 게바라의 시신 사진은 르네상스 화가 안드레아 만테냐의 유화 <죽은 그리스도>와 곧잘 비교된다.

   
  ▲ 만테냐의 유화 <죽은 그리스도>

얼짱 거지 소동은 중국 정부로서는 빨리 처리해야 할 사안이었을 것이다. 오늘날 중국 사회의 큰 문제 중의 하나가 ‘농민공’ 문제다. 농민공이란 농촌에 호적을 가지고 있지만 대도시에 와서 노동을 하는 약 2억 명에 달하는 이주민을 가리킨다. 중국 경제는 저임금을 이용한 수출품 생산을 통해 고속 성장을 이끌어 왔는데, 중국 연해 지역 대도시의 수출품 제조 공장의 노동력은 주로 농민공에 의해서 충원되어 왔다.

시리거의 호적이 농민공인지는 알 수 없지만, 아무튼 시리거 소동은 바로 이 농민공 문제 및 대도시 빈곤 문제와 맞닿아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가족의 품으로 돌아갈 시리거가 앞으로 과연 행복하게 잘 살 수 있을지에 관해서는 어느 누구도 쉽게 장담할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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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디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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