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직-정치노선, 전면적 재검토 필요
        2010년 03월 15일 08:08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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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한국노동운동연구소가 펴낸 <노동의 지평> 최근호에 실린 것으로, 필자는 노동운동의 현재 상황이 과거와 달리 국면적 위기가 아니라 구조적 위기이며, 외생적 위기가 아나리 주체의 위기라고 강조한다. 필자는 이 같은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 ‘발본적’ 변화의 필요성을 이야기 하고 있다.

    민주노총 위상의 재정립, 민주노조의 조직과 정치 노선 그리고 사회연대 노선에 대한 전면적 재검토와 재설계 그리고 정파문제에 대한 비판적 검토 등 노동운동 전반에 대한 성찰과 대안적 의견을 제시하고 있다. <레디앙>은 저자의 동의를 얻어 전문을 몇 차례 나눠어 싣는다. <편집자 주>

    1. 현재의 노동위기의 성격

    한국 노동운동의 위기에 대한 논란이 거듭되고 있다. 노동운동 위기론은 전노협이 심각한 조직위기를 겪고 있었던 1992년 무렵에도 있었고, IMF 경제위기 상황에서도 있었다. 그러나 지금의 위기론은 과거의 위기론과는 성격을 달리한다.

    1992년 무렵의 위기는 국가권력의 강력한 탄압이 그 핵심적인 원인이었고, IMF 상황에서의 위기는 총자본의 위기가 총노동으로 전가되면서 진행된 노동시장의 급격한 전환이 핵심적 원인이었다.

    말하자면, 이 두 위기는 노동운동 주체의 위기는 아니었다. 그러나 현재의 위기는 외부적 조건과 더불어서 노동운동 주체 내부의 요인들에서 핵심적으로 기인하고 있다는 점에서 앞의 경우들과는 성격을 달리한다.

    노동시장과 노동운동 조직의 괴리

    현재의 위기에는 노동운동의 구조적 모순이 짙게 반영되어 있다. 이 구조적 모순의 핵심은 노동시장과 노동운동 조직의 괴리이다. 한국의 노동시장은 주요 산업국가 중 가장 심하게 분절되어 있다. 이 분절화는 멀리는 민주노조운동이 새롭게 태생하였던 1980년대 중반 이래 진행된 것이고, IMF 경제위기 이후 진행된 노동시장 유연화가 이를 심각하게 고착화시켰다.

    한국의 노조조직, 특히 민주노총의 조직은 분절적 노동시장에서 소위 중핵부분이라 할 수 있는 공공부문과 민간대기업 중심으로 편재되어 있다. 중소 및 영세기업, 여성, 청년층, 이주노동자, 영세자영노동자층 등에 분포된 주변노동자층의 대부분이 미조직 부문이다. 지난 10여년 사이 노동문제의 핵심으로 부상한 비정규직 문제는 바로 이를 반영한다.

    또한 현재의 위기의 배경에는 지난 20여년 동안 진행된 민주노조운동의 전략적 과제를 위한 실천의 성과와 한계가 동시에 자리잡고 있다. 조직적 과제로서의 산별노조 건설운동의 성과와 한계, 그리고 정치적 과제로 추진되었던 합법적 노동자 정당 건설운동의 성과와 한계가 그것이다. 따라서 노동운동의 위기 극복을 위해서는 이 두 핵심적인 조직적, 정치적 전략 과제의 전면적인 재검토와 재설계가 요구되는 상황이다.

    주체 요인은 크게 둘로 나뉜다. 하나는 노동운동의 리더십 문제이다. 지난 20여년 동안 한국의 민주노조운동을 견인해온 리더십은 개인적, 조직적 수준 모두에서 그 한계를 노정하고 있고, 리더십의 재생산 역시 한계에 직면해있다.

    다른 하나는 의식적, 이데올로기적 문제이다. 조직부문 노동자들의 계급의식이 크게 후퇴하여 보수적, 실리적, 경제주의적 의식이 확산되고 진보(변혁)적, 투쟁적, 연대적 계급의식은 매우 약화되어 있다.

    리더십과 이데올로기

    한국의 노동운동은 앞의 두 번의 위기를 거치면서 노동운동의 양적, 질적 성장과 발전을 통해 그것을 극복해 나갔다. 1992년 무렵의 위기는 한국의 노동운동이 민주노조 총단결 조직으로서의 민주노총 건설을 성공적으로 마무리 지은 배경이 되었다.

    이를 기반으로 한국의 노동운동은 1996~97년의 총파업을 전개하여 한국 노동운동의 위상을 크게 강화할 수 있었다. IMF 경제위기를 계기로 주어진 노동의 위기를 경과하면서 한국의 노동운동은 산별노조 건설과 정치세력화의 길을 본격적으로 추진했다.

    민주노조 조직은 이미 대부분 적어도 형식적으로는 산별노조로 거의 전환되었거나 전환을 추진하고 있다. 민주노총은 2000년의 민주노동당 창당의 주역이 되었고, 2004년과 2006년 선거에서의 큰 성과를 기반으로 성공적으로 제도 정치권의 높은 벽을 허물었다.

    그러나 산별노조 건설운동은 금속노조의 지역지부 재편의 지체, 공공연맹의 통합산별 건설의 좌초 위기에서 보듯이 난관에 처해 있고, 정치세력화 역시 민주노동당의 분당 등으로 난관에 처해 있다.

    이에 더하여 사업장 복수노조제가 교섭권에 대한 극심한 제한을 수반하는 내용으로 입법화되고 전임자 임금지급 금지도 실제 상황이 되었다. 길게 보면 13년, 2006년 금속산별의 조직전환 완료 시점에서 보면 4년여의 시간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산별노조 건설을 통해 노동체제 전환의 국면에 공세적으로 대응한다는 전략의 차질로 인하여 노동진영은 심각한 수세적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소위 ‘1987년 노동체제’ 하에서 노동통제, 노동시장, 노동운동의 세 영역 모두에서 진행된 변화가 그 최종적 제도화의 단계에 접어들었다. ‘1987년 노동체제’가 그 긴 과도기를 마감하고 어떤 성격의 노동체제로 제도화될 것인가가 앞으로 2년여 정도의 기간 동안에 결정될 것이다.

    일본형 노사협조 체제와 북유럽형 노동체제

    총자본이 추구하는 방향은 대략 일본형의 기업코포라티즘(enterprise corporatism) 노동체제라고 규정할 수 있다. 반면에 한국의 민주노조 진영은 그동안 대체로 산별노조-계급정당을 양 날개로 하여 복지주의적 경제사회정책을 추진하는 서구(북유럽)형의 노동체제를 지향해왔다고 볼 수 있다.

    노동운동 내에는 그 외에도 다양한 흐름들이 존재한다. 한편으로는 노사협조주의적인 실리주의적 지향이 전보다 강화되고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전통적인 변혁주의 노선을 고수 내지 강화하려는 지향 역시 존재한다.

    당과 노조 등을 자체의 존재 의의를 지니는 전략단위로 설정하지 않고, 민족주의적 운동 전체에 복무하는 하부 전술단위로 설정하는 운동 경향이 노동운동에서 커다란 영향을 미치고 있기도 하다. 그 정치적 지향과는 무관하게 노조운동 차원에서는 생디칼리즘적인 전투적 투쟁노선만을 고수하는 운동 경향도 강하게 존재한다.

    정치적 지향이나 정파 노선만으로 설명되기 힘든 이런 다양한 경향들이 복합적으로 어우러져 노동정세의 변화에 따른 이런저런 계기들과 투쟁들, 선거나 그리고 특히 노동조직 내의 다양한 의사결정 과정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경향들이 노동운동의 내부 에너지를 모으고 강화하는 정합성을 잃고 역으로 지나치게 노동운동의 에너지를 내부적으로 소진시키고 있으며, 특히 노동운동의 간부/활동가/지도부와 현장의 노동자 대중과의 간극을 넓혀 놓고 있다는 비판적 평가가 계속되고 있었다.

    지금의 위기론은 새삼스러운 것이 아니다. 길게 보면 이미 10년 전인 2000년 무렵부터 위기의 징후는 짙게 감지되었고 이에 대한 대응 전략의 모색이 다양하게 있었으며, 나름대로 실천의 노력이 진행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성과가 미미하거나 지연됨으로 인해 위기는 계속 심화되었다.

    따라서 지금은 전과 달리 이 위기를 넘어서서 노동운동의 새로운 성장과 발전을 도모할 출구를 찾기 힘든 매우 답답한 상황이다. 요컨대 지금의 노동의 위기는 더 이상 국면적 위기가 아니라 구조적 위기이다.

    여기에서 이 모든 문제를 총괄적으로 검토할 수는 없다. 논의의 편의를 위하여 논의 주제를 임의적으로 분류하여 노동운동의 조직노선의 문제, 정치노선의 문제, 사회(연대)노선의 문제로 나누어 살펴보기로 한다. 마지막으로 노동운동 내 정파의 문제에 대해 간단히 언급하며 마무리하려 한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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