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독재 국가가 아니라고?"
    2010년 03월 12일 05:04 오후

Print Friendly

지금 중국에서는 전국인민대표자회의(전인대)가 한참이다. 중국 정부는 늘 하던 대로 억울한 사연을 청원하려고 베이징 시내에 와 있던 딱한 처지의 사람들을 잡아 어디론가 보냈다. 지난해부터 잡혀간 이른바 반체제 인사들은 수감된 것으로 밝혀졌다. 그들의 죄는 언론•결사 등 너무나 기초적인 민주적 권리를 요구한 것이다.

이것이 현 중국 정부가 내세우는 ‘조화로운 사회’의 실제 모습 ― 민주적 권리를 허용하지 않는 일당 독재 국가 ― 이다. 진보적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라면 당연히 이런 국가 체제에 반대해야 한다. 그런데, 불행히도 다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최근 <레디앙>에 실린 김정호 씨의 글은 나를 콕 집어서 “매우 짙은 색안경을 끼고 중국을 바라보고 있는 것 같다”고 말한다. 내가 중국을 보면서 “박정희나 전두환과 같은 군사독재정권을 연상”하는 오류를 저질렀다고 말이다.

그는 몇 가지 근거를 들어 그것이 잘못된 생각이라 주장한다.
첫째, 중국에서 “거대한 민주화와 계급투쟁이 폭발하지 않고” 있다고 말한다. “계급투쟁은 억압 받는 속에서 더욱 격하게 솟구치게 마련이며, 위정자들이 억누른다고 해서 쉽게 수그러드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중국이 억압적 체제라면, 그런 투쟁이 이미 발생했어야 마땅하다는 것이다. “[중국 내 투쟁 발생 건수를] 2.8억 명에 달하는 도시 노동자의 전체 수치에 대비해서 보면, 생각보다 그리 비중이 높지 않음을 알 수 있다”고도 말한다.

둘째는 첫째와 연관된 것인데, “중국 사회주의 노동관계법상, 대부분의 노동쟁의는 공인된 사회단체의 중재에 의한 화해나 법원의 중재판결과 같은 방식으로 처리되는데 … 법적인 중재결과가 전반적으로 노동자들에게 유리하게 나오는 상황이기에, 노동자들은 파업이 아니고서도 어느 정도 자신의 권익을 보장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최근 개정 신노동법의 내용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중국 정부의 계급적 성향”을 보여 준다는 것이다.

셋째, 중국 공산당은 당원이 7천만 명이라 독재이기엔 너무 크다고 말한다. “공산당원의 가족이 평균 3인이라 치면, 7천6백만 명 x 3=6억 8천4백만 명이 된다. 무릇 독재를 행하는 목적은 피독재자를 억압해서 무언가의 이득을 취하려고 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렇듯 가장 기본적인 이해 당사자들을 독재 주체에 포함시키는 것이 옳다고 본다 … 이것을 우리는 독재라고 부를 수 있을까? 민주주의를 시행한다는 우리나라에서도, 국민들의 가장 중요한 정치적 결정의 하나인 대통령 선거를 놓고 볼 때, 대부분의 경우 유권자의 절반도 안 되는 40퍼센트남짓의 1천만 표를 얻은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곤 한다.”

동시에, 만약 중국이 독재라면 “공산당 독재의 현실을 가장 절실하게 느끼는 세력”은 “신흥 자본가 계급”일 텐데, “그들일지라도 이미 일찍이 공민으로서의 투표권은 인정받았을 뿐만 아니라, 지난 강택민 주석 시기에는 ‘3개 대표론’을 통해 출신성분과 상관없이 그들에게도 공산당에 가입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했다는 것이다.

그럼 왜 공산당 같은 초대형 정당이 정치 영역을 독점하고 있을까? 김정호 씨의 대답은 이렇다. “국가가 소멸로 향하기 위해서는 먼저 권력을 놓고 투쟁을 벌이는 정당 수가 줄어들어야 하고, 결국은 모든 국민이 정파 구분없이 하나로 통일되는 방향으로 가는 것이 자연스러운 논리적 귀결이 아니겠는가?”

60년 장기 집권

중국 국가가 소멸하는 과정에 있다는 마지막 주장은 굳이 길게 논평할 이유가 없다. 김정호 씨 자신이 서두에서 밝혔듯이 중국은 국가 소멸 단계를 밟기는커녕 “공산당이 60년간이나 장기집권하고 있”다. 60년간 장기 집권하며 억압과 통제를 강화해 온 국가가 ‘소멸’되고 있다고 볼 수는 없다.

좀더 진지한 주장들에 관해 말하자면, 일단 나는 중국 일당독재가 “박정희나 전두환과 같은 군사독재정권”과 같다고 보지는 않는다. 후자는 소수의 군사 쿠데타를 통해서 집권한 세력이고, 전자는 대중의 지지를 받은 민족해방 혁명을 통해서 집권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렇게 출발점은 달랐어도 종착점은 점점 비슷해졌다.

이것은 중국만이 아니라 제2차세계대전 이후 등장한 민족해방 정권들 가운데 일부가 밟아 온 길이기도 하다. 대표적인 것이 이집트다. 오늘날 많은 노동자와 언론인을 고문하는 이집트 군사 독재를 보면서 누가 현 대통령 무바라크가 1956년 대중의 열광적 지지를 받으며 집권한 나세르와 청년 장교들의 후계자란 점을 떠올릴 수 있을까?

그런 변화가 발생한 핵심은 이들 민족해방 운동 지도부 세력이 자본주의 세계 체제의 경쟁 압력 ― 군사적•경제적 경쟁 압력 ― 에 동일한 경쟁 방식으로 대응하기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국내 시장을 폐쇄한 채 군사적 경쟁을 주로 벌였고, 1970년대 들어서는 경제적 경쟁에 대응해 국내 경제도 개방한 것이다. 그들은 주요 군사적•경제적 경쟁자들에 비해 출발점이 열등했기에 노동자와 농민을 극단적으로 쥐어짜야 했다. 두 나라 모두 저임금 체제고 대단히 억압적인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김정호 씨가 중국이 독재 국가가 아니라며 제시한 세 가지 증거는 솔직히 별로 설득력이 없다.
먼저, 중국에서 “거대한 민주화와 계급투쟁이 폭발하지 않았다”는 주장은 상당히 이상하다. 일단 ‘거대한’이란 형용사가 정확히 무엇을 생각한 것인지 궁금하다. 최근 벌어진 투쟁 중 몇몇은 규모가 상당히 크기 때문이다. 예컨대, 지난해 7월 민영화에 반대하는 퉁화 철강 노동자 투쟁은 그곳에서 일하는 노동자 3만 명이 대부분 참가했다.

만약 김정호 씨가 한국의 1987년 대투쟁처럼 당대 정치 체제와 경제 발전 방식에 근본적으로 도전하는 사건을 생각한 것이라면, 중국에도 그런 사건은 없지 않았다.

예컨대, 1989년 공산당 일당 독재 체제를 뒤흔든 톈안먼 항쟁이나 2000년대 초반 무자비한 공장 폐쇄와 구조조정에 맞서 중국 동북지역에서 노동자 수만 명이 몇 달이나 투쟁을 벌인 것이 대표적이다.(톈안먼 항쟁 20주년이 불과 몇 달 전인데, 김정호 씨가 벌써 잊지 않았기를 바란다.) 문제는 그런 투쟁이 없었던 것이 아니라 이런 투쟁이 대중의 광범한 지지를 받았지만 패배했다는 것이고, 왜 패배했는지 평가하고 정치적 교훈을 얻는 것이 중요하다.

계급적 성향

김정호 씨는 전체 노동자 인구와 시위 참가자 수의 비율을 증거로 드는데, 이런 비교가 독재인지 아닌지 판정하는 근거가 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예컨대, 오늘날 중국 투쟁의 횟수와 규모는 폭발적으로 증가해 2008년에 18만 건에 이르렀다는 보도도 있다. 이것은 그 자체로 대단한 숫자다. 김정호 씨 기준에 따르더라도, 한국의 1987년 노동자 대투쟁기보다는 낮지만 1960~70년대 박정희 시대보다는 훨씬 높다.(1960년대 노동쟁의는 보통 1백여 건 안팎이었다.) 그렇다고 박정희 시대를 독재가 아니었다고 말할 수는 없지 않은가?

또, 중재 제도나 신노동법이 일종의 양보 정책이란 점은 부인할 생각이 없다. 해마다 10만 건 넘게 대중투쟁이 발생하는데, 모종의 양보가 필요하지 않겠는가? 이건 독재건 아니건 모든 자본주의 국가의 공통된 성격이다. 서구 복지제도도 그래서 나타난 것 아닌가? 그런데, 그것이 계급적 성향을 보여 준다는 것은 논리의 비약이다. 1987년 노동자 대투쟁의 성과로 노동법의 일부 개선이 있었다고 해서, 노태우 정권이 친노동계급적 성향이었다고 할 수는 없지 않은가.

더구나, 이런 제도 자체의 한계를 봐야 한다. <차이나 레이버 불리틴> 등 중국 노동자 지원 단체들이 반복해서 지적하듯이, 중국 노동자들이 몇 달에서 길게는 1년 이상 걸리는 재판에 호소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 임금 체불과 열악한 노동 조건으로 가장 심각한 고통을 받으며 거주권이 없어 이등 시민 취급을 받는 농민공(이농 노동자 집단)은 더 그렇다. 따라서 재판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경우는 전체 노동자 중 극소수에 불과하다.

다른 한편, “노동자에게 유리한 판결”이 있음에도 중국 사회의 반노동자적 현실은 전혀 변하지 않았다. 이유는 간단하다. 설사 재판소가 일부 농민공의 밀린 임금을 받아 줄지라도 저임금 체제는 그대로 남고, 경제에서 임금몫이 줄고 이윤몫이 커지는 경향도 바뀌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절차적 양보가 강화된 후진타오 체제에 들어서 그런 경향은 더 강화됐다.(<그림 1과 2>).

   
  ▲ 출처=중국통계연감

   
  

이것을 보면 중국 정부의 진정한 계급적 성향이 무엇인지 명백히 드러난다. 바로 이런 점 때문에 김정호 씨의 주장과는 완전 다른 이유에서 “신흥 자본가계급”이 공산당 독재의 현실에 전혀 불만을 품지 않는 것이다. 실제로, 1990년대 말 이후 여러 차례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이들 가운데 다수가 공산당 일당 통치에 찬성한다.

중국 내 상황이 이렇게 극단적으로 자본주의적 성격을 띠는 이유는 중국 공산당 정부가 노동자와 민중이 자기 몫을 요구하며 싸울 때 필요한 독립적 조직 ― 노동조합, 학생회, 농민회, 정당 등 ― 의 결성을 허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바로 노동자•대중의 기본적 언론•결사의 자유를 허용하지 않는 점이 바로 중국이 여전히 독재 국가인 가장 중요한 이유다. 김정호 씨는 이 점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

중화전국총공회가 있지 않으냐고? 하지만 중화전국총공회는 결코 독립노조라고 볼 수 없다. 중국 노동자 투쟁을 다룬 다양한 사례 연구들을 읽어 보면 총공회는 정부의 통제를 받는 어용노조라는 것을 분명히 알 수 있다. 그들은 노동자들의 이익을 대변하기보다는 정부와 기업의 정책을 전달하는 벨트 구실을 한다.

반독재 저항

마지막으로, 중국 공산당 당원 수와 그 일가친척•지인들의 수를 더한 후 공산당이 독재가 아니라 하는 것은 전혀 진지한 주장으로 보이지 않는다. 김정호 씨는 가장 기본적인 질문을 먼저 던졌어야 마땅하다. 중국 공산당이 오늘날 집권하는 것은 민주적 선거를 통해서인가, 아니면 정치권력을 독점하고 있기 때문인가?

보통선거를 한 적이 없으니 답은 후자가 될 수밖에 없다. 나머지 답은 자연스럽게 나온다. 역사상 강력한 독재 국가들은 자신의 정치권력 독점이 대중적 지지를 받는다는 점을 과시하려고 방대한 집권 정당과 외곽 조직을 운영하고 온갖 ‘대회’에 대중을 동원해 왔다.

나는 전두환 시절 국민학교를 다니면서 당시 정권이 만든 청년 조직 아람단에 속했고 금강산 댐 규탄 대회를 포함해 온갖 규탄 대회에 나갔다. 우리 집에서 반상회를 한 적도 있다. 당시 이런 일에 한 번도 참가 안 한 사람이 없을 것이다. 아람단과 반상회에서 독재 정권이 바라는 의제가 아니라 한국 사회의 민주화를 논의했을까? 전혀 아니다. 그러나 나와 내 가족을 “독재 주체”에 포함시키지는 말아 달라.

나는 중국 공산당 독재 정권을 지지하는 사람이 전혀 없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김정호 씨 같은 열성 지지자들은 더 있을 것이다). 앞서 말했듯 중국 자본가들은 공산당 독재를 지지한다. 상당수의 중간계급도 ‘안정’을 선호하는 의미에서 수동적으로 지지하는 듯 보인다.

그러나 이전 독재 정권의 역사가 보여 주는 것은, 제 아무리 강력해 보이는 독재 정권도 결국에는 한계에 도달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더구나 지속불가능한 엄청난 저임금과 고축적 체제를 정당화하고 유지하는 독재 체제라면 더 그렇다.

김정호 씨와 달리 중국 공산당 지배자들은 자신의 위치를 낙관적으로 보지 않는다.
이번 전인대에서도 원자바오는 중국 모델을 바꿔야 한다고 거듭 말했다. 그가 이 말을 2000년대 중반 이후로 되풀이해 왔고, 그럼에도 큰 변화가 없다는 것은 중국 독재 체제가 중국식 자본주의의 모순을 극복하는 데 큰 한계가 있음을 보여 주는 것이다. 투쟁 건수가 꾸준히 증가한 것은 그것의 반영이기도 하다. 게다가, 지금은 세계 자본주의가 1930년대 이후 최악의 불황을 겪고 있고 중국 정부는 엄청난 거품과 과잉투자로 간신히 불황을 피하고 있지 않은가?

그래서 중국 정부는 김정호 씨가 말한 양보책을 취하면서도 일당 체제를 유지하겠다는 입장을 거듭 확인했고 때때로 무력을 사용해 대중투쟁을 진압하는 것도 주저하지 않았다. 심지어 2009년 3월에 중국군 고위 관계자는 군대가 국내 소요에 대비하는 것을 중요한 목표로 삼아야 한다고 발표할 정도로 대중의 저항을 두려워한다.

내가 중국 공산당을 독재 체제라 부르고 그에 반대하는 것은 김정호 씨가 암시하듯 중국 사회를 잘 알지도 못하면서 “선입견”을 가지고 있거나 “색안경”을 껴서가 아니라 중국 공산당 지배자가 두려워하는 그 대중투쟁이 승리하고 진정한 민주화와 공정한 경제 체제를 쟁취하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내가 우려하는 것은 김정호 씨 같은 사람이 그런 투쟁에 반대하는 입장을 취하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필자소개
레디앙
레디앙 편집국입니다. 기사제보 및 문의사항은 webmaster@redian.org 로 보내주십시오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