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임금 노동자 매달 34만원 적자
By 나난
    2010년 03월 11일 03:34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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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9월 월세 보증금이 없어 500만 원을 빌렸어요. 그리고 12월, 수술을 위해 필요한 검사를 받기 위해 200만 원을 또 빌렸지요. 은행에 매달 20만 원씩 갚겠다며 대출을 요구했지만 신용불량자란 이유로 거절당했습니다. 지하철 청소는 물론 시장에서 ‘자전거 아줌마’라 불리며 각종 배달을 도맡아 해주고 적게는 몇 천 원에서부터 많게는 몇 만 원까지 받아 보조수입을 올려도 늘 마이너스예요.”

저임금 청소노동자 박연자(61)씨는 화장실도 없는 4.5평짜리 방에 살고 있다. 흔히 말하는 쪽방이다. 한 푼이라도 더 벌기위해 남들이 모두 잠든 새벽, 지하철 청소를 한다. 하지만 그렇게 번 돈은 100만 원도 채 안 된다. 이에 박 씨는 자전거를 통해 각종 배달은 물론 계단 청소, 이사 집 청소 등으로 투잡을 뛰고 있다.

매달 34만원 만성적자

그럼에도 불구하고 통장은 언제나 마이너스다. 지난 2007년 지하철 청소를 하다 전기 감전으로 팔이 절단돼 두 차례의 접합수술을 받았다. 노동조합의 도움으로 어렵게 산재판정을 받았지만 그마저도 지난달 종료됐다. 그는 3차 접합 수술을 기다리고 있다. 지난 두 차례에 걸친 수술로 인해 친인척들에게 빌린 돈도 아직 채 갚지 못한 상태다.

민주노총(위원장 김영훈)이 저임금 노동자 14명의 가계부를 분석한 결과 매달 34만 원가량의 만성적자가 발생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은 적자를 메우기 위해 매달 20만 원 가량을 차입해 생활하고 있다.

민주노총은 지난 12월과 1월 두 달간 서울, 대구, 인천, 경남, 울산, 대전, 충북, 충남, 광주 등 전국 9개 지역 저임금 노동자 14명에게 가계부 작성을 의뢰했다. 저임금 노동자들의 가계부 작성을 통한 생활임금 분석은 이번이 처음이다.

가계부 작성 대상자 중 9명이 단신소득가구였으며, 4명이 복수소득가구, 나머지 1명이 보조수입은 있으나 채 50만 원도 안 되는 사실상 단신가구에 속한다. 조사 대상자는 49~72세의 전형적인 근로빈곤층이다.

   
  ▲ 민주노총이 11일 저임금 노동자 14명의 가계부를 공개하며 최저임금의 문제점을 지적했다.(사진=이명익 기자 / 노동과세계)

민주노총이 11일 공개한 14명의 저임금 노동자 가계부 분석에 따르면 이들은 한 달에 129만 원의 근로소득을 얻는 반면 163만 원의 지출이 발생해 매달 34만 원의 적자를 보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들은 적자를 메우기 위해 매달 20만 원가량을 은행이나 친지 등을 통해 차입해 생활하고 있다. 

지난 2월 통계청이 발표한 ‘2009년 4/4분기 및 연간 가계동향’에 나타난 월 소득 하위 1분위의 매달 적자액은 33만5천 원으로, 2분위 가구에만 도달해도 월 12만6천 원가량의 가계흑자를 기록하고 있다. 하지만 모두 임금 노동자로 구성된 가계부 조사 대상자 중 일부는 투 잡(two job)을 하고 있음에도 소득 1분위보다 많은 적자를 보유하고 있다.

13년간 지속된 유명무실 복지정책

민주노총은 “정부가 구제금융 이후 지난 13년간 ‘생산적 복지’란 이름으로 꾸준히 펼쳐온 저소득층 지원정책이 유명무실했음을 반증한다”며 “단순히 일자리의 양적 확대만을 염두에 둔 ‘싸구려 일자리 대거창출’ 중심의 고용정책 기조를 근본적으로 수정해 ‘저임금 노동자 일자리 질 향상’을 정책목표의 최우선으로 삼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번 조사에서 주목할 점은 항목별 비율로, 소비지출의 항목별 1~4위는 의식주 순으로 나타났다. 의식주는 전체 지출의 67.3%를 차지했으며, 통계청의 일반가구의 주거비용이 10.5%를 차지한 데 반해 저임금 노동자 가구에서는 27.7%를 나타냈다. 3배 가까운 비율이다. 아울러 부채상환 비율이 12.51%로 대부분 주거비용으로 인한 차입에 따른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같은 결과는 주택 소유에 대한 사회적 비용이 많지 않은 데다, 저임금 노동자의 대부분이 전월세 비용을 감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박연자 씨는 최근 보증금 100만 원에 월세 10만 원의 단칸방에서 생활하다 주인의 보증금 1,000만 원의 전세계약 요구에 어쩔 수 없이 보증금 500만 원에 월세 15만 원인 곳으로 이사를 했다. 새 집의 보증금 500만 원 역시 차입을 통해 마련한 돈이다.

   
  ▲ 박연자(61세) 씨는 집 주인의 1,000만 원 전세계약 요구에 어쩔 수 없이 500만원의 차입을 통해 월 15만 원의 월세방으로 이사를 했다. (사진=이명익 기자 / 노동과세계)

이외에도 보건위생비나 문화생활비, 교통비 지출에서도 저임금 노동자들의 생활실태가 드러났다. 보건위생비의 비율이 일반 가구에서 5.1%에 불과한데 반해 저임금 노동자 가구에서는 2배 이상 높은 11.9%가 지출된 것. 저임금 노동자의 대부분이 고령의 노동자인 특성이 반영된 것.

의식주 67.3%, 주거비 27.7%, 효도비 5.87%

문화생활비의 경우 전체 소득의 0.8%로 일반가구의 3.7%보다 2.9%나 낮았다. 사실상 신문구독이나 종교행사 외에는 별다른 문화생활이 없는 셈이다. 교통비의 경우 일반가구가 11%를 차지하는 데 반해 저임금 가구에서는 4.5%로, 외출 빈도가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부분이 출퇴근 외에는 교통비를 지출하지 않고 있으며, 이례적으로 교통비가 많이 지출된 가정의 경우 병원 방문을 위한 지출이 상당부분 차지했다. 한 조사대상자의 경우 가계부 작성 두 달간 중환 중인 남편의 의료비만 654,300원이 들었다. 병원과 집의 거리가 멀어 어쩔 수 없이 타야하는 택시비만 매번 16,000~18,000원이며, 일주일에 두 번 통원치료를 위해 택시를 이용했다.

특이한 사항은 효도비가 5.87%로 지출항목 순위 6위를 차지한 것. 가계부 작성 대상자 대부분이 고령의 여성 노동자임을 볼 때 이례적인 수치다. 자료에 따르면 60대의 고령 저임금 가구임에도 부모를 부양(효도비)하거나 손․자녀에게 용돈을 주는(역효도비) 경우가 상당부분 차지하고 있다.

가계부 작성 대상자 중 한 명인 56세의 저임금 노동자는 부모와 손․자녀에게 매달 각각 30만 원과 2~3만 원의 용돈을 지출하고 있다. 특히나 저임금 노동자임에도 불구하고 연령적 특성상 각종 경조사비 지출 역시 다른 계층에 비해 높게 나타났다.

시장물가 지역차이 없어

이정호 민주노총 정책국장은 “법적으로는 단신가구가 아니지만 각종 여건상 사실상 단신가구나 마찬가지인 저임금 가구의 가계수지가 매우 열악한 것으로 나타났다”며 “최저임금 결정에 주요근거로 사용하는 ‘29세 미만의 미혼 단신노동자’의 생계비 모델을 재검토해야 한다”며 ‘전 연령대의 미혼 단신노동자’의 생계비 모델 검토를 제안했다.

특히 이번 조사결과를 통해 최근 정부가 추진 중인 지역별․산업별 최저임금 차별적용에 대한 부정적 견해가 드러났다. 가계부 분석 자료에 따르면 서울, 청주, 광주의 시장에서 두부 한 모 값이 모두 1500원으로 동일했다. 감기약도 3,000원으로 전국이 같았다.

목욕비, 교통비 등 다른 항목의 단위가격 역시 지역별로 큰 차이가 없었다. 결국 고급 소비재나 사치품을 제외하고, 실제 서민들이 실생활에서 이용하는 시장물가는 대부분의 소비항목에서 지역별로 큰 차이가 없는 셈.

민주노총은 “재벌그룹의 대형 할인매장이 전국을 과점해 버린 한국의 시장물가는 어떤 지역별 차이도 발견할 수 없었다”며 “따라서 지역 차를 앞세운 정부의 최저임금 정책은 사실상 최저임금 삭감일 뿐”이라고 비판했다.

최저임금 현실화 시급

이어 “저임금 노동자들의 생활이 파탄난지 오래지만 정부와 재계는 최근 10년 최저임금이 너무 많이 올라 문제라며 엉터리 공세를 펴고 있다”며 “의료비 등이 적극 보장되지 않는 한국사회에서 최저임금을 높여 저임금 노동자들의 삶의 질을 높이는 방향으로 가야한다”고 말했다.

김영훈 민주노총 위원장은 “경제위기라는 명목 아래 기업의 곡간은 넘쳐나는데 반해 사회양극화는 심화되고, 저임금 노동자들은 사회에서 소외되고 있다”며 “전 역량을 동원해 최저임금을 현실화하는 투쟁에 나서겠다”는 뜻을 밝혔다.

그는 또 “문제의 진정한 해결은 최저임금 몇 푼 올리는 것이 아니라 문제의 본질을 규명하고, 국민적 임금투쟁이 결국 경제를 살리는 원동력임을 입증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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