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바지사장 때문에 비정규직 허용할 순 없죠”
    By 나난
        2010년 03월 11일 09:52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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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주 황성동 발레오만도 사원아파트 정류장에 내리기 직전 버스기사가 주먹을 들어 보이며 웃는 얼굴로 "수고하라"고 말한다. "데모하러 가냐"는 질문에 "그렇다"고 답하자 자세한 길까지 덤으로 알려주셨다. 발레오만도 직장폐쇄로 금속노조 경주지부(지부장 한효섭)가 전면총파업에 나선 지난 9일, 발레오만도 사태는 이미 지역적 이슈가 된 듯 했다.

    이날 총파업은 계획대로 실행했지만 아침 10시로 예정된 결의대회는 새벽 내내 잔뜩 내린 눈과 비로 긴급 취소됐다. 총파업에 동참한 경주지부 소속 조합원들은 이날 오전 각 사업장에서 대기하다 퇴근 투쟁을 전개한다는 지침에 따라 집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발레오만도 공장 주변의 출입구 앞에는 여전히 발레오만도지회(지회장 정연재) 조합원들이 천막 근처에서 불을 쬐며 농성을 이어가고 있었다.

       
      ▲ 발레오만도 공장 출입문에 붙어있는 회사의 ‘결의’ (사진=금속노조)

    직장폐쇄 20일 만에 지역경제 휘청

    지역 분위기가 어떠냐는 질문에 농성중인 한 조합원이 답했다.
    “황성동 상가들은 손님 줄어서 난리 났지요. 사원아파트에서 음식 시켜먹는 일도 뚝 끊겼고…”

    발레오만도의 사원아파트 규모는 250세대 정도. 지난달 16일 직장폐쇄 이후 조합원들은 2월 급여로 평균 50만 원밖에 못 받았다. 600명 넘는 조합원이 공장 밖으로 쫓겨났으니 지역 상가에 미치는 영향이 클 수밖에 없다. 게다가 발레오만도의 하청업체 직원들도 같은 위기감을 느껴 파급 효과는 더 커질 것이라고 한다.

    발레오만도 직장폐쇄는 지난 2월 지회가 회사의 비생산분야 외주화 추진에 반발해 투쟁을 전개한 것이 발단이었다. 발레오만도는 비정규직이 하나도 없는 사업장으로 유명하다.

    최성준(가명, 40세) 조합원은 “98년 IMF 당시 다른 만도공장들이 비정규직을 수용할 때도 우리는 오히려 기존 비정규직을 정규직화 시켜냈다”며 “10년 넘게 지켜온 자랑스러운 전통을 잠깐 거쳐 가는 ‘바지사장’ 한 사람 때문에 저버릴 수는 없다”고 말했다. 회사가 외주화 대상으로 삼은 식당과 경비직 노동자들은 27명 정도. 600명이 넘는 전체 조합원 중 일부에 불과하지만 지회는 그동안 지켜온 소중한 가치를 버릴 수 없다는 입장이다.

    “비정규직 허용할 순 없죠”

    하지만 이 문제가 불거졌을 때 지회는 파업이나 생산시설 점거처럼 강도 높은 투쟁을 전개한 것이 아니었다. 지회는 생산량을 줄이며 품질을 개선하는 운동을 전개했을 뿐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회사는 그 누구도 상상하지 못한 직장폐쇄라는 초강수를 두며 노동조합을 압박해 왔다. 내 문제도 아닌데 적당히 요구사항 들어주고 현장으로 돌아가자는 의견도 나올 법 한 상황.

    최성준 조합원은 “일부 조합원들이 흔들렸던 것도 사실”이라며 “초기에 40여명이 회사의 회유와 협박 때문에 공장으로 들어갔었다”고 털어놨다. 40명? 그리 많은 숫자로 보이진 않는다.

    이 때 회사는 발레오만도 청산설을 퍼뜨렸다. ‘브렌치 VP 부사장 그룹 COO’ 명의로 공표된 담화문이 공표된 것. 담화문에 따르면 “발레오 경주의 사외적 상황과 경쟁력 상실을 고려했을 때 잠정적으로 청산을 결정했던 것이 사실”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강기봉 사장의 경영능력을 믿기에 마지막 기회를 제공하겠다”며 “이번 직장폐쇄를 통해 발레오 경주가 신뢰성을 회복”하길 바란다는 내용이었다. 노동조합이 모든 것을 양보하고 투항하면 사업을 지속하되 그렇지 않을 경우 청산해 버리겠다는 노골적 협박이었다. 어떤 대화도 없이 20일 넘게 지속되는 직장폐쇄, 게다가 청산설까지. 이탈자들이 더 늘지 않았을까.

    “사태의 본질을 알고 나서 공장으로 들어갔던 사람들 중 원래 회사 쪽에 가까웠던 사람들 빼고 27명이 다시 나왔습니다. 20년 함께 일한 동료들 배신할 수 없다고 하면서요. 진짜 목적은 외주화가 아니란 걸 깨달은 거죠”

    최성준 조합원이 말했다. 담화문이 진짜인지 조작된 것인지를 떠나 회사 청산설은 오히려 조합원들을 단결할 수 있게 만들었다. 더 이상 물러서거나 타협할 여지가 없기 때문. 조합원들은 같은 발레오 계열사 소속인 충남의 발레오공조코리아 노동자들이 이미 공장 청산 때문에 힘겨운 투쟁을 이어오고 있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최성준 조합원은 “발레오공조처럼 투쟁이 길어질 수도 있다고 본다”며 “하지만 피할 수 없는 싸움이라면 원정투쟁을 통해서라도 반드시 승리하겠다는 것이 조합원들의 의지”라고 말했다.

       
      ▲ 한 조합원 지금까지 회사로 부터 받은 협박성 문자가 100건이 넘는다며 핸드폰을 보여줬다. (사진=금속노조)

    “청산과 노조말살이 이번 사태의 본질”

    지회 조합원들은 대체로 발레오만도의 청산 가능성을 높게 보고 있었다. 안석태(가명, 47세) 조합원은 “외국자본인 발레오가 정부로부터 받을 수 있는 각종 세금혜택은 작년 말까지였다”며 “그동안 좋은 조건에서 막대한 이윤을 빼가다 혜택이 줄어드니까 손 털고 나가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발레오는 99년 만도기계 경주공장을 인수한 후 조세특례법에 의해 매년 법인세 및 각종 세제혜택으로 18억에서 20억 정도의 이득을 취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경주지부 신시연 수석부지부장도 “발레오가 단물만 빨아먹고 튄다는 비난을 무마하기 위해 노동조합 핑계를 대고 있는 것”이라며 “아웃소싱 문제는 회사가 치밀하게 준비한 기획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게다가 설사 회사를 청산하지 않더라도 이를 구실로 노동조합을 최대한 압박할 수 있으니 발레오 입장에서는 손해 보는 장사가 아닌 셈.

    지회 조합원들은 회사 청산까지 염두에 둔 투쟁이 단사 차원으로 한계가 있다는 점도 잘 알고 있었다. 최성준 조합원은 “금속노조로 뭉쳐 싸우지 않는다면 해결할 수 없는 문제일 것”이라며 관심과 지지를 호소했다. 이번 경주지부 연대 총파업과 금속노조 집중투쟁에 대한 기대도 컸다. 정연재 지회장은 “어제 총파업 결의대회를 통해 조합원들이 많은 힘을 받아 승리에 대한 기대감이 커졌다”고 말했다.

    특히 현대차 하청업체들이 밀집한 경주지역 차원의 파업은 수일 만에 현대차라는 거대자본을 직접 압박할 수 있어 영향력이 적지 않다. 작년 7월 조선일보도 ‘노조 천국’ 경주가 파업하면 현대차가 멈춰 선다는 기획기사까지 써대며 문제(?)를 제기한 바 있다.

    발레오만도 문제에 현대차도 긴장

    이 때문에 발레오만도지회와 경주지부는 같은 금속노조 소속인 현대차지부에서 이 문제에 적극적으로 나서주길 바라고 있기도 하다. 안석태 조합원은 “직장폐쇄 이후 숙련되지 않은 관리직과 용역들이 생산한 제품은 불량확률이 높을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도요타 리콜 사태가 현대차에서 벌어질 수도 있는 문제”라고 지적했다.

    정 지회장은 “발레오만도도 지난시기 노동탄압이 극심한 하청업체의 투쟁을 지원한 바 있다”며 승림카본으로부터 납품받은 제품을 전수검사하는 등 하청업체 자본을 압박해 8개월 만에 노사대화를 이끌어낸 경험을 소개하기도 했다.

    이날 경주지부 총파업 상황실에는 사용자측의 공세적인 대응이 보고되기도 했다. 각 지회에서는 ‘정작 직장폐쇄 중인 곳은 물량을 납품하고 있는데, 왜 우리 회사 물량이 끊겨야 돼냐’, ‘지금 파업하면 원청에서 납품을 다원화시킬 것이다’라며 조합원 흔들기가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 사업장은 조업이 중단되면 직장폐쇄를 하겠다고 협박하기까지 한 것으로 전해졌다. 실제로 지회장을 취재하러 온 한 언론사 기자에 따르면 이날 경주지역 사용자들이 상공회의소에서 대책회의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차 부사장이 경주 모 회사에 상주하고 있다는 소식도 들려왔다. 정연재 지회장은 “부품사 배후에 현대차가 숨어 있는 것 같다”며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공안당국 분위기도 심상치 않았다. 경주지부 총파업 결의대회가 있었던 8일 대구지검 경주지청은 이번 파업을 불법으로 규정하고 엄정 대처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지부가 확인한 바에 따르면 지부 집행부 4인과 일부 지회장들에게 출두요구서를 발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예 진압부대로 알려진 서울시경 소속 1001, 1002중대가 경주에 내려왔다는 것을 목격했다는 증언도 나왔다. 신시연 수석부지부장은 “발레오 문제를 계기로 정부까지 나서 경주지부 나아가 금속노조 자체를 아작 내려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 정연재 지회장은 이 싸움이 산별노조의 중요성을 다시금 각인하게 될 계기라고 말했다.(사진=금속노조)

    지부 연대파업…“산별노조 존재 이유”

    전면파업 첫 날인 9일 발레오만도 사측은 직장폐쇄 이후 처음으로 지회에 대화를 요청했다. 이에 따라 지부는 파업을 일시적으로 유보하고 금속노조 결의대회가 예정된 12일 아침까지 대화 시간을 보장하되 진전이 없을 때는 이날 다시 파업에 돌입하기로 결정했다.

    일단 숨고르기에 들어간 셈. 이 며칠간이 자본의 대응력만 강화하는 기간이 될까, 아니면 노동조합 투쟁력을 더 공고하게 만드는 기간이 될까.

    정연재 지회장이 연대를 호소하며 말했다. “이번 일이 우리 스스로 많이 반성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최근 몇 년간 우리 사업장 중심으로 생각해 더 어려운 처지에 있는 동지들의 싸움에 힘 있게 함께하지 못해 왔습니다. 이 싸움을 통해 산별의 중요성을 다시금 각인하게 될 겁니다”

    느닷없는 직장폐쇄에 공장 밖으로 쫓겨난 노동자들. 어느 사업장이 언제 이 같은 공격을 받을지 모르는 세상이다. 게다가 외국자본, 거대재벌이 엮여 있으면 아무리 단결력이 좋아도 단사의 힘만으로는 역부족인 경우가 많다. 전 단위가 항상 연대파업과 연대투쟁 태세를 갖춰야 하는 이유다.

    * 이 글은 금속노조의 인터넷 기관지 <금속노동자>의 3월 10일자 [사람과 현장]에도 실렸습니다. (http://www.ilabor.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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