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복지, 좌우 아니라 민주주의 문제
        2010년 03월 12일 09:12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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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차대전 이후 유럽에서는 이른바 사회(민주)당, 노동당의 정당들의 집권이 두드러진다. 나라마다 정치 상황은 서로 다르지만 이들의 특징은 이른바 사회복지정책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의 진보세력이 사회경제적 분야에서 주장하는 거의 모든 정책이 유럽에서 기인한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한국에서는 모든 세력이 복지를 이야기해서 마치 차별성이 없는 것처럼 비쳐지지만 유럽과 한국의 가장 큰 차이는 한마디로 세금이다. 아직도 EU 15개국의 평균 조세부담률은 한국과 GDP 대비로 약 10% 이상 차이가 나는데, 이것은 어림잡아 계산해도 1년에 100조에 달하는 금액이다.

    결국 유럽 수준의 복지를 하려고 하면 한국의 경우 최소한 1년에 100조에 달하는 세금을 더 걷어야 한다는 의미이고 이러한 증세없이 복지를 이야기하는 것은 "집 없는 사람에게 뉴타운이 도움이 되는 것"이라는 주장과 마찬가지로 ‘정치적 사기’일 뿐이다.

    2.

    그렇다면 유럽은 언제부터 지금 정도의 조세를 걷게 되었을까? EU 15개국의 조세부담률도 마찬가지로 갑자기 늘어난 것은 아니다. 1965년 경 조세부담률은 27% 정도로 지금의 한국과 비슷하다. 아래 그래프를 보면 이것이 점진적으로 계속 늘어나서 현재는 약 40% 정도 된 것임을 알 수 있다.

       
      ▲ 한국은 1972년부터 통계가 있음.

    위 그래프를 보면 조세부담률이 내려간 해는 거의 없음을 알 수 있다. 보수-우파 정당이 집권한 기간도 나라 별로 상당히 되는데도 평균으로서의 조세부담률은 하락한 적이 거의 없는 것이다. 즉, 보수-우파 정권이라고 하더라도 급격한 복지 축소는 실제로 감행한 적이 없다는 의미이다.

    결국 복지라고 하는 것은 거의 모든 사람에게 혜택이 돌아가는 것이기 때문에 민주주의가 작동하는 한 우파 정권이라고 하더라도 복지 축소- 세금 감면을 급격하게 추진할 수는 없었던 것이다. 일례로 세계노동운동의 시발점이 되었던 영국 탄광노조를 사실 상 분쇄하였던 철의 여인 대처조차 영국의 무상의료시스템인 NHS는 건드리지 못했다는 것이 좋은 예이다.

    위 통계에서 조세부담률이 가장 급격하게 하락한 해가 GDP 대비 0.6%로 1989년이다. 잘 알다시피 1989년은 동구권이 몰락한 해로 사회주의의 붕괴로 자본주의의 최종 승리가 눈 앞에 있었던 것으로 보이던 시절이었다.

    3.

    좌파정당이 집권기간이 길었을수록 조세부담률의 증가는 더욱 빨리 이루어졌다. 사회민주노동당이 30여년간 집권했던 스웨덴은 이미 1965년에 조세부담률이 35%에 달했다. 노동당이 항상 3당에 불과했던 아일랜드는 1976년이 되어서야 조세부담률이 30%를 넘었다.

    그러나, 유럽이 이러한 조세를 통한 복지를 달성할 수 있었던 것은 역설적으로 소련의 존재가 미친 영향이 컸다. 소련 사회주의와 소련공산당의 존재는 실제로 유럽 지배계급에게 커다란 위협이었고, 이 위협을 막기 위해 일국적으로 일정한 양보는 체제유지비용에 불과한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생산수단의 국공유화를 규정한 영국노동당의 당헌 제4조조차 볼셰비즘에 대항하고자 영국의 온건(?) 좌파들이 주창한 것이었다는 것으로 것을 보면 당시 소련의 위협은 서구 지배계급에게 매우 현실적인 것이었다.

    4.

    죠반니노 과레스끼가 쓴 소설 『돈까밀로와 빼뽄』에 보면 이탈리아 공산당 소속 읍장과 대립하는 기독교민주당의 신부가 나온다. 이 소설을 보면 서부유럽 최대의 공산당이 있었던 이탈리아의 전후 상황을 읽을 수 있는데, 당시에는 이탈리아 시골마을까지 인민의 집이 개설되고 스탈린의 사진이 걸려있었던 모양이다.

    이 소설에서 스탈린 사후 소련을 방문한 이탈리아 공산당 당원들은 보드카를 마시면서 “생전에 스탈린은 자본주의자들에게 두려움의 대상이었다”하면서 아쉬워하는 장면이 나온다.

    1950년대 미국의 지배계급이 가졌던 소련에 대한 공포는 지금 시점에서 보면 매우 과장된 것이었을지 모르지만 당시 시점에서는 결코 과장된 것은 아니었다. 스탈린의 소련은 과정이야 어찌되었던 간에 산업화되지 않았던 러시아를 단기간에 공업국으로 만들었으며 놀라운 정신력과 불굴의 투지로 극한의 조건 속에서 나찌 독일 패퇴시켰기 때문이다.

    역으로 한국에서도 마찬가지 주장이 가능할 것 같다. 북한이 그래도 제3세계에서 상당히 잘나가는 국가였던 1960년대 북한의 위협은 남한의 지배계급에게 그야말로 현실적인 것이었다. 지금이야 핵문제말고는 문제될 것이 없지만 그 때는 북한에 의한 흡수통일이 전혀 근거 없는 관측이 아닌 시절이었다.

    오죽했으면 1960년대의 남한은 남북대화 자체를 거부했겠는가. 만약 지금도 북한이 건재하다면 한국의 지배계급은 조금은 덜(?) 후안무치하게 굴었을 지도 모른다.

    5.

    1989년 동구권과 소련이 붕괴하였고 자본주의의 최종 승리가 눈 앞에 있는 것처럼 보였고, 전 세계에서 우파가 정치적으로 약진했다. 그러나, 위 표에서 보는 것처럼 조세는 급감하지 않았다. 스웨덴의 예가 하나의 예가 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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