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를 넘어선 사회로, 어떨까?"
    2010년 03월 09일 05:40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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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레스타인 땅을 여행하고 보면서 독립국가 건설이라는 해결책이 환상처럼 다가올 때 한 가지 의문이 더 들었다. 국가라는 틀은 의심하지 않아도 되는가 하는 점이었다.

익히 국가주의와 국가폭력의 문제를 제기했던 많은 논의들처럼 국가에는 풀기 어려운 과제들이 뒤따른다. 국가가 수립되어 일단 개인 권리의 보호자가 되면 개개인은 점차 국가에 의지하게 되고 국가기구는 견고해지기 마련이다. 점차 타자에 대한 울타리도 높아져만 갈 것이다. 국가의 이익 증대가 곧 나의 이익 증대라고 동일시하고 심지어 평화를 향한 마음도 국가로 귀속될지도 모른다. 그 극단적 사례가 바로 이스라엘일 것이다. 국가가 없는 곳에서 이런 생각은 기우겠지만 국가주의에 갇히는 일이 자유일 수 있는지 의문은 사라지지 않았다.

국가 아닌 땅 ‘팔레스타인’

하지만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이미 그런 문제들을 알고 있는 것 같았다. 그들은 팔레스타인을 ‘국가’라기보다 ‘땅’이라는 의미로 여겼다. 이 땅에서의 분쟁은 두 종교국가의 대립이 아니었다. 이스라엘이라는 종교국가가 땅을 차지하면서 팔레스타인을 지키려는 운동이 일어났을 뿐이었다.

물론 일부에서는 팔레스타인 독립국가라는 이름으로 운동하기도 하지만,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종교국가를 만들려고 한 것이 아니다. 물론 대다수 사람이 이슬람교를 믿고 있다. 그러나 기독교를 비롯해 여러 종교와 더불어 사는 일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었고 크리스마스에는 축복의 행사가 팔레스타인 도시마다 열렸다. 이런 문화는 팔레스타인 땅에서는 아주 오래된 것이었다.

이는 단순히 팔레스타인 땅의 78%는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쓰고, 22%는 팔레스타인이라는 이름을 쓴다고 하는 문제가 아니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국가 형성 이전에 땅에서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로 서로를 인식하는 듯했다. 그 속에는 유대인도 포함되어 있었다.

분명하게는 알 길은 없지만 이스라엘-팔레스타인에는 그 지역 사람들이 그대로 살아가고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유대교인, 이슬람교인, 기독교인 할 것 없이 그 지역 사람들이 이 땅에 존재하거나 들어오는 종교를 받아들였다. 그렇게 종교를 받아들였을 뿐 종교를 기준으로 민족적 구분을 짓는 것은 무의미해 보였다.

   
  ▲ 라말라 시내에 있는 한 교회. 교회의 입구쪽 벽에는 잘려간 올리브나무를 안고 울고 있는 여성의 포스터가 붙어 있었다.

   
  ▲ 예수가 처형되어 죽은 곳으로 불리는 성분묘 교회 내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에 대한 우리의 일반적 오해(이스라엘은 민주국가이고 팔레스타인은 이슬람 종교국가이다)는 오히려 정반대에 가까웠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이스라엘 지역도 팔레스타인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비록 이스라엘이라는 유대인 국가로 있다 하더라도 말이다.

이스라엘이 점령한 팔레스타인 땅 지명을 모두 다른 이름으로 바꾸어 버렸지만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이 땅은 오래전부터 살아왔던, 분리할 수 없이 이어져 있는 삶의 공간으로 여겼다. 무엇으로 불리든 이곳은 팔레스타인 땅인 것이다. 오히려 땅을 구분하는 일이야말로 점령자의 시선이라고 우려하는 것 같았다.

국가 이외에 대안은 없나

땅이라는 것은 땅따먹기하듯 점령해서 차지할 수 있는 그런 것이 아니다. 가장 이스라엘에 비타협적이라는 하마스도 ‘1967년 이전 경계(팔레스타인 땅의 22%)로 이스라엘이 물러간다면 유대인과 공존하겠다’고 말했다. 과연 누가 문제인가? 땅을 갈라 내 땅, 네 땅으로 나누는 시선은 누구의 것인가? 팔레스타인 마을에 관통도로를 뚫고 점령촌과 고립장벽을 세우고 검문소를 설치하는 이스라엘이 유대국가를 고집하는 가운데 팔레스타인 국가 건설이 이야기된다. 이런 국가는 누구를 위한 것일까.

‘팔레스타인 독립국가’는 해결책 대신 다른 답은 찾을 수 없을까? 국가라는 틀이 아닌 다른 커뮤니티, 다른 네트워크로 살아가는 것은 불가능한 꿈인 것일까? 프리모 레비나 한때 한 유대인 그룹이 ‘우리는 영원히 국가 없이 살아가자’고 제안했던 것과 같은 선택은 할 수 없을까?

국가주의의 폐해를 딛고 민주적 다민족ㆍ다종교 사회, 국가체제를 넘어선 사회를 준비해 가는 일은 어떨까 하고 생각해 본다. 민족이나 종교가 차별과 배제의 기준이 되지 않고 함께 살아갈 수 있을 때 평화는 허구가 아니라 시야 안에 들어오지 않을까? 이미 팔레스타인에는 60년 동안 점령당한 경험에서 나온 진하고 미래지향적인 그런 삶을 준비하고 시작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미래를 선취하며 살아가고자 하는 모습들이 분명 팔레스타인에 있었다.

   
  ▲ 하이파의 전경. 하이파는 이스라엘 건국 이전에는 유대인, 아랍인 할 것 없이 함께 활동을 벌일 정도로 공존했던 전통이 있었다고 한다.

짧은 시간의 여정이었지만, 팔레스타인을 여행하면서 알 수 있었던 게 하나 있었다. 그 오랜 세월 디아스포라로 떠돌아다닌 유대인들을 받아준 것은 팔레스타인이 유일했다는 점이다. 20세기 초 세계대전이 일어나고 유대인들이 전 세계에서 억압받고 있을 때,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이주해 오는 유대인들이 팔레스타인 땅에서 잘 정착할 수 있도록 도왔다.

역사적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오고갔던 공간인 이곳은 누구라도 맞이하며 사는 것이 자신들의 민족적 특성이라고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자랑스럽게 말했다. 이런 팔레스타인의 소중함을 이스라엘 사람들이 다시 기억해 내기를, 잊지 않기를 바란다.

보다 인간적 관계 모색해야

그리고 한 가지가 떨쳐지지 않는 것이 있다. 팔레스타인에서 한국 기업의 제품과 광고판을 흔하게 볼 수 있었다. 사람들은 우리를 봤을 땐 한국인을 처음 보기라도 한 것처럼 신기하게 쳐다봤음에도 수많은 한국 기업들에는 매우 익숙해 했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가장 많이 타고 다닌 차는 현대, 기아와 같은 한국 기업의 자동차였고 전자제품도 LG, 삼성의 것을 많이 이용했다.

심지어 아무런 기업의 광고도 없었던 난민촌에서도 모 한국 기업의 로고는 보였다. 또한 성지를 순례하기 위해 그 땅을 찾는 한국인 관광객들도 매우 많았다. 그러나 우리가 만나본 어디에서도 한국과 관련된 곳이 팔레스타인의 고난에 지원을 했다는 이야기는 듣지 못했다. 이익을 위해 오랜 분쟁의 지역까지 들어가는 한국이지만 이 땅의 역사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다는 점이 씁쓸하게 남았다. 이익으로만 다가서는 것이 아니라 보다 깊이 있게 이해하고 더 나은 인간적 관계를 모색해 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 난민촌에까지 들어와 있는 한국 기업. 아무런 광고판도 없는 이 잘라존 난민촌에서 기업의 로고라고 본 것은 LG가 유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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