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청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
    2010년 03월 08일 11:11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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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포스터

요즘이야 사람처럼 옷을 차려입은 동물을 보는 것이 낯선 모습이 아니지만 여성들이 숨도 못 쉴 만큼 코르셋으로 허리를 꼭 졸라맨 모습으로 나서야 당연하던 시대에는 그게 몹시도 기이했을 것이다. 그래서 어린 앨리스는 조끼 주머니에서 시계를 꺼내 보는 토끼가 신기해서 따라가다가 나무 밑에 뚫린 구멍에 빠져 ‘이상한 나라’로 갔더랬다.

그곳에서 겪은 일들이 하도 놀라워서 꿈으로 꾸고 또 꿔가며 자란 앨리스가 이제 약혼을 눈앞에 둔 아가씨가 되었다. 팀 버튼 감독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이 아가씨 앨리스(미아 와시코우스카)의 이야기다.

언더랜드(under land)로 간 앨리스

앨리스는 코르셋을 입지 않았다고 타박을 받고, 어마어마하게 부유한 귀족이라는 ‘스펙’ 말고는 뭐 하나 맘에 들지 않는 남자의 청혼을 당연히 받아들여야한다는 압력을 받고, 미래의 시어머니가 되려는 아주머니한테 아직 결혼을 결심한 것도 아닌 남자를 어찌 받들어야할 지 충고를 받는다. 따분하기 이를 데 없는 상황이다.

사람들이 죽 둘러서서 앨리스가 청혼을 받아들이기만을 기다리는 딱 그 순간, 마침 토끼가 나타났다. 조끼를 갖춰 입고 시계도 들여다보는 그 토끼. 그래서 앨리스는 다시 토끼를 따라 이상한 나라로 빠져들어 간다. 그런데, 이 나라는 앨리스가 지금껏 악몽으로 기억하던 이상한 나라 ‘원더랜드(wonder land)’가 아니라 땅 속에 있는 ‘언더랜드(under land)’란다.

어쨌든 앨리스는 루이스 캐럴의 동화 원작 삽화와 똑같은 옷을 입고 떨어진 땅 속에서, 똑같은 상황이 펼쳐져서 몸도 작아졌다 커졌다 하고, 똑같이 이상하고 정신없는 존재들을 만나 생각지도 못한 모험을 하게 된다.

‘그 앨리스’가 아니라 ‘다른 앨리스’

그런데 거기서 만난 존재들도, 앨리스 자신도 앨리스의 정체가 ‘그 앨리스’가 아니라 ‘다른 앨리스’라고 한다. 달라진 것은 훌쩍 자란 앨리스 뿐 아니라, 원작 동화의 흑백 삽화나 예전 디즈니의 아기자기한 애니메이션 캐릭터가 팀 버튼 감독의 손을 거쳐 2D로 촬영된 화면이 3D 버전으로 바뀐 것까지 포함한다.

<비틀쥬스>, <가위손>, <슬리피 할로우>와 같은 작품들에서 팀 버튼 감독은 이미 현실 세계의 부조리와 규범에 숨막혀하며 소녀에서 막 어른이 되기 직전의 아가씨가 기이한 세계로부터 온 존재의 매혹적인 부름을 받고 자신이 속해있는 현실 세계의 문제를 돌아보는 상황을 즐겨 만들어왔다.

   
  ▲ 영화의 한 장면

그리고 팀 버튼 감독은 <빅 피쉬>에서든, <찰리와 초콜릿 공장>에서든, <유령 신부>에서든, 부름을 받고 기이한 세계로 갔던 이가 거기서 어떤 문제에 부딪혀 그 문제를 어떻게 해결했든 다시 자신이 속한 현실 세계로 돌아갔을 때 문제는 여전히 남아있는 상황으로 되돌리곤 했다.

그러나 기이한 세계에서 고군분투하며 겪었던 일들이 주인공을 성장시키고, 그래서 불행할 뻔했던 주인공은 자기 식의 행복을 선택하는 식의 결말, 그러니까 현실을 피해 악몽에 빠졌다가 다시 그 악몽을 통해 현실을 동화로 바꾸곤 했다.

한국어로 옮긴 탁월한 자막

어차피 동화가 원작인 탓도 있지만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도 이런 팀 버튼 식 동화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앨리스가 빠져 든 이상한 나라는 ‘왕대그빡’ 붉은 여왕(헬레나 본햄 카터)이 걸핏하면 사람들 목을 베어버리라며 무시무시한 폭정을 펼치는 세계다. 예언서에 따르자면 제대로 된 앨리스는 ‘좋마운(좋고 고마운, frabjous) 날’에 ‘날뜩한(날카롭고 섬뜩한 vorpal)’ 검으로 붉은 여왕의 폭정을 뒷받침해주는 무시무시한 괴수 재버워키의 목을 베어야 한단다.

재버워키(Jabberwocky)는 <거울 나라의 앨리스>에 나오는 넌센스 시의 제목이다. 말장난의 귀재인 작가 루이스 캐럴의 상상력에서 비롯된 낱말들은 뜻도 발음도 워낙 독특해서 영어의 말맛을 다른 언어로 옮기기 까탈스럽기가 이루 말할 데 없다. 영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서 아마 가장 탁월한 것은 바로 이 말장난을 한국어로 옮긴 자막 번역일 것이다.

처음부터 3D로 기획된 <아바타>와 비교해서 입체감이 놀랄만한 경지는 아니라지만 환상적인 장면을 만들어내는 솜씨가 빼어난 팀 버튼 감독이 만들어낸 화면이나, 엔딩 타이틀 곡을 부른 에이브릴 라빈의 뮤직 비디오보다 더 풍성하달 건 없지만 대니 앨프먼의 음악은 충분히 팀 버튼 표 이상한 나라를 만들어내고 있다. 그래도 모자장수(조니 뎁)의 ‘으쓱쿵짝(futter-wacking) 춤’으로 앨리스의 모험을 ‘즐복한’ 여행이 되게끔 마무리해준 것은 팀 버튼 사단보다 한국어 자막 번역자의 공이지 싶다.

   
  ▲ 영화의 한 장면

팀 버튼이 아무리 당대 최고의 엉뚱한 상상력을 가진 감독으로 꼽힌다지만 원작자 루이스 캐럴의 기발한 앨리스 이야기를 가지고 마구 난장판을 벌여도 모자랄 판에 교훈적인 성장 영화의 틀로 옮겨버린 것은 원작 동화를 소중히 기억하는 독자 입장에서든, 팀 버튼 감독의 삐딱한 악취미를 즐기는 관객 입장에서든 어째 김새는 일이다.

영화는 자신이 미친 게 아닐까 걱정하는 등장인물들에게 거듭해서 “넌 확실히 미쳤어. 하지만 멋진 사람들은 다 미쳤지.”라고 격려하지만 막상 영화 자체는 충분히 미치지 못한다.

디즈니 ‘칼렐루야!’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를 넘나들던 원작의 이상한 나라를 ‘예쁜 하얀 여왕 좋은 편, 못난 붉은 여왕 나쁜 편’으로 딱 갈라놓은 것이나, 여왕 앞에서든 재판정에서든 하고 싶은 말 마구 쏟아내며 대들던 어린 앨리스를 악에 맞서 싸우기 위해 신분을 위장하고 작전을 펼치는 조심스런 아가씨로 바꿔버린 것도 김새고, 현실 세계로 돌아온 앨리스가 자기를 둘러싼 세상의 부조리에 정면으로 맞서 싸우기는커녕 슬쩍 상황을 피해 더 큰 부조리를 만들어낼 제국주의 식민 시장 개척의 앞잡이 노릇을 하게 되는 것도 김샌다.

이렇게 진부한 방식의 변화만을 성장과 정상이라고 결론짓는 기획은 그야말로 ‘디즈니 식’ 제국주의다. 화려한 영상이나 매혹적인 배우가 아무리 볼만할지라도 영화의 뒷맛이 악몽이 되도록 만드는 디즈니의 천편일률적인 레시피는 톡 쏘는 맛이 일품이던 팀 버튼의 세계조차 맹숭맹숭하게 만드는 힘을 발휘할 정도로 강력해서 앨리스를 이상한 나라로부터 데려와 엄청 성실한 나라의 국민으로 길들여 버렸다. 그야말로 디즈니 ‘칼렐루야!’다.

   
  ▲ 영화의 한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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