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르면 울게 만든 그때의 노래들
    By 나난
        2010년 03월 05일 11:00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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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가 대학에 입학한 후 처음 접한 민중가요들은 아주 서정적이고 고운 노래들이었습니다. 같이 어깨를 걸고 목 놓아 부르는가 하면, 혼자 흥얼거리다가도 울컥하고 무언가 치솟아 오르는 그 노래들. 70~80년대 초반 민중가요라고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사실 행진곡 풍보다는 바로 이런 서정적이고 고운 노래들입니다.

    서정적이고 고운 민중가요

    오늘은 그 중 한 곡인 <이 세상 어딘가에>를 소개하려 합니다. “노동조합은 근로자들의 권리입니다. 막연한 분홍빛 꿈에서 깨어나 우리들 스스로 찬란한 미래를 만들어갑시다”라는 낯선 멘트와 함께 들었던 김민기 씨의 노래극 [공장의 불빛] 의 마지막 노래가 <이 세상 어딘가에>입니다. 오늘은 ‘메아리’의 목소리를 통해 <이 세상 어딘가에>를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음원 : 메아리 Origin2 중에서 (일천구백팔십년 여름 녹음, 98년 4월 복각)
    <이 세상 어딘가에> (김민기 글, 곡)

    필자가 대학에 입학하던 해는 1984년이었습니다. 학원자율화 조치가 있던 해죠. 즉, 그 이전까지는 대학 내에 기관원들이 상주하며 학생들과 같이 수업도 듣기도, 벤치에 앉아 잡담도 나누며 감시를 했습니다. 그러다 돌변해 친구를 연행해 가기도 했고요.

    집회 한 번 하기도 쉽지 않았고, 늘 말과 행동을 조심해야 했습니다. 경계를 늦추지 않았어야 했겠지요. 아마도 그 시절부터 약자나 줄임말들이 운동권 생존을 위한 문화로 유행한 게 아닐까 싶네요.

    기관원과 함께 수업 듣던 시절

    하지만 제가 대학을 들어가던 그 해부터는 기관원들이 철수를 해서 대중 활동이 좀 더 자유로웠습니다. 학내 집회도 자주 열렸고, ‘민주’와 ‘민중’에 대해 목소리를 낼 수도 있었습니다.

    그런 ‘혜택(?)’으로 저는 대학에 입학해 노래 서클에 가입하며 활동하게 됐습니다. 친구 따라 강남 가듯 시작된 서클 활동은 가히 ‘학과 공부를 하러 대학을 다닌 게 아니라 서클활동을 하러 다녔다’고 할 만큼 열성적이었습니다.

    대학에서 처음 접한 민중가요들은 가사말도 낯설고, 멜로디도 대중가요와는 뭔가 다른 느낌이었지만 대체로 예뻤습니다. 그리고 참으로 서글펐습니다.

    노래를 부르다 보면 왠지 마음이 짠했고, 술자리에서 부르면 괜스레 눈물도 흘렀습니다. <이 세상사는 동안>, <이 땅의 축복 위하여>, <친구>, <영산강>, <약수 뜨러가는 길>, <진달래> 등이 주로 그러한 노래였습니다.

     

       
      

    그저 노래가 좋아서 매일매일 서클방으로 출석을 하던 어느 날, 이름도 없던 복제 테이프에 맞춰 상황극을 짜는 훈련을 했습니다. 나중에 알게 됐지만 그것이 바로 김민기의 노래극 [공장의 불빛]이었습니다.

    동일방직 사건을 소재로 하여 78년 겨울에 만든 노래극 [공장의 불빛]은 서정적인 몇 곡의 노래들과 연극적 상황, 그리고 개사곡을 변주해서 만들어낸 작품입니다.

     

    김민기 노래극 ‘공장의 불빛’의 파격

    그 당시 대학가의 노래패 공연은 대부분 통기타 한두 대로 연주를 하며 노래에 단순 화음 정도를 넣는 것이었는데, 이 [공장의 불빛]은 신디사이저와 드럼을 파격적으로 사용했습니다. 공장에 들어와 저임금에 야근, 철야를 밥 먹듯이 하고, 그러다 산재를 당해도 보상 한 푼 받지 못하고 쫓겨 난 신세, 이들은 노동조합을 만들려고 하지만 사측의 음모와 탄압에 부딪혀 좌절하고 맙니다.

    하지만 그래도 노동자들은 희망을 버리지 않고 다시 힘을 추스릅니다. [공장의 불빛]은 고향에 편지를 보내는 여공의 목소리로 시작해 야간 교대, 사고, 노조동합 결성, 음모, 선거, 해고 등 전체가 19장면으로 이루어진 40여 분짜리 뮤지컬인 셈입니다. 여기에 삽입된 노래는 <공장의 불빛>, <두어라 가자>, <돈만 벌어라>, <야근>이며 <이 세상 어딘가에>는 엔딩곡으로 불리게 됩니다.

    노래극의 시작과 끝부분 멘트에서 노동자들을 교육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라는 걸 알 수 있지만, 그 속에서 접한 노동자 현실은 참으로 상상을 초월하는 이야기들이었습니다.

    군대에서 불렸던 멜로디에 가사를 붙인 <야근>은 단순한 한 곡을 단조와 장조, 그리고 4박자와 3박자, 빠르기와 가창법 등을 달리해 마치 공연 한편을 보는 듯 한 느낌을 줍니다. 이 노래는 원래 ‘대령 중령 소령은 00000, 상사, 중사, 하사는 00000~~’ 하는 소위 ‘군대 사가’를 따서 변주한 곡입니다.

    “서방님의 손가락은 여섯 개래요, 시퍼런 절단기에 싹둑 잘려서 한 개에 오만 원씩 이십만 원을 술 퍼먹고 돌아오니 빈털터리래… 사장님네 강아지는 감기 걸려서 포니타고 병원까지 가신다는데 우리들은 타이밍약 사다먹고요. 시다 신세 면할 날만 기다립니다.

    그거야 순전히 댁 사정이죠 병 걸려 있으니까 그런 거죠. 묵묵히 참으면서 일만 하세요 윗분들이 다 알아서 해줄 거예요. 3년만 지내보면 알게 될 거다. 귀머거리 폐병쟁이 누구누군지…”(이 노래는 나중에 기회가 되면 들려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민중가요에서도 타자화됐던 노동자

    87년 이후의 노동가요는 구체적이고 진취적이며 또 강인한 노동자 상을 그려냈습니다. 하지만 당시 우리의 현실은 너무나 막막했습니다. 그렇기에 진취적이나 구체적인 희망과 투쟁을 이야기하기는 어려웠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세상 어딘가에>와 이 곡이 삽입된 노래극 [공장의 불빛]은 ‘다른 누군가에 의지하지 말고, 우리들이 스스로 만들어가자는 내용’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살며시 두 눈 떠봐요. 밤하늘 바라봐요. 어두운 넓은 세상. 반짝이는 작은 별. 이 밤을 지키는 우리, 힘겨운 공장의 밤. 고운 꿈 깨어나면 아쉬운 마음뿐, 하지만 이제 깨어요. 온 세상이 파도와 같이 큰 물결 몰아쳐온다. 너무도 가련한 우리. 손에 손 놓치지 말고, 파도와 맞서 보아요.” -<이 세상 어딘가에> 중에서

    이렇듯 당시의 민중가요가 노동자의 이야기를 타자적 시각에서 이야기한데 반해 <이 세상 어딘가에>는 노동자의 입장에서 서술하고 있습니다. 서정적이면서도 감성적인 가사와 멜로디이지만 그 어떤 곡보다도 노동자 스스로의 의지와 각성을 강조합니다.

    노동자 삶은 무조건 강한 비트의 멜로디와 직설적인 가사만으로 전달되는 것은 아닙니다. 마치 시를 쓰듯 부드럽고 아름답게도 말할 수 있는 거죠. 그런 의미에서 <이 세상 어딘가에>는 꼭 한 번 들어보면 좋은 곡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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