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조업 현장은 암 부르는 일터?
    By 나난
        2010년 03월 04일 12:41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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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암을 부르는 일터’는 지난 3일 노동환경건강연구소 발암물질정보센터(아래 센터)에서 발간한 ‘2009 발암물질진단사업 보고서’ 제목이다. 무슨 소설책도 아니고 속보이게 ‘흥미 유발용’으로 자극적으로 지은 제목이 아닐까 의심스럽다. 하지만 보고서 내용을 들여다보면 이러한 의심은 사라지게 된다. 우리 노동 현장의 심각한 현실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센터는 작년 6월부터 11월까지 민주노총 소속 26개 사업장을 대상으로 발암물질진단사업을 진행했다. 센터는 사업 추진 배경을 “수많은 발암물질 중에서 가장 접근이 쉽고, 대책을 세우기 쉬운 것이 생산현장의 발암물질”이며 “현장에서 발암물질을 없애는 일이 노동자와 사회전체의 안전을 위해 필수적인 일”이기 때문이라고 밝히고 있다.

    센터는 진단사업 수행을 위해 무엇이 발암물질인지 선정할 필요가 있었다. 이를 위해 센터는 국제적으로 권위를 인정받고 있는 국제암연구소, 유럽연합, 국립독성프로그램, 미국환경청, 미국산업위생전문가협의회에서 발표한 발암물질 목록을 검토, 총 1,420종의 화학물질을 1~3등급으로 구분해 발암물질을 분류했다. 1등급은 인체 발암성 물질, 2등급은 인체 발암성 추정물질, 3등급은 인체 발암성 가능 물질이다.

       
      ▲ 금속사업장에서 사용되는 화학물질 중 37.6% 가 암을 유발한다.

    26개 사업장에 대한 조사 결과 생산 현장에서 사용되고 있는 화학제품 2,590개 중 583개(22.5%)가 발암물질임이 드러나 충격을 주고 있다. 이 중 인체 발암이 확실시 되는 1등급 물질만도 114개(전체의 4.4%)가 된다. 금속노조 사업장들의 경우 발암물질 비중은 더 커지는 데, 840개 화학제품 중 316개(37.6%)가 발암물질인 것으로 밝혀졌다. 1등급 발암물질도 49개(5.8%)로 전체 평균보다 높다.

    금속 사업장 화학물질 37.6%가 암 유발

    센터는 진단사업을 통해 사업장 내에서 발암물질 위험 대처를 어떻게 하고 있는지도 조사했다. 그 결과 발암물질이 함유된 제품을 사용하는 공정에 해당 제품의 물질안전보건자료를 비치하지 않은 경우가 37.7%인 것으로 드러났다.

    산업안전법 규정 41조에는 “사업주는 화학물질 또는 화학물질을 함유한 제제를 제조·수입·사용·운반 또는 저장하고자 할 때에는 미리 물질안전보건자료를 작성하여 취급근로자가 쉽게 볼 수 있는 장소에 게시 또는 비치하여야 한다”고 규정돼 있다.

    국소배기장치의 설치도 미흡(20.4%)하거나 없는(25.4%) 경우가 절반가까이 되는 것으로 드러났다. 산업보건기준에 관한 규칙에는 관리대상물질을 취급하는 공정에 국소배기장치를 설치하도록 돼 있으며, 특히 발암성물질의 경우에는 예외 규정 적용 없이 강제하고 있다.

    발암물질에 대한 대비도 미흡

       
      ▲ 파악된 발암물질이 일으킬 수 있는 암의 종류

    진단사업에서 파악된 화학물질은 다양한 종류의 암을 유발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1, 2등급만을 대상으로 봤을 때 폐암과 백혈병이 각각 13%로 가장 높았으며, 비호지킨스림프종(11%), 신장암(9%) 순이었다.

    그 밖에도 비강암, 후두암, 유방암, 방광암, 간암 등 총 33개 부위에 암 발생을 유발하는 물질들이 사용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한편 발암물질에 대한 노동자의 인식도는 21.6%인 것으로 밝혀져 10명 중 8명은 자신이 다루는 물질이 암을 유발하는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일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반면 노동부고시에서 발암성을 지정한 물질에 대해서는 52.4%가 인식하고 있었다. 노동부고시 발암물질조차 제대로 2명 중 1명은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인 셈. 더불어 21.6%와 52.4%의 차이도 주목되는 부분인데, 이는 정부가 발암물질 목록을 선진국 수준으로 확대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가를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보고서는 진단사업의 결론으로 “노동자들에게 무엇이 발암물질인지를 정확히 알려주는 것이 가장 시급한 과제”라고 지적하고 있다. 노동자 스스로 발암 위험을 알고 있어야 노출을 막기 위한 노력을 할 것이며, 나아가 환경 개선 요구와 직업성 암 발생시 보상제기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보고서는 “아직까지 우리나라 정부와 기업은 발암물질에 대한 관리 의지를 가지고 있지 못하다”며 “노동조합에서 소속 사업장에 대한 전면적인 발암물질 진단사업을 시행해 암 예방을 위한 적극적 노력에 나서줄 것”을 제안하며 최종 결론을 대신하고 있다.

    * 이 글은 금속노조의 인터넷 기관지 <금속노동자>에도 실렸습니다. (http://www.ilabor.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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