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왜, 무상급식만 이야기 하는가?"
        2010년 03월 04일 10:45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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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 6.2 지방선거를 코앞에 둔 시점에서 ‘무상급식’ 문제가 최대의 선거 이슈로 등장하고 있다. 이 문제는 지난해 김상곤 경기도 교육감이 초등학교 일부 학년에 대한 보편적인 무상급식 예산을 신청하자, 한나라당이 장악한 경기도 의회가 관련 예산을 전액 삭감하면서 불거졌다. 이 일이 있은 후, 보수색이 짙은 일부 언론에서는 사설을 통해 무상급식을 하면 나라살림이 거덜 날 것처럼 호들갑을 떨기도 했다.

    심지어 한나라당의 모 의원은 “무조건 무상급식을 실시하는 데 예산을 투입하는 것은 사회주의적 발상”이라고까지 언급한 바 있었다. 그러나 이것이 국민들의 적극적인 동의와 호응을 받자, 대부분의 지방자치단체장 후보들은 무상급식을 공약으로 내세우는 상황에 이르렀다. 심지어는 한나라당의 후보까지 보편적인 무상급식을 주장하고 나설 정도로 중요한 공약이 되어, 교과부의 공무원이 무상급식 공약에 대한 대응 방안을 보고하는 문건을 만들어내는 웃지 못 할 사태까지 벌어지고 있다.

    ‘무상급식’만으로는 부족

    그러나 우리 복지국가소사이어티는 ‘무상급식’ 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무상급식은 교육복지의 영역 중에서도 가장 기초적인 수준의 조치일 뿐이다. 진정한 무상교육은 학교급식 뿐 아니라 교복, 연필, 노트, 각종 부교재와 교구재 등 학습에 필요한 준비물을 모두 국가가 지급하는 것이다. 심지어는 학습 부진아에 대한 추가 교육과 각종 특기적성 교육 및 다양한 ‘방과 후 교실’까지를 모두 학교에서 담당하는 것이 무상교육의 본래 취지에 맞는 일이다.

    의무교육은 교육을 위해 필요한 의, 식, 주를 모두 학교에서 지급하는 것이다. 교육이란 기본적으로 먹고 사는 문제가 해결된 위에서 진행되는 것이다. 밤을 새워 24시간 편의점의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학자금 융자를 갚아 나가야 하는 대학생들이 공부까지 잘 하도록 우리 사회가 요구하는 것은 너무나 가혹한 일이다.

    학자금 융자의 이자를 갚기 위해, 취직을 위한 스펙에 필요한 학원에 등록하고 어학연수까지 다녀오기 위해 돈을 벌어야 하는 가난한 학생들에게 제대로 된 교육을 받아 한국의 미래를 맡아 달라고 기대할 수는 없다. 즉, 무상교육이란 수업에만 제한된 원리가 아니다. 그렇다면 그것은 무상교육이 아니라 무상수업일 뿐이다. 무상교육이란 교육을 받는 동안의 총체적인 삶을 국가가 부담하는 것이다.

    무상급식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무상교육과 무상수업을 혼동하는 바람에 ‘의무교육은 무상으로 하여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는 대한민국 헌법 제31조의 기본정신을 명백히 벗어나고 있음을 자각해야 한다. 그리고 실제로 우리나라는 교과서 비용과 예전에 월사금이라고 불리던 학비 외에는 대부분을 학부모가 부담하므로 말로만 의무교육이지 ‘무상수업’ 조차도 아니라고 하는 것이 옳다.

    재원조달 충분히 가능하다

    법으로는 중학교까지 의무교육이지만 수업료만 면제될 뿐, 급식비와 현장 활동비 등의 명목으로 초등학교와 중학교 학부모가 매년 약 2.4조 원을 부담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활동비에 부담이 있는 저소득층 학생들은 특기적성 활동 등에서 소외되고 있다. 고등학교의 경우 수업료로 연간 약 1.8조 원, 급식비 등 수익자 부담경비로 약 1조 원을 학부모가 부담하고 있다.

    무상급식 논쟁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예산 타령도 복지에 대한 저급한 인식과 철학의 빈곤에서 비롯된 핑계에 지나지 않는다. 굳이 40조 원 규모의 4대강 개발 예산을 언급하지 않더라도, 지금 이 순간에도 줄줄 새고 있는 중앙과 지방 정부의 삽질예산이면 무상급식을 위한 재원조달 능력은 충분하다.

    예를 들어, 이미 120% 과잉 공급되어 있는 도로, 공항 등의 순수 SOC 예산으로 투입되는 25.4조 원 중 일부만 중지하여도 초등학교에서 고등학교까지의 수익자 부담 비용 3.7조 원을 국민들의 추가 부담 없이 매년 조달할 수 있다(국회예산정책처, 2009). 전체 176.6조 원을 집행하는 지방재정(사회공공연구소, 2009)의 약 30%를 차지하고 있는 토목 및 건설 관련 예산의 일부를 늦게 집행하는 것만으로도 고등학교까지 의무교육을 확대할 수 있다.

    유명 관광지로 낭만이 깃든 아름다운 도시의 대명사인 파리에는 비싼 보도블록 대신 교체할 필요가 없는 시멘트로 포장된 곳이 많다. 심지어는 중심가의 도로조차 보도블록이 깨어져 움푹 파인 곳도 있다. 하지만 프랑스는 해마다 연말에 멀쩡한 보도블록의 수선과 교체에 예산을 쓰기 보다는, 과감하게 확대된 의무교육을 무상으로 실시하는 데 주안점을 두고 있기에 문화강국인 것이다. 문화와 예술, 그리고 낭만의 도시 파리는 흠잡을 데 없는 깔끔한 도로 포장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교육만큼은 보편적 복지의 일환으로 완벽한 무상의 원칙 속에서 이루어지고, 교육과 복지에 대한 투철한 철학 위에서 건설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보편적 복지’ 내세운 후보에 투표하자

    이제 본격적인 입학 철이 되었다. 어린이집과 유치원부터 시작하여 초등학교와 대학교에 이르기까지 새로운 마음, 새로운 각오로 시작하는 시기이다. 그러나 올 해부터는 상급 학년으로 올라가는 학생들이나, 상급 학교로 진급하는 자녀를 둔 학부모들은 ‘국가가 나에게 해 준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던지는 일들이 많아질 것이다. 프랑스에서는 신학기가 시작되면 학용품 값을 부모들에게 보내준다. 이것은 작은 돈이지만, 국가가 교육의 의무를 실시한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느끼게 하는 배려이다. 국가의 역할이 무엇인가? 헌법에 보장된 무상교육의 권리가 어떤 것인가를 피부로 느끼게 하는 좋은 사례가 된다. 그리고 국민들이 세금을 내야 할 이유를 알게 해 주는 것이다.

    프랑스 대학의 시설이 미국에 비하여 좋은 편은 아니다. 그러나 소정의 자격시험을 통과하면 본인의 경제수준에 관계없이 누구나 대학에 입학할 수 있다. 그리고 주어진 과정을 이수할 수 있는 수학능력만 인정되면, 등록금 부담 없이 공부하고 생활하며 졸업할 수 있도록 해주는 일련의 과정을 통해 대학생들은 높은 담세율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것을 동시에 배우게 된다. 무상급식이라는 기초적 수준의 교육복지마저 도입하지 못하고 있는 우리의 현실과는 크게 비교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미 무상급식은 시대의 대세가 되었다. 이번 선거는 이미 무상급식 공약에 대한 태도로 그 후보의 정치노선이 구분될 정도가 되었다. 김상곤 교육감으로부터 시작된 무상급식 논쟁이 우리사회에 보편적 복지는 무엇인가? 라는 질문을 던졌고, 국민들은 그에 대해 또렷하게 응답을 한 것이다. 그런데, 우리 국민들은 이 정도의 수준에서 만족해서는 안 된다.

    이번 6.2 지방선거에서는 국민들의 실질적인 생활비 지출 부담을 덜어주려는 후보를 뽑도록 하자. 무상으로 공책과 연필을 지급하겠다는 후보, 가난한 이들이 소외감을 느끼지 않도록, 그리고 불필요한 가격 거품으로 학부모들의 부담이 가중되지 않도록 학생들의 교복까지도 지자체 예산에서 지급하겠다는 ‘보편적 복지’를 공약으로 내세우는 후보를 뽑도록 하자. 이러한 시민참여 형 정치과정을 통해 역동적 복지국가는 우리의 현실로 다가올 것이다.

    2010년 3월 4일
    사단법인 복지국가 소사이어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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