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B 공교육 신화포장 ‘위험한 언론’
        2010년 03월 04일 10:16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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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론은 속보경쟁 못지않게 냉철한 분석 실력으로 우열이 가려진다. 뉴스를 전할 때 국민이 알기 쉬운 언어로 핵심을 짚어주는 능력이 관전 포인트이다. 객관성과 균형감은 필수이다. 언론이 중심을 잡고 제대로 된 분석을 해주면 국민은 뉴스의 방향을 잡는 데 큰 도움이 된다.

    반면, 언론이 중심을 잃고 좌충우돌 흐트러진 논리를 전하면 뉴스의 속사정을 알기 어려운 국민은 더욱 큰 혼란을 겪기 마련이다. 교육과학기술부가 2009년 10월 전국 초등학교 6학년, 중학교 3학년, 고등학교 1학년 학생들이 치른 학업성취도 평가결과를 3일 공개했다.

    다음은 4일자 전국단위 종합일간지의 1면 머리기사 제목이다.

    경향신문 <"우리는 유령이 아니에요">
    국민일보 <500년만에 돌아왔다>
    동아일보 <선생님 집을 공부방으로 1년만에 학습부진아 ‘0’>
    서울신문 <‘꿈의 노트‘ 위력…학력미달 0>
    세계일보 <초중고 학력 높아졌다>
    조선일보 <원전 수출, 터키 시장도 뚫다>
    중앙일보 <낙제생 ‘0’…괴산 청전중 1년의 기적>
    한겨레 <‘견제없는 독식’ 비리단체장 키웠다>
    한국일보 <공교육 희망을 쐈다>

    이명박 정부는 지난해 교육계 일각의 반발에도 전국 일제고사를 강행했다. 교과부가 지난 3일 발표한 자료는 그 결과이다. 교과부가 학교 서열화 우려에도 일제고사를 시행한 이유는 지역간 학력격차 해소 등이 목적이었다.

    이번 발표 결과는 이명박 정부 공교육 정책의 성적표가 될 수도 있다. 정부 정책에 효과가 있었는지, 부작용은 없었는지 언론의 입체적 분석이 필요한 것도 이 때문이다. 4일자 전국단위 종합일간지 지면에 실린 관련 기사 제목만 놓고 보면 언론의 ‘섣부른 단정’이라는 우려를 지울 수 없다.

    한국일보는 4일자 1면 머리기사 제목을 <공교육 희망을 쐈다>라고 뽑았다. 교과부가 학력향상 우수학교 12곳을 선정했다는 기사 내용을 전하면서 ‘공교육 희망을 쐈다’는 표현을 사용했다.

    교육신화 전하는 언론, 섣부른 단정의 위험성

       
      ▲ 한국일보 3월4일자 1면.  
     

    언론들은 일제고사 학업성취도 조사 결과를 전하면서 ‘신화’를 전하기도 했다. 서울신문은  1면 <‘꿈의 노트’ 위력…학력미달 0>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머리기사로 보도했고, 동아일보는 1면에 <선생님 집을 공부방으로 1년 만에 학습부진아 ‘0’>라는 기사를 내보냈다. 중앙일보는 1면에 <낙제생 ‘0’…괴산 청전중 1년의 기적>이라는 기사를 내보냈다.

    이명박 정부가 시행한 학업성취도 일제고사에서 우수한 성적을 보인 학교를 찾아가 그 원인을 설명하는 내용이다. 이런 형식의 언론보도는 낯설지 않다. 2008년 전국 학업성취도 평가가 발표됐을 때도 언론은 전북 임실군의 놀라운 결과를 신화로 포장하기에 바빴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일제고사 성적조작 파문의 소용돌이에 휩싸였다.

    일선 학교에서 학업성취도 결과를 부풀렸는데 언론은 확인 과정없이 ‘신화포장’에 몰두하다 혼란을 자초한 셈이다. 2009년 학업성취도 일제고사에 대한 언론 분석 역시 신중한 접근이 요구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불과 1년 전 시행착오를 반복할 수는 없지 않은가.

    MB교육 정책 성과와 연결시키는 언론

       
      ▲ 동아일보 3월4일자 사설.  
     

    그러나 언론은 곳곳에서 섣부른 단정의 오류를 범하고 있다. 언론 보도가 전하는 메시지는 이명박 정부 교육정책의 성과이다. 동아일보는 4일자 <학업성취도 높인 학교는 무엇이 다른가>라는 사설에서 "2009년 전국의 초중고교생 학업성취도 평가 분석 결과 전년 대비 ‘기초학력 미달’ 비율이 상당히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면서 "특히 제 학년에 반드시 성취해야 하는 학력 수준에 이르지 못한 학생이 많은 학교에 대해 정부가 집중지원에 나섰던 성과가 두드러졌다"고 주장했다.  

    국민일보는 5면 <10곳 중 9곳 환골탈태…’학력향상 중점학교’ 빛났다>라는 기사에서 “전년도에 기초학력 미달 학생 비율이 현저히 높아 교육 당국이 ‘학력 향상 중점학교’로 지정한 학교들의 성과가 눈부셨다. 이들 학교가 달라진 배경에는 교사들의 헌신과 양질의 교육 프로그램 등의 공통점이 있었다”고 보도했다.

    조선일보는 1면 <사교육 누른 옥천·양구>라는 기사에서 “3일 발표된 2009년 초.중.고교 학업성취도 평가에서는 충북 옥천군과 양구군 학생들의 성적이 단연 돋보였다. 두 곳 모두 농촌지역으로 학원이나 사교육 인프라가 많지 않은 지역”이라고 설명했다

    사교육비 지출과 학업성취도 결과 관련성은

       
      ▲ 경향신문 3월4일자 9면.  
     

    교과부는 사교육비 지출과 학업성취도 관련성은 적다는 견해를 보였다. 조선일보 1면 기사는 교과부의 그러한 설명을 뒷받침하는 보도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현실도 그럴까. 경향신문은 9면 <‘사교육 빅3’ 학력 월등…교과부 "관련 적다" 빈말로>라는 기사에서 “교육과학기술부는 3일 ‘2009년 국가수준 학업성취도 평가’ 결과를 발표하면서 ‘사교육비 지출액과 학업성취도의 관련성이 적다’고 설명했다”면서 “그러나 ‘교육 특구’로 불리는 서울 ‘강남’은 5개 평가과목이 전국 상위권을 차지했다”고 보도했다. 

    세계일보는 1면 기사 제목을 <초중고 학력 높아졌다>라고 긍정적으로 뽑았다. 하지만 세계일보는 “지난해 국어·영어·수학·사회·과학 5개 교과에서 전국 초·중·고교생의 학업성취 수준이 전년보다 크게 높아졌으나 지역 간 격차는 여전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보도했다.

    세계일보는 “또 사교육비를 가장 많이 쓰는 서울의 성적이 최하위권에 머물렀으나 강남.목동 등 사교육 특구 지역만 놓고 보면 성적이 현저하게 높았다”고 설명했다. 세계일보는 3면 기사 제목을 <역시 ‘사교육의 힘’…강남 중3 국·영·수 모두 1위>라고 뽑았다. 

    양구 옥천 ‘학력 기적’ 원인은 따로 있나

       
      ▲ 조선일보 3월4일자 1면.  
     
       
      ▲ 세계일보 3월4일자 4면.  
     

    한겨레는 1면 <일제고사 결국 ‘사교육 경쟁’>이라는 기사에서 “지난해 실시된 국가수전 학업성취도 평가(일제고사)에서 중학교 3학년 학생들 가운데 ‘보통학력 이상’에 해당하는 비율을 비교해 보니, 서울 강남 지역이 국어·영어·수학 모두 전국 1위를 차지하는 등 대체로 사교육이 성행하는 지역일수록 성적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보도했다. 

    그렇다면 양구와 옥천의 결과는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세계일보는 4면 <양구 옥천 초등학교 ‘학력 기적’ 중학교가면 사라져>라는 기사에서 “옥천은 초6의 모든 과목에서 서울 강남을 웃도는 우수한 성적을 기록했고, 양구는 주요 과목 기초학력 미달자 비율이 0%였다. 그러나 중3으로 올라가면서 학력수준이 급락해 고학년이 될수록 사교육 여건 등 교육환경이 상당한 영향력을 미치는 것으로 분석됐다”고 보도했다.

    조선일보는 <사교육 누른 옥천.양구>라는 제목을 뽑았지만, 세계일보는 초등학교의 학력 기적은 중학교에 가면 사라지고 그 원인은 사교육 여건이라고 진단했다. 한겨레는 양구 초등학교 성적의 비밀을 설명했다.

    서울신문 "지역간 학력격차 재확인한 학업성취도 평가"

       
      ▲ 서울신문 3월4일자 사설.  
     

    한겨레는 4일자 사설에서 “초등학교에서 좋은 성적을 낸 강원도 양구의 경우엔 밤 9시까지 초등학생들에게 보충수업을 시켰다”고 전했다. 초등학생들에게 밤 9시까지 보충수업을 시키는 교육방법이 올바른 것인지, 진짜 학력 신장으로 볼 수 있는지는 논란의 대상이다.

    정부가 일제고사 시행 우려에도 강행 명분으로 내세웠던 지역별 학력격차 해소는 이뤄지지 않았다. 한겨레는 5면 <지역별 학력격차 여전…수준차 해소 정책 실패>라는 기사에서 “교육과학기술부가 3일 공개한 학업성취도 평가 결과를 보면 전반적으로 기초학력 미달 비율이 줄어드는 등 학력은 다소 향상됐으나 지역별 격차는 여전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보도했다.

    서울신문은 <지역간 학력격차 재확인한 학업성취도 평가>라는 사설에서 “교과부는 지난해 서열화를 조장한다는 일부 교육단체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학업성취도 평가를 강행하면서 기초학력 미달 학생에 대한 지원과 지역간 학력 격차 해소를 평가의 목적으로 내세웠다”면서 “지역간 학력 격차는 여전히 심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한겨레 "영국도 일본도 일제고사 부작용으로 시험폐지"

       
      ▲ 한겨레 3월4일자 사설.  
     

    서울신문은 “서울 강남 학생의 학업성취도가 주요 과목 모두 전국 최상위권을 차지해 사교육비 지출 순위가 성적 순위로 이어지는 씁쓸한 교육현실을 재확인시킨 점은 의미하는 바가 크다”면서 “학력이 올라도 지역 간 격차를 줄이지 못한다면 실패한 교육정책이란 지적을 피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결과는 일제고사 무용론이 나올 수도 있는 결과이다. 한겨레는 <교육파행 심화시키는 일제고사 중단해야>라는 사설에서 “영국 정부는 제도 도입 초기 성적 향상이 나타났다고 선전했지만, 심층분석 결과 일제고사가 교육왜곡만 낳고 학력 향상과 무관함이 속속 입증됐다. 이후 영국의 대부분 지역에선 일제고사를 폐지했다. 일본도 시험 결과 조작 등 부작용만 낳은 이 제도를 시행 2년 만에 폐지했다”고 설명했다. 

    일부 신문은 일제고사 무용론을 차단하는데 주력하는 모습이다. 학력 신장이라는 명분 아래 공교육의 기본인 전인교육이 흔들리고 있다면 이는 면밀히 검토해야 할 문제인데, 일부 신문은 일제고사 폐지 차단을 위해 ‘이념’ 문제를 꺼내기도 했다.

    ‘학교 줄세우기’ 유도하는 조선일보

       
      ▲ 조선일보 3월4일자 사설.  
     

    동아일보는 이날 사설에서 "좌파적 교육관을 지닌 일각에서는 부모의 사회경제적 배경이 학력 격차의 절대적인 원인인 것처럼 주장하지만 교육자의 책임감과 의지, 실력이 있으면 얼마든지 학력수준을 높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한편, 조선일보는 <‘내 아이 학교’ 학력 정보 알 수 있게 해야>라는 사설에서 "학부모 입장에선 이번 평가만으로 내 아이가 다니는 학교의 학력 수준에 대해선 전혀 알 수가 없다. 전국 학교를 줄 세운다는 반발을 피하기 위해 지역 교육청 단위로만, 그것도 평균이나 상위권 비율 같은 진짜 궁금한 정보는 숨겨두고 껍데기만 공개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경향신문은 8면 기사에서 "지난해 첫 공개 이후 서열화 도구 논란 등이 계속 되고 있으나, 교과부는 내년부터 학교별로도 결과를 발표할 예정이어서 파장이 예상된다"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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