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낙태 반대 운동 뒤에 이명박 정부 있다"
    By 나난
        2010년 03월 03일 11:47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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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부 산부인과 의사들(프로라이프 의사회)이 지난 2월 3일, 처음으로 낙태 시술을 하는 산부인과 병원을 고발했다. 또 <조선일보> 등 우파세력은 낙태 반대 캠페인을 1면 머리기사로 장식하는 등 낙태 논란에 불을 지폈다.

    프로라이프 의사회에 따르면 고발 이후 산부인과 중 80%가 낙태 시술을 거부한다고 답변했다고 한다. 낙태 금지 캠페인이 낙태 시술 의사들과 낙태하는 여성들을 위축시킨 것이다. 주목할 점은 이들이 이렇듯 낙태 반대를 넘어 금지를 주장하는 배경에는 이명박 정부가 있다는 것이다. 이명박 정부는 최근 ‘낙태 방지 정책’을 운운하며 저출산 문제를 지적하고 있다.

    프로라이프 의사회는 “한국 낙태문제의 심각성은 … 정부가 이 문제 해결을 위한 사회적 인프라 구축 노력을 전혀 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며 “비교적 빠르게 개선할 수 있는 경제적 지원책이라도 정부가 당장 내놓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들이 보육에 대한 정부 지원을 요구한다고 해도, 낙태하는 여성을 비난하고 속죄양 삼는 ‘낙태 근절 캠페인’의 반여성적 본질을 가릴 수는 없다. 물론 여성 노동자 중 70%가 비정규직인 현실, 전체의 5.5%밖에 안 되는 국공립 보육시설, 초등학교부터 대학까지 엄청나게 드는 교육비, 미혼모 차별과 냉대 등 아이를 낳기 힘든 여건은 반드시 개선돼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이런 요구가 낙태권 인정과 대립해야 하는가. 프로라이프 의사회는 결국 낙태 처벌 요구가 여성을 위한 것처럼 포장할 뿐이다.

    낙태는 노동계급문제이기도 해

    낙태 처벌 강화가 반여성적이라는 사실은 낙태 금지 캠페인이 현재 여성들을 얼마나 막다른 골목으로 몰아가고 있는가만 봐도 알 수 있다. 낙태할 곳을 찾지 못해 전전하는 여성들의 절박한 상담전화가 여성단체에 빗발치고 있고, 30만 원이던 낙태 비용이 300만 원으로 올랐다고 울먹이는 목소리도 들려온다. 낙태가 빈곤을 더 빈곤하게 만들어 버린다.

    반면 부유한 여성들은 서구의 경우에서처럼 낙태가 심하게 처벌받던 시절에도 낙태가 합법인 주나 나라에 가서 비싼 수술을 받고 돌아올 수 있었다. 지금도 비행기 타고 일본 가서 식사 한 끼 하고 오곤 하는 부유한 여성들은 안전한 낙태 시술을 받을 수 있겠지만, 평범한 노동자 등 빈곤계급 여성들이나 10대 청소년들은 그럴 수 없다.

    1백만 원 안팎의 월급을 받는 경우가 대부분인 노동계급 여성들에게 낙태 단속은 너무나 큰 장벽이다. 저임금, 비싼 전월세, 높은 양육비에 시달리는 노동계급 여성들에게 원하지 않은 임신까지 홀로 책임지도록 강요해서는 안 된다.

    낙태 처벌 요구의 배경

    대한산부인과의사회는 2월 9일 성명을 내 “프로라이프 의사회와 같은 극단적인 방법을 사용한다면 전문의로서 인성과 자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면서 “(프로라이프 의사회가) 인공임신중절을 줄이려는 목적 말고, 다른 목적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지배계층이 낙태를 불법화한 것과 우파들이 낙태 처벌을 강화하라며 낙태권을 공격하는 것은 실제로 매우 ‘정치적인’ 목표와 관계있다.

    이들이 수많은 여성들이 낙태를 선택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알면서도 낙태 처벌 강화를 요구하는 진정한 이유는 여성의 가정 내 역할을 강조함으로써 양육과 가사를 책임지도록 하고 사회적 지위를 낮게 유지하려는 것과 관계있다. 특히 ‘저출산’ 현상으로 안정적인 노동력 공급이 위기에 처하자, 낙태권 공격은 더 심해졌다.

    그러나 여성들이 낙태하는 이유가 무엇이든 비난받거나 처벌받아서는 안 된다. 안전하고 합법적인 낙태는 여성들이 자신의 몸과 삶을 스스로 통제하는 매우 중요한 인권문제이다. 우리 사회에서 출산과 양육은 대체로 여성의 몫이다.

    ‘미혼모’에게 쏟아지는 악의적 시선에 시달리는 것도, 원치 않는 임신으로 고통을 받고 삶 전체의 우선순위가 뒤바뀌는 것을 감수해야 하는 당사자도 바로 여성이다. 이런 여성 자신이 출산을 할지 말지 선택할 수 있어야 하며, 자신의 몸을 통제할 권리를 보장받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낙태권, 여성해방에 필수적 권리

    대부분의 여성들이 노동시장에 뛰어드는 오늘날, 아이를 낳을지 말지 언제 낳을지 선택할 권리는 매우 중요하다. 자신의 출산을 통제할 수 없다면 여성은 삶을 계획하거나 남성과 동등하게 사회활동에 참여할 수 없다. 따라서 낙태권은 여성해방을 위한 필수적인 권리다.

    낙태금지 제도는 그동안 낙태를 줄이기는커녕 여성들을 비위생적인 ‘뒷골목 낙태’로 몰았을 뿐이다. 안전하지 못한 불법 낙태로 사망하는 여성이 전 세계적으로 매년 8만 명이 넘는다. 따라서 ‘낙태처벌’은 진정한 ‘생명존중’과도 거리가 멀다.

    낙태권 공격은 여성들에게 심각한 위협이다. 이에 맞서는 저항이 필요한 시점이다. 한국의 여성·진보단체 들은 ‘임신·출산 결정권을 위한 네트워크’를 결성해 3월 5일 ‘여성의 임신·출산 및 몸에 대한 결정권 선언식’을 조직하고 있다. 노동조합도 이 운동에 적극 나서야 한다.

    영국에서도 1979년 낙태권 공격에 맞서 8만 명이 참가하는 대중운동을 이끈 단체가 노동조합총연맹(TUC)이었다. 올해 민주노총 등이 주최하는 3ㆍ8세계여성의 날 대회는 “낙태 처벌 반대, 출산 강요 반대, 여성 몸에 대한 자기 결정권 쟁취”를 요구에 포함하고 있다. 이로부터 저항이 시작될 것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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