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익 잡아먹는 괴물이 된 '자율'
        2010년 03월 03일 09:19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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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많은 지탄을 받던 네이버 뉴스캐스트가 마침내 3월부터 방침을 바꿨다. 지탄을 받은 이유는 선정적인 낚시기사들이 난무했기 때문이다. 네이버는 당초 기사편집을 포기하고, 각 언론사들이 자율적으로 기사를 내도록 하면 소비자들이 자유롭게 마음에 드는 기사를 선택해 뉴스서비스가 좋아질 거라며 뉴스캐스트를 시작했다.

    하지만 결과는 위에 언급했듯이 과도한 선정성과 낚시기사들의 난무다. 나도 그 전까지 네이버 뉴스서비스를 봤었지만 뉴스캐스트 개편 이후엔 안 보게 됐다. 메인 화면에 뜨는 뉴스들이 점점 저질화 됐기 때문이다.

       
      ▲ 3월부터 개편된 네이버 뉴스캐스트 화면

    이것이 ‘자율’이 모든 걸 해결해줄 거라는 자율지상주의의 말로다. 각 언론사들이 자율적으로 뉴스를 편집하게 하자 뉴스서비스의 질이 상승하기는커녕 누가 봐도 낯 뜨거운 수준으로 퇴행한 것이다. 자유를 받은 각 언론사들은 경제 원리대로 이익 극대화, 조회수 극대화를 위해 최선을 다하게 됐고, 엉뚱하고 자극적인 기사들로 네티즌을 많이 유인한 담당자가 언론사 내부에서 포상을 받는 일까지 벌어졌다고 한다.

    시장주의자들은 각 개별주체에게 자유를 주고, 그들이 자유경쟁, 자유선택하도록 하면 문제들이 정상화 될 거라고 주장한다. 그들은 모든 사안에 대해 이런 해답을 제시한다. 거의 종교적 광신 수준이다.

    이것은 각 개별주체들이 사익을 추구할 때 그것이 결국 공익으로 귀결된다는 믿음과도 연결되어 있다. 하지만 뉴스캐스트의 추락이 말해준다. 자율은 해답이 아니라고. 사익은 공익이 될 수 없다고. 자율적인 사익 추구는 공익을 갉아먹을 뿐이다. 자유경쟁은 결코 지상선이 될 수 없다.

    자율 지상주의의 폐해

    자율 지상주의 정책은 곳곳에서 추진된다. 최근 정운찬 국무총리는 3불정책 완화를 주장했다. 3불정책은 대학 규제 정책이다. 3불정책을 완화한다는 것은 대학에 입시 자율권을 준다는 말이다. 그러면 문제가 해결된단다.

    그 말로는 뉴스캐스트와 같을 것이다. 뉴스캐스트는 각 언론사들을 자율권이 없었을 때보다 더욱 타락시켰다. 조회수 경쟁이라는 멍석이 펼쳐지자 언론사들은 체면이고 뭐고 다 버리고 경쟁에 뛰어들었다.

    마찬가지다. 대학에 입시 자율권을 주면 각 대학들은 우수학생, 부자학생을 선발 독식하기 위해 체면이고 뭐고 다 버리고 경쟁에 매진할 것이다. 그 귀결은 입시파탄일 수밖에 없다.

    정운찬 총리는 우리나라 교육의 문제점으로 획일주의와 학벌지상주의를 꼽으며 ‘이런 요인이 사고를 경직적으로 만들어 창조적 사고를 어렵게 한다’고 지적했다고 한다. 문제점만큼은 제대로 인식하고 있다.

    해법이 잘못됐다. 입시 자율성을 받은 대학들은 학생 선발을 통한 가치극대화 경쟁에 매진할 것이기 때문에, 대학 간 가치가 양극화돼 학벌주의가 더 강화될 수밖에 없다. 학벌주의가 강화되면 일류대의 가치가 다른 모든 것들 위에 군림하는 획일주의도 강화될 수밖에 없다. 자율은 이렇게 포털 뉴스서비스뿐만 아니라 입시에서도 문제를 일으킨다.

    자율이라는 이름이 붙은 각종 자율형 학교들도 마찬가지다. 교과 편성을 자율화했을 때도 기사 편집을 자율화한 것과 똑같은 폐해가 나타날 것이다. 근본적으로 학교자율화라는 정책 자체가 문제다. 학교에 자율성을 주면 언론사들이 타락한 것처럼 학교도 타락할 것이다.

    등록금을 걷는 것도 각 대학들이 자율적으로 알아서 할 문제이기 때문에 국가가 규제하기 힘들단다. 규제하지 않으면 대학들은 수익극대화를 위해서 등록금을 올릴 수밖에 없다. 또 덩치 키우기를 위해 건물과 부동산에 투자하는 쪽으로만 움직일 것이다.

    미디어 구조조정의 정신도 자율이다. 각 매체들이 자유롭게 경영하고 경쟁하도록 하면 우리 미디어의 수준이 높아진다는 얘기다. 하지만 그 귀결은 뉴스캐스트 실패의 확장판일 것이다.

    유통업을 자율화하면 대형마트가 결국 슈퍼마켓까지 진출해 골목상권의 씨를 말려버린다. 대형마트의 이익추구는 우리 공동체의 공익이 되지 않는다. 지역 서민경제가 붕괴하고 자영업자들이 파트타임 비정규직으로 전락할 때 대형마트가 자율적으로 축적한 이익은 아무런 도움도 주지 않는다.

    모든 부문에서 그렇다. 자율적인 이익 추구는 파멸을 부를 뿐이다. 자유경쟁을 지상선으로 여기는 미국은 결국 서구 선발 산업국 중에 최악의 양극화 사회로 퇴락했다. 뉴스캐스트 실험의 실패는 현재의 자율화 기조가 실패할 것을 선구적으로 보여준 사례라 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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