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네 자식이 저기서 쉬어도 좋은가?"
    By 나난
        2010년 03월 03일 12:36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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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공서비스노동조합(위원장 이상무)을 중심으로 한 제 정당․노동․시민사회단체가 오는 3월 3일을 기점으로 미화-간병 노동자 등 여성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따뜻한 밥 한 끼의 권리’ 보장을 위해 캠페인을 시작한다.

    최저임금 수준의 저임금, 비정규직으로 인한 고용불안, 차별대우, 노동3권의 실질적 제약 등 근로조건 전반이 열악한 것은 물론 제대로 된 휴게공간조차 제공되지 못해 노동에 찌든 다리를 펴 보지도 못하고, 겨울이면 꽁꽁 언 밥을 뜨거운 물에 말아먹어야 하는 그들의 ‘빼앗긴 권리’를 되찾고자 하는 것.

    <레디앙>은 5회에 걸쳐 늘 우리와 함께 있으나,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그들. 그래서 ‘유령’이라 불리는 미화 노동자를 중심으로, 이들의 근로실태와 휴게공간의 문제점을 폭로하고, 이들에게 ‘따뜻한 밥 한 끼의 권리’를 되찾아줄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보고자 한다. – 편집자주

    노동자가 직장에서 보내는 시간에는 ‘근로시간’과 ‘휴게시간’이 있다. 근로기준법상의 근로시간은 ‘노동자가 사용자의 지휘, 감독아래 근로계약상의 근로를 제공하는 시간’이다. 휴게시간은 근로시간의 반대개념으로 임금도 지급되지 않는다. 식사시간은 대표적인 휴게시간이다.

    아침 9시에 출근해서 저녁 6시에 퇴근하는데도 하루 8시간 일한 임금만 받는 이유는 중간에 점심시간이 1시간 들어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식사시간에는 은행도 다녀올 수 있고, 다른 무엇을 하더라도 사업주가 뭐라고 할 수는 없다.

    법으로 보장된 당연한 권리

    휴게시간의 판단기준은 두 가지라고 한다. 첫째는 근로의 제공을 위한 육체적·정신적인 활동을 하지 않고 있는 경우이고, 둘째는 그 시간에 장소의 구애를 받지 않고 근로로부터 떠나는 것이 근로자의 권리로서 미리 보장되어 근로자가 이를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요건을 갖추어야 한다는 것이다.

    굳이 이런 개념이 필요한 이유는 ‘대기시간’ 때문이다. 일이 없어서 대기하는 시간의 경우 시간과 공간의 면에서 노동자가 자유롭게 일을 떠날 수 없다고 볼 수 있기 때문에 휴게시간이 아닌 것이다.

    근로기준법에서 이렇게 휴게시간을 명시하였다면, 노동자가 육체적·정신적으로 일을 하지 않을 수 있는 방안이 마련되어야 한다. 일로부터 떠나서 있을 장소가 필요해진다. 이 때문에 산업안전보건법은 휴게시설의 설치를 규정한다.

    산업안전보건법에서는 휴게시설의 설치 이유는 노동자의 신체적, 정신적 피로를 해소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며, 그 책임은 사업주에게 있다는 것을 명시하였다. 그리고 휴게시설에 대한 단서조항도 달아놓았다. 분진이 발생하거나 유해물질을 취급하는 장소로부터 휴게시설은 격리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산업안전보건법 산업보건기준에관한규칙 제 5 절 휴게시설 등제276조

    【휴게시설】①사업주는 근로자들이 신체적 피로 및 정신적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도록 휴식시간에 이용할 수 있는 휴게시설을 갖추어야 한다. ②사업주는 제1항의 규정에 의한 휴게시설을 설치하고자 하는 때에는 인체에 해로운 분진 등을 발산하는 장소나 유해물질을 취급하는 장소와 격리된 장소에 설치하여야 한다. 다만, 갱내 등 작업장소의 여건상 격리된 장소에 휴게시설을 갖추는 것이 불가능한 때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

    이와 같이 휴게시간이나 휴게시설은 법적으로 노동자들이 가진 권리라고 할 수 있다. 사실 필자는 법이 너무 어렵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혼자서 이런 법이 왜 만들어졌을까 그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봤다. 아마도 이러한 법이 만들어진 이유는 노동자가 기계가 아닌 인간이기 때문일 것이다.

    사람은 쉬지 않고 일할 수 없으며, 쉴 때는 제대로 쉬어야지 불편하게 쉬어서는 쉬지 않은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법속에 녹아있는 것 같다. 더 나아가 노동자가 눈치 보면서 쉬는 것은 쉬는 것이 아니므로, 휴게시간도 정하고 휴게시설도 마련해서 사업주 간섭 없이 편히 쉬라는 것이 본래 뜻이라고 보아도 좋을 것 같다.

    휴게실 설치는 인간에 대한 예의

    그런데 지난 2008년 필자가 민주노총과 함께 간병노동자의 실태를 조사하면서 가장 큰 문제로 느낀 것이 바로 ‘눈치 보지 않고 쉬고 먹는 문제’였다. 인터뷰 내내 노동자들은 잠깐만 쉴 수 있는 공간이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눈치 보지 않고 밥도 먹고, 잠깐이라도 눈을 붙일 수 있는 그런 공간만 있어도 사람 사는 것 같을 것이라고 말했다.

    “노동자에게는 일하는 공간 외에도 위생과 생리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화장실과 세면실, 옷을 갈아입는 탈의실, 휴식을 위한 휴게실과 의자, 깨끗한 식수, 밥을 먹을 수 있는 식당, 간단하게 운동을 할 수 있는 시설이나 공터 등이 반드시 필요하다. 노동자가 인간으로서 존재하기 위해 필수적인 행위나 욕구가 있으며 그것을 위한 공간을 제공하는 것은 인권적 측면에서, 복지의 측면에서, 안전 보건적 측면에서 요구되는 사업주의 책무이다.

       
      ▲ 고려대 병원 미화노동자들의 휴게공간인 비트실.(사진=이은영 기자)

    하지만 병원은 간병노동자를 고용한 것이 아니라는 이유로 필수적 시설의 제공의무를 기피하고 있다. 이러한 비인간적 이윤추구 방식이 우리사회의 병원에 널리 퍼져있다는 것은 심각한 문제이다. 우리 사회가 이러한 비도덕적 행위를 용납하는 동안 간병노동자들의 마음과 몸은 멍이 들고 있다. 간병노동자에게 식사란 너무도 한스러운 문제인 듯하다. 그들이 원하는 것에는 밥이 빠질 수 없었다.(민주노총, 여성노동자의 노동권과 건강권, 2009)”

    건물청소를 하는 미화원노동자들 역시 마찬가지이다. 그나마 휴게실이라고 만들어져 있는 곳이 계단 밑의 좁은 공간이거나, 지하의 보일러실 시끄러운 공간이거나, 남자 화장실의 ‘한 칸’이라고 한다.

    필자는 노동환경의 유해물질을 찾아내고 평가하는 산업위생을 전공하였다. 산업위생을 시작할 때 스승으로부터 해치(Hatch)의 세가지 질문을 배웠고, 후배와 학생들에게 그 질문을 가르쳐줬다.

    “저 노동자가 저기에서 일해도 좋은가? 네가 저기에서 일해도 좋은가? 네 자식이 저기에서 일해도 좋은가?” 여러분에게 묻는다. “간병인이나 미화원 노동자는 저기에서 쉬어도 좋은가? 너는 저기에서 쉬어도 좋은가? 네 자식이 저기에서 쉬어도 좋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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