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청와대 기획의제 vs 실종된 의제들
        2010년 02월 27일 03:56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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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종시’를 둘러싸고 여당 내 전투가 치열하다. 지난 22일부터 26일까지 열린 한나라당 의원총회는 한나라당 내 두 개 권력의 실체를 극명하게 드러냈다. 그리고 이와 함께 여권의 내분에도 불구하고 정국운영의 주도권을 빼앗아 오지 못하는 야권의 무기력함도 함께 노출하고 있다.

    우선 세종시 이전부터 한나라당 내 친이, 친박의 계파갈등은 이미 예고되어 있었다. 현재권력과 미래권력이 한 지붕아래 놓여졌고, 미래권력을 견제할만한 어떤 세력도 노출되지 못하는 상황에서, 한나라당 당 내 두 핵심세력으로 부터의 정국운영의 주도권 다툼은 필연적이다.

    세종시 아니라도 친이 vs 친박 충돌 있었을 것

    상존해 있던 불안요소가 ‘세종시’를 발화점으로 폭발한 셈이다. 조승수 진보신당 의원은 “세종시가 아니었더라도 충돌은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세종시는 노무현 전 대통령으로부터의 제안을 박근혜 전 대표가 한나라당 대표시절 당론을 통해 추인한 만큼, 노무현과 박근혜 등을 모두 견제할 수 있는 아이템으로 선택받은 측면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조현연 진보신당 정책위의장은 “세종시 이슈가 핵심 현안이 아니고, 민생에도 큰 도움이 안됨에도 불구하고 정치적 핵심 이슈가 되는 것은 그들의 대권 여부와 관계가 있다”며 “또한 세종시가 핵심 이슈가 되면서 이명박 정권의 지난 2년 정책에 대한 비판이 이슈화되지 못하는 반사이익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국정운영지지율이 50%에 육박하면서 자신감을 가진 이명박 정부가 첫 행동으로 세종시 수정에 돌입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민주당 세력이 지리멸렬한 만큼 이는 사실상 박근혜 전 대표에 대한 견제라는 측면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앞으로 어떻게 될까? 한나라당의 지난 달 25일 마지막 의원총회는 의원들의 토론을 마무리 지은 뒤 ‘중진협의체’를 구성해 당 중진들에게 의견을 묻는 방식으로 결론이 내려졌다. 그러나 마지막 의총장에 친박의원들이 대거 불참했고 3월 중순 정부가 세종시 수정안을 국회에 제출하면 불씨는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지난 끝장 의총 과정에서 깊어진 친박, 친이계 의원들의 감정의 골은 쉽게 메워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친이계 정두언 의원은 박근혜 전 대표를 향해 “(박 전 대표가)집권한다 그래도 그런 세상이 바람직한 세상이냐”며 직격탄을 날렸고, 친박계 의원들은 연일 정부에 의한 박근혜계 사찰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이미 건널 수 없는 강을 건넌 셈이다.

    이명박 개헌론 제기 배경

    여기에 이명박 대통령은 25일 개헌을 언급하면서 자연스럽게 박근혜 전 대표를 압박했다. 권력개편과 관련된 개헌 논의는 차기 대통령이 유력한 박 전 대표의 정치적 생존이 걸린 문제이기 때문이다.

    노회찬 진보신당 대표는 26일, <PBS>라디오와의 인터뷰에서 이에 대해 “세종시 문제가 현재의 권력과 또는 여권 내 차기 권력 후보자와의 어떤 싸움인 면이 있는 것이고, 개헌 문제는 차기 대통령의 임기와 연관되어 있는 문제”라며 “‘양수겹장’으로 협공하는 형상”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하지만 이번 갈등이 한나라당의 분당으로 이어질 가능성은 적어 보인다. 한나라당의 지지율이 안정적인데다가 변수로 작용할 만한 외부 세력이 없는 탓이다. 조현연 의장은 “친이계와 친박계가 폭발하겠으나 다른 정치지형이 짜여질 가능성은 낮다”며 “오히려 양 측이 시간끌기로 갈 가능성이 많다”고 말했다.

    어쨌든 한나라당의 이번 갈등 양상으로 안 그래도 위축된 야권의 위상은 더욱 추락했다. 밴쿠버 동계올림픽과 한나라당의 당내 갈등에 야권연대 뉴스는 이미 뒤로 밀린지 오래다. 특히 야권연대를 주도하고 있는 민주당이 안고 있는 한계로 야권의 연대자체도 삐걱거리고 있다.

    민주당은 자당 지방의원들이 다수를 차지한 광주와 전북지역에서 소수정당의 기초의회 진입을 막는 선거구 분할 획정안을 통과시켰고 이에 야권연대는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민주당 중앙당이 이를 조정할 능력이 없다고 스스로 자인해 버린 것이다. 이 때문에 야권연대가 성사되어도 민주당이 자당 주도가 아닌 지역에서 후보를 조정할 수 있을지, 다른 야당들은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다.

    청화대 기획 의제와 실종된 의제들

    또한 이번 친이 대 친박의 사투가 전체 정국운영의 판세를 좌우하면서 기타 정치적 의제는 실종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세종시 사안이 투표하는 시민들의 실생활에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이를 둘러싼 여당 내 사투가 서민생활과 직접적인 관계가 되는 ‘무상급식’ 의제를 가리는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보다 심각한 것은 ‘이명박 정권 심판’이라는 야권의 선거 쟁점이 약화되거나 사라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의제 쟁탈전에서 정권 심판론이 다시 수면 위로 부상할지는 불투명하다. 세종시와 개헌으로 이어지는 청와대를 중심으로 한 기획 의제들은 ‘장악된 언론’을 중심으로 유통이 되겠지만, 이 문제가 정치적 선택의 핵심 변수로 될지도 미지수이긴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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