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민연금으로 무상의료·무상교육을"
        2010년 02월 26일 11:31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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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나라 사람들이 생명보험회사에 갖다 바치는 돈이 1년에 88조원이나 된다. 그런데 국민연금에 낸 돈은 23조원으로 4분의 1 수준이다. 흔히 국민연금의 수익성이 낮다고 오해하지만 국민연금의 수익비는 1.8배나 된다. 수익비는 연금급여 총액을 보험료 총액으로 나눈 것인데 100원을 내면 180원을 받게 된다는 의미다. 직장 가입자의 경우 보험료의 절반만 내기 때문에 이 비율이 3.6배나 된다. 그런데 생명보험의 수익비는 0.7~0.8배 밖에 안 된다.

    놀랍지 않은가. 우리가 생명보험회사에 갖다 주는 돈 88조원은 정부의 복지지출 69조원 보다 많다. 민간보험에 집어넣을 돈의 절반을 세금으로 내면 복지지출을 두 배 이상 늘릴 수 있다는 이야기다. 민간보험에 내는 돈의 3분의 1만 모아도 모든 국민들에게 무상의료를 제공할 수 있다는 계산도 나온 바 있다. 각자 알아서 불확실한 미래를 챙겨야 하기 때문에 훨씬 더 많은 비용을 들이고 그 결과 보험회사 배만 불리고 있는 셈이다.

    지금까지 인용한 수치는 모두 2008년 통계인데 참고로 전체 가구 가운데 생명보험에 가입한 비율이 87.5%에 이른다. 절대적 빈곤층을 제외한 대부분의 가구가 생명보험에 가입돼 있다는 이야기다. 국민 한 사람이 평균 1.7개의 보험을 가입하고 있으며 1년에 내는 보험료를 평균 151만원에 이른다. 4인 가구로 치면 600만원이 넘는 셈이다. 생명보험 시장 규모는 우리나라 국내총생산(GDP)의 7.1% 수준에 이른다. 

    세계 최고 수준의 생명보험 의존도는 우리나라의 열악한 복지 시스템의 반증이기도 하다. 그 논란의 중심에 국민연금이 있다. 한때 국민연금이 고갈돼서 원금조차도 받을 수 없을 거라는 공포심리가 휩쓸었던 적도 있지만 언젠가부터 아예 관심 밖으로 밀려나 버렸다. 국민연금관리공단은 수익률 극대화에 주력하면서 주식투자와 해외투자를 늘리고 심지어 부동산과 사모펀드에까지 손을 대고 있다. 국민연금, 과연 이대로 좋은 것일까.

    사회공공연구소 오건호 연구실장은 26일 발표한 이슈페이퍼에서 기초 노령연금 현실화와 가입자 주체의 기금운용권 확보를 대안으로 제시했다. 오 실장은 "평균소득의 5% 수준에 머물러 있는 기초 노령연금의 급여율을 2028년까지 15%까지 높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오 실장은 "정부가 국민연금 급여율을 60%에서 40%까지 단계적으로 낮추기로 하는 대신 기초 노령연금을 높이기로 약속했으나 이 약속이 지켜지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오 실장은 "기초 노령연금을 받는 노인이 전체 노인 520만명의 70%인 360만명에 이른다"면서 "이들이 기초 노령연금의 효과를 체험하고 있는 만큼 초기 공론화만 성공한다면 노인들 뿐만 아니라 광범위한 대중적 지지를 얻어낼 수 있다"고 강조했다. 오 실장은 "우선은 국회를 압박해서 급여율을 현실화해야 하고 재원마련을 위해 사회복지세를 신설하는 방안도 검토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국민연금이 주식투자와 해외투자를 늘리고 있는 가운데 시민사회진영에서 마땅한 대안을 찾지 못했던 것도 사실이다. 오 실장은 가입자 연금주권 확보를 연금 공공성 운동의 핵심 과제로 제안했다. 지금까지는 재정안정화가 주요 이슈였지만 이미 급여율을 60%에서 40%로 끌어내린 상황에서 이 문제는 더 이상 큰 논란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천문학적인 규모로 쌓이게 될 기금을 어떻게 운영할 것인지가 더 중요한 이슈가 됐다.

    정부는 최근 기금운용위원회에서 가입자 대표의 비중을 대폭 축소하고 민간 금융전문가 참여를 늘리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전문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가입자 대표를 배제하고 철저하게 수익성 위주로 관리하겠다는 발상에서다. 오 실장은 "가입자들이 국민연금의 주체로 나서서 기금운용권을 확보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무작정 반대를 넘어 적극적인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진보진영에는 국민연금의 기금운용과 관련 두 가지 견해가 있다. 사회진보연대 등은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에 맞서 국민연금을 적립식에서 부과식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 사회공공연구소 등은 연금기금을 사회공공시설 투자에 활용하자고 제안하고 있다. 둘 다 국민연금이 금융시장의 불쏘시개로 전락하는 걸 우려하지만 한쪽이 아예 적립을 하지 말자고 주장하는 반면 다른 한쪽은 적극적으로 쓰자고 주장하는 차이가 있다.

    결국 천문학적인 기금을 어디에 쓸 것이냐가 관건인데 오 실장은 "국민연금의 사회적 투자란 환경과 사회, 지배구조(ESG: Environment, Social, Governance) 등 비재무적 요소를 감안해 기업에 투자하는 사회책임투자와 더불어, 기업에 대한 주식 지분투자를 넘어 직접 사회공공시설에 투자하는 사회직접투자까지 포함한다"고 설명했다. 오 실장은 "공공서비스의 인프라가 취약한 우리나라는 연기금의 역할이 어느 나라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오 실장의 대안은 결국 두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는 국민연금을 축소한 만큼 기초 노령연금의 급여율을 높여야 한다는 것이다. 필요하다면 새로운 세금을 만들어야 한다. 둘째는 기금운용이 수익성 논리에 매몰되지 않도록 가입자들이 주체적으로 참여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선은 기금운용위원회에서 가입자 대표의 비율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고 중장기적으로 국민연금의 사회적 투자를 늘려나가야 한다는 이야기다.

    이를테면 국민연금 기금을 동원해 보육시설을 늘리거나 무상급식이나 무상교육, 무상의료 등 보편적 복지혜택을 확대할 수도 있고 임대주택을 짓거나 도로와 철도를 확충하는데 활용할 수도 있다. 채권 수익률 보다 높으면서 복지와 일자리의 두 마리 토끼를 잡는 대안이 된다. 우리 다음 세대가 급격한 노령화의 부담을 견뎌낼 수 있도록 최소한의 사회안전망을 구축하자는 이야기다. 결국 핵심은 사회적 합의와 연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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