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데거와 김춘수, 그리고 '존재'
By mywank
    2010년 02월 19일 11:55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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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표지

“우선 ‘존재’와 ‘존재자’부터 해결해 보지요. 여기서 김춘수의 시가 큰 도움이 됩니다. ‘존재’를 ‘촛불이 열어 놓은 밝은 공간’으로, 그리고 ‘존재자’를 밝은 공간에서 보이는 ‘면경의 유리알, 의롱의 나전, 어린것들의 눈망울과 입 언저리’등으로 생각해 보세요.

이제 하이데거가 존재를 ‘밝히면서 건너옴’으로, 그리고 존재자를 ‘스스로를 간직하는 도래’라고 이야기한 것이 조금은 이해가되지 않을까요?” 11장 ‘밝음의 존재론- 하이데거와 김춘수’ 중에서

현대 철학의 주요 개념을 정리한 책은 많다. 하지만 철학이라는 학문이 워낙 난해해서, 아무리 쉽게 푼다고 해도 일반 독자들이 다가가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

하지만 최근 출간된 『철학적 시 읽기의 즐거움』(동녘, 강신주 지음, 16,000원)은 김수영, 도종환, 황동규, 이상, 기형도 등 우리나라 현대 시인의 시 21편을 통해, 복잡하게 느껴졌던 현대 철학의 주요 개념을 설명하고 있어 눈길을 끌고 있다.

시의 ‘감성 코드’로, 딱딱한 철학 설명

이 책의 특징은 현대 철학을 좀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시라는 ‘감성적 코드’를 사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네그리와 박노해를 통해 ‘다중’을, 바타이유와 박정대를 통해 ‘에로티즘’을, 호네트와 박찬일을 통해 ‘인정투쟁’의 주요 개념을 설명하는 등 새로운 접근방식을 시도하고 있다.

일례로 저자는 김남주의 시에 나오는 근면한 ‘어떤 관료’의 모습에서, 한나 아렌트의 저서에 나오는 유대인 학살을 지휘한 아돌프 아이히만을 떠올린다. 아프리카에서 식인종이 쳐들어와 우리나라를 지배한다고 해도 충직한 관료로 살아남을 ‘어떤 관료’는 이웃 아저씨처럼 근면한 아이히만이 유대인 학살의 전범이 된 것과 다르지 않다며, 한 편의 시를 통해 철학자의 사유 세계로 들어간다.

이를 통해서 현대 철학자들의 사유가 우리 현대 시인들의 시와 어떻게 자연스럽게 만나는지를, 철학자들이 고뇌했던 문제들이 우리 시인들이 고민했던 문제들과 다르지 않다는 점을 저자는 감각적인 문장으로 녹여내고 있다. 또 각 장 뒤에 ‘더 읽어볼 책들’에서 꼭 짚고 넘어가야 할 시집과 철학책을 소개하고 있는 점은 이 책의 ‘미덕’이기도 하다.

저자는 “‘철학적 시 읽기’란 높은 봉우리에 올라 우리의 삶과 인생을 조망해 볼 수 있는 새로운 시와 철학의 독법”이라고 말한다. 이 책에 담긴 21개의 ‘인문학적 봉우리’를 넘다 보면, 독자들은 자연스럽게 우리의 삶을 조망하게 될 것이다. 또 ‘그들만의 리그’라고 생각됐던 어려운 영화평이나 문예지의 글들도 술술 읽을 수 있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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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 강신주 

연세대학원 철학과에서 ‘장자철학에서의 소통의 논리’로 박사학위를 받았고, 2004년에 무위자연과 절대자유를 주창한 노자가 사실은 전체주의적, 국가주의적 사상가의 원조라는 주장을 담은 『노자: 국가의 발견과 제국의 형이상학』을 출간해 주목받았다. 현재는 2007년에 출범한 출판기획집단 ‘문사철(文史哲)’의 기획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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