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국은 과연 독재국가인가?
        2010년 02월 22일 09:19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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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너무도 ‘한국적인 시각’의 특파원들

    중국은 공산당이 60년간이나 장기집권하고 있는 국가이다. 그래서 많은 한국 사람들은 중국하면 박정희나 전두환과 같은 군사독재정권을 연상한다. 한국의 비교적 진보언론이라고 하는 매체들이 심심찮게 소개하는 중국의 해외 반체제 인사들의 글들도, 이런 한국인의 중국에 대한 선입견을 강화시켜준다.

    "2008년은 중국의 생사가 걸린 해였다. 2007년 말, 많은 학자들은 대규모 사회적 혼란을 예상했다. 관리들의 부패에 대한 백성들의 인내가 한계에 이르고, 현존 정치제도가 개혁되지 않는 데 대한 원성이 정부에 ‘조화로운 시간’을 허락하지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

    이것은 2009년 1월 17일자 한겨레신문 <세계의 창>이란 칼럼에 실린 중국 반체제 인사 저우창이(중국 월간 <당대> 편집인)의 글이다. 이 저자의 견해에 따르면, 중국은 2008년에 민중의 그간 누적된 불만 때문에 대규모 위기가 폭발할 가능성이 높았는데, 쓰촨성 대지진과 베이징 올리픽, 그리고 하반기의 세계적인 경제위기의 도래로 운 좋게 위기를 넘겼다는 것이다.

    이런 류의 칼럼은 사회적 현상을 설명하는 데 있어 지나치게 우연적인 논거에만 의지하고 있기 때문에, 사실 거론할 가치가 별로 없다. 하지만 이런 글이 한겨레신문과 같이 비교적 영향력 있는 진보매체에 올랐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많은 한국민에게 중국에 대한 부정적인 인상을 심어주기에 족하다.

    필자는 최근 또 다른 한국 좌파언론매체의 어느 한 중국 특파원이 쓴 글을 보았는데, "민주화투쟁과 계급투쟁의 결합이 두려운 중국지배자들" (‘레프트21’ 김용욱 기자의 중국현지 취재)의 제목 자체가 매우 선정적이어서 언뜻 지나치려던 필자의 시선을 끌기에 충분했다.

    어디서 입수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이 글을 쓴 특파원은 2008년 금융위기 때문에 중국에 4000만 명의 실업자가 발생했다는 소식 때문에 그 중심지격인 광동성 일대를 취재하기 위해 파견된 것 같다. 아마도 기대했던 선전이나 광동 일대의 노동자파업 현장을 목격할 수 없었던 탓인지, 이 글은 기사 제목과는 달리 홍콩자치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중국내륙과의 고속철도건설사업안에 대해 반대투쟁을 벌이고 있던 홍콩시위자와의 인터뷰 소식을 전하는 것이 내용의 전부였다.

    이렇듯이 필자가 보기엔, 위 ‘레프트21’의 기자를 포함하여 한국 언론의 많은 중국특파원들이 평소 매우 짙은 색안경을 끼고 중국을 바라보고 있는 것 같다. 그러다가 마침 우연히도 어느 수출 공장에 체불임금 때문에 시위가 발행하였다거나, 토지수용문제로 어느 지방도시에서 농민들이 집단시위를 벌였다든지, 또는 티벳이나 신강에서 소수민족 시위가 일어났다는 소식을 접하게 되면, 마치 자신들의 예단을 입증하는 양 대서특필을 하곤 한다.

    한국에서는 일상화된 시위인데…

    한국에서는 거의 일상적이다시피 하는 이런 시위나 파업들에 대해, 이들 특파원들은 중국의 전체 인구나 사회규모에 비추어 얼마만한 비중을 차지하는 사건인지 차분히 생각해 볼 여지도 없는 것 같다. 설령 그런 생각을 한다손 치더라도, "억압받은 상황이기에 이 정도이겠지?" 하는 식으로 넘어가는지도 모르겠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한 편에서 설명되지 않은 측면이 너무 많다. 먼저, 중국에 와본 사람이라면 느끼는 바지만, 중국의 도심에는 한국과는 달리 소위 ‘공안’이라는 경찰이 그렇게 많이 눈에 띄지 않는다. 그것은 평소의 천안문 광장에 가보면 쉽게 알 수 있는 일이다. 필자가 나중에 중국여행을 통해서 확인한 바지만, 이러한 사정은 지방도시나 농촌도 마찬가지다. 언제 일어날지 모르는 불만세력의 시위에 대처하려면 도심요소에 경찰병력을 배치하는 것이 필수적일 텐데도 말이다. 그렇다고 모두 ‘사복’으로 위장하여 시민들 사이에 잠복해 있는 것은 더더욱 아닌 것 같다.

    부정부패, 빈부격차, 일당독재에 의한 자유의 말살―이 같은 환경은 저항이 솟아오르기에 필요한 객관조건을 거의 다 갖추고 있는 것을 말한다. 필자가 80년대 경험한 바대로라면, 계급투쟁은 억압받는 속에서 더욱 격하게 솟구치게 마련이며, 위정자들이 억누른다고 해서 쉽게 수그러드는 것이 아니다. 더더구나 핸드폰 7억 대 보급이라는 수치가 말해주는 중국의 오늘날과 같이 개방화된 사회조건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필자가 보기엔 한국 내 일상적인 계급모순과 계급투쟁에 익숙해져 버린 특파원들의 ‘한국적 시각’이, 사실 너무도 평범한 이러한 중국적 사실들을 그냥 지나쳐버리게 하는 장애요인이 아닌가 싶다. 그렇다면 이들 한국 특파원들이 고대하고 있는 중국의 거대한 민주화와 계급투쟁이 폭발하지 않고 있는 진정한 이유는 무엇일까?

    2. 계급투쟁이 폭발하지 않는 이유

    중국은 사회주의 국가이면서 또한 시장경제를 실시하고 있는 나라이다. 시장경제를 실시하기 위해서는 공유제적 소유관계 외에 사적 소유관계도 함께 필요하며, 그러기에 노동자와 자본가간의 모순도 어느 정도 필히 존재하기 마련이다. 문제는 이러한 모순이 사회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어느 정도인가에 있다. 간혹 언론에 소개되는 중국 노동자파업이나 농민시위와 관련한 선정적인 현장사진 몇 장만 가지고서, 중국 내 계급투쟁이 격화되고 있다고 판단하는 것은 큰 오산이다.

    중국통계연감에 따르면 2006년과 2007년에 접수된 노동쟁의 수는 각각 317,162건과 350,182건이다. 이중 집단노동쟁의는 각각 13,977건과 12,784건 이고, 개별 노동자가 제소한 안건은 301,233건과 325,590건이다. 이들 노동쟁의와 관련된 전체 노동자수를 보면, 2006년과 2007년 각각 679,312명과 653,472명이었다.

    언뜻 절대 수치만 놓고 보면 상당히 많은 노동쟁의가 발생하고 있고, 관련된 당사자 숫자도 적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다시 2.8억 명에 달하는 도시노동자의 전체 수치에 대비해서 보면, 생각보다 그리 비중이 높지 않음을 알 수 있다. 2006년과 2007년 전체 도시노동자에 대한 노동쟁의 관련 노동자수 비율은 각각 0.24%와 0.23%다.

    위의 한 해 일만 건이 넘는 집단노동쟁의라 할지라도, 파업과 같이 고용주와 노동자간의 대립이 극단으로 치닫는 경우는 또한 그 중의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아래 표1의 노동쟁의 처리상황을 보게 되면 상황이 어느 정도 이해된다.

    표1 중국 2006~2007년도 노동쟁의 처리상황       (단위 : 건)

    년도 접수안건 중재화해 중재판결 기타 고용주 승소 노동자 승소 양자부분승소
    2006년 317162 104435 141465 64880 39251 146028 125501
    2007년 350182 119436 149013 71581 49211 156955 133864

    자료출처: 중국통계연감 (2008년도)

    중국의 사회주의 노동관계법상, 대부분의 노동쟁의는 공인된 사회단체의 중재에 의한 화해나 법원의 중재판결과 같은 방식으로 처리되는데, 위의 표1을 보면 이러한 중재결과가 대체로 어느 쪽에 유리하게 나타나는지 알 수 있다

     2006년 전체 해결된 노동쟁의 중 사용자승소 비율은 12.6%, 노동자승소 비율은 47%, 양자부분승소 비율은 40.4%이다. 다시 2007년의 경우를 보면, 이 비율들은 각각 14.5%, 46.2%, 39.4%임을 알 수 있다. 이처럼 법적인 중재결과가 전반적으로 노동자에게 유리하게 나오는 상황이기에, 노동자들은 파업이 아니고서도 어느 정도 자신의 권익을 보장받을 수 있다는 해석이 가능해진다.

    노동자에게 유리한 판결

    또 다른 예를 하나 더 들어보자. 지난 2008년 1월 1일에 시행되기 시작한 개정 신노동법을 보면 중국정부의 계급적 성향이 비교적 잘 나타난다. 대략 2억 명에 달하는 농민공이 대부분 일용직과 임시직으로 일하면서 그간 법적 보호에 취약한 상태에 놓여왔다. 또 한편으론 세계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비고용직 노동자의 증가추세가 최근 중국에서도 점차 새로운 사회문제가 될 조짐을 보여주었다.

    이러한 새로운 사회현상의 대두에 비추어, 신노동법은 고용주에게 노동자와의 노동계약에 관한 서면협정을 의무화하고 해고요건을 강화하는 등의 노동자권익을 상당히 강화하는 조치를 담았다. 이는 그간의 편향적인 성장일변도정책을 수정하면서, 노동자의 고용안정 확보와 임금인상을 통해 내수위주의 경제발전전략으로 선회하려는 정부의지의 중요한 표식의 하나로 해석할 수 있다. 참고로 신노동법 개정안의 주요내용을 몇 가지 소개한다.

    신’노동계약법’ 제7조와 제10조는 "고용단위는 고용일로부터 즉시 노동자와 정식적인 노동관계를 구축"하여야 하며, 이러한 계약은 "서면을 통한 노동협약형식"으로 하도록 되어 있다. 그리고 제14조 3항은 고용주가 고용일로부터 만 1년 동안 노동자와 서면 노동협약을 맺지 않는 경우 고용주는 노동자와 무고정기한(無固定期限) 노동협약(고용단위와 노동자가 협약종료시간을 확정하지 않은 노동협약)을 맺은 것으로 간주한다.

    그리고 노동자가 "본 고용단위에 연속하여 만 10년 근무한 경우"(14조 1항)과 "연속하여 두 차례 고정기한(固定期限)노동협약을 맺은 경우"(14조 3항)에 "마땅히 무고정기한 노동협약을 맺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일단 고용주와 노동자가 무고정기한 노동협약 관계에 들어서게 되면, 물론 고용주가 노동자와의 노동계약을 다시 중지하는 것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그러나 이에 따른 보상비용은 이전보다 커지게 될 것임이 분명하다.

    그러기에 이 법안이 전인대(全人大) 상무회의의 심의를 통과하였을 때, 많은 사용자들이 우려와 불만을 표시하였다. 이후 시행령을 통해 일정한 절충이 이루어지긴 했지만, 기본적으로 노동자들의 권한을 대폭 강화한 신노동법은 이제 실시된 지 2년이 지난 지금 이미 중국의 새로운 법적현실로 자리 잡아 가고 있는 듯하다.

    3. 중국식 독재정치

    한국 사람들은 중국을 ‘일당독재’ 국가라고 부른다. 그러면서 자칫 그것을 우리나라의 과거 박정희나 전두환 정권 때의 군사독재와 혼동하곤 한다. 여기서 한 번 생각해 볼 만 한 일이 있다. 중국 공산당의 당원 수는 현재 7천만 명, 아니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2009년 말 현재 7593만 명이다. 7천여만 명에 의한 일당독재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독자들은 곰곰이 따져본 적이 있는가?

    필자는 이런 계산을 해 보았다. 공산당원의 가족이 평균 3인이라 치면, 7600만 명Ⅹ3=2억2800만 명이 된다. 여기에 다시 가까운 친인척을 평균 3인으로 잡으면, 22800만 명Ⅹ3=6억8400만 명이 된다. 무릇 독재를 행하는 목적은 피독재자를 억압해서 무언가의 이득을 취하려고 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렇듯 가장 기본적인 이해 당사자들을 독재주체에 포함시키는 것이 옳다고 본다. 그렇게 되면 독재주체의 규모는 대략적인 계산만으로도 현 13억 중국인구의 절반을 넘어선다.

    이것을 우리는 독재라고 부를 수 있을까? 민주주의를 시행한다는 우리나라에서도, 국민들의 가장 중요한 정치적 결정의 하나인 대통령선거를 놓고 볼 때, 대부분의 경우 유권자의 절반도 안 되는 40%남짓의 1000만 표를 얻은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곤 한다. 즉 전체 5000만 한국민의 20%만 가지고서, 최고 국가원수를 뽑는 것과 같은 아주 중요한 의사결정이 이루어지고 있는 셈이다

    변증법에선 양적 변화가 일정한 한도를 넘어서면 질적 변화를 일으킨다고 가르친다. 중국 공산당이 단지 자신의 당원가족과 가장 가까운 친인척의 이해만 대변한다고 가정해도, 이는 벌써 전체 국민의 절반 이상의 이해를 대변하는 것이 되며, 이것은 이미 우리가 알고 있는 전통적인 독재의 의미를 뛰어넘게 된다.

    독재 주체가 구성원의 절반을 넘는데…. 과연 독재일까?

    만약 중국에서 공산당’독재’의 현실을 가장 절실하게 느끼는 세력이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아마도 개혁개방 이후에 일정하게 성장한 신흥 자본가계급이 될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현재 독자적인 정당을 결성하여 공산당에게 도전할 수 있는 정치적 권리를 법적으로 박탈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일지라도 이미 일찍이 공민으로서의 투표권은 인정받았을 뿐만 아니라, 지난 강택민 주석시기에는 "3개 대표론"을 통해 출신성분과 상관없이 그들에게도 공산당에 가입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하였다.

    즉, 공산당의 강령과 규약을 인정하고, 소정의 절차를 거쳐 입당신청을 제출한 후, 최소한 1년 이상 예비당원시기의 교육과 관찰기간을 거쳐 최종 심사를 통과하게 되면, 다른 계급 출신과 마찬가지로 정식당원이 될 수 있게 한 것이다. 하지만 이때는 이미 자본가계급의 대표로서가 아니라 일개 자연인의 신분으로서, 또한 정식심사를 통과한 "자격을 갖춘 당원"으로서 정치생활에 참여하는 것이기 때문에 의미가 달라진다.

    맑스주의는 국가의 본질을 계급독재 도구라고 본다. 때문에 계급이 완전하게 사라지게 되는 공산주의의 성숙한 단계에 가서는, 국가는 저절로 그 존재의미를 잃고 ‘소멸’하게 된다. (물론 여기서 소멸하는 것은 계급통치를 위한 국가의 억압적 성격을 말하며, 경제 및 사회생활을 위한 관리적 기능은 남게 된다.)

    맑스는 <고타강령비판>에서, 계급관계의 잔재가 아직 남아있는 공산주의의 낮은 단계(사회주의단계)의 국가에 대하여 이렇게 질문을 던진 적이 있다. "이리하여 한 가지 문제가 제기된다. 공산주의 사회에 있어 국가제도는 어떻게 변화하는 것일까? 바꾸어 말하면, 그때 가서는 현재의 국가직능과 비슷한 어떤 사회적 직능이 보존되어 남게 될 것인가?"

    레닌은 <국가와 혁명>에서 이에 대해, "맑스가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국가는 이미 원래 의미의 국가가 아니라, ‘소멸로 향하고 있는 국가’ "라고 해석했다. 우리는 흔히 ‘다당제’를 민주주의의 상징인양 생각해 왔다. 이해관계를 달리하는 여러 정당들이, 여당과 야당으로 나뉘어 정쟁을 격화하는 모습은 마치 민주주의가 발전하는 모습인양 착각을 준다.

    그러나 이러한 모습은 본질적으로 공유제라는 사회공동의 물적 토대가 없는 자본주의사회의 필연적인 분열상의 반영이다. 이러한 모습은 "소멸로 향하고 있는 국가"와는 거리가 멀다. 국가가 소멸로 향하기 위해서는 먼저 권력을 놓고 투쟁을 벌이는 정당수가 줄어들어야 하고, 결국은 모든 국민이 정파구분 없이 하나로 통일되는 방향으로 가는 것이 자연스러운 논리적 귀결이 아니겠는가? 이런 의미에서 볼 때 맑스와 레닌이 언급한 "소멸로 향하고 있는 국가"이론은, 비록 갈 길이 아직 멀기는 하지만, 우리에게 현재의 중국 정치제도를 이해하는 데 있어 한 가지 실마리를 준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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