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플잡', 또다른 비정규직 확산"
By 나난
    2010년 02월 18일 03:13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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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최근 출산․육아 등으로 경력 단절을 겪는 여성노동자들의 고용보장을 위해 ‘퍼플잡(purple job)’을 도입키로 한 것과 관련, 여성계와 노동계는 이를 또 다른 비정규직의 확산이라며 비판하고 나섰다. 유연근무제란 화려한 포장 뒤에 여성 고용보장을 위한 실질적 대안이 실종됐다는 지적이다.

지난해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여성가구주는 지난 1980년대 이후 꾸준히 증가세를 보이며 지난 2008년 22.1%로 증가했다. 여기에 한국은 여성 경제활동참가율이 54.7%로 터키, 멕시코와 함께 OECD 최하위을 기록하고 있으며, 그마저도 기혼여성 4명 중 3명은 비정규직이다. 

   
  ▲ 백희영 여성부 장관이 지난 12월4일(금) 오전 경희대 동서신의학병원을 방문해 간호사들과 간담회를 갖는 모습 (사진=정책공감 블로그)

출산 전후로 취업을 유지하는 비율 역시 13.5%에 그치고 있다. 산전 산후 휴가를 사용한 여성 노동자 중 육아휴직을 사용한 비율 역시 26%밖에 되지 않는다. 이렇듯 여성 가구주는 증가하는데 반해 여성 근로조건이나 사회진출은 세계 최하위를 기록하며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30대 초중반 여성의 경력단절은 임신과 출산, 양육이 원인이다. 수많은 여성이 직장과 가정을 양립하다 스스로 직장을 그만두는 가하면, 비정규직의 경우 고용불안을 이유로 산전 후 휴가나 임신․출산․육아와 관련한 휴가를 요구하지도 못하는 실정이다.

여성부, 퍼플잡 도입

이에 최근 여성부는 출산․육아 등으로 경력단절을 겪으며 노동시장에서 배제되는 여성노동자에게 시간제 근무제를 보장, 노동시간을 탄력적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퍼플잡(purple job)’ 제도를 도입키로 했다.

퍼플잡은 여성을 상징하는 보라색(purple)과 직업(job)을 합친 합성어로, 탄력적 근무제도를 도입해 일하면서도 직장과 가정을 모두 지킬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여성의 낮은 경제 활동률과 경력단절을 해결하겠다는 게 목적으로, 주 40시간인 법정 근무시간보다 일을 적게 하는 대신 보수와 경력은 일한 시간에 비례해 대우한다. 

하지만 퍼플잡을 놓고 노동조건 하락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크다. 여성 다수가 비정규직인 상태에서 탄력적 근무라는 이유로 오히려 비정규직만 더 확산시킬 수 있다는 것. 따라서 여성 고용 보장과 함께 일자리 질 상승이라는 대책 마련에 대한 주문이 잇따르고 있다.

지난달 국회에서 열린 ‘이명박 정부 여성고용정책 진단 및 대안 모색을 위한 토론회’에서 야당과 여성단체, 노동계는 “유연근무제가 남녀 간 성별 직업 분리를 강화하고 여성들이 저임금 일자리에 집중되는 현상을 초래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날 토론회에 참석한 이주영 이화여대 교수는 “여성이 시간제 근로를 하더라도 비율보상체제의 원칙에 따라 정규직 전일제 노동자와 같은 임금체계를 적용하는 한편 복지혜택도 차이 없이 제공해야 한다”고 말했다. 유연근무제를 이유로 비정규직과 정규직 간, 장시간 노동자와 단시간 노동자와의 차별을 초래해서는 안 된다는 지적이다.

"유연성과 차별성만 강화할 것"

유연근무제 시행으로 인해 승진 등에서도 차별이 발생할 수 있다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심재옥 진보신당 여성위원장은 “이명박 정부의 노동유연화 정책은 전체 노동자의 노동조건을 악화시켰던 만큼, 정책적 방향전환 없는 퍼플잡은 여성노동자의 유연성과 차별성만 강화할 것”이라며 “긍정적인 방향으로 시행되려면 고용·임금·근속·복지 등에서 차별받지 않도록 법령에 명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성화 민주노총 성평등미래위원회 담당자 역시 “장시간 일한 남성 정규직 직원과 단시간 일한 여성 직원 중 누구를 승진시킬 것이냐의 문제에서 답은 이미 나와 있다”며 “정부는 차별을 두지 않겠다고 하지만 근무평가에서는 차별이 존재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비판했다.

그는 또 “좋은 일자리라면 노동조건상 차별을 없애야 함에도 퍼플잡의 경우 취지는 좋으나, 제도 시행을 위한 대안은 전혀 없다”며 “정부는 여성에게 육아의 책임을 등 떠밀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보육공공시설이나 인력 충원 등이 이뤄진다면 굳이 여성들에게만 유연근무제를 적용할 필요가 없다”며 남성 역시 육아와 가사를 함께 담당할 수 있는 방안 마련을 주문했다. 

지난 한해 동안 여성 일자리의 10만3000개가 감소하는 등 20~30대 여성들의 고용문제가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이에 질 낮은 여성 일자리 창출을 넘어 여성의 사회적 역할을 강화하고, 고용의 질을 높이며, 출산과 육아의 책임을 정부와 기업, 남녀가 함께 공유할 수 있는 제도적 방안 마련이 지적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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