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없는 설득과 여론의 정치 필요
    2010년 02월 17일 05:42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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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돈문 가톨릭대 교수는 최근 노동계급의 시각에서 브라질 노동계급의 정치세력화와 룰라 정부의 경험을 분석하고 평가한 책 『브라질에서 진보의 길을 묻는다』(후마니타스)를 펴냈다.

저자는 룰라 정부의 경험이 보여준 것은, 노동계급이 노동계급 정당을 건설하여 정치세력화에 성공한다 하더라도 노동계급의 이익 실현이 담보되는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또 노동계급 이익의 두 축을 구성하는, 물질적 이해관계 중심의 당면 계급 이익과 생산체제 변혁을 지향하는 근본 계급 이익이 서로 갈등하는 모순적 관계에 있기 때문에, 양자를 동시에 실현하는 것은 어렵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따라서 노동계급의 정치 세력화가 당면 계급 이익을 중심으로 추진된다면, 집권하더라도 근본 계급 이익의 실천이 실종될 수 있는 것이며, 그것이 ‘집권 전략의 덫’이라고 말한다.

그는 최근 <레디앙>과의 인터뷰에서 "룰라가 집권했다고 열광하고, 변혁적 정책 펴지 않는다고 냉소하고, 쉽게 잊는 냄비 같은 반응을 버려야 한다. 우리는 브라질만큼 노동자 정치세력화 하기도 어려운 조건인데, 우리가 뭘 해야 하는지, 집권 이전에 뭘 준비해야 하는지 브라질에서 배울 수 있을 것"이라며 이 책 출간의 의미를 설명했다.

<레디앙>은 저자와 출판사의 동의를 얻어 이 책의 머리말과 4부 ‘평가와 함의’ 부분을 몇 차례에 걸쳐 나눠 싣는다. <편집자 주>

5) 한국 노동계급의 정치 세력화에 대한 함의

브라질 노동계급의 계급 형성과 정치 세력화 과정은 한국 노동계급과 공통점이 많다. 양국 모두 노동계급의 계급 형성과 정치 세력화를 주도하는 민주 노조 운동이, 군사독재 시기 국가와 자본의 비호 아래 어용 노조 조직체가 패권을 행사하던 상황에서, 투쟁을 통해 대안적 노동운동의 구심점을 형성하며 성장하기 시작했다.

결국 노동운동의 이중 구조가 형성되었고 조직 노동의 분열 속에서 민주 노조 운동이 주도하여 계급정당을 조직하고 노동계급 정치 세력화를 추진했다. 군사독재 시기가 끝나고 민주 정부가 수립된 이후 발발한 경제 위기 속에서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이 위기 타개책으로 집행되었으며,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이 정권 창출 과정의 정당성을 지닌 민주 정부에 의해 추진됨으로써 사회적 폐해에도 불구하고 국민적 저항을 이겨낼 수 있었다.

   
  ▲ 취재진에 둘러싸인 룰라 브라질 대통령

그러나 이런 유사성에도 불구하고 차별성 또한 작지 않다. 신자유주의 시기 이후 브라질에서는 노동계급 정당이 집권했지만 한국에서는 보수 우파 신자유주의 세력이 집권했다. 브라질은 노동자당의 집권으로 노동계급 정치 세력화에 성공했지만 한국의 경우 노동계급 정당 후보는 대선에서 2.3%를 득표하는 데 그쳤을 뿐만 아니라, 대선에서 패배한 이후 노동계급 정당이 분당 과정을 거치며 더욱 왜소해졌다.

국가권력 장악을 둘러싼 각축전은 브라질의 경우 신자유주의 세력과 반신자유주의 노동계급 정당이 경쟁하고 있는 반면, 한국의 경우 정치적 보수주의 경향을 지닌 강경 신자유주의 세력과 정치적 자유주의 경향을 지닌 온건 신자유주의 세력이 각축하고 있으며 노동계급 정당들은 주변화되어 있다.

이처럼 한국과 브라질의 노동계급이 유사한 구조적 조건에도 불구하고 노동계급 정치 세력화의 성과에서 큰 격차를 보인다는 점에서 브라질 노동계급의 경험은 한국 노동계급의 정치 세력화에 대해 시사하는 바가 많다.

노동계급 정치 세력화에 있어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의 폐해와 그에 대한 시민들의 불만이 자동적으로 계급 투표로 구현되어 노동계급 정당 집권의 길을 터주는 것은 아니다.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은 시민들의 불만을 증폭시키지만, 노동계급의 계급 형성에도 상당한 타격을 안겨 줄 수 있다는 점은 브라질의 경험에서 잘 확인할 수 있다.

신자유주의 영향으로 노조 위축

신자유주의 경제정책과 그에 따른 노동시장의 유연화로 인해 정규직의 비정규직화가 진전되고 노동자들의 고용 불안정이 증대되는 한편, 노동조합 활동에도 상당한 제약이 주어지게 되었다. 그 결과 노동조합 활동이 크게 위축되고 노동조합의 조직력과 내적 결속력이 약화되었다.

뿐만 아니라 경제 위기 상황에서 민주 정부에 의해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이 추진되면서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이 상대적으로 국민적 지지를 받기 쉬워졌고, 시민들이 시장 지배 질서를 내면화하게 됨으로써 노동자들을 포함한 전체 시민들의 의식이 전반적으로 보수화되었다. 그 결과 노동계급의 계급 형성은 진전될 수 없었고, 계급 형성의 구심점이 약화되면서 제 역할을 수행하지 못하게 되어 시민들의 불만을 계급 투표로 전환시키기 어려웠다.

브라질에서도 계급 투표 현상은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의 결과로 나타난 것이 아니라 좌파 정부 집권의 성과로써 나타났다. 따라서 정치 세력화의 성공을 위해서는 민주노총과 노동계급 정당들이 적극적인 실천을 통해 계급 형성을 진전시킬 것이 요구된다.

한국의 경우 전통적인 친시장 세력인 정치적 보수주의 기득권 세력에 자유주의 신자유주의 세력이 결합하면서 거대한 신자유주의 대동맹이 형성되어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를 확산시키며 반신자유주의 세력을 주변화시킬 수 있었다. 그 결과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에 저항하는 민주 노조 운동 세력을 사회적으로 고립시킴으로써 노동계급의 계급 형성과 정치 세력화를 더욱 어렵게 했다.

민주노총과 노동계급 정당들은 시민들의 불만과 반신자유주의적 요구들을 조직화하면서 반신자유주의와 진보적 대안을 중심으로 국민적 합의를 형성해 가야 한다. 이를 위해 설득의 논리를 통한 영향의 정치가 요구된다. 뿐만 아니라, 정치 세력화를 위해서는 브라질 노동자당의 참여 예산제와 같은 성공 사례들을 중심으로 통치 모델을 만들어 통치 능력을 시민들에게 각인하는 작업도 병행되어야 한다.

브라질의 경험은 노동계급 정당의 집권으로 노동계급의 정치 세력화가 완성되는 것이 아님을 확인해 주었다. 노동계급 정당이 집권한다고 해서 사회주의 국가가 형성되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 정부도 여전히 자본제 국가에 불과하며 변혁적 정책을 수립‧집행하는 과정에서 많은 제약들에 직면하게 된다는 것을 룰라 정부의 경험은 잘 보여 준다.

시민들이 노동계급 정당 혹은 좌파 정당을 선택할 때는 정치경제적 변화를 최소화하는 정책 대안들로는 해결할 수 없을 만큼 구조적 조건이 악화된 뒤다. 즉, 악화된 구조적 조건들이 노동계급 정당의 집권을 가능하게 한 만큼 집권 후 수립‧집행할 수 있는 정책 대안들의 범위도 상당 정도 제한되는 것이다. 대중적 요구와 재정 건전성 과제 사이에서 딜레마에 빠지는 복지국가의 문제점들이 좌파 정권 출범 시에는 극대화된 형태로 나타나는 것이다.

집권이 끝 아니야, 딜레마의 시작

이런 구조적 문제들을 극복한다고 하더라도 더 큰 제약을 만나게 된다. 사유재산제와 절차적 민주주의는 자본주의사회의 정치경제적 질서와 안정성의 기초를 이루는 부르주아 민주주의의 절대적 원칙들이다. 의회주의를 거부하고 동원의 정치를 통해 은행 및 기간산업 국유화를 추진하는 변혁 시나리오가 위기에 봉착할 수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룰라 정부의 경험이 확인해 준 것은 좌파 정권이 변혁 정책을 수립하여 성공적으로 집행하기 위해서는 노동계급의 계급 형성이 진전되어야 하며, 계급 존재 양식을 개혁적‧사민주의적 양식에서 변혁적‧사회주의적 양식으로 전환하여 변혁적‧사회주의적 계급 형성을 이룰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노동계급의 정치 세력화 과정에서 단순한 집권 프로젝트가 아니라 사회‧통치 프로젝트를 수립하여 집권 전략을 규정하고, 집권 후 정부에 의해 통제되는 것이 아니라 변혁적 정책들을 집행하도록 정부를 압박하는 한편 변혁적 정부를 방어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정부는 개혁주의에 매몰되지 않고 비개혁주의적 개혁을 실천함으로써 제도 변화의 축적을 통해 체제 이행의 기초를 마련하는 한편 이행 주체의 형성도 진전시킬 수 있다.

노동계급 정부가 국유화를 포함한 변혁적 정책을 실시하더라도 부르주아 민주주의는 좌파 정부의 변혁을 불가역적인 것으로 치부하지 않는다. 법 제도 및 재정 자원의 제약과 국민 여론의 설득 문제는 국유화를 어렵게 하지만 사유화는 쉽게 이루어진다는 것을 까르도주 정부와 룰라 정부가 잘 보여 주었다.

사유재산제는 부르주아 민주주의의 핵심 원칙이고 의회정치는 의석의 게임이다. 따라서 사유재산제 원칙에 입각하여 다수 의석의 힘으로 국유화된 기업들을 재사유화하는 일은 언제든 일어날 수 있다. 노동계급과 연대 세력들의 동원만으로 재사유화를 저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국민 여론을 향한 설득과 영향의 정치가 요구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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