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방송장악 '끝내기' 수순과 MBC 사태
        2010년 02월 17일 02:21 오후

    Print Friendly

    마침내 완료됐다. 지난 2월 8일 MBC 엄기영 사장의 사퇴와 함께, 지난 2년여에 걸친 이명박정권의 부단한 방송장악 계획은 최종 마무리됐다. 하지만 그 과정은 엄청난 무리수로 얼룩진 것이었다. 내용과 절차 측면에서의 정당성은 현저히 낮았으며, 지난 2년간 크고작은 사회적 저항이 그치지 않은 것은 그 반영이라고 할 수 있다.

    2008년 5~7월 촛불저항 직후 방송장악의 포문을 연 것은, 같은해 7월 박재완 국정기획수석이 KBS를 예로 들며 "방송의 중립성 측면도 고려해야 겠지만, (KBS 사장은) 새 정부의 국정철학과 기조를 적극적으로 구현하려는 의지가 있는 인물이어야 한다"고 밝히면서부터다. 이는 이명박정권 아래에서 방송은 ‘국가권력의 피아노’가 돼야 한다는 것을 처음으로 공개 천명한 것에 해당한다.

    권력을 위한 멜로디만 연주하라?

    여기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이명박정권의 방송관이 한국사회 역대 군부독재 정권은 물론, ‘옛 사회주의국가’들을 그대로 빼박았다는 점이다. 바로 ‘도구주의적(instrumental) 방송관’이다. 특히 두차례의 자유주의적 민주정부 10년을 ‘잃어버린 10년’으로 규정하고 좌파 척결을 내세우고 있는 현 정권의 행적에 견줘볼 때, ‘내가 하면 로맨스요,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식의 이중잣대를 들이대지 않는 한 이는 자가당착이나 마찬가지다.

    문제는 이같은 행태가 선진국 진입이니 G20의 주도국이니 하며 한국사회의 한단계 업그레이드를 온 국민에 촉구하는 정권에서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적어도 언론자유의 역사에서 볼 때 ‘국정철학을 구현하는 방송’이라는 도구주의적 방송관은 역사에 후진기어를 넣는 것에 해당한다. ‘저널리즘’이란 용어가 사전에 등재되기 시작한 때는 언론이 정치권력을 비판할 수 있게 된 이후였다. 학계에서 그 시기는 1830년대 이후 서구에서 대중신문 시대가 열림에 따라 신문이 그동안 후견자였던 정치세력으로부터 독립을 유지하면서부터로 보는 게 일반적이다. 곧 언론이 정치권력의 행위를 포함한 현실 비판의 자율성을 발휘할 수 있는지에 따라 역사에 등장한 것이 저널리즘이란 개념이다. 이에 비춰보면 도구주의적 방송관의 저널리즘은 ‘非저널리즘’에 다름아니다.

    ‘자유민주주의’와 상극이라 할 수 있는 이런 도구주의적 방송관이 1987년 6월항쟁 이후 정치적 민주화를 만끽해온 한국사회에서 수용되기란 쉽지 않았다. 이럴 경우 흔히 동원되는 것이 바로 국가권력의 ‘폭력’이다. 자본주의를 탄생시킨 시초축적 과정이 ‘피와 오물’을 쏟아내는 폭력의 역사였던 것처럼, 도구주의적 방송재편 과정 역시 마찬가지이다.

    방송장악 위해 총동원된 방통위·감사원·검찰

    촛불저항 이후 이명박정권이 방송에 행사해온 폭력은 두개의 축으로 이뤄져 있다. 하나는 방송통신위원회와 감사원, 검찰이 총동원돼 정연주 사장에게 ‘배임’혐의를 씌워 축출한 것이다. 법원의 법인세 및 부가가치세 환급조정 권고안을 정사장이 수용한 것에 배임혐의를 씌운 이 폭력은 법원으로부터 조롱거리가 됐으나, KBS는 이병순-김인규로 이어지는 관제방송 체제로 굳어졌다. 정당성 없는 폭력의 도구주의적 효과는 극대로 달성된 것이다.

    다른 하나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MBC를 겨냥한 집요한 폭력이다. 2008년 6월 26일부터 이명박정권은 MBC <PD수첩>이 "고의로" 미국산 쇠고기의 광우병 위험 보도를 왜곡·날조했다고 비난했다. 그해 7월에는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시청자 사과명령, 검찰의 수사가 이어졌다. 결국, 그해 8월 MBC 경영진은 시청자 사과명령을 수용했다. 폭력에 굴복한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시작일 뿐이었다. 정권 차원에서 <PD수첩>에 대한 형사소송 및 민사소송을 제기했기 때문이다.

    그뿐 아니다. 2008년 9월부터는 법제 개편을 통한 ‘MBC 죽이기’가 노골화하기 시작했다. 한나라당 차원에서 MBC 사영화(私營化)가 공공연하게 논의됐고, 한국방송광고공사(KOBACO) 체제를 붕괴시켜 방송광고 판매 측면에서 MBC를 ‘배후조정’하겠다는 의도를 드러냈다. 결국 이런 법제 개편의 윤곽은 2008년 12월 한나라당이 마련한 방송법·신문법 개정안의 국회 날치기 기도로 현실화했다. 이 과정에서 MBC는 저항의 선두에 섰고 날치기 기도는 물거품이 됐다. 2009년 3월부터 4월 사이에 MBC와 <PD수첩>에 쏟아진 방송통신심의위의 보도프로그램 무더기 징계, 이춘근 김보슬 PD 체포, 두차례에 걸친 MBC 압수수색 기도, 신경민 앵커 경질 등은 이에 대한 ‘보복’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보복성 징계, 체포, 경질 이후 경영진 흔들기까지

    하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MBC 경영진은 그대로였다. 정권의 압력에 부분적으로 무릎을 꿇기도 했지만, 방송의 자존심은 훼손되지 않고 있었다. 2009년 7월 MBC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 이사회의 새로운 구성은 이에 대한 변화를 줄 수 있는 계기였다. 방문진 새 이사회에는 예상대로 김우룡, 최홍재 등 뉴라이트 출신들이 포진되어 MBC 경영진 흔들기에 나섰다. 2009년 8월부터 이들이 폈던 논리들을 살펴보면, 정연주 사장에게 배임혐의를 씌웠던 것과 비슷한 온갖 무리수로 가득하다.

    김우룡 이사장을 포함해 ‘뉴라이트 방송문화진흥회’가 쏟아낸 말을 종합하면, ‘MBC 사장 임기보장이 원칙이지만 경영실패에 대해선 방문진이 책임을 물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문제는 ‘경영실패’의 내용이 무엇이냐는 건데, MBC야 많지는 않지만 흑자를 기록해오는 등 수치를 가지고 꼬투리를 잡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찾아내 동원하는 논리가 프로그램의 편성도 경영에 포함된다는 것이고, 이 기준에서 조작·날조된 프로그램에 대한 관리감독을 소홀히한 책임을 물어 엄사장을 해임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 연장선에서 경영권의 핵심에 인사권과 편성권이 있는데, MBC 노조가 이를 침해해왔다고 주장했다.

    이명박정권이 MBC에 대해 가장 마음에 들지 않는 게 이른바 정부정책에 대한 비판과 사회고발, 비리추적 같은 저널리즘 기능이라는 것은 지금까지 확인된 사실이다. 문제는 방문진이 이에 대해 개입할 근거가 없다는 것이고, 그러자 찾아낸 게 바로 편성과 편집도 경영에 포함된다는 논리였다. 그러면 편성과 편집을 포함하는 경영에 대한 관리감독 소홀을 ‘경영실패’로 규정해 엄사장 해임을 밀어붙일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엄기영 사장을 비롯한 경영진을 흔들기 위해 편성과 편집의 자율성을 송두리째 부정하는 논리를 뉴라이트 방문진이 앞장서 설파한 것이다.

    ‘뉴라이트 방문진’의 거침없는 활약?

    이 과정에서 <PD수첩>의 미국산 쇠고기 광우병 의혹 보도는 뉴라이트 방문진의 ‘전가의 보도’였다. 김우룡 이사장은 "MBC의 경우 일부 프로그램의 조작, 날조된 내용을 유포해 국민들의 불안을 조성했음에도 경영진이 어떤 조치를 취했는지 확인하는 일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나 법원의 판결은 뉴라이트 방문진이 원하는 것과는 달랐다. 서울중앙지법은 2010년 1월 20일 명예훼손, 업무방해 관련 형사소송 1심 판결에서 <PD수첩> 제작진 5명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그러자 방송통신심의위는 ‘4대강과 민생예산’을 주제로 한 <PD수첩> 보도에 대해 1월 28일 검증과 확인이 부족하다는 억지 이유를 내세워 징계를 내렸다. 이에 따르자면, 앞으로 모든 방송보도에서 ‘합리적인 의혹 제기’는 불가능할 수밖에 없다. 또 한차례 방송통신심의위가 방송보도에 재갈을 물린 것이다.

    결국, 엄기영 사장은 지난 2월 8일 사퇴했다. 여당추천 이사 6명만 참석한 채 열린 이사회에서 엄사장이 추천한 인사들이 아닌 다른 사람들로 MBC 이사들을 선임했다. 이에 대한 항의의 뜻으로 엄사장은 사퇴했다. 이는 뉴라이트 방문진, 아니 이명박정권이 MBC의 보도제작을 장악했음을 뜻한다. 그 결과는 어떨까? 이병순-김인규 이후 KBS가 걸어가는 길을 보면 될 것이다. <PD수첩> 등 기자나 PD가 의제설정 및 의제해설을 적극적으로 담당해온 기능이 현격히 축소되거나 사라질 것이다. 의제설정과 해설이 필요한 자리에 기계적 균형과 형평이 들어설 것이다.

    그럼에도, 언론 분야는 이명박정권이 유일하게 ‘선진화’라는 말을 드러내놓고 사용하지 못하는 영역으로 정권 내내 남을 것이다. ‘선진화’라는 낯 뜨거운 용어가 통용되기엔 지난 2년간 저질러진 불법과 폭력의 기억이 여전히 생생하기만 하다. 국회에서 재논의하라는 헌법재판소의 언론법 관련 결정에 대해 한나라당은 재논의는커녕 후안무치하게도 ‘쌩 까는’ 태도로 일관했다. KBS 장악을 위한 신태섭 이사(현 동의대 교수) 해임은 물론, 정연주 사장 해임에 대해서도 법원은 몰상식을 외면했다. 사법부는 <PD수첩>의 보도를 상식적으로 봤지, 정권이 바뀌었다고 미국산 쇠고기의 광우병 의혹이 흔적도 사라지는 조·중·동의 보도태도와는 거리를 뒀다.

    방송은 불법과 폭력에 맞서 치열한 교전중

    지금은 사법부가 상식과 비상식을 사실상 구분하는 최종심급이 된 ‘더러운 세상’, 민주주의의 운명을 사실상 좌우하는 최후의 보루로 기능하는 ‘더러운 세상’, 그렇기에 사법부 장악을 위해 몰상식한 세력이 온갖 추태를 보이는 ‘더러운 세상’일지 모른다. 하지만 ‘역사의 재판정’은 불법과 폭력으로 얼룩진 세상에서 교두보를 마련하고 있다. KBS에서는 지난해 12월 관제방송에 저항하는 새로운 노동조합이 설립됐으며, MBC 노동조합은 방송장악에 맞선 치열한 교전을 벌이고 있다.

    설사 이것이 패배하더라도 이전의 기억을 또렷이 간직하는 수많은 구성원들이 남을 것이다. 그렇기에 이런 MBC 구성원들, KBS 구성원들, 그리고 상식있는 시민세력의 지칠 줄 모르는 감시와 비판 활동을 통해 ‘제대로 된 기억’은 훨씬 더 풍부해질 것으로 믿어 의심하지 않는다. 그리고 남을 것이다. 이명박정권에는 ‘방송 장악사’, 방송 구성원에게는 ‘방송 투쟁사’, 상식있는 시민에게는 ‘방송 잔혹사’로서. 현재진행형인 이 싸움을 자신의 존재를 건 싸움으로 부둥켜안지 않는 야당은 선거 승리의 필요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하는 정당일 것이다. 6월 지방선거 이후로도 죽.

    * 이 글은 <주간창비논평>에 실린 글입니다.

    필자소개
    레디앙
    레디앙 편집국입니다. 기사제보 및 문의사항은 webmaster@redian.org 로 보내주십시오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