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과 이념을 버린 다음
By mywank
    2010년 02월 16일 08:46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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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지에서 일하며 양지를 지향하는 그들을 일컬어 국가정보원이라고 하고, 가족에게조차 자신이 무슨 일을 하는지 밝히지 못해 걸핏하면 배우자에게 추궁 받다가 버림받기도 하는 그들은 7급 공무원이란다.

   
  ▲ 영화 <의형제> 포스터

냉전이 종식된 시대에 이데올로기로 갈라졌던 민족이 여전히 지속되는 분단을 겪으며 서로에게 총구를 겨누도록 만드는 동안 단일민족국가는 다민족 다문화 사회로 바뀌어 있다. 이제 이데올로기 대결이 아니라 이데올로기의 그림자가 드리우는 위협이 문제가 되는 세상이다.

그 어두운 ‘그림자’가 남한 사회에 스며들어 탈북자를 처단하고자 하고, 남한의 국가정보원은 그런 그림자를 잡아내 공을 세우고자 감시와 추적의 고삐를 조이고 있다. 이런 남파공작원과 국가정보원 사이에 한민족으로서의 형제애가 들어설 자리는 없다. 그러나 한쪽의 기밀이 누설되어 덫에 걸리고, 덫을 놓았던 다른 한쪽의 작전이 실패하면서 북파공작원은 버림받았고, 국가정보원은 내쳐졌다. 그 둘의 기막힌 사연을 통해 장훈 감독의 <의형제>는 한국 사회의 초상을 그려낸다.

버림받은 공작원, 해고된 방첩원

덫에 걸려 배신자로 오해받고 버려진 북파공작원 송지원(강동원)과 모처럼 크게 공 한 번 세워보려다 직장도 잃고 가족도 잃은 국정원 팀장 이한규(송강호)는 작전이 실패해 더 이상 공적인 대결의 장에 나설 수 없게 된 신세다. 그러나 분단이 지속되는 사회에서는 이들의 인연은 결코 끝나지 않는다.

냉전 이데올로기의 그림자가 벌인 피비린내 나는 살육의 현장에서 각자 공적인 신분을 잃게 된 지원과 한규는 6년이라는 세월이 지난 다음에 외국인 노동자와 국제결혼으로 여러 민족이 스며들어 있는 한국 사회의 어두운 그림자 속에서 다시 만난다. 도망간 베트남 신부를 잡아주고 받는 수수료로 먹고 사는 한규가 무모하게 일을 벌이다 위험에 처했을 때 베트남 노동자들 사이에 섞여 고단하게 살아가던 지원이 나타나 구해주는 기막힌 우연 때문이다.

자신은 상대를 알지만 상대는 자신을 결코 알지 못하리라고 생각하면서 이 둘이 함께 지내며 일하게 된다. 한규는 예전에 못다 세운 공을 마저 세워 한몫 챙기려는 속셈으로, 지원은 공장에서 일하는 것보다 좀 더 많은 돈을 벌어보겠다는 계산으로.

그러니까 이들은 이제 각자의 조국과 이념에 대한 충성심 때문에 대결하는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 사회에서 오직 ‘돈’으로 해결될 수 있을 문제 때문에 서로를 이용하고 감시한다. 그 절박한 문제는 무엇보다도 가족이다.

빈 자리를 채운 것은 돈

한규도 지원도 각자 나라를 위해 일하느라 가족과 헤어졌고, 돈이 없어 가족과 만나지 못하는 신세다. 이 둘에게 가족, 특히 자식은 무슨 짓을 해서라도 지키고 싶고 만나고 싶은 존재다. 그리고 이 아이들은 한규와 지원의 삶의 목적일 뿐 아니라 희망이다. 그 아이가 머나먼 영국에 있든, 장벽 너머 북한에 있든. 가족과의 이별로 겪는 외로움과 아이를 반드시 지키고자 하는 간절함은 이데올로기를 넘어 둘 사이에 공감대를 만들어낸다.

   
  ▲ 영화의 한 장면

그러나 둘 사이에 어떤 식으로 형제애가 싹이 트든 말든 한국 사회에는 여전히 짙게 드리워 있는 분단의 그림자는 그저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게 되었다는 것만으로 해결될 수 없는 두터운 장벽이다. 각자의 존재를 인정하면서는 절대 공존할 수 없는 한계상황을 넘어서기 위해서는 목숨을 걸어야 한다.

<의형제>는 이 지독한 현실을 아주 사실적으로 그려내면서도 이상적인 사회를 꿈꾸게 하고, 피비린내나는 싸움을 겪어내면서도 그 과정에서 웃게 만들고, 그 우스꽝스러운 싸움을 날카롭게 비판하면서도 따뜻하게 보듬어보도록 한다. 코미디와 느와르, 첩보물에 사회 드라마까지 여러 장르의 영역을 누비면서도 영화가 산만하게 흩어지지 않는 까닭은 영화가 들추어 보이는 세상의 현실성 때문일 것이다.

코미디 + 느와르 + 첩보물 + 사회물

과장되지도, 왜곡되지도 않은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군더더기 없이 잡아내서 과감하게 편집한 연출의 의도가 관객의 마음을 건드리며 함께 공감하도록 만든 송강호와 강동원 두 짝패의 어울림은 하드 보일드한 버디 무비와 가슴 뭉클한 남성 신파 사이를 누벼 긴장과 웃음을 만들어낸다.

분단을 배경으로 한 영화의 계보를 잇는 <의형제>는 체제 대립이라는 종적 현실에 대해서는 좀더 느슨해지고, 다문화 다민족 사회라는 횡적 현실에 대해서는 보다 열린 시선으로 둘러본다는 점에서 새로운 길을 여는 영화다.

그러나 그 길은 아직은 한국 사회 안으로 나지 못하고 어딘가 다른 곳을 향해 날아가야 하리라는 한계는 넘어서지 못한다. 의형제로 거듭난 한규와 지원 둘이 밝게 웃는 모습을 보면서도 마음 편히 함께 웃을 수 없는 까닭은 분단이 대중적인 오락의 소재이면서 여전히 차가운 현실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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