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인의 논객들 '노회찬'을 켜다
        2010년 02월 13일 11:23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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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몇 차례인가 런던시장을 지낸 켄 리빙스턴은 타블로이드판 무가지 <이브닝 스탠더드>에 런던 맛집평을 연재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켄 리빙스턴은 ‘붉은 켄’(좀 더 한국적인 표현으로는 ‘빨갱이 켄’)이라는 별칭이 따라붙을 정도로 영국의 대표적인 ‘강경’ 좌파 정치이다. 하지만 그는 입맛과 런던 사랑이라는 공감대를 통해 런던의 보통 시민들에게 말을 걸고 그들과 어울리려 한 것이다.

    나는 나의 고용주 격인 노회찬 진보신당 대표와 간혹 회식 자리를 가질 때마다 이 사실을 떠올리곤 한다. 우선은 서울 이곳저곳의 숨은 맛집에 대한 그의 안목과 정보가 예사롭지 않아서다. 또한 켄 리빙스턴과 노회찬의 이미지가 비슷해서이기도 하다. 외모 이야기를 해서 좀 뭣하기는 하지만, 둘 다 이마가 훤한 진보 정치인이다.

    게다가 최근 노 대표는 런던만큼이나 거대한 메트로폴리스인 서울의 시장 후보로 나섰다. 이 역시 전 런던 시장 켄 리빙스턴을 연상케 하는 요소다. 그래서 나는 노 대표가 서울 시장 후보로 나서면서 ‘서울의 맛집 기행’ 류의 책으로 사람들을 놀라게 하지 않을까 은근히 기대해보기도 했다.

       
      ▲책 표지. 

    한데 정작 우리를 놀라게 한 것은 ‘맛집 칼럼니스트 노회찬’이 아니라 ‘첼로 켜는 노회찬’이었다. 이번 주에 서점에 깔린, 노회찬과 홍세화 등 8인의 논객들의 대담집 『진보의 재탄생 – 노회찬과의 대화』는 첼로를 연주하는 노회찬 대표의 흑백 사진을 책의 얼굴로 내세웠다.

    사뭇 격조 있는 표지다. 왠지 파블로 카잘스나 므스티슬라브 로스트로포비치의 레코드 재킷 같기도 하고, 그래서 서점보다는 레코드 가게에 더 어울릴 것만 같다.

    정치인 노회찬이 어렸을 때 첼로를 배운 적이 있다는 이야기는 이미 어느 정도 알려져 있지만, 이렇게 아마추어 첼로 연주가의 모습으로 사람들에게 다가갈 줄은 몰랐다.

    맛집 이야기처럼 발랄하지는 않지만, 신선하기는 하다. 선거철 앞두고 정치인들이 대담집 형식으로 책을 내는 것은 이미 선거 출마의 정해진 코스처럼 되어 있다.

    따라서 『진보의 재탄생 – 노회찬과의 대화』도 그렇게 진부하게만 여겨지기 쉬웠을 것이다. 하지만 대한민국 정치인의 모습으로는 아주 낯선 이 책의 표지 사진은 이러한 진부함을 확실히 효과적으로 상쇄해주고 있다.

    8인이 불러내는 8색의 노회찬

    그러나 진부함과의 거리를 벌리는 것은 그것만이 아니다. 노 대표에게는 좀 미안한 이야기이지만, 서점가에서 ‘노회찬’이라는 이름보다 훨씬 호소력 있게 다가오는 이름들이 저자의 명단에 올라 있다.

    저 전설의 <딴지일보> 총수 김어준이 있고, 홍세화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편집인도 있다. ‘낙양의 지가’를 올리는 저자 진중권, 우석훈의 이름도 보이고, 저돌적인 정치경제 논평으로 꽤 알려진 홍기빈, 20대의 젊은 논객 한윤형도 참여하고 있다. 영화감독 변영주가 대담자로 함께 한 것도 인상 깊다. 이들이 각기 한 장씩을 맡아서 노회찬과 대화를 나눈다.

    첼로 켜는 노회찬의 이미지를 떠올려 비유하자면, 이들이 노회찬과 나눈 대화는 마치 실내악, 즉 두 서너 악기의 합주와도 같다. 단지 두 악기가 서로 만났을 뿐인데도 거기에서는 한 악기만 연주할 때와는 완전히 다른 차원의 음의 세계가 펼쳐진다. 이게 합주의 묘미다.

    좋은 대화도 이와 같다. 좋은 대화는 서로 홀로 있을 때에는 미처 생각하거나 그려볼 수 없었을 진리와 상상이 돌연히 피어나게 한다. 좋은 대화 가운데 내 입에서 나오는 말들은 내가 하면서도 나를 놀라게 하는 말들이다. 이것은 나와 너가 열어놓는 새로운 세계다. 서양 철학의 ‘변증법’이 그리스어의 ‘대화’에 그 어원이 있는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일 것이다.

    『진보의 재탄생 – 노회찬과의 대화』의 8인의 논객은 이것을 실연(實演)해 보인다. 각 장의 논객들은 각기 전혀 다른 노회찬을 불러낸다. 김어준은 ‘명랑유쾌한 노회찬’을, 변영주는 ‘멋을 아는 노회찬’을, 한윤영은 ‘젊은 노회찬’을, 홍세화는 그지없이 ‘진지한 노회찬’와 마주한다.

    간혹 대담자들이 노회찬보다 더 많은 말을 토로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렇게 하면서 서로 독백을 나열하는 게 아니라 예기치 않은 발견과 공감 혹은 예감으로 이끌어간다.

    물론 때로 작은 엇나감이 있기도 하다. 본래 의도한 악보에 어긋나는 불협화음이 나오기도 하고, 활이 첼로 줄에서 미끄러지기도 한다. 가령 김어준은 노회찬의 성생활 이력을 끈질기게 물고 늘어지지만, 그가 원하는 답은 결국 나오지 않는다. 이것과는 결이 다르지만, 미국 금융위기의 세계사적 의미를 묻는 홍기빈의 물음에 노회찬은 약간 동문서답을 한다.

    하지만 이러한 엇나감조차 이 대화의 흐름 속에서는 자연스럽게 들린다. 왜냐하면 이 책은, 다시 한 번 말하지만, 합주이기 때문이다. 이 책의 쟁쟁한 대담자들은 결코 반주자들이 아니다. 때로는 노회찬보다 더 격정적으로 대화를 이어나가면서 노회찬 홀로 이야기할 때에는 기대할 수 없었을 깊은 고민과 밝은 트임의 순간들을 만들어낸다.

    말하자면, 이들은 첼로 켜는 노회찬보다 더 능숙하게 노회찬을 켠다. 이를 통해 ‘진보의 재탄생’이라는 8악장의 즉흥곡을 버무려낸다. 그래서 이 책은 독자의 시간을 아깝지 않게 할 가치를 획득한다. 또한 이런 합주의 미덕은 애초에 ‘진보의 재탄생’이 본래 그래야 할 ‘만남’과 ‘대화’의 과정을 상기시켜주는 것이기도 하다.

    진보가 재탄생해야 할 지점들의 아픈 확인

    허나 그렇다고 평소에 전혀 들어보지 못한 대안이 선포되고 있다거나 비책이 숨겨져 있다는 것은 아니다. 대화의 8할은 오히려 고민의 토로다. 대담자들은 아픈 질문, 가령 2004년에 그토록 많은 기대를 받은 진보정당이 그 후 4년 동안 해낸 게 뭐였느냐 같은 신랄한 질문도 아끼지 않는다. 그리고 노회찬은 답변을 회피하지 않는다. 시원스럽지는 않아도 솔직함은 묻어난다.

    예를 들어 비정규직 문제가 그렇다. 노회찬은 이것이 한국 사회가, 그리고 진보 세력이 돌파해야 할 핵심 문제임을 반복해 강조한다. 그러면서 허경영 식의 ‘씨원한’ 이야기는 아니어도 분명 체험과 고민에 바탕한 각오와 다짐들을 토로한다.

    “예를 들면 지금 제가 모색하고 있는 것 중의 하나가 비정규직 문제인데요. 우리가 비정규직 철폐만 외쳐서 되겠느냐. 국회에서 비정규직 법안 가지고 공방 벌어질 때 강력하게 대응하는 것만으로 안 된다는 것이죠.

    사실 저는 해보고 싶은 게 지역에 비정규직 센터를 세우고, 집집마다 초인종 누르면서 혹시 이 집에 비정규직 있습니까, 하고 탐문하는 활동부터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로부터 시작해서 비정규직과 관련해서 우리 옆에 가까이 뭔가 기댈 데가 있다는 것을 실감케 해주고 함께 부딪혀 가는 과정을 만들 수 있다면 하고 생각해 보는 것이지요. 관념 속의 길이 아니라 생활 속의 길을 만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402-403쪽)

    교육과 주택 문제도 그만큼 반복적으로 다뤄진다. 그러면서 빠지지 않고 나오는 게 2008년 총선 때 서울 노원병에서 낙선의 고배를 마셨던 일이다. 노회찬에게는 참 아픈 기억일텐데, 그는 스스로 그 패배 속에서 미래의 과제들을 읽어내려 한다.

    고민의 영역을 새로이 넓혀 ‘진보의 재탄생’에 기여하려는 적극적 면모도 보인다. 요즘 노 대표가 앞장서서 유행의 물결을 고조시키고 있는 스마트폰, 트위터 등에 대해 이야기하는 대목이 그렇다. 그는 이것이 단지 새로운 대중 접촉면을 확보한다는 차원에서뿐만 아니라 산업정책의 고민과도 이어져 있음을 밝힌다.

    최근 뜨거운 화제인 진보정당 통합 문제, 반MB연대 문제에 대해서도 공식 기자회견이나 성명문을 통해서는 접할 수 없었던 보다 솔직한 생각과 견해들을 들을 수 있다. 이러한 대목은 이 책이 노회찬을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진보 쪽 독자들에게도 흥미롭게 다가갈 수 있는 이유가 될 것이다. 가령 이런 문구들이다.

    “두 당이 과거처럼 합치는 일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생각을 여전히 강하게 가지고 있습니다. 지금 이야기되고 있는 민노당과의 통합은 명백히 과거회귀 형입니다. 말씀하신대로 상당 부분은 선거연합이라는 현실적 필요에 의해서 제기되는 것들이고요. (중략)

    분당 자체가 아름답다고 할 수 없지만, 저는 분당까지도 감수했던 문제의식은 여전히 살아있고, 살아있어야 할 뿐 아니라 오히려 더 성숙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그런 점에서 향후의 전망과 계획은 민주노동당과 재통합에 있다기보다는 제대로 된 진보정당 창당에 맞추어져야 한다고 봅니다.” (415쪽)

    더 이야기하면, 스포일러가 될 수도 있겠다. 아무튼 이 책, 『진보의 재탄생 – 노회찬과의 대화』이 독자들이 대화자의 한 명으로 끼어들기에 아깝지 않은 대화라는 것만은 분명하다.

    우리 시대의 대중적인 진보 정치인을 꿈꾸며

    대담자 중 한 명인 김정진은 대화 후기에서 이렇게 말한다. “여운형 그리고 조봉암 사후 수십 년 만에 진보정당은 간신히 노회찬 같은 인물을 만들어 내었는데, 그 종착지가 어디일지 자못 궁금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김정진의 이 말은 노회찬을 바라보는 그의 동지나 지지자들의 시선을 더 없이 잘 드러내준다. 근대 민주주의 200년 역사에서 사표가 될만한 정치가를 찾기란 생각보다 그리 쉽지 않다. 더구나 뛰어난 진보 좌파 정치가를 찾는 것은 더 힘들다. 그만큼 그 시대에 필요한, 그것도 ‘변화’의 입장에 선 유능한 정치가를 배출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노회찬은 지금 적어도 그 유력한 후보자다. 그는 첼로를 연주할 줄 알면서 또한 색소폰을 배우고 싶어 하는 사람이다. “진보신당의 좌표, 공식적인 노선은 여전히 사회주의적 경향에 있다고, 또 그래야 한다고 생각”(394쪽)하면서 또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먼 미래의 유토피아가 아니라 ‘프랙티컬 유토피아’ 즉 실천 가능한 유토피아”라는 걸 고민하는 사람이다.

    우리는 그의 이 다채로움이 대중 정치의 차원에서 구현되기를 고대한다. 이 기대의 한 가운데에 그가 있다. 과연 그가 이 기대에 값할 수 있을까? 지방선거라는 혹독한 시험대, 그 속에서 진보정당에게 가해지는 야당 연대의 압박, 이런 것들을 그는 과연 이겨낼 수 있을까? 그래서 마침내 진보정당운동의 재탄생의 기회를 여는 진보 정치가 될 수 있을까?

    이야기는 진행 중이다. 뭐라 하든, 지금으로서는 예단일 뿐이다. 그저 바라보고 함께 할 밖에.

    천만 오케스트라

    다만 나는 마지막으로 몇 달 전 본 영화의 한 장면을 떠올려보고자 한다. <솔로이스트>라는 영화. 이 영화의 주인공인 미친 거리의 악사는 첼로 연주자다. 그는 시끄러운 로스앤젤레스 거리에서 첼로를, 그것도 베토벤의 곡만을 연주한다.

    이 영화의 가장 인상적인 장면 중 하나는 그가 시끄럽기 이를 데 없는 고가도로 밑에서 베토벤의 후기 현악4중주 첼로 파트를 연주하는 대목이다. 현악4중주 15번, 작품번호 132번의 제3악장 ‘몰토 아다지오’, 일명 ‘병에서 치유된 자가 신에게 드리는 감사의 찬가’.

    소음 속에서 첼로 음이 울려 퍼진다. 그리고 점차 그 음이 다른 음향들을 압도하며, 우리는 그 뜻밖의 음악에 빠져든다. 그 순간 우리는 로스앤젤레스의 시민이 되어 거리에 멈춰 선다. 서로를, 이제와는 다른 눈으로 바라본다. 그리고 비로소 이 거리의 타인들이 또 다른 꿈꾸는 자들이었음을 깨닫는다. 피곤한 도시의 공간은 돌연 인간의 지대로 깨어난다.

    나는 영화의 기억에서 다시 현실로 돌아온다. 그리고 노회찬이 서울 시장 후보로 나서면서 이야기한 공약 중의 하나인 ‘천만 오케스트라’를 떠올린다. 그는 모든 시민이 악기 하나쯤은 무상으로 배울 수 있는 도시를 만들겠다고 했다.

    영화 속의 그 기적과 같은 예기치 않은 순간이 우리의 회색 도시에도 반복되는 일은 과연 가능할까? 도대체 ‘정치’가 그런 순간을 여는 일이 가능하기는 한 것일까?

    8인의 논객만이 아니라 이제 천만 시민이 켜는 노회찬을 그려본다. 오천만이 켜는 진보정당을 꿈꿔본다. 사람들이 자신의 꿈을 비추고 그것을 다시 더 찬란한 빛깔로 되돌려 받을 수 있는 옛적 한강물 같은 정치를 감히 상상해본다.

    힘내라, 노회찬! 당신의 ‘천만 오케스트라’는, 정말, 실현되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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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디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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