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난한 자들을 위한 나라는 없다
    By mywank
        2010년 02월 11일 04:42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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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응암동 철거민들은 올해로 3년째 ‘메아리 없는’ 투쟁을 이어가고 있다. 용산참사 이후 재개발 문제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지고 있지만, 이들의 투쟁은 많은 이들에게 알려지지 않은 편이다. 대부분의 논의가 세입자들에 맞춰진 터라, 응암동 철거민들과 같은 영세 가옥주의 문제는 상대적으로 조명을 덜 받았기 때문이다.

    2008년 초부터 서울 은평구 응암 7,8,9구역에서는 재개발 공사가 시작되었고, 현재는 (주)현대건설의 ‘힐 스테이트’를 짓기 위한 공사가 한창이다. 하지만 재개발 조합 측에서 제시한 턱없는 보상금은 영세 가옥주였던 이들이 다른 곳으로 이주할 수도, 새로 지어질 아파트에서도 살 수 없는 처지로 내몰았다.

    이주할 수도, 아파트서 살 수도 없어

    대표적인 사례로, 조합 측은 응암동 철거민 음상준 씨가 20여 년 전에 5천만 원에 매입해 거주했던 대지 지분 21.17㎡(약 6평)과 건평 34.17㎡(약 10평)에 대해, 재개발 조합 측은 약 5천9백만 원의 감정평가를 내렸다. 부동산 시세에 절반 정도의 감정평가액도 문제지만, 조합 측은 평가액의 60%만 보상금으로 지급할 수 있다고 통보했다.

       
      ▲재개발이 진행 중인 은평구 응암 7,8,9구역 지도 (사진=손기영 기자)

    이 돈으로는 약 2억 원의 부담금이 필요한 새 아파트 입주는커녕, 주변 전세방도 구하기도 힘든 상황이다. 응암동 철거민들은 신 씨와 비슷한 일을 당했으며, 대부분 50~70대여서 다시 자신의 집을 마련하는 게 현실적으로 어려운 처지였다. 넉넉하지는 않았지만, 자신의 보금자리는 갖고 있던 이들이 재개발로 인해, 졸지에 ‘월세방 신세’로 전락하게 된 것이다.

    재개발 조합이 건설사 홍보요원(OS요원)을 통해 “새 아파트를 지어주겠다”는 달콤한 말로 ‘재개발 동의’ 도장을 찍을 것을 요구할 때, 별다른 의심 없이 응했던 것이 탈이었다. 조합 측은 재개발을 최종 결정하는 ‘관리처분 총회’가 끝나서야, 이들의 자택에 대한 감정평가액을 통지했다. 평가액은 납득할 수 없는 수준이었지만, 이미 재개발은 통과된 상황이었다.

    관리처분 총회 후에야 감정가 통지

    응암 7,8,9구역 철거민들은 재개발 공사 직전인 2008년 1~3월 각각 대책위원회를 구성해 주거권 생존권 보장을 요구하고 있으며, 지난해부터 7,8,9구역 대책위가 결합해 ‘응암구역이주대책위(대책위)’라는 이름으로 활동하고 있다. 처지가 비슷한 ‘동네 사람들’이 따로 투쟁할 필요는 없다는 판단에서다. 현재는 대책위에 15세대 정도가 남아있다.

    응암동 철거민들은 그동안 은평구청 앞 노숙농성과 서울시청, 청와대, 현대건설 본사 앞 1인 시위 및 선전전 등 안 해본 투쟁이 없을 정도였다. 또 지난 1일에는 응암 9구역에 살던 박래출 씨(54)가 철거민들이 재개발 현장에 걸어놓은 현수막을 은평구청 측이 강제 철거한 것에 항의하며, 몸에 휘발유를 끼 얻고 분신을 시도하기도 했다.

       
      ▲응암 7,8,9구역 재개발 공사 현장 (사진=손기영 기자) 

     

       
      ▲유형근 씨가 자신이 살던 응암 8구역을 바라보고 있다 (사진=손기영 기자)

    지난 10일 오후 찾아간 응암 7,8,9구역 재개발 현장은 산등성이를 깎아 내리는 굴삭기의 굉음으로 가득했고, 타워크레인 사이로 형태를 갖추기 시작한 아파트들이 얼굴을 내밀었다. 레미콘들은 길게 행렬을 이뤄, 쉴 새 없이 콘크리트를 쏟아내고 있었다.

    5톤 카고트럭 위에 농성장

    응암 9구역 재개발 현장 앞에는 응암동 철거민들의 농성장이 있었다. 하지만 여느 농성장의 모습과는 다르게, 5톤 카고트럭 위에 농성장으로 사용하는 컨테이너 박스가 실려져 있었다. 이 트럭은 산업기계 등을 운반하는 일을 했던 박래출 씨의 것으로, 지난해 7월부터 이곳에 세워져 있었다. 김해영 대책위 사무장은 농성장을 트럭 위에 싣게 된 이유를 설명했다.

    “농성장으로 사용할 컨테이너를 재개발 현장에 설치했는데, 지난 2008년 12월 10일 새벽시간을 틈타 용역들이 이를 몰래 빼앗아갔다. 이후 농성장을 다시 마련하려고 했지만, 용역들의 방해를 고려하면 쉽지 않은 문제였다.

    방법을 고민하던 중 (투쟁에 참가하면서 생업을 포기한) 박래출 씨가 다른 장소에서 자신의 트럭에 컨테이너를 실어, 이곳으로 옮겨왔다. 그래서 용역들이 지게차를 이용해 컨테이너를 빼앗아갈 수 없게 되었다. 트럭까지 통째로 가져갈 수는 없지 않은가.”

       
      ▲박래출 씨의 트럭 위에 응암동 철거민들의 농성장이 있다 (사진=손기영 기자) 

     

       
      ▲성인 4~5명이 앉기에도 비좁은 컨테이너 농성장 내부 (사진=손기영 기자)

    컨테이너 농성장은 성인 4~5명이 앉기에 비좁았으며, 전기조차 들어오지 않는 등 매우 열악한 환경이었다. 그래서 철거민들은 농성장과 50m 정도 떨어진 곳에 조그만 사무실을 마련한 상태이다. 2008년 11월경부터 이뤄진 ‘강제 퇴거·철거’로 집을 잃은 이들은 농성장과 사무실을 오가며 숙식 문제를 해결하고 있다.

    오랜 농성으로 철거민들 지쳐가

    오랜 농성으로 응암동 철거민들은 지칠 대로 지쳐있었다. 임정채 대책위 위원장은 “보통 남자들은 컨테이너에서 잠을 자는데, 주변에 도로가 있고 시끄러워 잠을 제대로 잘 수가 없다. 또 화장실이 없어, 공사장이나 주변 건물에 가서 볼 일을 봐야 한다. 밤에는 이마저도 이용할 수가 없다”며 “가장 힘든 점은 가족공동체가 점점 무너지고 있는 점이다”고 밝혔다.

    한 철거민은 신옥주 씨의 이야기를 전하며 “처음에는 건강한 분이었는데, 농성을 하면서 몸이 급격히 안 좋아졌다”며 “신경을 너무 많이 썼는지 암이 생겨 치료를 받았다. 신 씨뿐만 아니라 여기에 있는 사람들 대부분이 한 가지 씩 병을 얻게 되었다”고 말했다.

    김해영 대책위 사무장도 “그동안 다른 사람들한테 욕 한번 듣지 않았는데, 구청 측의 모멸적인 태도에 잠을 못 이룬 적이 많았다”며 “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갔는데 아직 한글을 제대로 모른다. 신경을 못 쓴 것 같아, 부모로써 괴롭다”며 심정을 밝혔다. 이 밖에 이들은 ‘재개발이 되면 가옥주는 돈을 번다’는 세간의 잘못된 인식을 지적하기도 했다.

       
      ▲서울시청 앞에서 1인 시위를 벌이고 있는 응암동 철거민 (사진=손기영 기자) 

    응암동 철거민들은 은평구청과 조합·건설사의 만행을 낱낱이 전하기도 했다. 우선 응암 7,8,9 구역 재개발에 이뤄지면서, 가장 먼저 없어진 곳은 구립 어린이집이었다. 재개발을 앞두고 어린이집 원장이 퇴원을 종용했고, 상당수 주민들이 육아문제를 고려해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갔다. 재개발을 서두르기 위한 구청 측의 꼼수라는 것이다.

    또 조합·건설사 측은 겨울에 길에 물을 뿌려 사람들이 다니지 못하게 하거나, 이주민들의 가옥을 일부로 ‘반파’시켜 흉가처럼 보이게 하는 등 온갖 방법을 다 동원했다고 이들은 전했다. 고현용 씨는 재개발 공사 중 철거 잔해가 자신의 집을 덮친 악몽을 떠올리기도 했다.

    구립 어린이집 가장 먼저 없어져

    “아침 8시가 좀 넘어 아침식사를 하고 방에 들어갔는 데, 갑자기 ‘쾅’ 소리가 나더니 주방이 무너졌다. 옆집에서 철거공사가 진행되면서 그 잔해가 주방 쪽을 덮친 것이다. 분명히 여기에 제가 살고 이주하지 않았던 것을 알았을 텐데, 아무런 안전장치도 설치하지 않은 것이다.

    그날따라 이상하게 아침을 일찍 먹고 싶었다. 조금만 늦게 밥을 먹었더라면, 아마 이 자리에 있지 않을 것이다. (한숨) 그날 사고로 수도하고 가스 등이 끊겼다. 더 이상 생활할 수가 없었다. 결국 며칠 뒤에 살고 있는 집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사진=손기영 기자 

    주거생존권 보장을 요구하며 이주를 거부하고 있는 응암동 철거민들의 소망은 소박했다. 예전에 살았던 ‘공간’만큼 살게 해달라는 것. 그 이상도 없었다. 하지만 현실은 그런 바람까지 철저히 묵살하고 있었다. 임정채 대책위 위원장과의 면담에서 “70~80만 원 짜리 공공근로를 알아봐주겠다”는 노재동 은평구청장의 대책(?)은 이번 사태를 바라보는 ‘그들’의 인식을 잘 보여준다.

    이러한 상황은 응암동 철거민들이 극단적인 행동을 선택하게 만들었다. 이들은 “은평구청 옥상에서 투신하겠다”, "제2, 제3의 분신은 계속 될 것이다" 등의 발언을 하기도 했다. 분신을 시도했던 박래출 씨 역시 “제가 항의할 수 있는 방법은 분신밖에 없었다”며 당시의 절박했던 심정을 이야기 했다. 박 씨는 분신 당시 주변에서 소화기로 곧바로 불을 끄면서, 생명을 구할 수 있었다.

    "지금 상황이면, 더 이상 사는게 의미 없어"

    “지금 같은 상황이면, 더 이상 사는 게 의미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정이 무너지고 소득이 없어지니까, 가장으로써 아버지로써 ‘체면’이 서지 않았다. 무엇 때문에 이런 처지가 되었는지를 곰곰이 생각해보니, 결국 재개발 때문이었다. 그동안 쌓였던 울분을 참지 못해, 라이터에 불을 댕길 수밖에 없었다.”

    응암동 철거민들은 이번 설에 은평구청 앞에서 차례를 지내기로 했다. 명절을 보낼 ‘보금자리’조차 없었기 때문이다. 이날 재개발 현장 주변에는 건설사 측이 걸어놓은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라는 현수막이 있었다. “도대체 누구를 위한 ‘복(福)’인지”. 이를 바라보던 임정채 대책위 위원장이 가슴을 쓸어내리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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