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박함으로 빚은 '발효'보석
        2010년 02월 10일 09:57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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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운 이여
    나는 당신을 금낭화라 부르겠습니다.

    깊은 숲
    산길옆에 혼자 숨어서
    이봄에도 어여쁜 복주머니를
    조롱조롱 달고 있는 그대

    나는 당신의 꽃볼을 만지작거리며
    뺨에 언제나 발그레 홍조를 띤
    그대를 생각합니다

    사랑하는 이여
    나는 당신을 금낭화라라는 말보다
    더욱 어여쁜 이름이 이 세상에 있다면 나는
    그 말로 당신을 부르고자 합니다.
    대체 그것은 무엇입니까

    -이동순 시집 ‘가시연꽃’-

       
      

    지금은 제 아내가 된 한 여인이 있었습니다.
    그녀의 볼은 항상 발그레 홍조를 띄고 있었는데 나는 그 모습이 금낭화 같다고 생각해서 금낭화 한 뿌리를 화분에 심어들고 그녀에게로 무작정 내려갔던 기억이 있습니다.

    이런 나의 노력(?)이 결실이 되어 얼굴 발그레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꽃 한 송이를 나의 것으로 만들 수 있었습니다.

    내가 그녀에게 주었던 그때의 금낭화 역시 그녀를 따라 올라와 지금 우리농장 한 켠에서 잘크고 있습니다.

    [야생화 키워드가이드 유상준의 글 ‘금낭화’ 일부]

    나는 어렸을때부터 조금만 햇볕을 받아도 얼굴이 쉽게 빨개지곤 한다. 그래서 엄마가 학교갈 때마다 수건에다 얼음을 적셔서 주시곤 했고 너무 더울 땐 나무그늘에서 해가 좀 빠지기를 기다렸다 집으로 돌아오곤 했던 기억이 있다.

    남편이랑 연애할 때 우리는 참 멀리(서울과 마산)도 떨어져 있어서 다섯 시간을 차를 타고가야 만날 수 있었다. 어느 날은 직장에서 일을 마칠 시간이 다 되서 시계를 쳐다보고 있는데 한통의 전화가 와서 받았더니 남편이었다. 창밖에 있는 회사앞 공중전화에서 조그만 ‘금낭화’ 화분을 들고…..

    그때 나는 처음 금낭화를 알았었다.

    남편은 늘 발그레한 내 얼굴이 ‘금낭화’같다고 하여 그 화분을 들고 먼길을 달려 나를 만나러 온 것이었다.

    바알가니 참 아름다운 꽃인데 나를 그런 꽃에 비유해주어 얼마나 고마웠던지…^^

    [ 안지기 박소영의 일기중에서….]

    ‘특별함’을 녹여 ‘평범함’을 만든 사람들

    1등만을 외쳐대고 성과, 실적, 발전, 개발, 경쟁을 전면에 내세우는 사회는 정신문화적으로 아주 미개(未開)한 시스템이다. 모든 것을 돈과 물질만으로 가늠하는 세상은 뭔가 자신이 없다는 또 다른 표현이다. ‘인간다운 삶’과 ‘지속가능한 사회’에 대한 죄악이다.

    자연을 이해하고 서로의 가치를 받아들이며 다른 이들과 행복하게 정을 나누며 살아가는 사회가 문명(文明)이다.

    “마음을 따뜻하게, 너를 따뜻하게, 그래야 내가 따뜻해져요. 우리 함께 살아요”
    그렇게 ‘특별함’을 녹여 ‘평범함’을 만든 사람들이 있다.

    8월 어느 날, 내 쪽지함으로 짤막한 글이 하나 들어왔다.

    “안녕하세요? 저는 키워드가이드에서 ‘야생화’ 글을 연재하고 있는 유상준씨의 안사람입니다. ^^ 우연찮게 들어간 프레시안에서 선생님의 ‘사과 한 개에도 이야기가 있다’는 글을 보고 감동을 받아 키워드 가이드를 알게 되었고 남편의 글을 신청해봤다가 되어서 요즘 몇 개의 글을 올리고 있습니다.”

       
      

    퇴촌에서 양평으로 가다 바탕골 예술관이 나오기 직전 3거리에서 수청리 방향으로 좌회전 받는다. 강변길의 우아함을 즐기며 4km정도 가면 다리 건너기 전 왼쪽에 ‘수청1리 큰청탄’이라고 쓰인 돌로 된 표지석이 보인다. 그 동네다.

    농원을 찾아가면서 길을 묻기 위해 야생화 키워드가이드 유상준군 번호로 핸드폰을 넣었더니 클립이 열려 연결은 되었는데 가타부타 말이 없다.
    “…….”

    잠시 후 그의 아내 소영씨가 전화를 받더니 “아! 선생님께 말씀 안드렸구나 ! 제 남편이 약간의 뇌성마비 증세가 있어서요, 낯선 전화를 갑작스럽게 받으면 말문이 막힙니다. 제가 대신 받을께요…”

    상준씨의 장애를 전혀 알지 못했던 나는 의아해 했고 그녀는 전혀 거리낌이 없다.
    그렇게 나는 그니들과 첫 만남을 가졌다.

    사랑하는 사람보다 존경하는 사람과 결혼하게 되서 기쁘다.

    마침 필자 내외가 농장을 방문한 날은 소영씨의 친정 부모님이 마산에서 올라와 사돈댁 농장 일을 거들어 주느라 한참 바쁜터였다. 양가 어른들이 8월 뙤약볕에 서로 일을 거들며 땀에 흠뻑 젖은 비주얼은 또 다른 신선함이었다.

    내 앞에 친정어머님이 계시고 그 오른쪽에 상준씨가 앉았다. 이런저런 이야기 나누는데 어머님이 나에게 한 말씀하신다.

    “아! 글쎄 딸년을 대학 공부시켜 제대로 일하겠다 싶어 기대했더니 어느 날 시집간다며 이 친구를 데려 오더이다.(오른쪽 상준군을 가리키며) 처음에는 상준군의 장애가 눈에 걸려 마음이 상해 몹시 견디기 어려웠는데 딸아이가 ‘자기는 사랑하는 사람보다 존경하는 사람과 결혼하게 되서 기쁘다’며 워낙 똑 부러지게 자기주장을 하는터라 고심 끝에 어렵사리 승낙했지요.“

    “지금은 서로 잘 맞추어 잘살고 있으니 다행입니다. 안 선생님이 많이 도와 주세요.”

    남 앞에 쉽지 않은 속내를 보이는 장모나 듣고 있는 사위나 전혀 어색해하지 않았다. 장모와 사위는 이미 삶의 소중한 일부분으로 서로를 나누고 보듬고 있음이 분명했다.

    모두 얼마나 마음고생이 깊었을까 내심 짚어보지만 장뜰농원 식구들의 일상에는 이미 ‘서로 다름’를 인정하고 각자가 지닌 ‘삶의 가치’를 품는 마음들이 진득하게 깔려있었다. 그 모습이 두 번째의 신선함이었다.
    농장지기 유상준군의 장애

       
      ▲ 상준군을 낳고 키우시며 집안을 일군 아버님과 어머님. 두 분 다 책을 워낙 좋아하셔서 상준군네 식구들은 집집마다 책이 가득가득……..^^

    필자는 고향이 양평 강상면이다. 장뜰농원과 아주 가깝다. 선산벌초를 마치고 올라오는 길에 다시 들렀다.

    상준군 아버님과 속 깊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당신께서는 혈액형이 RH-O형이라 자식대에서 사고가 날 확률이 컸다. 위로 딸넷까지는 아무 이상 없이 태어났는데 막내 상준이는 ‘혈액이 충돌하여 문제가 되었다. 태어난지 사흘만에 항체(抗體)를 가지고 있지 않은 ‘RH+형’ 혈액으로 전체 교환수혈을 해야 했다. 막 태어난 핏덩이를 수술대에 올리고는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그 과정에서 미약하지만 뇌성마비증세가 남게 되었다. 보통의 경우에는 대부분 엄마 뱃속에서 사망하거나 태어나도 아주 심각한 중증 후유장애로 남는다.

    “안 선생님! 아마 저 아이를 살려내고 키우면서 들어간 것을 돈으로 치면 5만원짜리로 족히 한 사람키 만큼은 됩니다.ㅎㅎ”

    어디 돈 뿐이겠는가? 당신의 모든 것을 건 것이다. 옆에 있던 상준군이 자꾸 지난 이야기 한다면서 볼멘 표정을 짓는다. 난 두 사람의 저간의 심정이 짐작이 가 빙그레 웃었다.

    구사일생(九死一生)으로 새 생명의 끈을 얻은 상준군은 부모님의 헌신적인 노력과 자신의 의지로 건국대학에서 역사를 공부했고 대학원과정도 수료했다.

    안지기 소영씨와의 만남은 2002년 효순미선양 촛불집회에서 셋째 누나의 소개로 이루어졌다. 처음 상준군과 소영씨가 만나고 연애하고 맺어지기까지의 애틋한 이야기는 구구절절(句句節節) 감미롭기 그지없다. 셋째 누나는 다른 사람 만나기에 위축이 되어있던 상준군에게 소개팅 자리라 하면 거절할 게 분명해서 집회에서 자연스럽게 만나도록 다리를 놓았다.

    서울과 마산을 오가며 나눈 그들의 서로에 대한 이야기는 두고두고 음미해도 감칠 맛이 난다. 그리 길지 않은 연애기간 각자 100여 통이 넘는 편지를 주고받은 그 행간(行間)이 궁금하다. 거기다 야생화에 대한 조예가 깊은 상준군이 소영씨에게 ‘금낭화’로 포맷을 잡아 세레나데를 불렀으니 안 넘어갈 사람 누가 있으랴! ^^

       
      

    이렇게 장뜰농원 식구들은 하나하나 각자의 영역에서 각자의 시선으로 다른 이들을 품었고 한 사람이 안고 있는 아픔을 각자의 역할로 쪼개고 나누었다. 그래서 다가올 미래를 희망으로 일구고 있다.

    지금은 아들딸 남매(승표,지인)까지 둔 결혼 5년차 젊은 부부의 삶을 인상 깊게 바라본다. 절대음감을 자랑하는 소영씨는 그 어렵다는 그랜드 피아노1급 조율사 자격증도 있다. 드럼도 치고 다양한 악기도 다룰 줄 알고… 그리고 자기의 생각을 맛깔나게 글로 표현하는 다재다능한 사람이다.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고 손잡고 가는 세상

    결혼이라는 것이 내 삶의 새로운 전환점이 된 것은 분명해 보인다.
    지난 시간동안 남편과 함께 살며 더불어 남편의 장애에 대해서 이해할 수 있었고 또 익숙해졌던 시간들이었다. 결혼할 당시만 해도 나는 남편의 장애를 깊이 이해하지 못해 서로 마찰을 빚으며 작은 일로 토닥토닥 싸우기도 했던 것 같다.

    어느 부부에게나 마찬가지이겠지만 ‘서로 다름’을 인정하는 시간들이 필요했다.

    남편은 미약한 뇌성마비장애가 있는데, 뇌성마비장애의 특징이 자기가 긴장을 한다는 생각조차 하기 전에 뇌가 미리 알아서 호흡을 차단해버린다.
    그래서 말이 막히고 잘 안 나오는데…
    그걸 완전히 이해하지 못해서 속상한 말을 하기도 했던 것을 생각하면 참 미안하다.

    TV속 장애인의 모습을 보면 항상 ‘극복’이란 단어가 따라다닌다.
    하지만 극복하지 않고 그냥 그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장애인들이 훨씬 많다. 언론매체를 통해 사회가 끊임없이 ‘극복’을 강조하고 그런 모습들을 부각시킨다면 어떤 개인에게 직접 말하지 않더라도 사회적 차원에서의 ‘강요’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불굴의 의지로 장애를 극복하는 사람들의 삶도 물론 아름답지만 자기 주어진 환경을 받아들이고 성실하게 살아가는 평범한 장애인들이 훨씬 많으며 그런 그들의 삶도 아름다움을… 알아주었으면 좋겠다.

    남편도 자신의 장애를 극복하려했지만 그건 극복의 대상이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고 삶의 일부분으로 스스로 받아들이고 살아가고 있다.

    결혼할 당시만 해도 그에 대한 자격지심이 많이 있었던 남편인데 요즘 남편을 보면 말이 잘 안 나온다고 아예 입 닫고 있는게 아니라 그래도 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장애를 극복하려하기보다는 아마도 한가정의 가장으로 성장하고 노력하고 있는 것이리라.

    처음 남편을 만났을 때 남편의 장애가 눈에 보였지만 이제 내 눈에는 아무리 쳐다봐도 남편의 장애가 보이지 않는다.

    함께 살며 남편의 장애를 바라보는 내 시각이 바뀌었듯 TV에서 끝없이 장애인의 극복에 대해 다루며 또 다른 차별과 강요를 행하지 말고, ‘서로 다름’에 대해 어떤 잣대를 들이대며 편 가르고 구분하기 전에 어려서부터 함께 사회속에서 어울려 살아야 할 것이다.

    사람대 사람으로 만나는 세상.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고 함께 손잡고 나아가는 사회를 꿈꾸어 본다.

    [박소영의 일기중에서…….]

    장뜰농원 상품들

       
      

    장뜰농원은 상준씨 어머님의 손맛으로 출발했고 상준씨의 ‘풀꽃 이야기’들이 소재가 되어 다양한 먹거리들을 생산한다.

    된장, 고추장, 간장, 식초, 효소… 모두가 발효로 만들어 지는 것들이다. 원재료는 농장을 품은 해협산 자락에서 사시사철 나는 야생풀꽃들로 채워지고 어머니의 속 깊은 노하우로 장들은 익어간다.

    1년짜리 2년짜리… 5년짜리…

       
      ▲ 5년묵은 겹간장 뚜겅을 여니 까만 간장에 늦여름 하늘이 너플거린다.
    어릴적 추억이 간장항아리에서 활개를 친다. 향기로….. 눈으로…… 오랫만이다.

       
      ▲ 온갖 산야초(山野草)가 익어가는 효소(酵素) 항아리

    엿기름대신 다양한 과일 효소를 촉매제로 써서 만드는 효소고추장
    약처럼 쓰는 약(藥)간장
    약처럼 소중한 약(藥)된장…

    수청리 해협산의 정기를 받는 양지바르고 바람이 좋은 곳에서 장뜰의 작품들은 하루하루 익어가며 한해 두해 세해… 세월을 담는다.

    행복은 먼 데 있지 않다.

    상준씨 부부의 꿈은 농원에 야생화카페, 야생화찻집을 만드는 일이다. 사시사철 꽃이 피게 꾸밀 수 있다. 또 어머님의 장류사업을 이어받고 농장에 작은 도서관을 하나 꾸미는 일도 있다.

    "저희 안에서 행복을 발견하고, 작고 소박한 것의 아름다움을 느낄 줄 아는,
    그런 사람으로 앞으로도 살며 사랑하려 합니다."

    유상준, 박소영부부는 살가운 농촌이야기의 주인공이다. 아니 주인공이라기 보다 너무나 보편적인 일상(日常)이어서 오히려 ‘특별한 시선’으로 보려했던 내가 머쓱해진다.

    굳이 꾸미려하지 않아도 꾸며지고
    굳이 드러내지 않아도 드러나는…
    세월이 가면 갈수록 보석이 되는… 뭐 그런거…. 장뜰농원 사람들이다.

    슬며시 그들 옆에서 인연을 또 다른 인연으로 바느질하며 행복바이러스에 감염되는 느낌이다. 그들의 또 다른 이야기가 기대되기 때문이다.

    농사는 사람이 하는 일이다.

    소영씨 내외와 두 아이들 , 친정 부모님, 시댁 부모님, 4명의 시누이 가족이 버무려 내는 지난 30여년의 결과, 오늘의 장뜰농원이다.

    그 농사, 그 사람들이 하는 일이니 장맛이야 오죽하겠는가?
    적어도 세상을 담고 사람을 품을 줄 아는 사람들이 만든 맛이니 보나마나 우리 몸에, 우리 마음에 맞는 맛일게다.

    아버님의 뜨거운 눈시울

    아들내외와 손주손녀 4식구가 노닥거리는 모습을 보던 아버님의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결혼하고 왔을 때 시아버지가 며느리 소영씨에게 한 이야기다.

    “기왕지사 네가 선택한 사람이니 잘 보살펴 활개치고 살 수 있도록 함께 해다오. 고맙구나! 네가 정말 고맙구나… 저 아이 부족한 게 많겠지만 서로 채워가며 살아다오…”

    “안선생님! 저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답니다. 저 애들이 저렇게 사는 모습을 보았으니 말입니다.”

    평생 자신의 업으로 자식을 위해 혼신의 힘을 기울인 부모님
    겉으로 드러나는 일부분은 불편하지만 내면은 한없이 넓고 깊은 사람, 야생화 키워드가이드 유상준군,
    남편의 장애라는 ‘특별함’을 ‘평범함’으로 발효(醱酵)시켜버린 그의 아내 박소영,
    아들 승표와 딸내미 지인이가 만들어 내는 웃음보따리…
    소영씨를 기꺼이 올바른 세상으로 내어준 친정 부모님…
    그리고 시누이 4가족…

       
      ▲ 이심전심으로 아버지와 과채효소를 만들고 있는 농장지기

    사람 사는 맛이 씨줄 날줄로 촘촘하다.
    그들이 사는 이야기 그 자체 ‘장뜰농원’이다.
    해협산 기운을 한 껏 품은 산야초효소 한잔 목 넘기며 젊은 부부가 농촌에서 살아갈 좋은 모습을 기대하며 그 기대치만큼의 인연에 고마워했다.

    그는 비가 오면 꽃과 나무들이 웃는게 보인다고 말하는, 그런 시선과 마음을 가진 순수한 사람.
    야생화 키워드가이드, 장뜰농원 농장지기 유상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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