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김진숙의 투쟁을 이어갑시다"
    2010년 02월 09일 11:13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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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아래 김 지도)과 안면을 튼 것은 7~8년 전이다. 민주노총 교육국에서 일할 때 강사 섭외를 하고 교육에서 가끔 만나면서부터다. 한해 두어 번, 그것도 잠깐 만났다 헤어지는 것이 아쉬워 ‘진하게 술 한 잔 마시자’ 벼르기도 하고, ‘지리산을 함께 오르자’ 날을 잡기도 했다.

어느 해인가는 베트남 배낭여행을 함께 가기로 하고 비행기 표까지 끊었었다. 지난 봄에는 김 지도의 고향인 강화도 올레 길을 나란히 걸어보자는 약속도 했었다. 그러나 제주에서 강원도 두메까지, 하루에도 두세 탕씩, 가야할 교육이라면 마다 않고 달려가는 김 지도에게 개인의 휴식을 위한 시간은 허락되지 않았다.

그렇게 강행군하는 김 지도를 걱정하자 “무대뽀로 돌아다는 거 같지만 나름대로 원칙이 있다”며 그 원칙을 가르쳐 주었다. △파업 중이거나 투쟁을 준비하는 곳은 무슨 일이 있어도 간다 △비정규직이거나 사업장에 비정규직이 만만치 않게 많은 사업장은 반드시 간다 △밥은 꼭 먹고 간다. 한 노조에서 두세 번 교육할 때는 밥 때가 겹쳐도 절대 밖에 나가 먹지는 않는다는 거였다.

   
  ▲ 사진=금속노조 부산양산지부

교육담당자로 활동하다 보니 교육목표도 내용도 지정 강사도 없이 다짜고짜 “정신교육 빡세게 시켜 줄 강사”를 소개해 달라는 요청을 받을 때가 종종 있다. 황당하지만 이미 내 머릿속에는 그런 교육을 할 만한 많지 않은 강사가 그려진다. 그 대표적인 사람이 김 지도다.

김 지도의 ‘강의빨’은 알량한 경험이나 현학적인 지식, 핏대 세운 목청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었으며 타고난 재주는 더더욱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김 지도는 병원 사업장에 교육을 가면 노조 사무실에 가기 전에 혼자서 병원을 한 바퀴 둘러본다고 했다. 화장실에도 가보고 지하 보일러실에도 기웃거리고, 식당 앞에서 얼쩡거리고, 빨래방도 기웃대다 일부러 “그 바쁜 아지매들에게 괜히 찝쩍대며 말도 걸어” 본단다.

파업사업장에 가면 사수대들 옆에 슬그머니 끼여 그들이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무슨 신문을 보는지도 넘겨다보고, 족구하는 걸 낄낄거리며 관전하기도 한다고 했다. 그러다 보면 가슴 깊이 미어져 오는 무엇인가가 있다고 했다.

뱉어 낸 말에 책임지는 노동운동가 김진숙

언제부턴가 김 지도는 열사들의 장례식 추도사를 전담하고 있었다. 그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감동과 눈물의 추도사’와 연설문 역시 김 지도가 남다른 글재주나 감성이 있어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 계기가 있다.

민주노총에서 일하던 어느 날, 밤늦게 김 지도가 사무실을 찾아왔다. 다음날 있을 집회 연설문을 쓰기 위해서라고 했다. 두어 시간이 지났는데도 ‘더 준비를 해야 하니 먼저 가’란다. ‘기다리겠다’ 하니 ‘언제 끝날지 모른다’며 막무가내로 등을 떠밀었다. 하는 수 없이 김 지도를 홀로 남겨두고 사무실을 나와야만 했다. 다음날 알아보니 새벽 5시에 건물 청소하는 아주머니가 사무실 청소하러 들어오신 시간까지 연설문을 준비했다고 한다.

김 지도는 자신이 그렇게 꾸역꾸역 볼 것 못 볼 것 다 보고, 겪으면서 있는 것은 “투철한 계급성이나 사상이 있어서라기보다 내가 뱉어 낸 말이 하도 많아 그 말에 발이 묶인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정상채 집행부 때, 그 많은 모욕을 겪으면서도 한진중공업 해고자를 벗어날 수 없었던 것도 1986년 “저는 죽어도 조선공사 앞에 뼈를 묻겠습니다”라고 아저씨들에게 뱉어 냈던 말 한마디 때문이었노라고 했다. 그 말 한마디가 결정적인 순간마다 발목을 잡았다. 그 이후로 더 엄청난 말들을 뱉어 내게 되었는데 그 말들이 자신에게 족쇄가 되고 있더라는 것이었다.

그런 노력과 마음이 통했는지 김 지도는 노동운동 내에서 그 누구보다 유명한 강사가 됐고, 몇 해 전에는 『소금꽃 나무』라는 책도 냈다. 그럴수록 김 지도는 그 후광으로 오는 많은 것들을 경계했고 더욱 자신을 드러내지 않으며 노동운동의 길을 걷고자 했다.

기륭전자건 용산이건 쌍용자동차건 힘겹게 투쟁하는 곳은 일부러라도 시간을 내 조용히 들르는 것을 잊지 않았다. KTX를 타면 복도로 나가 승무원들에게 음료수를 건네며 말문을 열게 하고 노동조합에 관심을 갖게 했다. 교육차 서울 왔다 내려가지 못한 날, 김 지도가 가는 곳은 그 누구의 집도 여관도 아니었다. 고문 후유증으로 작은 소리에도 잠을 이루지 못하면서도 극구 찜질방으로 향하곤 했다.

『소금꽃 나무』 출간을 앞두고는 “세상에 제 이름을 알리고, 그 이름값을 하는 일이 얼마나 무섭고 두려운 일인가를 알기에 출판사의 연락을 받고도 설레기보다는 부끄러움과 두려움이 앞섰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그런 사람이었다. 김 지도는.

운동판에도 권력과 명예를 좆는 사람들이 생기고, 그 관계를 공사(公私) 구분 없이 이용하거나 작은 일에도 그 공을 높게 인정받고자 하는 사람들이 생겨나는 요즘, 김 지도는 오롯이 자신을 낮추며 가슴으로 실천해 온 노동운동가이다. 너도 나도 민주노조 운동을 걱정하며 핏대 높여 많은 말들을 쏟아내지만, 정작 운동과 실제 삶이 다른 경우도 많은데 김 지도는 뱉어 낸 자신의 말들을 온 몸 바스라지도록 실천해 온 실천가이다.

“이것밖에 할 게 없어 죄송”하다며 단식에 들어간 김진숙

한진중공업 정리해고에 맞선 김 지도의 단식 투쟁은 그 실천의 연속이라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다. 지난해 전국노동자대회전야제에서 교육차 서울에 올라왔던 김 지도를 만났다. 한진중공업 임단투 과정에 대해 상심하며 곧 선거가 있을 거라는 이야기를 했다. 그날 김 지도는 그 어느 때보다 한진중공업노조를 많이 걱정하고 있었다.

11월 말, 화물연대 교육에서 연거푸 2주 김 지도를 만났다. 여전히 한진중공업을 걱정하고 있었다. 또 ‘민주화운동명예회복 및 보상심의위원회’에서 난데없이 명예회복과 부당해고 결정을 내렸다며 복직투쟁을 시작할 거라고 했다.

   
  ▲ 사진=이명익 기자 / 노동과세계

나는 “누가 지금 복직투쟁 하라 등 떠미는 사람도 없는데 왜 그 고생을 하시느냐?” 말하고 싶었지만, 차마 입 밖에 낼 수가 없었다. 김 지도는 12월 초부터 새벽 5시 출근 투쟁을 시작했다. 그 때까지만도 숙박이 아닌 교육은 여력이 되는대로 다니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이미 오래 전부터 김 지도가 그렇게 장거리 교육을 계속 다닐 수 있는 몸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지난해 초, 김 지도는 안식휴가라도 내서 봄에는 쉬어야겠다는 말을 했었다. 그러나 봄이 됐지만 전국팔도 교육을 멈출 수가 없었다.

초여름에는 허리부터 몸이 안 좋아, 여름휴가 때는 수술을 해야 할지 모른다고 했다. 무리하지 않은 운동을 하며 몸을 달래보려 수련원 주말반을 등록했지만, 매 주말마다 교육이 있어 갈 수도 없었다.

전국노동자대회전야제에서 만났을 때는 바닥에 앉지도 못할 정도도 몸이 안 좋았고, 다리까지 절고 있었다. 내가 자꾸 걱정을 하니 “건강하다”며 티를 내지 않으려 노력했다. 그렇게 김 지도는 단식을 할 수 없는 몸을 하고 “이것 밖에 할 게 없어 죄송”하다며 단식에 들어갔다.

김 지도의 단식은 나만이 아니라 김 지도를 아는 많은 사람에게 또 다른 두려움을 안겨주었다. 박창수, 김주익, 곽재규 열사와 김진숙을 떼려야 뗄 수 없기 때문이다. 김 지도는 단식 23일째 조남호 회장에게 쓴 편지에서 “제가 하루를 버티면 한 명씩 명단에서 제외되는 게임”을 할 수 있다면 하겠다고 제안했다. 그냥 해 보는 말이 아님을 직감했다.

단식 스무 나흘째, 다행인지 불행인지 한진중공업 조합원들이 파업에 들어가고 김 지도 천막으로 몰려가 단식을 멈추라 호소했다. 김 지도는 백혈구 수치가 2300으로 떨어진 위험한 상태에서 병원으로 실려 갔다.

김진숙의 저항과 경고에 귀 기울이자

김 지도 단식 상황에 가슴 조일 때 후배가 전화를 걸어왔다. “우리가 뭔가를 해야 하지 않겠냐?”는 것이었다.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던 나는 막상 그 제안이 내게 오자 “왜, 날더러?”, “내가 무슨 자격으로?”하며 움찔하고 말았다.

노동운동을 하느라 바쁜 건지 실무를 하느라 바쁜 건지 주객이 전도된 듯한 나의 활동에 염증을 느끼고, 가뜩이나 최근에는 무기력감에 빠져 갈피를 못 잡고 있는 내가 무엇을 어떻게 할 수 있을지, 김 지도와 비슷한 해를 아니 어쩌면 그보다 더 먼저 노동운동 시작했지만 나는 김 지도만큼 뜨거운 가슴도, 치열한 실천도 못하며 책상머리 활동가가 되어가고 있는데…

때로는 성실하고 잔머리 굴리지 않는다는 이유로 이해받으려 하고, 때로는 스스로를 위로하고 합리화시켜 보기도 하지만, 활동가의 한 사람으로서 남이 알든 모르든 부끄러운 게 많은 나였다. 그러나 병원으로 실려 가며 “정리해고 철회하지 않으면 다시 돌아 올테니 천막을 치우지 말라”는 김 지도의 당부에 정신이 퍼뜩 들었다. 김 지도가 두 번 다시 단식천막으로 가는 일이 없어야 하기 때문이었다.

김 지도의 단식 투쟁은 한진중공업만이 아니라 정규직, 비정규직 가리지 않고 정리해고라는 ‘살인’을 자행하는 무참한 사회에 대한 ‘저항’이자 무기력한 민주노조 진영에 대한 ‘경고’ 라는 생각이 들었다. 민주노총 위원장 후보들에게 “실천할 방안들을 다만 한 가지라도 마련”해 오라던 당부는 이 시대 민주노조 운동에 발 담그고 있는 모든 활동가, 간부, 노동자들에게 던지는 주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작은 것이라도 실천해야 한다. 실천하지 않고 김 지도의 강의와 책에 수 십 번 감동하고, 추도사에 수 백 번 눈물 흘리고, 단식한다고 수 만 번 마음 아파한들 무슨 소용 있겠는가? 여름이면 장거리 버스에 “궁뎅이 땀띠에 살갗이 벗겨질 지경이고, 목은 다 쉬고, 피가 넘어”와도 전국 곳곳 노동교육현장으로 김 지도를 이끈 힘은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바로 자신이 뱉어 낸 말을 모든 삶을 다해 책임지고자 한 활동가다운 실천정신이었다고 생각한다. 김 지도가 단식을 중단했다고 안도하고 있을 때가 아니라고 본다. 김지도의 투쟁은 끝난 것이 아닐 뿐 아니라, 한진중공업 노동자들만의 투쟁으로 남은 것도 아니다.

그리하여 나는 감히 이 시대, 진정한 ‘실천가’인 김 진숙의 노동운동 정신을 우리 모두가 이어가자는 제안을 모든 동지들에게 드린다. 다만, 나의 제안이 개인적 제안이듯 그 실천이 민주노총이나 어떤 단체, 정파의 조직적 결의가 아닌, 김진숙의 ‘실천적 삶’에 공감하며 정리해고가 만연한 세상에 맞서 투쟁하고자 하는 한 사람 한 사람의 자발적 실천이기를 바라며 아래와 같이 제안을 드린다.

한 사람이 하나의 실천을!
민주노총 홈페이지 자유게시판에 올려주십시오.

실천하지 않고 김진숙 지도위원의 강의에 수 십 번 감동하고, 추도사에 수 백 번 눈물 흘리고, 단식한다고 수 만 번 마음 아파하는 것이 무슨 소용 있겠습니까? 김 지도의 단식 중단은 투쟁의 끝이 아닐 뿐 아니라 한진중공업 노동자들만의 투쟁으로 남은 것도 아닙니다.

자신이 뱉어 낸 말을 모든 삶을 다해 실천하는 활동가 김진숙 지도위원의 투쟁을 우리가 이어갑시다. 한 사람 한 사람이 직접 참여하고 더 많은 실천방안들을 자발적으로 내놓을 때, 민주노조운동 복원도 가능하고 정리해고 없는 세상도 만들 수 있을 것입니다.

우선 아래와 같이 먼저 제안 드립니다.

o 제안 하나> 2월 9일부터 모든 정리해고에 반대하는 ‘하루 한 끼 릴레이 단식’을 진행합시다. (단, 한 사람이 다시 하고자 할 때는 한 달이 지난 뒤 다시 한다.)

o 제안 둘> 정리해고에 맞선 투쟁을 강화하고 민주노조 운동 복원을 위해 활동가, 현장간부, 조합원들은 최소 한 가지씩 무엇이든 실천방안을 제안해 주십시오.

o 제안 셋> 민주노총 홈페이지 자유게시판을 <한 사람이 하나의 실천을!> 점검하는 온라인 공간으로 삼고자 합니다. 릴레이 단식에 참여하는 동지는[단식], 실천방안을 제안하실 동지는[실천]이라고 제목 맨 앞에 문패를 달아 표시해 주시기 바랍니다.

<게시판 글 작성 예>
[단식] 한선주 2월 9일 릴레이 한 끼 단식에 참여합니다.
[실천] 이 제안문을 제가 일하는 곳에 널리 게시하겠습니다.

<민주노총 자유게시판 찾아가기> : http://nodong.org/bbs

o 제안 넷> 제 제안에 동의하시는 분들은 이 글을 널리 알려 많은 동지들이 참여 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기 바랍니다.

2010년 2월 8일 한선주
* 한선주는 공공노조에서 교육국장으로 일하고 있지만 이 제안문은 개인자격으로 올립니다.

<박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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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디앙
레디앙 편집국입니다. 기사제보 및 문의사항은 webmaster@redian.org 로 보내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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