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이들과 엄마가 행복한 나라
        2010년 02월 08일 11:39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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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적으로 ‘삶의 질’이 화두다. 행복하게 사는 것이 최고라는 이야기다. 이는 누구나 다 아는 바지만, 쉽지 않은 이야기다. 한 국가의 구성원으로 살아가는 한, 개개인의 힘이나 노력만으로는 행복해지기가 쉽지 않다. 종교에 몰입하거나 세상과 담 쌓을 특별한 재능이 있으면 모를까, 개인적 차원에서 행복해지기란 어쩌면 불가능하다. 그래서 스티글리츠 교수는 국가 수준에서 ‘행복(well-being) GDP’의 도입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는 보건, 교육, 정치 환경, 사회적 관계, 환경, 사회경제적 안정 등을 모두 포괄하는 제대로 된 GDP를 역설하고 있는 것이다.

       
      ▲ 필자

    애초부터 산업화된 국가와 사회를 경험해보지 못해서 행복의 기준과 기대가 아예 다른 미개발 지역의 원주민을 제외한다면, 종교 등의 특이한 문화적 영향으로 행복에 대한 기대의 종류가 다른 경우를 제외한다면, 대부분의 산업화된 국가들 중에서는 북유럽 국가의 사회구성원들이 가장 행복하다고 한다.

    흔히들 하는 이야기고, 누구나 짐작할만한 이야기다. 아마 미국 국민들이 주요 선진국들 중에서는 가장 덜 행복할 것이다. 누구나 공감하듯이, 미국 같은 경쟁만능의 시장주의 국가에서 사회구성원들이 행복하다면 오히려 이상할 것이다. 승자독식의 정글자본주의에서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 행복을 느낄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2009년 10월 23일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은 ‘OECD 국가 행복지수 산정결과로 본 우리나라의 행복수준’이라는 연구 성과를 발표하였다. 그동안 행복 또는 삶의 질 수준은 국민소득(GDP)을 비롯한 경제적인 요인들로 측정하는 경향이 강하였으나, 당해 연구진들이 경제적 요인, 자립, 형평성, 건강, 사회적 연대, 환경, 주관적 생활만족도 등의 7개 부문을 종합하여 나름의 행복지수를 산출하였는데, OECD 30개 회원국 중에서 우리나라는 행복지수 25위를 차지하였다는 것이다. 우리의 짐작대로, 북유럽의 노르웨이와 스웨덴이 각각 3위와 4위를 기록하였고, 미국은 경제 분야의 순위가 2위였음에도 불구하고 20위에 그쳤다.

    결국, 행복해지려면 경쟁만능의 신자유주의 세상을 바꾸는 것 이외에는 달리 방법이 없는 것이다. 사회연대와 정의의 정도가 높을수록 그 사회가 느끼는 전체적인 행복의 깊이도 더 할 것이다. 이제 그런 사회를 만들자. 그게 바로 복지국가다. 사회 구성원 모두가 행복해야 진정으로 행복한 사회다. 어른은 행복한데, 아이들이 불행하다면 어떨까?

    남자는 행복한데, 여자들, 특히 아이들의 엄마가 불행하다면 어떨까? 그런 사회는 확실히 행복지수가 낮은 사회일 뿐만 아니라, 행복한 미래를 결코 기약할 수 없는 희망 없는 사회다. 아이들이 사회의 미래이고, 그 아이와 함께 행복한 미래를 열어나갈 당당한 주역이 여성이자 아이들의 엄마이기 때문이다.

    스웨덴을 비롯한 북유럽과 유럽 대륙의 강소국들은 행복한 나라, 삶의 질이 높은 나라들이다. 우리는 이 나라들을 통칭하여 복지국가라 불러도 좋을 것이다. 그러면, 우리나라는 어떤가? 한마디로, 아이들과 엄마가 불행한 나라다. 지금까지 불행과 불안 속에서 그렇게 버텨왔고, 경제성장을 중심으로 모든 것을 희생해 왔다. 이제 더는 안 된다. 그런 식으로는 미래가 없기 때문이다.

    사실, 우리 모두가 이 사실을 잘 알고 있다. 너무나 잘 알기에, 우리는 지금 ‘출산파업’을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자살률 세계 1위, 저출산 세계 1위의 나라다. ‘불행하고 불안’한 아이들과 엄마를 이대로 방치하고, 토건사업에나 몰입하는 이 신자유주의 양극화의 나라를 뒤집고 새롭게 디자인해야 한다. 아이들과 엄마가 행복한 보편적 복지국가로 말이다.

    우리나라의 합계출산율은 2008년 현재 1.19명으로 세계 최저인데 비해, 스웨덴은 1.88로 높은 편에 속한다. 독일과 이탈리아 등 유럽대륙 국가들은 1.3%대에 머물고 있다. 국가 간의 이러한 합계출산율 차이의 이유를 밝히는 것이 매우 중요한데, 이건 장차 엄마가 될 여성들의 마음에 달린 것이다. 여성들은 남성과 동등하게 인간으로서의 자기실현을 원하고, 그래서 경제사회적 관계 망 속에서 행복해지고 싶어 한다.

    답이 나왔다. 엄마가 되더라도 이전과 같이, 차별 없이 자기실현과 경제사회적 행복을 추구할 수 있도록 제도적으로 보장해주면 될 일이다. 스웨덴의 아동 및 여성 복지는 보편주의 원칙을 견지하는 세계 최고의 수준 높은 시스템으로 정평이 나 있다. 그래서 여성의 경제활동참여율도 세계에서 최고로 높다.

    일반적으로 여성의 경제활동참가율(우리나라 58%, 스웨덴 73%)과 출산율은 비례하므로 출산율을 높이려면, 엄마가 편안하게 일을 할 수 있도록 배려해주면 된다. 스웨덴의 경우, 이러한 배려가 보편적으로 제도화되어 있으므로 여성의 경제활동참가율과 출산율이 비례하는데 비해, 우리나라는 일본처럼 여성의 경제활동참가율이 높아질수록 출산율이 낮아진다.

    결국, 출산율을 높이는 데는 일-가정 양립정책의 제도적 보장이 결정적으로 중요한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산전후휴가는 90일을 보장(60일은 사업주가, 나머지 30일은 고용보험이 부담, 단 중소기업에 대해서는 90일 모두 고용보험이 부담)하고는 있으나, 여성노동자의 절반은 고용보험에 가입되어 있지 않고, 설사 어렵게 고용보험 산전후휴가의 요건을 갖추었다 하더라도 많은 사업장에서 고용주의 눈치를 살펴야 하는 등의 불리한 조건들이 많다. 세상과 주변의 눈치를 보면서까지 서둘러 아이를 낳고 싶지는 않은 것이다.

    우리나라도 육아휴직 시에는, 2007년부터 고용보험에서 1년 동안 월 50만 원씩을 지급하고 있으나, 이 금액은 남녀노동자 월 평균임금의 22.9%에 불과하므로 실제로 육아휴직을 하는 경우는 아주 적다. 2006년, 취업 여성 중 23만 명이 출산을 하였으나 육아휴직자는 9,303명으로 고작 3.9%에 불과(스웨덴은 90% 이상)하였다. 스웨덴의 경우는 임신부터 출산과 육아에 이르기까지 복지의 제도화가 우리나라와는 전혀 다르다. 임신 시에 태아에 위험이 있을 만한 일자리를 떠나 있을 수 있는데, 이때는 임신현금급여로 최대 50일까지 월평균소득의 80%를 수령할 수 있다.

    또, 출산 시에는 480일 간의 휴가가 주어지는데, 마찬가지로 매월 월평균소득의 80%를 수령한다. 아이가 아플 경우에는 연간 60일 간의 아동간병휴가(월 급여의 80%를 수령)를 받게 되며, 16세 미만의 모든 아동들은 아동수당으로 월 16만원 정도(2007년 현재 월 아동수당은 1,050크로나)를 받고 있다.

    이쯤 되면, 아이 낳는 것 때문에 여성이 경제사회적으로 손해 볼 일은 전혀 없다. 더불어, 아이들에게도 크게 유리하다. 우리나라 보육시설의 공공성은 시설(국공립보육시설) 수 기준으로 5.5%, 아동 수 기준으로는 10.9%에 불과한데 비해, 스웨덴은 시설 수 기준으로 75%, 아동 수 기준으로 83%다. 보육재정의 공공성도 우리나라는 보육료의 정부부담 비율이 기껏해야 40%에도 미달하나, 스웨덴은 90%에 이른다.

    게다가, 스웨덴의 보육교사는 대부분이 지방공무원이고 사립시설의 교사도 이에 준하는 대우를 받으므로 좋은 사회서비스 일자리와 양질의 전문적 보육이 가능해지므로 아이를 믿고 맡겨도 된다. 스웨덴에서 촘촘하게 잘 짜여진 보편주의 복지는 거의 빈틈이 없고, 모든 아이들과 엄마가 행복한 나라가 되어 있다. 교육도 마찬가지다. 승자독식, 시장만능주의의 경쟁교육이 아니라 협력하고 함께하는 교육이다. 양질의 보편주의 교육체계 하에서 사교육을 통한 차별이나 양극화는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 이것이 아이들과 엄마가 행복한 보편주의 복지국가다. 우리 국민들도 이제는 이 지긋지긋한 신자유주의 세상의 불안과 불행에서 벗어나고 싶어 한다.

    누군가 길을 제시하고, 이를 공유해야 한다. 누가 이 일을 선도할 것인가? 그런데, 걸림돌이 있다. 정치가 문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은 정치가 답이다. 보편주의 복지국가를 주도해갈 정치세력, 지금 우리 국민들이 가장 필요로 하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정치가 ‘삶의 질’이 높은 세상, 행복한 세상을 가져다준다는 확고한 믿음을 보인다면, 우리 사회의 여론과 정치가 보편주의 복지국가를 향해 요동칠 것이다.

    그리고 아이들과 엄마가 행복한 나라를 향해 세상이 요동치며 바뀔 것이다. 이미 우리 사회에서 세상이 요동칠 ‘작지만 큰’ 파장이 하나씩 생겨나기 시작하였다. 진보신당 노회찬 대표의 서울시장 출마선언문이 그것이다. 노 대표는 출마선언문에서 “아이와 엄마가 행복한 서울”을 메인 공약으로 제시하였다. 이는 기존의 정치에서는 결코 볼 수 없었던 것으로, 신자유주의와 잔여주의 복지 체제의 ‘오래된’ 대한민국에 정치적 파열을 시도하는 혁명적 사건이 아닐 수 없다.

    노 대표는 출범선언문에서 “이제 서울에는 완전히 다른 것이 필요합니다. 시민들의 삶에서 걱정과 근심을 걷어내는 것입니다. 시민들에게 보편적 복지와 더 좋은 일자리를 만들어 드리는 것입니다. 아이에게 복지를, 엄마에게 일자리를! 아이와 엄마들로부터 시작해 모두가 행복한 도시 서울, 이것이 제가 만들고자 하는 변화된 서울입니다. 아이와 엄마가 행복한 서울! 콘크리트 대신 사람에게 투자하면 됩니다.”라며 자신의 서울 비전을 제시하였다.

    그러면서, 노 대표는 구체적으로 ‘아동수당’의 지급과 3세부터 5세까지 모든 어린이에게 ‘무상보육’ 실시를 제시하였다. 이에 더해, 동네마다 국공립 어린이집 확충, 초등학교부터 중학교까지 친환경 ‘무상급식’ 실현, 엄마와 여성들이 참여할 수 있는 복지일자리, 녹색일자리 창출, 엄마와 여성들을 우대하는 기업에 대한 지원 등을 약속하고 있다.

    얼마 전에 민주당도 당 대표가 직접 나서 새로운 민주당 플랜의 일환으로 보육과 교육을 국가가 책임지는 당의 정책방향을 제시하였다. 좋은 일이다. 그리고 이것이 일순간의 정치적 구호가 아니라 진정성 있는 정책노선의 변화이길 바란다. 그렇다면, 지난 민주정부 10년 동안의 잔여주의 복지를 벗어나서 보편주의 복지를 추구하겠다는 확고한 정치적 의사표시가 있어야 한다.

    장차, 반신자유주의와 보편주의 복지국가를 중심으로 하는 새로운 정치가 ‘양극화와 불안의 나라’ 대한민국을 ‘아이들과 엄마가 행복한 나라’로 바꾸어 놓을 것이다. 여기에 진보정치가 앞장서 주도해야 한다. 그 힘이 위력적이라면 민주당도 협력할 것이다. 이것이 진정한 정치연합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진보정치의 현재 모습을 혁신하고, 진보대통합의 큰 흐름을 만들어 나가야 한다. 이 과정에서 가혹한 수술도 마다하지 않아야 한다. 그래야 새살이 돋고, 더 튼실해지며, 결국 ‘아이들과 엄마가 행복한 나라’, 스웨덴의 보편주의 복지국가를 배우되, 그것을 넘어서는 ‘토종’형의 보편주의 복지국가 대한민국을 열어 나갈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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