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밤이면 밤마다 자유 그리워~”
        2010년 02월 08일 09:03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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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중가요를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는 사람에 따라 다를 수 있다. 또 시대와 집단에 따라서도 범주와 정서가 다를 수 있다. 하지만 모든 민중가요에서 가장 중요하고 공통된 요소는 ‘주체적으로 선택하여 자신의 노래로 삼고, 불렀다’는 것이다.

    모든 분야가 그렇듯, 노래 역시 알면 알수록 더 재미있고 자신의 것이 될 때 의미가 커진다. 새로 연재를 시작하는 [찌니의 노래 이야기]는 우리가 목청껏 불렀던 그리고 지금도 무심코 흥얼거리는 민중가요들의 사연을 전한다. 그 노래들에 얽힌 우리네 이야기와 나의 삶을 연결하고, 자신만의 주체적인 노래 문화를 만들어갈 수 있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 편집자 주

     

    부르는 사람이 주인인 노래, 천의 얼굴을 가진 ‘불나비’

    [찌니의 노래 이야기]의 첫 번째 곡으로 흥겨운 노래, ‘불나비’를 골라봤습니다. ‘불나비’는 시대를 뛰어넘어 민중으로부터 30년 넘게 꾸준히 불리며 사랑받고 있는 대단한 노래입니다.  

    사실 노래는 목적의식적으로 부르고 다니는 주체가 있어야 보급이 됩니다. 아무리 좋은 노래라 할지라도 그것이 불리지 않으면 의미와 정서가 공유되지 못하지요. 어떤 식이건 음원(정식음반이 아닐지라도)이 있으면 보다 많은 이가 듣고 부르기 쉬운 게 사실입니다.

    하지만 음원 하나 없이도, 목적의식적으로 부르는 주체 없이도 노래가 불리고 퍼져나갔던 때가 있었습니다. 바로 70년대 말부터 80년대 초입니다. 그렇게 불리고 퍼져나간 노래를 ‘민중가요’라 부르기 시작한 것도 이때입니다.

    민중가요는 주로 대학과 기독교 청년, 지식인이 부르던 노래로, 학생과 지식인에서 야학 및 교회소모임으로, 또 다시 민주노조를 준비하던 노동자와 노동운동 활동가로 전해졌습니다. 하지만 당시 많은 민중가요가 지식인적 정서를 내포한 데다가 비장하고 무거운 단조 풍이어서 노동현장에서는 그리 많이 불리지 않았습니다.

    민중가요와 노가바

    이에 노동현장에서는 일부 가사와 악곡을 변형하는 일이 비일비재해, 민중가요보다는 대중가요에 노래가사를 바꾼 ‘노가바’(‘노래가사바꿔부르기’의 줄임말)라는 말이 애칭으로 붙기도 했습니다.

    ‘불나비’는 70년대 후반 대학가요제에 나왔을 법한 전형적인 8비트 고고에 한국적 트롯정서가 가미된 노래로, 창작자가 알려지지 않아 정확한 창작 배경은 알 수 없습니다. ‘노동자들이 공동창작을 했다’는 가설도 있지만, 곡의 완성도나 가사의 흐름으로 볼 때 공동창작의 가능성은 다소 희박합니다.  

       
      ▲ 공연 중인 꽃다지 (사진=꽃다지)

    누군가의 창작에 의해 탄생한 곡을 노동자들이 함께 불렀거나, 불리는 과정에서 노동자들이 가사나 일부 악곡을 변형시켰을 가능성이 더 큽니다.

    70년대 후반은 민주노조 건설을 위한 활동이 활발하던 시기입니다. 청계 피복노조를 시작으로 동일방직, 원풍모방, YH 등의 민주노조가 설립되거나 준비되고 있었습니다. 우리 선배, 언니 여성 노동자들이 주축이 된 운동으로, 1978년 동일방직 투쟁과 민주노조 와해, 1979년 YH노조의 신민당사 점거 사건 등은 노동운동사에서도 아주 중요한 사건입니다.  

    대학생 노래와는 다른 ‘불나비’

    물론 유신 말기였기에 상상할 수도 없을 정도의 탄압이 있었고, 그만큼 처절하고 치열한 투쟁이었습니다. ‘불나비’는 그 억압적이고 삼엄한 상황에서도 노동자들의 신명과 미래에 대한 희망이 잘 드러난 곡입니다.

    대학생과 지식인들이 노동현장을 소재로 다룬 민중가요가 어둡고 비장하며, 가련한 느낌이었던 것과 비교할 때, 노동자 스스로가 느끼는 노동자 삶은 희망이었던 것 같습니다. 양측의 간극이 다소 존재하지요.

    ‘불나비’가 대학가에 소개된 것은 1984년쯤입니다. 하지만 몇몇 테이프에 수록돼 있을 뿐, 학생들의 공연 중 노동현장을 묘사할 때나 간혹 불렸고, 집단적으로 불린 것은 1980년대 중후반 정도입니다.

    ‘불나비’는 문화모임, 서클 등의 소모임에서 주로 불립니다. 크리스천 아카데미나 산업선교회의 야학, 소모임에서 분위기를 고조시키기 위한 목적으로 보급됐지요. 모임이나 수련회에서 분위기가 절정에 올랐을 때 “불나비, 가자~~”라고 다함께 외치며 흥겹게 불렀답니다.

    원곡의 ‘불나비’라는 가사는 87, 88년 투쟁을 거치며 ‘노동자’라는 단어로 대체돼 불리다 최근에는 원곡대로 ‘불나비’라는 가사로 다시 불리고 있습니다. 또 음악적으로도 변화, 발전을 해왔습니다. 다양한 리듬으로 변주가 자유로운 8비트 곡이기에 처음에는 기타 하나로 붙점(附點 : 원래 길이의 반만큼의 길이를 더함-편집자 주) 없이 읊조리듯 부르다 80년대 중후반 베이스를 강조한 셔플리듬으로 부르기도 했습니다.

    ‘불나비’의 변천

    하지만 90년대 중반, 사무직 젊은 노동자들이 대거 등장하며 ‘불나비’는 일렉기타의 사운드가 강조된 빠른 8비트의 록으로 변화해 왔습니다. 흥겨운 율동도 가미됐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불나비’의 변천사는 단지 시대에 따른 노래문화의 변화를 넘어 그 시대 운동을 주도해온 대중이 누구인지, 그들은 어떤 정서를 가지고 있었는지를 반영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노동현장에서 가장 긴 생명력으로, 큰 인기를 구가하며 불린 ‘불나비’는 그러한 변화를 확인할 수 있는 노래이며, 현재에도 다양한 느낌으로 불리고 있습니다. 특별히 누구의 ‘불나비’라 할 것 없이 혼자 불러도 좋고, 같이 불러도 좋은, 춤을 추며 불러도 좋고, 누가 더 개성껏 부르는지 경연대회를 열어도 좋을 만큼 ‘불나비’는 천의 얼굴을 가진 노래입니다. 

    찌니

    연세대학교 중앙노래패 ‘울림터’에서 활동하고, 졸업 후 80년대 후반의 상황과 노동자들의 주체적인 문화향유 욕구와 필요성에 따라 삶의 노래 ‘예울림’을 결성하여 노동가요의 창작 및 보급 활동과 노동자 문화 활동을 진행했다.

    이후 비슷한 위상을 가진 ‘노동자노래단’과 통합하여 희망의 노래 ‘꽃다지’를 결성했으며, 그곳에서 기획과 연출, 교육, 정책 등을 담당했다. 1994년 8월부터 1998년 11월까지 대표 역임. 노동자대회 전야제 및 노동문화제, 각종 민중가요 노래공연 등의 연출과 노동자문화 교육 등을 담당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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