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치는 단순 투표행위가 아니다"
        2010년 02월 06일 11:49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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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표지

    정치적 무관심을 넘어 진정한 정치철학의 귀환을 촉구한 8명의 철학자들이 국내 학자들의 소개로 한 곳에 모였다. 이들은 권력의 정당성과 배분문제의 가장자리에 위치해, 정치 또는 정치적인 것이란 무엇인지를 묻고, 기존의 정치 개념을 다시 생각하기위한 메시지를 던진다.

    『현대 정치철학의 모험』(홍태영 외, 난장, 18,000원)에서 저자들이 소개하고 있는 여덟 명의 사상가는 클로드 르포르, 알랭 바디우, 자크 랑시에르, 가라타니 고진, 에티엔 발리바르, 조르조 아감벤, 샹탈 무페, 악셀 호네트다. 이들은 "세계화.신자유주의가 불러온 탈정치, 더 나아가 반(反)정치의 흐름에 맞서, 정치(철학)의 귀환을 주도한 인물들이다.

    이들은 ‘민주주의’는 "갈등·경합·투쟁·계쟁·봉기의 과정"이라고 전제하며, "정치의 개념, 근대의 지배적 국가형태로서의 국민국가, 모든 정체의 운영원리로 여겨지는 민주주의, 법에 근거한 권리와 인권의 보장 등 서구 정치전통의 모든 범주를 비판적으로 재검토"하면서 정치에 관한 기존의 이해를 확장시킨다.

    그리고 세계적 철학가들의 이러한 진단은 "지난 2008년 전국의 길거리를 수놓았던 촛불이 사그라진 뒤 봇물처럼 터져 나온 헌법 개정.완성 논의, ‘공화국’에 대한 논의, 87년-97년-08년 ‘체제 논쟁,’ 급진민주주의에 대한 토론" 등, 한국의 현실과도 직-간접적으로 연관되어 있다는 점을 느낄 수 있다.

    이 책에 등장하는 사상가들의 작업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정치적인 것’이다. ‘정치’란 정치적 현상의 사실적(존재적) 수준에서 움직이는 반면, ‘정치적인 것’은 이런 정치현상의 형이상학적(존재론적) 조건과 관련된 문제로, 정치를 정치일 수 있게 해주는 본질 혹은 토대이다. 이 본질 혹은 토대가 무엇이라고 보느냐에 따라 이 사상가들의 사유는 겹치기도 하고 갈라서기도 한다.

    클로드 르포르는 ‘정치적인 것’은, 한 사회를 특정한 방식으로 통일시킴으로써 다른 사회와 구분해주는 ‘상징적 차원’으로, 근대 사회를 특징짓는 상징적 차원의 핵심은 ‘빈 공간으로서의 권력’이라고 말한다. 샹탈 무페는 ‘정치적인 것’이 적-친구의 구분과 그 대립의 가장 극단적인 형태인 전쟁의 가능성을 전제하는 행위이다.

    알랭 바디우는 정치는 사회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려는 평등의 제스처이자 실행 중인 사유라고, 자크 랑시에르는 공적인 공간에서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고 사유되지 않았던 아무개들이 스스로를 보이고 들리고 사유되게 만드는 것이야말로 정치의 근본 문제라고 지적하며, 가라타니 고진은 인간들에게 존재하는 비사회적 사회성 속에서 세계공화국으로 향해 갈 가능성을 본다.

    이러한 석학들의 다양한 진단과 전망은 작년 ‘체제 논쟁’부터 최근의 진보진영 ‘대통합 논의’까지, 한국의 현실정치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논쟁에 대해 성찰의 계기를 마련한다. ‘반MB 연대’가 단순히 선거전략 논의에 그치고 있듯, 이 책은 우리의 삶과 직결된 정치를 단순한 ‘득표행위’나 ‘행정’(‘국가경영’)으로 보는 관점을 되돌아보게 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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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자소개

    홍태영 – 국방대학교 국제관계학부 교수. 파리사회과학고등연구원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정치사상과 유럽 정치에 관심을 두고 국민국가의 형성과 발전을 연구 중이다. 지은 책으로 『국민국가의 정치학: 프랑스 민주주의의 정치철학과 역사』(2008), 『몽테스키외 & 토크빌: 개인이 아닌 시민으로 살기』(2006), 『제3의 길과 신자유주의』(공저/2006) 등이 있다.

    장태순 – 파리8대학교 철학과 박사과정. 현재 알랭 바디우의 지도 아래 1990년대 이후의 몇몇 영화에서 나타나는 시간 개념을 철학적으로 살펴보는 박사학위 논문을 준비 중이다. 프랑스 현대철학과 예술철학에 주로 관심을 가지고 있다. 알랭 바디우의 『비미학 소책자』(Petit manuel d’inesthetique, 1998)를 번역 중이다.

    최정우 – 서울대학교 불어불문학과 석사. 록밴드 Renata Suicide의 보컬 겸 기타리스트이자 작곡가로 활동하며 월간 『한국연극』, 계간 『자음과 모음』 등에 평론을 기고 중이다. 현재 프랑수아 도스의 『질 들뢰즈와 펠릭스 가타리』(Gilles Deleuze et Felix Guattari: Biographie croisee, 2006)를 번역 중이다.

    조영일 – 문학평론가. 서강대학교 국어국문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했으며, 현재 ‘사상가’ 가라타니 고진을 소개하는 단행본을 준비 중이다. 지은 책으로 『한국문학과 그 적들』(2009), 『가라타니 고진과 한국문학』(2008)이 있으며, 옮긴 책으로 『네이션과 미학』(2009), 『역사와 반복』(2008), 『세계공화국으로』(2007), 『근대 문학의 종언』(2006) 등이 있다.

    장진범 – 민중의집 운영위원. 사회진보연대 편집실에서 일하며 기관지 『사회운동』에 에티엔 발리바르의 작업을 비롯한 현대 정치철학 관련 논문들을 번역했다. 현재 헤르만 판 휜스테렌의 『시민권의 이론』(A Theory of Citizenship: Organizing Plurality in Contemporary Democracies, 1998)을 번역 중이다.

    양창렬 – 파리1대학교 철학과 박사과정. 현재 ‘에피쿠로스의 운명 비판’이라는 주제로 박사학위 논문을 준비 중이다. 지은 책으로 『공존의 기술: 방리유, 프랑스 공화주의의 이면』(공저/2007)이 있고, 옮긴 책으로 『목적 없는 수단: 정치에 관한 11개의 노트』(공역/2009), 『고대 원자론: 쾌락의 윤리로서의 유물론』(2009), 『무지한 스승: 지적 해방에 대한 다섯 가지 교훈』(2008), 『정치적인 것의 가장자리에서』(2008), 『들뢰즈 사상의 진화』(공역/2004) 등이 있다.

    홍철기 – 서울대학교 정치학과 박사과정. 현재 ‘박정희 시대의 헌법사상사’에 대한 연구로 박사학위 논문을 준비 중이다. 칼 슈미트와 조르조 아감벤 등에 관한 논문을 발표했으며, 옮긴 책으로 『우리는 결코 근대인이었던 적이 없다: 대칭적 인류학을 위하여』(2009)가 있다.

    강병호 – 프랑크푸르트대학교 괴테대학교 철학과 박사과정. 악셀 호네트의 지도를 받으며, 칸트의 존중(Achtung) 개념을 현대 실천철학의 맥락에서 새롭게 조명하는 박사학위 논문을 쓰고 있다. 최근 『하버마스에게서 가치와 규범: 도덕적 토의의 자기(自起)동학에 관하여』(Deutsche Zeitschrift fur Philosophie, vol.57, no.6, 2009, S.861~875)라는 논문을 발표했다. 옮긴 책으로 『물화: 인정(認定)이론적 탐구』(2006)가 있다.

    필자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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