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로벌 스탠더드와 타이타닉 침몰
        2010년 02월 07일 10:50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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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

    <조선일보>에는 이선민 기자라는 분은 계십니다. 말은 ‘기자’지만, 국사를 많이 배운 사람이고 대체로 그 발언마다 한국의 소위 ‘주류’가 뭘 생각하고 있는지를 잘 표현하는 사람인 것 같기도 합니다.

    물론 그 주류 안에서는 수많은 분파들, 경향들은 있지만, 이선민씨가 쓰는 걸 보면 주류들 사이의 ‘합의 사항’을 나름의 사학 지식을 동원하여 잘 전달하는 것 같습니다. 역사, 철학이 깃든 한국 지배자들의 생각을 읽으려면, 그런 류의 컬럼을 읽는 것은 첩경일 수도 있습니다.

    한국 주류의 합의 사항

    지난 번에 이 이선민 기자가 ‘사대’를 갖고 컬럼을 썼습니다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0/01/31/2010013100849.html). 그 내용을 보면, ‘사대주의’는 식민지 사학이 왜곡한 것이고, 조선시대의 ‘사대’는 결국 중국이 좌우한 당대 ‘글로벌 스탠더드’에 대한 준수이었다, 그 글로벌 스탠더드 준수 덕택에 조선이 나름의 안정과 문화 발전의 혜택을 받았다, 지금의 중국은 바로 미국이니 미국적 글로벌 스탠더드를 준수하는 것은 우리가 살 길이다, 우리가 이 길을 열심히 가고 있으니 일본을 능가할 힘도 있다, 대체로 그러한 내용입니다.

    사실, 강온의 차이는 약간 있겠지만, 이와 같은 내용에는 한국 주류의 상당수는 그대로 동의할 것 같긴 합니다. 글로벌 스탠더드를 갖고 설명 못할 것은 뭐가 있겠습니까?

    각종 ‘자유무역협정’들도 글로벌 스탠더드고, 천정부지의 등록금 올리기나 대학의 ‘유사 기업화’도 미국발 글로벌 스탠더드고, 국립대학의 독립법인화도 일본발 글로벌 스탠더드고, 노조에 대한 살인적 탄압도 지금 막 떠오르는 중국발 글로벌 스탠더드고… 글로벌 스탠더드 말고는, 이 사회의 주인들이 그 기득권을 확대, 공고화, 재생산하는 과정을 더 잘 합리화할 표현도 없을 것입니다.

    물론 이선민 기자의 말은 꼭 역사적으로 봤을 때에는 "틀리다"는 건 절대 아닙니다. 전통적으로 한반도 엘리트들이 주어진 대외적 환경에 잘 적응하는 것으로 이름나기도 하고, 외부적 모델들을 이용하여 국내적 조건에 맞는 그 ‘국내판’을 만들어서 외부적 원칙과 토착적 유산이 잘 결합되는 시스템들을 만드는 걸로 유명하기도 합니다.

    예컨대 조선을 보시면, 송나라 이후의 중국식 중앙 행정조직과 과거제 등에다가 토착적 노비제, 반상차별제를 결합한 것이고, 김씨 왕조의 새로운 조선을 보시면 역시 스탈린주의적 중공업 중심 발전 모델과 당 중심의 통제, 일제말기식 총동원 시스템, 전통 성리학적인 도덕주의적 ‘충효’ 이념과 혈통적 권력 계승 등을 하도 교묘하게 잘 맞춘 덕에 그 후원국들이 사라지거나 크게 변모해도 계속 그 생존을 성공적으로 도모하는 것입니다.

    글로벌 스탠더드와 기득권 유지

    마찬가지로, 박정희식 개발 모델도 1950~60년대에 세계적으로 유행한 국가 주도의 개발(관치 금융, 중공업 위주의 공업화 주도 등)과 당대 일본식 외향적인 수출 주도형 성장, 그리고 국내적 요소(일제말기식 병영국가 체제, 군벌과 재벌의 ‘지배 블록’ 등)의 매우 재미있는 복합물이었습니다.

    글로벌 스탠더드만으로 설명이 되지 않지만, 글로벌 스탠더드의 국내화에 성공한 엘리트들이 꽤나 지구성이 강한 지배체제를 만드는 데에 능숙하다, 이 정도면 중립적 평가가 될는지도 모르겠어요.

    그런데 이선민 기자가 외면한 한 중대한 요소가 있습니다. 글로벌 스탠더드를 갖고 놀다가는 학교 종이 땡땡땡 하는 소리를 못들을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즉, 글로벌 스탠더드 그 자체가 갑자기 낡아빠진 시대착오적 것이 돼버린다면, 거기에다 명운을 건 한반도 주인네들이 약간 불편한 입장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죠.

    뭐, 명나라 초기와 세종대왕 시대의 글러벌 스탠더드를 갖고 복고적인 ‘개혁’을 하느라 시간을 하도 많이 낭비했다가 결국 패망을 맞은 대원군까지는 논외로 하고, 일제 말기를 생각해봅시다.

    그 당시 대일본제국 판도 안에서의 글로벌 스탠더드인 천황폐하 만세, 황군무운장구 기원, 귀축영미 박멸, 정신 총동원 등을 갖다가 신나게 병정놀이하고 상것들을 총알받이 만들기에 정신이 다 나간 한반도의 ‘엘리트’들은, 과연 1945년 8월 15일에 어떤 감상을 했을까요?

    미영귀축 박멸에서 공산괴뢰 박멸로

    공든 탑이 무너지고, 본인들이 졸지에 제일 순량한 황국신민에서 ‘친일파’로 전락돼 만인의 노골적 증오의 대상이 됐죠. 반대로, 도조 히데키의 글로벌 스탠더드를 완고하게 거부해 감옥과 벽돌공장을 오가고 있었던 박헌영이나 은둔생활과 물밑 ‘건국’ 조직 작업을 택한 여운형 등은 장안의 인기를 한 몸에 모았지요.

    물론 주인님들은 새로운 상황에 재빨리 적응해 영미귀축 박멸 대신에 공산 괴뢰 박멸로 돌아서고, 그 영미에 아주 확실하게 붙어버렸지만, 박헌영과 여운형을 흠모할 수밖에 없는 백성들을 학살하느라 몇년간 아주 바쁜 시간을 보내야 됐어요. 물론 결국에는 거의 다 학살해버렸단 말이죠.

    아니면, 스탈린 시대의 글로벌 스탠더드를 붙잡고 고르바초프와 등소평의 시대를 맞은 평양 왕궁의 기분을 생각해보시기를. 스탠더드는 돌연히 바뀌는 경우들이 있지만, 인의염치나 영미귀축 박멸, 또는 주체와 자주의 매력에 푹 빠진 한반도 주인님들은 거기까지 미리 계산 못하는 것입니다.

    지금 이선민 기자님의 구체적 ‘스탠더드’가 무엇인지 저 같이 장안의 소식에 어두운 해외 오지의 백성은 잘 알 리가 없습니다. 20년 전 일본의 ‘국토 개조’ 망상을 떠올리는 4대강이 요즘 스탠더드인지, 역시 20년 전, 버블 터지기 직전의 일본을 생각케 하는 부동산 값의 유지 정책이 스탠더드인지, 아니면 쌍용이나 한진중공업에서 미국식 정리해고로 수천 명의 노동자를 도시 빈민으로 만드는 게 스탠더드인지, 주인님들의 혜안을 갖고 있지 못하는 일개 북적 야인이 어찌 알겟습니까?

    그런데 지금 주인님들이 ‘글로벌’로 상정하는 나라들, 즉 미국과 일본이 겪는 일련의 과정들을 보면, 저들의 스탠더드를 계속 신주단지로 모시고 만동묘 제사 지내 듯하는 것은 1945년 5월에 녹기연맹 시국 강연을 댕기는 것과 거의 같은 수준의 오판이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듭니다. <타이타닉>을 타고 있는 사람들도, 이 배가 영원히 침몰 못할 것이라고 믿었을 터인데 말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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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디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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