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선거운동 하다가도 밥해야 해요"
        2010년 02월 05일 10:36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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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달 26일 고려대학교 경영본관 강의실에서 ‘선거와 가족주의’라는 주제로 성정치 월례토크가 있었다. 진보신당 성정치 월례토크는 성정치와 관련된 현안에 대해서 당원들, 시민들과 인식을 공유하기 위해서 마련된 자리다. 4차로 진행된 이번 월례 토크는 성정치위원회, 여성위원회, 성북구당원협의회가 공동으로 주최를 했는데, 토론자는 지방선거 및 총선 출마 경험이 있는 최혜영, 최현숙, 정현정씨와 필자가 나섰다.

       
      ▲ 사진=진보신당 성북당협

     
    각 토론자들은 결의 과정과 선거 과정을 통해서 여성후보가 처한 어려움을 생생하게 드러냈다. 먼저 최혜영씨는 남편이 5번 본인이 2번의 출마를 하여 부부가 도합 7번의 출마를 한 이례적인 경험의 소유자다. 2002년엔 남편은 시장으로 부인은 기초의원으로 공동출마를 했다. 당에 여성 후보군들이 없는 상황에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지만, 당시 돌봄의 부재로 지금까지도 후유증이 있는데 그것마저도 오로지 최혜영씨의 몫이 되어 마음이 무겁다.

    선거운동 끝나면 장보고 설거지하고

    최혜영씨는 선거운동기간동안 아이들을 친정어머니가 돌봐 주었는데, 대부분 아이가 있는 여성 후보들은 선거운동 기간에는 돌봄 부재를 또 다른 여성인 친정어머니나 시어머니에게 ‘전가’하고 있다. 돌봄 문제와 가사일 때문에 남편과 달리 선거에 올인할 수 없었다. 본 선거에는 쉬는 시간에 집에 들어와 설거지를 하고, 하루 선거운동이 끝나면 장을 봐서 집에 들어가 타 후보의 안쓰러운 시선을 받기도 했다.

    지역을 움직이는 동네 조직책들과 선거 운동원들은 대부분 여성이었는데 후보들은 남성이 많았다. 남성후보를 당선시키기 위해서 여성들이 노력하는 형국인데, 정치문화 자체가 남성 중심적이고 여성문화가 부재해서 여성들이 후보로 나서기 힘들기 때문이다. 후보활동을 하면서 겪었던 갖가지 성추행과 성차별의 경험은 말로 다 할 수 없다.

    최혜영씨가 배우자로 선거운동을 하면서 느낀 점은 대한민국은 지독한 가족주의 사회이며, 정치, 선거의 영역은 훨씬 더하다는 것이다. 통상 정치에서 배우자의 역할로 규정되는 것들은 철저하게 주인공인 남성후보를 위해 보조역할을 수행하도록 강요받고 있다.

    가족은 정치견해 다를 수 없나?

    선거법상에도 차별이 존재하는데 그 예는 명함배부를 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을 후보 본인과 배우자로 적시하고 있다. 배우자가 없는 후보는 극심한 차별을 받는 것이다. 여기에 더해 현행 개정법은 배우자가 없는 경우 그 차별을 더 심화하고 있다.

    예비후보 기간에도 명함배부 가능한 사람으로 ‘예비후보자와 수행원1인, 배우자와 직계존비속, 예비후보자가 함께 다니는 선거사무장, 회계책임자, 선거사무원 및 활동보조인, 배우자가 지정한 수행1인’이 포함되었는데, 오히려 배우자와 직계존비속이 없는 경우 차별이 더 심해진 것이다. 최혜영씨는 또한 가족들이 정치적 견해가 다를 수 있음에도 가족은 늘 후보를 지지해준다고 착각하는 이 나라의 법에 대해 대응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냈다.

    2003년 기초의회보궐선거와 2008년 총선 두 차례의 출마경험이 있는 최현숙씨는 여성성소수자 후보의 경험과, 기혼여성후보의 경험, 후보부인수행의 경험을 들어 선거와 가족주의에 대해 얘기했다.

    성소수자 후보도 ‘가족’ 넘지 못해

    최현숙씨는 2007년부터 여성주의성소수자 선본을 꾸려 선거운동을 통해 여성주의를 지향하고 정치와 사회의 가족주의에 어떻게 문제제기를 할지 고민해왔다. 이에 2008년 정치판의 상징적인 의미가 있는 종로에서 출마를 했다.

    언론에 레즈비언 후보로 가시화 되었을 때 당의 이미지와 득표 전략에 부정적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일부 당원들과의 토론을 통해, 거대담론이 우선시되는 진보의제의 서열화를 깨고 의제의 다원화를 어떻게 만들어 나갈 것인지 당 안에서 모색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

    하지만 “커밍아웃한 성소수자 선본”으로서 가족주의와 가부장제 극복을 선본의 핵심의제로 정했음에도 이를 주민들에게 효과적으로 전달할 언어나 선거운동방식을 찾기 어려웠다. 오히려 ‘깨끗한 여성정치, 꼼꼼한 여성정치, 여성의 살림살이를 닮은 정치…’와 같은 기혼, 중년, 여성의 이미지와 역할에 기댄 언어를 되풀이하여 생산해내고 있었다.

    "남편은 무슨 일 하시길래"

    또한 이혼한 동성애자임을 공론화시킨 후보임에도 자녀와 가족 이야기를 통해 주민들과 편하게 섞일 수 있었다. 이런 선본조차도 가족주의와 가부장제를 넘어서지 못하는 한계에 직면함으로 우리나라의 선거에서 이를 극복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절감했다.

    선본활동가들이 선거운동의 일환으로 드랙쇼(Drag Show, 성역할 고정관념을 비트는 다양한 치장과 표현의 문화 퍼포먼스)를 했는데, 주민들이 재미있어했다. 하지만 일부 장노년 남성들의 혐오감을 표출하기도 했다. 특히 혐오감은 여장을 한 선본원들에게 향했는데, 마치 “어디 저런 여자가 마이크를 잡고 감히 정치에 대해 떠들어”라는 표정이었다. 드랙이 과장된 표현을 통해서 성별에 대한 고정관념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것이긴 했지만, 이는 여성이 공적인 인물이 되고 주민의 대표로 나선다는 것에 대한 거부감과 연결되어 있다.

       
      ▲ 사진=진보신당 성북당협

    최현숙씨는 2003년 재보궐 지방선거에서는 사업하는 남편과 장성한 두 아들을 키워낸 기혼여성의 조건으로 출마를 했는데 해당지역 진보정당의 모든 선거를 통틀어 최고 득표율을 얻었었다. 당시 주민들의 관심사는 “남편은 무슨 일을 하는가?”, “남편은 출마를 어떻게 생각하는가?”가 많았다.

    성추행, 성차별적 언어 심지어 스토커까지

    정현정씨는 2002년 지방선거와 17대, 18대 총선에 출마했다. 비혼 여성으로 출마했을 때 “결혼은 언제할거냐? 남편이 있으면 도와 줄 텐데……. ” 는 얘기를 많이 들었는데 배우자 없이는 힘들다는 편견이 담긴 언어들이었다.

    스토커처럼 선본 사무실에서 늘 기다리며 정현정씨를 힘들게 했던 남성도 있었다. 선거운동 때는 수행원이랑 같이 다니지만 선거가 끝나면 혼자 다녀야 하는데 그때까지도 스토킹을 당하면 어쩌나하는 불안함에 많이 힘들었다고 한다. 성추행과 성차별적 언어를 참아내지 않으면 늦은 밤 술집 유세는 아예 포기해야 한다.

    여기에 토론자들이 선거운동의 방식 자체를 달리할 필요가 있다는 제기가 많았다. 악수하는 관례,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소화하는 일정, 천편일률적으로 지침을 내리는 것보다 특성을 살리고 개인의 조건을 감안할 수 있는 방식을 개발하자는 의견이 있었다.

    출산 보다는 선거

    서울시 광역 비례로 출마한 최은희씨는 출산문제로 고민하는 여성활동가들의 이야기를 하였다. 출산을 결정하고 계획하는 것은 향후 최소 1,2년간의 활동계획과 맞물려야 하는데, 본인도 선거와 맞닥뜨리게 되면 언제나 출산이 뒤로 밀리는 경험을 했다.

    여성 당사자의 결정이 가장 중요하지만, 어떻게 당적으로 공유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이 있다. 후보활동 때문에 임신중절을 하거나, 출산 직후 산후조리기간에 후보활동을 하는 경우도 있는데, 평생건강에 영향을 미치는 시기에 너무나 폭력적인 방식이라는 의견도 있었다.

    후보배우자의 역할도 문제거리이다. 후보 배우자로서 활동해본 경험이 있는 최혜영씨와, 2009년 국회의원 재보궐 선거에서 전주에 염경석 후보 부인을 수행했던 최현숙씨 모두, 유권자들에게 후보 부인을 어떻게 소개해야 할지가 가장 난감하다고 했다.

    ‘000후보의 배우자 000입니다’라고 하면 못알아듣는 경우가 태반이고 ‘000후보 부인입니다’라고 하거나 심지어 ‘000후보 집사람’이라고 한적도 있었다고 했다. 후보 부인의 역할 또한 선본에서 논의되거나 고민된 적이 없어서 그저 ‘부인’의 존재와 얼굴만을 보이러 다니는 방식은 이제 변화해야 하지 않을까.

    남성중심 정치판, 근본적으로 바뀌어야

    최혜영씨는 여성정치, 말로는 많이 하고 있지만 단지 여성이 많이 출마하는 것이 아니라 남성중심의 정치판, 정치문화를 근본적으로 바꾸려는 노력이 함께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여성들이 처한 차별과 어려움을 제도적으로 해결하고자 하는 노력이 포함될 때 진정한 여성정치 구현이 가능하다.

    이와 관련하여 지난 진보신당 전국위에서 돌봄 문제를 당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첫 시도가 있었다. 여성발전기금 중 일천만 원을 지방선거 여성 출마자가 짊어지고 있는 돌봄 비용에 쓰자는 것이다. 이는 재정적 지원 뿐 아니라 각 선본에서 돌봄의 문제를 공론화하는 계기가 될 의미 있는 시도이다. 대의원대회에서 놀이방을 설치하는 것이 자연스러워진 것처럼 선거 때가 되면, 놀이방을 설치하는 것이 자연스러워지길 기대할 수 있을까?

    2010년 지방선거! 여성정치를 재구성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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