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차이 인정하고 연대하자”
        2010년 02월 04일 09:23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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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해 6월의 지방선거를 앞두고 이런저런 선거연대나 통합에 관련된 논의가 무성하다. 이른바 ‘반MB연대‘나 ’진보대통합‘ 등이 대표적이다. ‘반MB연대‘가 실제로 이루어질 지는 불확실하지만, 민주당과 민주노동당 및 국민참여당 등 대부분의 야당들은 적어도 말로는 ’반MB연대‘에 동의한다고 말하고 있다.

    이는 우리 경남도 마찬가지여서, 지난 1월 13일에 민주노총 경남본부에서 열린 ’지방선거 공동대응을 위한 토론회‘에서는 위의 세 정당과 상당수의 시민사회단체들이 이번 지방선거에서 반MB라는 깃발 아래 공동대응을 해야 한다는 주장을 내세웠다. 주요정치세력 중에서는 유일하게 진보신당만이 이와는 좀 다른 목소리를 내고 있을 뿐이다.

    한편 민주노동당은 ‘진보대통합’을 추진한다면서, 이번 지방선거 전에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 등 제 진보정치세력들이 대국민 통합선언을 하자고 말하고 있다. 우리 경남에서도 민주노동당 측 인사들은 현장 조합원들을 만나면서 진보신당과의 통합 합의가 거의 이루어질 것처럼 말하고 있다.

    진보정치세력의 단결을 바라는 현장 조합원들의 정서를 빌미로 하여, 일종의 명분 쌓기에 나서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차이를 인정하고 서로 연대하는 것이 아니라 아예 하나로 다시 합치는 것을 목표로 한다면 상대방의 이야기도 들어봐야 할 텐데 그 분들이 진보신당의 목소리를 진지하게 듣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물론 투쟁의 현장에서건 정당운동의 현장에서건 연대는 좋은 일이다. 각자의 차이를 존중하면서도, 공동의 목표를 위하여 연대하는 것 그 자체는 언제든지 필요하다. 하지만 ‘반MB연대’와 ‘진보대통합’이라는 현재의 논의는 올바른 연대가 아니다.

    지금 필요한 연대는 진보정치세력 간의 연대이지 보수야당과의 연대가 아니며, 진보정치세력 간의 연대 또한 서로의 차이를 인정한 바탕 위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이하 본 글에서는 왜 현재의 연대나 통합 논의가 잘못되었는지를 간단히 살펴보고자 한다.

    1. 민주당 등 보수야당과의 ‘묻지마 연대’는 잘못이다

    최근 이루어지는 선거연대 논의는 민주당이나 국민참여당 등 보수야당들도 연대의 대상으로 삼고 있다. 반민주적인 이명박 정권에 반대하는 세력이라면 누구라도 연대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과연 지금의 민주당이나 국민참여당이 아무런 조건 없이 연대할 수 있는 세력인가?

    연대는 서로 경로나 강조점에 차이가 있더라도 최소한의 공동 목표나 공동으로 추구하는 가치가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그런데 민주당 등 보수야당과 진보신당이나 민주노동당 등 진보정치세력 간에 어떤 공동의 목표가 있는가?

    보수야당과 진보정치세력이 서로 바라보는 곳이 다르다는 것은 이미 지난 10년간의 민주당 집권시기에 잘 드러나지 않았던가? 이런 상태에서 설령 민주당이 다시 집권해본들 진보정치세력이나 노동자 민중운동 세력이 추구하는 가치를 일정 정도나마 반영한다는 보장이 어디에 있는가? 굳이 과거를 따질 필요가 있느냐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과거의 잘못에 책임은 지지 않더라도 최소한 이를 진심으로 반성하는 태도는 가져야 한다.

    하지만 필자가 과문한 탓인지 민주당 등 보수야당이 과거의 잘못을 말로나마 반성했다는 말은 들어보지 못했다. 오히려 자신들이 현재로서는 지지율이 높다는 이유만으로 다른 정치세력에 오만한 자세를 취하고 있지 않는가. 87년 이후 20년 넘게 지속되어 온 짝사랑은 이제 그만 끝낼 때가 됐다.

    그래도 이명박이라는 반민주적 정권의 횡포에 대항하기 위해서는 힘을 합쳐야 한다는 사람들도 있다. 이런 사람들은 이명박을 80년대의 독재정권 비슷하게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그 당시의 민주-반민주 구도가 여전히 유효하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필자는 이명박 정권을 80년대식 독재정권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명박 정권은 과거라기보다는 그간의 ‘시장자유화’의 과정에서 승자로 등극한 이들이 일방적으로 주도하는 새로운 시대다. 그들은 국가가 아니라 시장과 경쟁을 숭배한다. 그리고 이는 87년 이후 누가 집권했건 모든 정권이 추진했던 신자유주의 정책의 최종결과이다.

    결국 이명박은 87년 이후 소위 ‘형식적 민주화’와 함께 진행된 ‘시장자유화’를 전면적으로 계승한 새로운 정권이지 87년 이전의 군사독재정권이 아니다. 지금 우리가 극복해야 할 것은 시장 즉 자본의 횡포이지 독재정권의 억압이 아니다.

    민주 대 반민주 구도가 아니라 노동자 대 자본의 구도가 가면 갈수록 강화되고 있다는 것은 현장 조합원들은 누구나 알고 있다. 노동자 대 자본의 구도에서는 보수야당은 자본의 편이다. 그런데 훨씬 강화된 노동자 대 자본의 구도를 외면한 채 민주 대 반민주 구도를 강조한다는 것은 본인의 의도야 어쨌건 자본의 이익에 봉사하는 것이다. 좀 심하게 말한다면, 그렇게 반MB가 중요하다면 박근혜를 지지하는 것이 맞지 않는가?

    2. 진보정당 – 통합 이전에 차이를 인정한 연대가 우선

    이제 진보정치세력 즉 진보정당 간의 관계에 대해 생각해 보자. 보수야당과는 달리, 진보정당 간에는 지향하는 방향에 있어서 일정하게 공통점이 있으므로 서로 연대할 수 있는 최소한의 공통분모는 존재한다.

    우리 경남지역 내의 어떤 사람들은 진보신당은 아예 모든 연대에 무관심하다는 식으로 몰아붙이지만 이는 전혀 사실이 아니다.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고 상대방을 존중한다면 진보정치세력 간의 연대에 대해서는 우리가 반대할 이유가 없다.

    문제는 그간 과연 ‘차이를 인정하고 연대’하려는 자세가 얼마나 있었는가이다. 가령 민주노총의 배타적 지지 문제를 생각해 보자. 특정 정당을 배타적으로 지지한다면서 다른 진보정당에 대해서는 민주노총 조합원임에도 민주노총 후보에서 배제하고 현장 방문까지 막고 있는 상황이다. 상대를 존중하고 연대하려는 자세가 아니라 현장에서의 상대적 우위를 내세워 상대를 억누르려는 자세가 그간 경남의 현실이었다.

    이렇게 차이를 인정한 연대조차 제대로 되지 않는 상황에서, 연대보다 훨씬 높은 수준인 전면통합을 이야기하는 것은 너무 앞서나가는 것 아닌가? 이혼한 부부가 다시 합치려면 여러 중간과정이 필요하다. 그런데 상대방을 계속 무시하면서 이웃들에게는 ‘우리 다시 합칠 거예요, 그런데 저쪽에서 말을 안 들어요’라고 떠들고 다닌다면, 과연 그 사람이 진정으로 다시 합칠 마음이 있는 것인지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다.

    ‘자꾸 차이를 인정하라고 하는데 진보신당과 민주노동당 간에 실제로 무슨 차이가 있느냐’고 되물을 수도 있다. 하지만 차이는 틀림없이 존재한다. 둘 다 노동자 민중을 대변하고 노동자 민중이 주인 되는 세상을 궁극적으로 바란다는 점에서는 차이가 없지만, 그 경로에 있어서는 상당한 차이가 존재한다.

    민주노동당 내의 주류는 최종적으로는 노동해방을 바라더라도, 당면과제는 계급문제가 아니라 민족문제 내지 민주적 과제라고 생각한다. ‘자주민주통일’이라는 그들의 구호가 이를 잘 보여주거니와, 최근의 ‘반MB연대’에 그들이 적극적인 것 또한 그들 입장에서는 노동 대 자본의 구도보다는 민주 대 반민주 내지 통일 대 반통일의 구도가 당장은 우선이기 때문이다.

    반면 진보신당 사람들 대다수는 노동 대 자본의 구도 다시 말해 계급문제가 민족문제나 민주적 과제보다 더 우선이라고 생각한다. 비정규직과 빈익빈 부익부 등 사회경제적 양극화로 대표되는 노동자 민중의 민생문제에 힘을 집중해야 하며, 따라서 양극화를 심화시킨 보수야당과의 연대는 적절치 않다고 판단한다. 결국 추구하는 방향은 비슷하지만 그를 위한 경로가 다른 것이다. 그리고 노동조합 같은 대중조직이 아니라 정치적 이념적 집단인 정당에서는 이는 중요한 차이이다.

    물론 현장 조합원들 상당수는 통합을 바라고 있다. 이런 차이들이 제대로 설명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한 언젠가는 다시 더 큰 하나가 되어야 한다는 것도 맞다. 하지만 현 단계에서는 일방적인 통합 제안이 아니라 각자의 차이를 인정하고 연대할 수 있는 것부터 연대하는 것이 타당하다.

    연대를 통해 상호신뢰가 쌓이지 않은 상태에서 무리하게 통합할 경우, 다시 내부에서 자기들끼리 티격태격 다툼만이 반복될 뿐이다. 대중과 만나는 것보다 내부다툼에 더 많은 에너지를 쏟았던 과거를 되풀이하고 싶지 않다면, 각자가 대중을 만나면서 필요할 때 연대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그래야만 이후의 통합도 가능해지는 것이다.

    3. 길게 보고 가자 – 당장의 승리보다 역사의 진보를

    이번 지방선거를 계기로 ‘반MB연대’니 ‘진보대통합’이니 하는 이야기가 나오는 것은 결국 이번 선거에서 기필코 한나라당을 이겨야겠다는 생각이 강하기 때문이다. 결선투표 없는 소선거구제 하에서 어떻게든 승리하려다 보니, 각자가 추구하는 방향이나 경로의 차이 따위는 무시하고 일단 힘을 합치자는 주장이 득세하는 것이다.

    하지만 진보정치 내지 노동자 계급정치의 성장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역사가 진보한다’라고 이야기할 때 그 시간단위는 적어도 50년 정도이다. 그런데 한국 진보정치의 역사는 이제 겨우 10년 남짓할 따름이다.

    게다가 한국은 진보정당의 성장을 가로막는 핵심조건들이 한국전쟁 이후 50년가량 지속되어 온 나라이다. 고도성장의 결과 광범위한 신분상승이 가능했기에, 노동자나 사회경제적 약자들이 집단적으로 단결해서 문제를 해결하기보다는 개인적인 노력으로 문제를 돌파하려는 양상이 고착되어 있었다.

       
      ▲ 필자

    또한 한국전쟁 이후 진보정치세력이 사라지고 보수 독점의 정치가 펼쳐짐으로써, 정치가 국민들에게 실제적으로 어떤 혜택도 주지 못했고 이에 따라 반정치주의가 사람들에게 널리 퍼졌다. 신분상승의 가능성에 따른 노동자 계급의식의 약화와 반정치주의에 의한 정치불신 속에서 진보정당의 성장은 매우 험난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상황이기에, 우리는 짧은 시간 내에 승리하려고 애쓰기보다는 보다 장기적인 전망을 가져야만 한다.

    그렇다고 비관할 필요는 없다. 그간 진보정치의 성장을 가로막았던 핵심조건들이 97년 IMF사태 이후 급격하게 바뀌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더 이상 ‘개천에서 용나는 것’ 다시 말해 신분상승의 가능성은 쉽지 않게 되었다. 이는 결국 개인적 성공이 아니라 계급적 단결이라는 새로운 해법을 찾게 만든다.

    또한 정치불신은 겉보기에는 더 심해진 것 같지만 실제로는 보다 많은 사람들이 정치가 우리 삶과 직결되어 있음을 깨닫기 시작하고 있다. 개개인에게는 힘든 시기이겠지만 좀 더 길게 보면 진보정당이 성장할 수 있는 토대가 강화되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제대로 노력할 경우 앞으로 10년 정도만 더 지나면 2004년을 훨씬 뛰어넘는 본격적인 진보정치의 시기가 올 수 있을 것이다.

    지금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긴 호흡 즉 길게 보고 가려는 자세이다. 이런 자세가 부족하기에, 당장의 승리에만 집착하게 되면서 이런저런 잘못된 연대논의들이 무성하게 되는 것이다. 순간의 승리보다 역사의 진보를 믿고서 뚜벅뚜벅 걸어 나가자.

    * 노동사회교육원의 <연대와 소통> 17호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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