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토요타, 실수 혹은 치부?
        2010년 02월 04일 01:29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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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토요타의 ‘신화’가 흔들리고 있다. 지난주 토요타는 미국계 부품업체(CTS)가 공급하는 가속페달의 문제로 인해 전 세계적으로 8개 차종 약 1000만 대의 차량을 리콜한다고 발표하였다.

    가속페달 자체의 문제인지, 아니면 전자센서로 이어지는 기술적 문제인지에 대한 논란이 아직도 계속되고 있지만, 이번 사건이 ‘품질제일’을 강조하던 토요타의 이미지에 먹칠을 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 생산된 차체를 점검하고 있는 모습

    이미 미국시장에서 한 달 매출액이 25억 달러 감소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으며, 토요타가 딜러들에게 엄청난 리베이트를 지불하겠다고 약속하고 있지만, 중고시장에서 토요타 제품은 헐값으로 경매시장으로 넘어가고 있는 실정이다.

    헐값 토요타

    한편 이 사건으로 인해 토요타 회장이 직접 나서 해명과 사과를 하고 ‘즉각적인 리콜과 철저한 에프터서비스’를 공언하고 있지만, 리콜의 원인규명을 둘러싼 논란은 미일간 분쟁으로 이어질 가능성까지 존재한다. 더욱이 미국의 빅 3는 물론, 현대차와 기아차도 이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 자사 차량 교체시 구입인센티브를 지급한다고 발표함으로써, 자동차시장을 둘러싼 점유율 경쟁은 더욱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상황에서 여전히 풀리지 않는 의문은 과연 이번 사건이 불량부품을 사용한 토요타의 단순한 실수에 불과한가이다. 물론 문제의 직접적인 원인은 가속페달의 품질에 있다. 하지만 이 문제를 조금만 더 넓게 본다면 이번 사건이 단순한 불량부품의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보다 본질적인 문제는 원가절감을 위해서는 ‘마른 수건도 쥐어짜는’ 토요타의 ‘린’ 생산방식에 있을 뿐만 아니라, 시장선점을 위해서는 ‘과당경쟁과 저가할인’을 불사하는 무분별한 해외생산에 있다.

    흔히들 ‘린’생산방식은 시장수요에 탄력적으로 대응하고 생산비용을 최대한 절감하기 위한 토요타 생산체계의 핵심적인 원칙이라고 한다. 하지만 이는 단지 사전적인 의미에 불과하다. 생산현장의 현실은 노동자들이 비지땀을 흘리면서 라인속도에 맞추어 고혈노동을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한편 ‘린’생산방식은 지난 30년 동안 변형을 거듭하여 ‘린’조달방식으로 확장되고 있다. 이번 사건도 바로 이러한 ‘린’조달방식이 지닌 근본적 결함으로 인해 발생할 수밖에 없었다. 원가절감을 위해 부품단가를 강제로 낮추게 되고 이는 부품업체로 하여금 품질개선보다는 비용절감에 더욱 신경을 쓰게 만들었다.

    ‘린’ 방식이 품질결함으로 돌아온 것

    소위 단가인하의 ‘부메랑’은 불량부품의 공급을 통해 고스란히 토요타 자동차의 품질결함으로 나타나고 있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은 이번 사건이 단지 해외 부품업체의 문제가 아니라, 토요타 생산방식 자체의 문제라는 것이다.

    이미 일본국토교통성은 지난 5년 동안 일본 국내차의 리콜건수가 전년 기간 대비 200% 늘어났다고 보고하고 있다. 즉 일본 국내 자동차업체 또한 품질불량이라는 심각한 문제에 봉착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번 사건은 결국 작년 토요타가 경제위기의 극복방안으로 제시한 ‘원가절감 30%’라는 무모한 목표설정으로 인한 당연한 결과이자, 비용절감을 위해 지난 추진된 일본적 생산방식의 아킬레스건이다.

    한편 이번 사건은 내수경기의 침체와 해외시장의 선점을 빌미로 무분별하게 추진된 토요타의 ‘몸집 불리기식’ 글로벌 생산전략의 한계이기도 하다. 80년대 이후 엔고 상승과 무역장벽을 넘어서기 위해 토요타는 공격적인 해외진출전략을 구사하였다. 2003년에 이미 해외에서 총 255만 대를 생산하였는데, 이 수치는 1995년에 비해 약 두 배 이상 증가한 것이다.

       
      

    이러한 해외생산의 증가추세는 지속되어 2006년에 도요타의 총생산량은 750만 대에 이르게 되고 이 중 해외생산의 비중은 50%를 넘어서게 되었다. 이러한 무분별한 해외생산은 비용절감을 위해 소위 ‘글로벌소싱’, ‘현지조달’과 맞물려 진행되었다. 이 과정에서 토요타는 해외 조달업체에게도 특유의 ‘쥐어짜기’식 단가인하와 품질관리를 강압적으로 실시하였다.

    물론 이러한 방식을 통해 원가절감은 수치상으로 맞출 수 있었지만, 품질관리에서 결정적인 허점을 드러내게 된 것이다. 이번 사건은 양적 성장만을 추구하는 자동차업체의 해외생산전략이 지닌 치명적 결함을 보여주는 사례인 동시에, 과당경쟁과 저가할인을 위주로 한 해외판매전략이 결국에는 품질불량이라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토요타를 넘어서는 현대차?

    과연 그렇다면 이번 사건이 토요타만의 문제일까? 당연히 그렇지 않다. 토요타의 위기를 시장점유율 상승의 호기로 보고 구매할인을 공세적으로 펴고 있는 현대차그룹은 부정할지 모르지만, 지난 20년간 현대차와 기아차는 제 2의 토요타가 되기 위해 모든 영역에서 모방전략을 채택해온 것이 사실이다.

    특히 이번 사건의 근본적인 원인으로 작용하는 ‘린’ 생산방식과 글로벌 생산전략은 거의 닮은 꼴이다. 부품업체에 대한 단가인하와 비정규직의 투입을 통한 원가절감은 더하면 더했지, 결코 덜하지 않다.

    단가인하는 매년 정기적으로 계속 진행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원청업체에 의한 임의적인 단가인하 또한 관행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은 세상이 다 아는 사실이다. 사내하청으로 대표되는 비정규직의 확산은 단기적으로 인건비를 부분적으로 줄일지 모르지만, 현대차그룹이 지향하는 고부가가치-고품질이라는 전략적 목표를 달성하는데 있어 가장 큰 걸림돌이 될 것이다.

    즉 단가인하와 사내하청에 기반한 현대차의 생산방식이 토요타의 ‘린’ 생산방식이 봉착한 함정에 빠질 가능성은 농후하다. 또한 소위 ‘G 5전략’으로 대표되는 무차별적인 해외생산 확대전략으로 인해 국내생산과 해외생산의 비중은 이미 작년에 역전되었다.

    현지조달 비율이 급속히 늘어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중국과 인도로부터의 부품역수입이 현실화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현대차그룹은 중국과 인도, 미국과 유럽은 물론, 러시아와 브라질에서 현지공장을 증설하고 있고 있으며, 현대모비스를 비롯한 부품업체의 동반진출을 강제함으로써, 국내생산기반을 급속하게 약화시키고 있다.

    이번 토요타 사태로부터 우리는 무엇을 배울 것인가? 물론 현대차그룹이 이번 사건을 계기로 품질관리를 재차 강조하고 있지만, ‘토요타 따라 하기’에 길들어진 기존의 현대차 생산방식으로 이러한 문제를 극복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고도의 기술과 숙련이 요구되는 자동차산업의 특성상 부품업체에 대한 단가인하, 비정규직의 투입과 장시간노동, 무분별한 해외생산과 저가할인경쟁 등과 같은 현대차그룹의 치부는 반드시 고쳐야 한다.

    경쟁업체의 위기에 마냥 즐거워하기보다는 동일한 문제에 우리도 봉착할 수 있다는 경각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이번 토요타 사태를 반면교사로 삼아 국내외 생산네트워크의 허브로서 자신의 역할과 책임을 다하는 글로벌 기업으로 현대차그룹이 변화할 수 있기를 진심으로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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