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명박, 냉전 해체 주역될 수 있다"
        2010년 02월 02일 01:23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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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명박 대통령이 1월 29일 BBC와의 회견에서 “아마 연내에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만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한 것을 계기로 남북정상회담에 대한 관심이 증폭되고 있다. 이 대통령의 발언이 일반론 수준의 언급이라는 해명부터 남북한이 물밑 접촉을 통해 상당 부분 공감대가 형성된 것으로 봐야 한다는 해석까지 다양한 분석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장소와 관련해서는 김정일 위원장의 답방이 어렵다면 개성과 금강산 등 북측 지역에서 할 수도 있다는 것이 정부의 입장인 듯하다. 시기와 관련해 청와대는 6월 2일 지방선거를 의식한 듯 말을 아끼고 있지만, 제1 야당인 민주당은 “그런 것과 관계없이 정상회담을 추진해야 하고 이왕 말 나온 김에 빨리하라고 제안한다”며 멍석을 깔아주고 있다.

       
      

    작년 8월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 장례식 참석차 방한한 북한 특사조의단이 정상회담 가능성을 타진했고, 10월부터는 비밀 접촉이 몇 차례 있었다는 점에서 ‘남북정상회담설’은 새로운 것은 아니다. 그러나 남북한이 올해 들어 기싸움을 팽팽하게 벌이면서도, 개성공단 실무회담 등 남북대화 복원 조짐도 보이고 있다는 점에서 새삼 주목을 끌고 있다.

    북한은 왜 정상회담에 적극적일까?

    남북정상회담과 관련해 주목을 끄는 것은 북한의 ‘적극성’이다. 1차 정상회담은 김대중 정부의 적극적인 제안에 따라 이뤄졌고, 2차 정상회담은 북미관계와 6자회담 진전에 힘입어 성사된 성격이 강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6자회담과 남북관계의 교착 국면에서 북한이 정상회담을 꺼내들었다. 이러한 배경과 의도는 크게 세 가지로 분석된다.

    첫째, 남한의 보수정권을 상대로 조기에 정상회담을 실현하는 것이 합의 사항의 이행 동력을 확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판단하고 있을 공산이 크다. 1차 정상회담은 남한 보수파의 강력한 반발과 부시 행정부의 등장으로 모멘텀을 형성하는데 한계가 있었다.

    6.15 공동선언의 실천계획이라고 할 수 있는 10.4 선언을 채택한 2차 정상회담은 노무현 정부 막바지였을 뿐만 아니라, 남한의 정권교체로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이에 따라 북한은 이명박 정부의 임기가 후반기로 접어들기 이전에 정상회담을 실현해 1, 2차 정상회담 이후에 드러난 한계를 돌파해보겠다는 계산을 하고 있을 공산이 크다.

    둘째, 남북관계의 정상화 없이 대내외 목표를 달성할 수 없다는 현실적 판단이다. 북한은 대외 관계 개선 없이는 올해 핵심적인 국정목표로 내세운 민생경제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을 뿐더러, 평화협정, 북미·북일 관계 정상화 등 근본 문제 해결에도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

    그런데 남한을 우회하면서 이러한 목표를 달성하는 것은 구조적으로 불가능해진 상황이다. 이에 따라 북한은 남북정상회담을 조기에 성사시켜, 북미·북일 관계 개선의 기폭제로 삼고, 남한도 참여하는 평화협정 논의도 본격화하려고 할 공산이 크다.

    셋째, 북한이 최고의 국가목표로 내세운 ‘2012년 강성대국론’의 맥락에서도 볼 필요가 있다. 북한은 2007년부터 고(故) 김일성 주석 탄생 100주년이 되는 2012년까지 “강성대국의 문을 활짝 열어놓겠다”고 공언해왔다.

    핵심은 한반도의 정전상태를 평화상태로 바꿔놓은 것는 것과 함께 “인민들이 고깃국에 이밥(쌀밥)을 먹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다. 그런데 북한의 목표 시점인 2012년은 이명박 대통령의 임기와 정확히 일치한다. 이는 남북관계의 획기적인 발전이 ‘2012년 강성대국론’의 필요조건임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MB, 차별성 강박관념에서 벗어나야

    이러한 분석이 타당성을 갖는다면, 이명박 정부에게 ‘천우신조(天佑神助)’의 기회가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미국의 오바마 행정부 출범과 일본의 하토야마 정권의 등장은 한반도 문제를 풀 수 있는 국제적 환경이 대단히 유리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에 더해 북한은 민생경제 및 평화협정과 비핵화 의지를 밝히면서 남한에게 적극적으로 러브콜을 보내고 있다. 이는 20년을 넘게 끌어온 북핵 문제의 해결과 정전상태가 환갑을 맞이하기 전에 평화체제로 전환할 수 있는 역사적 기회가 도래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문제는 이명박 정부의 ‘차별성’에 대한 집착이다. 김대중-노무현 정부 10년을 ‘잃어버린 10년’으로 규정한 정부여당은 6.15와 10.4 선언 등 전임정부의 성과를 계승·발전시키려는 노력보다는 새로운 의제 제시를 통한 차별성을 부각시키는데 초점을 맞춰왔다.

    남북대화의 핵심 의제가 북핵 문제가 되어야 한다는 것에서부터 국군포로, 납북자 송환 및 유해발굴 사업 등에 이르기까지 남북한의 신뢰구축을 통해 추진되어야 할 사업을 대화의 전제조건으로 삼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차별성에 대한 집착은 정상회담 성사 자체도 어렵게 할 뿐만 아니라 정상회담 실현시 그 성과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

    정부가 지금부터 대북정책을 손질한다면, 남북한의 신뢰구축을 통해 남한이 중시하는 정상회담의 의제를 논의할 수 있는 기반을 닦을 수 있다. 우선 개성공단 실무회담에서 성과를 내는 것이 중요하다. 대폭적인 임금인상이 어렵다면 소폭 인상에 동의해줌으로써 북한의 체면을 살려줄 필요가 있다.

    또한 금강산과 개성 관광 사업, 그리고 대북 쌀·비료 지원도 하루빨리 재개함으로써 ‘신뢰구축을 통한 대북 발언권 강화’를 이뤄야 한다.

    역설적으로 미국과 중국, 미국과 소련의 냉전 해체의 주인공은 닉슨과 아버지 부시 등 미국의 보수정권들이었다. 외교안보가 국내 정치와 분리될 수 없는 상태에서 보수정권의 운신의 폭이 그만큼 넓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들이었다.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 구축, 북미·북일 관계 정상화, 남북한 경제공동체 건설을 통한 윈-윈 모델 창출과 유라시아 대륙으로의 진출은 남북한 정치 지도자들의 결단을 통해 이뤄질 수 있는 꿈들이다. 이 대통령이 보다 크고 긴 시야를 가지고 대북정책을 마련한다면, 한반도와 동북아 냉전 해체의 주역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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