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당신의 성(性)은 안녕하십니까?
        2010년 02월 02일 10:37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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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보신당 성정치위원회가 특별한 온천을 준비했다. 올겨울 폭설과 한파로 꽁꽁 얼어붙은 10대, 20대의 몸과 마음을 찾아가는 이동식 스파(SPA-Sexuality Politics Academy)로 따뜻하게 풀어주겠다는 계획이다. 이번에 기획된 성정치 강좌는 총 여섯 차례에 걸쳐 진행되며, 강연 후기를 게재한다. <편집자 주>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저녁, 권력에 환장한 황두영 강사가 진행한 이번 강의에는 전체 7강을 통틀어 가장 자극적인 이름이 붙었다. ‘정치하면서 섹스도 하자’라니. 이 대담한 문장이 주는 낯섦과 설렘이 강의실로 향하는 발걸음에 속도를 붙여주었다.

    궂은 날씨에도 불구하고 20명이 넘는 사람들이 모였고 붉은 스웨터를 입어 더욱 성적인(아마도) 느낌을 주는 황두영 강사가 자리에 앉았다. 사실 SPA강연들 전체에 화두가 되는 것은 ‘성정치’이다. 하지만 정확히 이것이 어떤 의미이고, 어떤 방식으로 사용되는 지는 뜬구름 잡듯 명확히 와 닿지 않는다. 이번 강의는 ‘성정치’의 필요성과 그것의 중요성에 대해 자문하고 답하는 시간이었다.

    나는 수돗물로 배를 채운다

    정치행위란 공식적인 석상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 생활에서, 타인과 관계맺음 속에서, 혹은 나 자신의 내적 토양 안에서도 이루어진다. 법을 제정하는 것만이 정치는 아니며 강한 친구 앞에서 꼬리를 내리는 것도 정치요, 타인의 시선을 의식해 면접을 갈 때에는 해골무늬 티셔츠보다 하얀 남방을 선택하는 것도 정치다.

       
      ▲ 사진=진보신당 성정치 위원회

    정치는 ‘권력’을 분배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때의 권력은 피에르 부르디외가 말한 것처럼 사회자본(당신의 인맥), 문화자본(당신이 향유하는 고급, 혹은 저급한 문화), 경제자본(당신의 빈부)을 모두 포함한다. 그런 점에서 권력을 분배하는 정치는 언제나 우리 삶 도처에서 ‘있다.’

    사실 권력나누기는 도시락 반찬 나누기와 비슷하다. 힘이 세거나, 돈이 많거나, 웃기거나, 친구가 많거나. 여하간 어떤 종류의 ‘권력’을 가진 자들은 좋은 반찬을 뺏어먹든 나눠먹든, 애초에 부모님이 그것을 싸줬든 향유할 수 있게 된다.

    하지만 저 멀리 창밖을 보자. 운동장 수돗가로 달려드는 가진 것 없는 풀뿌리들을. 권력이 결여된 존재들은 수도를 틀어 밥 대신 물로 배를 채운다. 이런 자들을 두고 우리는 ‘소수자’라고 한다. 이들 소수자의 권리는 누가 보장해 주는가? 대개 이들 소수자는 아무런 힘도, 정책 영향력도 가지지 못한다. 분명 학급을 구성하는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이들에게는 시민권이 없다고 말해도 좋은 셈이다.

    투표권, 나에겐 없는 것 ‘같기도’

    나에게 투표권이 있다고 해도 나의 관심과, 나의 욕구를 충족시켜 줄 어떠한 후보도 공약도 존재하지 않다면, 그래서 내가 누구를 뽑든 그것이 나의 이해관계와 가치에 부합되지 않는다면 이것은 평등한 투표권을 가졌다고 말하기 힘들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들은 무시민권자인 것이다.

    이들이 자신들의 권리를 확보하기 위해 해야 하는 일은 타인이 아니라 스스로가 정치적 주체로서 확성기를 손에 드는 일이다. 물론 인간은 다양한 정체성이 있다. 나는 성소수자임과 동시에 여성 혹은 남성이고, 서울생활권자이며, 미취업자(하아)라는 정체성을 가진 존재다.

    그렇기에 비록 내가 원하는 성소수자와 관련된 정책을 가진 후보가 나오지 않더라도 미취업자라는 정체성과 관련해 그것을 충족시킬 후보가 나온다면 나는 자발적으로, 나의 의지에 의해 누군가를 선택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시민권은 유동적인 개념이고 그렇기에 ‘시민권이 없다’라는 것은 선언적인 의미가 강하다. 강한 문제제기이자 결단의 촉구를 위해 내뱉는 입김인 셈이다.

    성정치 그리고 성적 시민권

    그렇다면 강의 제목에 나오는 애매한 또 하나의 단어, 성적 시민권이란 무엇일까? 이것은 성과 관련된 다양한 문제들에 대하여 ‘정치적으로’ 문제제기할 수 있는 도구이다. 우리는 모두가 성적 존재이다. 하지만 자본가의 성과 노동자의 성은 같은 것일까? 어쩐지 아닐 것만 같다.

    즉, 우리는 모두 성적존재임과 동시에 성적 차이를 가진 존재이기도 하다. 그런가하면 저출산 문제, 가부장제와 관련된 다양한 사회적 이슈들 역시 모두가 ‘성(性)’과 연관되어 있음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처럼 성과 관련해 우리가 무언가를 말하기에 정말이지 성이랄까, 성적 존재랄까 하는 것은 뭔가가 무성하고 많고 복잡한 개념인 것이다.

    하지만 이와 관련한 다양한 문제들에 접근하고 그것에 정치적 힘을 불어넣기 위해서는 모두 ‘성적 시민권’을 염두해 둬야한다는 공통점을 가진다. 성적 시민권은 더욱 ‘잘’ 살기 위해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할 무엇이다.

    수돗물로 배 채우던 헐벗은 아이들이 변화를 위해 스스로 학급반장 선거에 나가야 하듯, 성적 존재인 우리가 무엇에 불편함을 느끼고 개선의 필요성을 느낀다면 우리 스스로. 마치 밥을 먹듯, 정치해야 한다. 노처녀라고 명절 때가 되어 집에 가면 눈칫밥만 먹는 A양에게도, 남자라면 결혼을 위해 키를 세 개는 장만해야 되지 않냐는 압박을 받는 B군에게도, 여하간 대개의 사람들 모두는 성적 존재로서의 자신과 필연적으로 관계를 맺고 있고 이 사회는 무언의 코드로 성문화를 만들어 간다.

    나에게 성적 시민권을 달라

    결국 ‘성정치’는 그 단어 자체는 낯설지 몰라도 우리와 결코 멀리 있지도, 우리와 상관없지도, 따로 존재하지도 않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우리가 무언가를 말하기 위해 그려야할 공통의 밑그림이 바로 성정치이다.

    그래서 이쯤, 단도직입적으로 나는 말하고 싶다. 나에게 당연한 듯 결혼을 강요하지 말라고. 나에게 당연한 듯 이성을 사귀라고 말하지 말라고. 나에게 자녀가 있으면 청약 순위를 올려주겠다고 권하지 말라고. 나의 성적 결정권은 훼손되고 있다.

    그 대신 나는 말하고 싶다. 나에게 성적 시민권을 달라고. 그리하여 내가 나의 파트너와 자유롭게 정치하면서 섹스할 수 있게 해 달라고. 아마 근래 들어 내가 배운 가장 재밌는 섹스 기술이 아니었을까, 하는 흐뭇한 마음이다.

                                                                * * * 
    <진보신당 성정치 위원회 성정치 강좌 10대, 20대를 위한 이동식 SPA!>
    4강. 누구와 함께 살 건가요? – 가족구성권의 정치는 2월 3일(수) 오후 5시 동국대 학림관 411호에서 진행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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